기대 큰데, 실적은 답답
지원 너무 많아 되레 ‘독’
유니콘 육성 환경 손봐야

유니콘 기업 쿠팡이 미국 증시에 출사표를 던졌다. 시장에선 쿠팡의 시장가치가 50조원 이상일 거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자 국내 유니콘 기업들을 향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쾌거’란 말까지 입에 담았다. 이런 기대감을 가져도 되는 걸까. 더스쿠프(The SCOOP)가 한국 유니콘 기업의 현주소를 분석했다. 

유니콘 기업들이 많이 나오려면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유니콘 기업들이 많이 나오려면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한국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 기업)의 쾌거다.” 쿠팡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하기 위해 신고서를 제출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이후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의 일부다. 그는 “우리나라 유니콘 기업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면서 “벤처기업의 해외 진출 지원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진짜 쾌거가 맞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쿠팡이 미국 증시에 상장한 이후 해외시장으로 사업을 넓힐지를 둘러싸고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증권업계 관계자의 얘기를 들어보자. “쿠팡이 해외에서 지금과 같은 배송시스템을 도입해 사업을 넓히기란 쉽지 않다. 무엇보다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 일본 정도까지는 진출할 수 있겠지만, 적자가 쌓이는 지금 같은 상황에선 무리수가 있다. 따라서 미국 증시 상장은 투자금을 끌어모으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유니콘 기업 실적은 답답

상장은 미국에서 하더라도 사업까지 해외로 넓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게다가 국내 기업의 해외 증시 상장은 국내 증시 입장에선 그다지 좋은 소식이 아닐 수도 있다. 국내 증시에 좀 더 활력을 불어넣어 줄 이슈를 뺏겨서다. “쿠팡의 미국 증시 진출만으로 ‘쾌거’라고 하기엔 아직 이른 감이 있다”는 지적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그럼에도 쿠팡의 미국 증시 진출은 긍정적인 이슈다. 어떤 방식으로든 다른 유니콘 기업에 본보기가 될 게 분명해서다. ‘한국 유니콘 기업의 쾌거’라는 홍 경제부총리의 표현도 이런 기대감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중요한 건 이런 기대감이 현실화할 수 있을 만큼 국내 유니콘 기업들의 상황이 좋으냐다. 하나씩 살펴보자.

우선 유니콘 기업들의 표면적인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유니콘 기업은 총 12개(비공개기업 1개 제외)다. 이들의 2019년 실적을 보면 3군데를 제외하곤 모두 적자다. 코로나19 이전 실적이라는 걸 감안하면 답답한 수준이다. 

물론 유니콘 기업은 평가할 땐 ‘성장성’이 가장 중요한 지표인 만큼 실적으로 모든 걸 따져보긴 힘들다. 단기간에 성과를 내고 상장이나 인수를 통해 유니콘 기업 딱지를 떼낸 기업도 적지 않다. 2019년 ‘배달의민족’으로 유명한 우아한형제들은 딜리버리히어로에 40억 달러(약 4조7000억원)의 가격에 팔렸다. 더블유게임즈(코스피ㆍ2019), 펄어비스(코스닥ㆍ2017) 등과 같이 상장회사로 탈바꿈한 기업들도 있다. 

하지만 성적표가 너무 나빠서 존립기반마저 흔들리는 곳도 있다. 일례로 기업가치가 4조원 이상으로 평가받았던 옐로모바일은 회계법인으로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감사의견 거절을 받았다.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능력에 의문을 불러일으킬 만한 중요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게 이유였다. 기업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엔 15억원의 세금조차 못 내서 유니콘 기업 리스트에서 제외될 위기에 처해 있다. 그렇다면 국내 유니콘 기업은 왜 이리 부진의 늪에 빠져 있는 걸까.

지원 많이 할수록 유니콘에 ‘독’

유니콘 기업을 육성하는 생태계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스타트업 업계의 얘기를 들어보면 정부 지원 정책은 그리 나쁘지 않다. 청년스타트업협회 관계자는 이렇게 평가했다. “정부의 지원정책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예전에는 창업을 시작하려는 이들, 말하자면 예비창업자들을 많이 지원했다. 또한 제품을 못 만드는 기업이 잘 만드는 기업과 똑같이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선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정말 잘하는 기업에, 혹은 민간 지원을 많이 받은 기업에 지원을 더 해준다. 성장성이 있으면 사업화 자금을 언제든 받을 수도 있다는 거다. 이런 전략은 스타트업들의 성장을 이끄는 유인책이 되고 있다.”

한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스타트업의 성장을 돕는) 전문가도 “올해 중소벤처기업부에 배정된 예산이 16조8000억원인데, 이 가운데 벤처기업을 위한 예산이 전체의 10%가량”이라면서 “산업통상자원부나 과학교육기술부 등의 지원까지 합하면 예산은 훨씬 많다”고 설명했다. 스타트업을 유니콘 기업으로 키우기 위해 정부가 지원하는 세금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그는 “지원 방향도 수익보다는 원금 회수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벤처 육성에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 

눈에 보이는 성과도 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K-스타트업센터를 통해 해외로 진출하고 싶은 스타트업을 모집해 ‘해외시장 진출→현지 창업생태계 안착→글로벌 스케일업’을 지원하고 있는데, 지난해 92개(전체 지원기업의 86%) 스타트업을 해외로 진출시켰다. 이 가운데 일부는 해외 투자 유치에 성공하기도 했다. 

정부의 스타트업 지원정책은 나름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사진=뉴시스]
정부의 스타트업 지원정책은 나름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사진=뉴시스]

하지만 정부가 보완해야 할 점도 적지 않다. 먼저 정부의 투자가 너무 적극적이어서 스타트업의 가치가 실제보다 고평가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호정 고려대(경영학 교수) 스타트업연구원 원장은 “현재 정부는 나름 성장성이 있는 스타트업에 지원을 집중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데, 이런 전략은 방향성도 맞고, 생태계에도 긍정적이지만 부작용이 있다”면서 이렇게 꼬집었다. “정부의 지원도 많고, 민간 투자도 활발하다 보니 양질의 스타트업이 아직은 기대만큼 많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투자금이 넘쳐나는 상황이다. 그러니 실제 가치보다 더 높게 평가받는 스타트업들이 적지 않다.”

그러자 스타트업 업계에선 ‘창업을 하려면 우선 예비창업자 지원금부터 받고 시작하라’는 조언이 쏟아진다. 벤처투자(VC) 업계에서는 “요즘 VC 업계가 정부와 경쟁하고 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신 교수는 “오히려 남는 재원은 양질의 스타트업이 더 나올 수 있도록 하는 데 투입되는 게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치에 집착하는 정부의 성과 평가 방식도 여전히 문제로 지적된다. 일례로 정부는 대학에 스타트업 육성 자금을 지원하고선 몇개의 스타트업이 설립됐는지, 그 스타트업이 몇명을 고용했는지, 매출이 얼마나 나왔는지 등으로 성과를 평가한다. 

하지만 스타트업을 잘 키워서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게 목적이라면 이런 평가는 어울리지 않는다. 투자 후 단기간에 성과를 내겠다는 것과 다름없어서다. 평가방식을 손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예비창업 지원정책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예비창업의 경우 3년간 지원한다. 이는 3년 안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지원이 끊긴다는 얘기다. 창업자로선 부담스럽다. 

그렇다면 정부 지원정책만 손보면 끝날까. 아니다. 스타트업들이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대기업의 벽을 넘어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황수민 청년스타트업협회 사무처장은 “재계에서 산업의 발목을 잡는 법과 제도 혹은 정부기관의 규제들이 많아서 스타트업들이 성장하기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앱을 이용해서 맛집을 추천하는 건 가능해도 성형외과를 추천하기는 불가능하다. 법으로 병원의 호객행위는 금지돼 있는데, 성형외과의 추천이 호객행위와 같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엔 제도적이면서도 긍정적인 규제에 속한다. 

하지만 스타트업들이 겪는 규제에는 그런 것들만 있는 게 아니다. 산업에 먼저 진출해 있던 기업들이 만든 장애물도 숱하다. 예컨대 핀테크 분야는 스타트업들이 많이 진출할 수 있는 분야인데, 대기업들이 진입장벽을 쳐놔서 진입하기가 쉽지 않다. 황 사무처장은 “법이나 제도는 어디 하소연이라도 해볼 법한데, 이런 규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면서 “그렇다보니 규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꼬집었다.

유니콘 육성 환경 개선 필요

대기업의 벽은 이뿐만이 아니다. 대기업이 스타트업의 기술을 빼앗는 ‘포식자’ 노릇을 하는 것도 문제다. 자본이 부족해 특허나 저작권을 제대로 받아놓지 않은 틈새를 대기업이 파고드는 경우가 숱하다는 거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정부기관들이 연구개발 과제를 추진할 때 아이디어는 스타트업에서 얻고, 실행은 대기업을 통해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스타트업은 용역업체로 전락하거나 자연스럽게 배제된다. 공무원들의 성과주의에 스타트업 육성이 가로막힌 셈이다.” 

이처럼 국내 스타트업계의 상황은 썩 좋지 않다. 홍 부총리가 그랬듯 쿠팡의 미국 증시 상장 계획을 두고 ‘유니콘 기업의 쾌거’라고 외치는 것도 좀 민망한 일이다. 스타트업의 현주소를 꿰뚫어봐야 대책이 나온다. 우린 지금 스타트업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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