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태료 처분’조차 개인 정보

갭투기에 피해를 입은 사람은 숱하지만 불법이 아니기에 막을 길은 없었다. ‘왜 이런 집을 소개했느냐’고 따져물어도 공인중개사에게 책임을 돌리긴 힘들다. 그렇다고 공인중개사가 성실한 계약을 유도해왔는지를 검증할 방법도 없다. 내 앞에 있는 공인중개사가 ‘불법 계약’을 숱하게 체결했어도 그 사실을 알 길이 없다.

​​​​​​​갭투기 피해자들은 위반 건축물을 매입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사진=연합뉴스]
갭투기 피해자들은 위반 건축물을 매입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사진=연합뉴스]

A씨는 부동산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남들처럼 전세 매물을 찾았다. 마음에 드는 매물을 보고 공인중개사를 찾아갔고 다세대 주택을 소개받았다. 등기부등본도 건축물대장도 멀쩡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집주인은 ‘갭투기꾼’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집을 여러 채 사들인 사람이었다. 모자란 돈은 세입자의 전세 보증금으로 충당했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돌고 돌던 전세 보증금이 바닥을 드러내자 폭탄이 터졌다. 전세계약 만기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집주인은 A씨에게 “돌려줄 보증금이 없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늘어놨다. 이렇게 당한 세입자는 A씨만이 아니었다. 2019년 서울 강서구에서 일어난 ‘갭투기’ 피해 규모는 수백 채에 달했다.

‘갭투기’에 당한 세입자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많지 않았다. 새 집주인이 와서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을 때까지 전세계약을 연장하거나, 보증금을 돌려받는 대신 채권자 자격으로 집을 매입하는 거였다. ‘갭투기’ 주택의 전세 세입자였던 서규원(가명)씨는 2년 전 그렇게 집주인이 됐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보증금을 지키기 위해 샀던 집은 2020년 서울시 강서구청으로부터 ‘위반 건축물’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불법으로 발코니를 확장했기 때문이었다. 주변 주택의 일조권을 확보하기 위해 건물 외벽을 사선으로 처리했어야 했는데 서씨의 집 외벽은 그렇지 않았다.

사선으로 외벽을 만드는 대신 벽을 직각으로 세워 보일러실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이행강제금을 피하려면 보일러실을 철거해야 했지만 아랫집에 누수가 발생할 수 있다는 말에 엄두를 내지 못했다. 서씨는 ‘갭투기’부터 위반 건축물로 이어진 문제를 계속 끌어안고 있다. 그러나 집을 소개해준 공인중개사는 여전히 강서구에서 영업 중이다. 부담은 오로지 세입자에게만 있다.

​​​​​​​세입자의 전세 보증금을 활용해 집을 사들이는 ‘갭투자’는 불법 행위는 아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재산을 이용하는 만큼 위험은 항상 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집을 소유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일이 대표적이다. 

서울 강서구청은 들끓었던 갭투기 피해 사례를 조사하고 현장을 파악하기 위해 서울시와 합동 점검을 여러 차례 시행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갭투자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그래서 처벌할 법적 근거도 없다.”

‘관행’이라는 보호막

그럼 공인중개사의 잘못은 없을까. 세입자에게 부동산 관련 정보를 충분히 알려주지 않은 공인중개사는 과태료 부과대상이다. 공인중개사법에 따르면 공인중개사는 부동산 계약을 맺을 때 중개대상물 확인ㆍ설명서를 작성해야 한다.

그러나 잘못된 설명으로 피해를 입은 세입자가 온전히 보상을 받기는 어렵다. 2017년 정재희(가명)씨는 서울 광진구에서 다세대 주택의 전세 계약을 맺었다. 1억9000만원. 전세 보증금 액수였다. 정씨는 등기부등본을 확인해 해당 주택에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했지만 1년 뒤 상황이 달라졌다. 정씨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이 집주인의 국세 체납으로 세무서의 압류 대상이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정씨에게 집을 소개해준 공인중개사는 해당 주택에 국세 고지서가 발부돼 체납 사실이 있고 국세가 체납될 경우 부동산 가압류가 이뤄질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국세 체납 시점부터 부동산 등기부등본에 압류가 기재될 때까지 비어 있는 틈을 이용했던 거였다. 

정씨는 주택의 상태를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은 집주인과 공인중개사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지만 재판은 ‘혐의없음’으로 종결됐다. “세입자가 실거주한 지 3년이 지난 데다, 관행이다”는 황당한 이유에서였다.

물론 정씨가 만난 공인중개사처럼 ‘중개대상물 설명’을 소홀히 한 중개사에게는 앞서 언급했듯 과태료가 부과된다. 중개대상물 설명 의무를 1회 위반하면 250만원, 2회 위반하면 최대 500만원이다. 애초 1회 위반 시 과태료는 400만원이었지만 이마저도 2019년 과도하다는 업계 주장으로 250만원으로 경감됐다.

그렇다면 과태료는 시장을 투명하게 만드는 효과를 발휘했을까. 여기에도 장애물이 있다. ‘과태료 처분 이력’조차 ‘개인 정보’라는 점이다. 공인중개사가 불성실하게 매물을 설명하거나 중개 업무를 잘못 처리해도 일반 시민은 이런 사실을 파악할 수 없다. 내 앞에 있는 중개사가 잘못된 계약을 숱하게 체결했던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는 방도가 없다는 얘기다.

‘과태료 처분’조차 개인 정보

잘못된 중개 행위로 영업정지 처분을 받는다고 해도 그때뿐이다. 국토교통부가 운영하는 국가공간정보포털에서 부동산중개업체를 조회하는 건 가능하지만 과태료 이력을 확인할 순 없다. 중개 사고가 발생해도 영업 중인 부동산을 닫고 다른 중개사무소에 취직하면 그만이다. 이력이 남지 않고 공개도 되지 않으니 가능한 일이다.

한 구청의 관계자는 “과태료 처분 이력은 개인 정보이기 때문에 일반 시민이 열람할 수 있는 길이 없다”며 “정보공개청구를 하더라도 공인중개사가 어떤 거래를 했는지 외부에 공개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국민이 보유한 재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76%다(통계청ㆍ2019년). 부동산 계약으로 경제적 지위가 흔들릴 수 있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거다. 위험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 중개사들은 여전히 문을 열고 영업 중이다.

그런데도 이들을 구분할 수 있는 표식은 아무것도 없다. 재산 가치가 큰 만큼 부동산 거래를 위해서 국가는 중개사 자격증을 발급하고 자격 조건을 제한했다. 그러나 감시하는 기능은 수십년째 빠져 있다. 일반 시민이 중개사조차 직접 검증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숱한 중개 사고가 일어났지만 아무도 외양간 문조차 고치지 않는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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