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보레이션의 역설
“강해지자 약해졌다”

지난 2~3년간 유통업계선 이색 콜라보레이션 트렌드가 이어졌다. MZ세대 소비자를 사로잡을 수 있어서다. 대한제분의 곰표 밀가루는 효과를 톡톡히 본 대표적인 사례다. 곰표를 단 제품은 완판 행진을 이었다. 그러자 ‘천마표 시멘트’ ‘말표 구두약’ 등 더욱 격렬한 콜라보 제품이 나왔다. 하지만 이들은 곰표만큼의 효과를 내진 못했다. ‘선 넘었다’며 논란까지 터졌다. 콜라보 제품이 세지자 되레 약해졌다는 얘기다. 콜라보의 역설이다. 

이종 브랜드 간의 이색 콜라보레이션 제품이 쏟아졌지만 곰표 콜라보 제품만큼 열풍을 일으킨 사례는 드물다. [사진=GS리테일 제공]

유통업계의 이종異種·이색 콜라보레이션 트렌드는 올해도 이어졌다. 지난 2월 밸런타인데이에 맞춰 편의점 업체들은 ‘말표 구두약 초콜릿(CU)’ ‘천마표 시멘트 에코백(세븐일레븐)’ 등을 출시했다. GS25는 창립 50주년을 맞아 5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토종기업 모나미와 협업해 ‘유어스 모나미 매직 스파클링’을 선보이기도 했다. 구두약-초콜릿 또는 유성펜-탄산음료라는 괴상하고 독특한 조합은 SNS상에서 화제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편의점이나 온라인 쇼핑몰에서 ‘이 브랜드가 왜 여기서 나오나’ 싶은 제품을 발견하는 건 이제 흔한 일이다. 지난 2~3년간 유통가에선 온갖 콜라보 제품이 쏟아져 나왔다. 라면(팔도 비빔면)과 화장품(미샤 BB크림), 의류(휠라)와 샌드위치(서브웨이), 펜(모나미 153)과 소화제(동화약품 활명수)…. 급기야 구두약·시멘트회사까지 콜라보를 꾀했다.

그 배경에는 대한제분 ‘곰표 밀가루’의 성공이 있다. 2018년 출시한 곰표 티셔츠·패딩이 MZ세대 소비자에게 뜻밖의 호응을 얻은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CU가 판매한 ‘곰표 밀맥주’는 출시 3일 만에 10만개가 팔리며 품절대란을 일으켰다. 그밖에도 쿠션팩트·팝콘 등 각종 제품이 인기를 끌었다. 

곰표의 성공은 업계서 조금씩 진행되던 이색 콜라보 트렌드에 불을 지폈고, 숱한 업체들이 손잡고 제품을 냈다. 이제는 동종업계 간 콜라보나 유명 캐릭터와의 협업보다 이종 콜라보가 찾기 쉬울 정도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뉴트로 콘셉트의 이종 콜라보는 20~30대에겐 재미를, 40~50대에겐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며 “재미에 방점을 둔 만큼 화제성이 좋아 이색 콜라보가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관심은 판매량 증가로 이어졌다. 지난해 11월 세븐일레븐이 성신양회와 출시한 ‘천마표 시멘트 팝콘’은 팝콘 카테고리 1위에 올랐고, 밸런타인데이 프로모션 제품으로 나온 천마표 시멘트 에코백은 완판됐다. CU가 지난해 10월 말표산업·스퀴즈브루어리와 손잡고 출시한 ‘말표 흑맥주’도 국내 수제맥주 중 1위에 올랐다. GS25가 식품종합기업 대상과 함께 만든 ‘미원맛소금 팝콘’은 출시 한달 만에 30만개가 팔렸다. 

그럼에도 곰표만큼 열풍을 일으킨 사례는 나오지 않았다. 열기가 꺾였지만 여전히 곰표는 이색 콜라보의 대명사로 불린다. SNS에 인증사진을 남기기 좋은 기발한 콜라보 제품이 쏟아져도 시장의 반응은 예전 같지 않다. 시멘트·구두약 등 콜라보의 강도는 세졌는데 화제성은 약해진 셈이다. 왜일까.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연관성이 떨어지는 제품 간의 콜라보가 역효과를 냈다”고 짚었다. 브랜딩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곰표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밀가루의 범용성과 적절한 제품 선택 덕분인데, 요새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밀가루와 ‘밀맥주’ ‘팝콘’ 등은 신선하면서도 납득할 만한 연관성을 가졌다”며 “반면 전혀 상관없는 것끼리 엮으면 거부감부터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과도한 콜라보는 논란을 낳기도 했다. SNS를 중심으로 “유성매직·구두약 등 인체에 유해한 제품을 모티브로 식품을 만드는 건 위험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이는 “식품을 굳이 저런 디자인으로 내야 하나” “재미없고 지겹다”는 반응으로 이어졌다. 

친근한 캐릭터의 유무도 성패를 가른 원인 중 하나였다. 콜라보 마케팅이 감성을 자극하는 것인 만큼 캐릭터의 힘이 크다는 거다. 곽금주 서울대(심리학과) 교수는 “곰표의 경우 단순하게 생긴 곰 캐릭터가 주는 푸근함이 뉴트로 콘셉트와 맞아떨어졌다”며 “MZ세대가 처음 보는 캐릭터임에도 친숙함을 느끼고 팬층까지 형성한 이유”라고 말했다. 

높아진 기대치 만족시켜야

이런 면에서 하이트진로의 두꺼비 캐릭터는 성공한 사례로 꼽을 만하다. 하이트진로는 2019년 소주 ‘진로이즈백’의 모델로 큰 눈에 미소를 지은 두꺼비를 세웠다. 이어 팝업스토어 ‘두껍상회’를 열고 인형·포스터·술잔 등 굿즈를 내며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다. 소주 마스코트임에도 귀여움을 내세운 덕에 ‘두꺼비 젤리’ ‘두꺼비 이불’ 등 각종 콜라보 제품으로 유통채널 곳곳에 진출했다. 

콜라보 마케팅이 감성을 자극하는 것인 만큼 캐릭터의 힘이 크다. [사진=BGF리테일 제공]<br>
콜라보 마케팅이 감성을 자극하는 것인 만큼 캐릭터의 힘이 크다. [사진=BGF리테일 제공]

어쨌거나 유통가에서 이색 콜라보 마케팅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준영 상명대(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의류나 식품처럼 트렌드의 변화가 빠른 업계에 적합한 방식”이라며 “‘쇼트폼 콘텐츠’처럼 짧고 자극적인 소재를 즐기는 Z세대의 성향과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색 콜라보를 해야 성공할까.

여준상 동국대(경영학과) 교수는 “독특한 콜라보 제품에 익숙해진 소비자의 기대치는 높아진 상황”이라며 “유행에 편승해 앞선 사례만 따라하면 안 된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렇게 조언했다. “이색 콜라보 마케팅에도 진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콜라보하는 브랜드 간의 연관성을 높이고, 제품의 내재적인 동질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전개해야 한다.”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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