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채무비율 40%선 훌쩍
재정건전성 악화 우려

선거를 의식해 공약을 남발해선 안 된다. 선거 과정에서 나온 주요 정책과 사업 공약에 대해선 재원 마련 방안을 꼼꼼히 따져야 할 것이다.[사진=뉴시스]
선거를 의식해 공약을 남발해선 안 된다. 선거 과정에서 나온 주요 정책과 사업 공약에 대해선 재원 마련 방안을 꼼꼼히 따져야 할 것이다.[사진=뉴시스]

거대 여당의 힘이 막강하다. 사업비가 28조원대로 늘고 안전사고와 환경훼손의 위험성이 있다며 국토교통부가 반대한 부산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이어 코로나19 4차 재난지원금으로 12조원을 제시한 기획재정부에 20조원은 돼야 한다고 맞선 끝에 19조5000억원 규모로 확정했다.

여당이 정부의 반대 입장이나 신중한 접근에 관계없이 가덕신공항 건설사업 추진을 강행하고 4차 재난지원금 규모를 늘린 것은 다분히 4월 7일 서울ㆍ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의식한 행보다. 공항건설 같은 대형 국책사업은 절차적 정당성과 합리성을 갖춰야 함에도 가덕신공항특별법은 국가재정법이 정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고 사전타당성 조사까지 간소화할 수 있게 했다. 

코로나19 사태로 피해가 큰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어려움은 덜어줘야 하지만, 3차 재난지원금 지급이 완료되지 않은 시점에 4차 지원을 결정했다. 지원금 규모도 3차 지원금(9조3000억원)의 두 배를 넘는다. 당정은 4ㆍ7 보궐선거 이전인 3월말 지급을 목표로 지원 방안을 마련했다.

장기화하는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재정이 역할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재정건전성이 악화하는 문제를 간과할 수는 없다. 4차 재난지원금 가운데 9조9000억원은 국채를 발행해 충당해야 한다. 이에 따라 올해 국가채무는 965조9000억원으로 불어나 1000조원에 육박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마지노선으로 여겨져온 40%선을 훌쩍 넘어서 48.2%에 이르게 된다.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은 벌써 다섯번째다. 코로나 백신 접종이 주요국보다 한참 늦은 2월말 시작됐다. 집단면역 형성은 일러야 연말, 더디면 내년 여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4차에 이어 5차, 6차, 7차 재난지원금 지급과 자영업자 손실보상용 재원 마련이 요구되는 현실이다. 그때마다 국채를 발행해 나랏빚을 부풀리면 재정건전성은 더욱 위협받을 것이다.

코로나 사태 극복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국채 발행이 불가피해도 미래세대가 갚아야 할 빚이라는 엄연한 사실은 달라지진 않는다. 국제 신용평가기관과 금융업계가 한국의 재정건전성을 아직 괜찮게 본다지만, 국제결제통화를 가진 선진국들과 같은 잣대로 재정을 운용할 수 없다. 미국이야 국채와 달러에 대한 세계적 수요가 많아 가치를 유지할 수 있지만, 한국은 국채 발행이 너무 많으면 국채 가격이 하락하고 금융·외환시장이 불안정해지며 원화가치가 급락할 수 있다. 

추경 편성 때마다 나라의 곳간지기인 기획재정부와 경제부총리는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고 되뇌며 재정건전성 악화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다. 하지만 매번 여당에게 핀잔을 듣고, 결국 여당 요구대로 따르고 만다.

정부와 여당은 무턱대고 재난지원금 지급용 추경을 편성해선 곤란하다. 정교한 재난지원금 지급 기준과 함께 불요불급한 국채 발행규모, 증세까지 포함한 재원확보 방안을 제시하고 국민을 이해시켜야 할 것이다. 재난지원금 같은 일회성 예산은 경제성장이나 세금수입을 늘리는 사업예산이 아니다. 따라서 당장 급하지 않은 분야에서 지출을 줄이거나 미루는 재정 효율화 작업이 함께 강구돼야 한다. 

하지만 여당은 정반대로 선거용 선심 입법을 통과시켜 놓고는 세금을 올리자고 한다. 고소득자와 100대 기업에 연 3조~5조원을 더 걷는 부자 증세인 ‘사회연대특별세’ 법안 발의가 예고됐다. 한시적으로 부가가치세를 1~2% 인상해 코로나 손실보상 기금을 마련하자는 방안도 제기된다. 기본소득세 5% 신설과 공시지가 1%의 국토보유세 도입 방안도 거론됐다. 

차제에 증세 방안을 공론화하자. 여당 내에서 보편 증세와 부자 증세가 엇갈리는 것은 건강한 토론과 합리적 결론 도출을 위한 과정일 수 있다. 당 정책위원회 등 공식기구를 통한 의견 수렴이 필요해 보인다.  

정치권은 선거를 의식한 공약 남발을 자제해야 마땅하다. 특히 부산 가덕도신공항 건설처럼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한 채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대형 국책사업 공약을 하지 않아야 한다. 선거과정에서 주요 정책과 사업 공약에 대해선 재원 마련 방안을 함께 꼼꼼히 따져야 할 것이다. 

4월 서울ㆍ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이어 내년 3월에는 대선이 치러진다. 대규모 사업이나 선심성 복지확대 공약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납세자이자 유권자인 국민 부담을 늘리는 증세를 결정하기 어려운 정치 환경이다. 그래도 나라살림과 미래세대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정치권이 나서 증세정책에 대해 국민을 설득하고 표로 심판받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책임 있는 공당의 자세다. 여당도, 야당도 마찬가지다. 

양재찬 더스쿠프 편집인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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