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분할 사례 보니…
오너 지배력 늘고 주가 흔들
언제나 수혜자는 최대주주

기업분할은 호재일까 악재일까. 인적분할이 이로울까 물적분할이 이로울까.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이는 최대주주뿐이다. 모든 분할 과정이 최대주주에게 유리하게 설계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기업분할 이슈는 최대주주에게 항상 이득을 안긴다. 말 그대로 오너의, 오너에 의한, 오너를 위한 분할이다.

삼성테크윈의 인적분할은 최대주주의 지배력과 무관하게 진행된 흔치 않은 사례다.[사진=뉴시스]
삼성테크윈의 인적분할은 최대주주의 지배력과 무관하게 진행된 흔치 않은 사례다.[사진=뉴시스]

사례 하나를 보자. 2009년 2월 진행된 삼성테크윈의 분할 얘기다. 당시 삼성테크윈은 카메라 사업부문(삼성디지털이미징)을 인적분할했다. 분할 비율은 삼성테크윈 69%대 삼성디지털이미징 31%였다. 당시 삼성테크윈은 “각 사업 부문의 전문화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책임경영으로 주주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분할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주주들은 득을 보기도 했다. 인적분할 후 곧바로 재상장한 삼성디지털이미징은 시초가가 8200원이었는데, 20여일이 흐른 뒤엔 4배 가까이 상승했다. 카메라 사업부문의 성장성이 인정받은 거였다. 이후엔 삼성전자로 합병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주가는 6만원대를 넘겼다. 삼성디지털이미징을 떼어내고 곧바로 재상장한 삼성테크윈의 주가 역시 상승세를 탔다. 적자사업부를 떼어 내면서 안정적인 실적이 예상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처럼 삼성테크윈의 분할은 최대주주의 지배력 강화와는 크게 관련 없이 사업부문을 정리한 사례로 꼽을 만하다. ‘주주가치 제고’도 빈말이 아니었다. 중요한 건 이런 분할 사례가 많지는 않다는 점이다. 과거 사례들을 훑어보면 분할을 결정하는 기업들이 내건 ‘주주가치 제고’란 공언은 대부분 공염불에 그쳤다. 기업분할이 최대주주의 지배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007년 4월 결정된 SK의 분할 사례부터 보자. 당시 SK그룹은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SK를 지주회사(SK)와 사업회사(SK에너지)로 인적분할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분할 과정에서 주주들은 분할 효과를 누리지는 못했다. SK에너지는 같은해 7월 시초가 16만원으로 재상장했다. 그런데 재상장 당일 16만9000원으로 마무리된 이후부터 내림세를 계속하더니 20여일 후엔 11만1500원까지 하락했다.  당시 업황이 좋지 않았다는 점도 악재로 작용했다.

반면 최대주주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SK에너지의 지배력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 분할 전 최대주주인 최 회장과 SK C&C가 가진 SK에너지 지분율은 12.13%(각각 0.97 %, 11.16%)였다. 분할 후에는 지주회사 주식을 사업회사 주식과 교환하면서 SK의 지배력이 30.5%로 껑충 뛰었다. 

2013년 3월부터 진행된 대한항공의 분할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한진그룹 역시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대한항공을 지주회사(한진칼)와 사업회사(대한항공)로 인적분할했다. 분할 진행 과정에서 최대주주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지분율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직접적인 지분율은 기존 6.76%에서 0.01 %로 하락했지만 대신 한진칼의 대한항공 지분율이 기존 6.88%에서 31.46%로 상승했다. 자사주의 의결권 부활(일명 ‘자사주의 마법’)과 주식 교환 등을 통해서다. 조 회장의 한진칼 지분율도 원래 6.76%보다 두배 이상 많은 15.63%가 됐다. 주주가치는 올랐을까. 그렇지 않다. 분할 직전 4만원대였던 주가는 이후 계속 떨어졌고, 석달 만인 6월 말에는 2만9000원대까지 하락했다.

현대중공업의 사례도 있다. 역시 지주사 전환을 위한 인적분할이었다. 2016년 11월 현대중공업은 “독립경영과 책임경영을 위한 것”이라면서 인적분할 계획을 발표했다. 이후 2017년 4월 회사를 현대로보틱스ㆍ현대중공업ㆍ현대건설기계ㆍ현대일렉트릭 4개로 분할했다. 이후 현대로보틱스는 지주사(현대중공업지주)로 변경됐는데, 그 과정에서 최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현대중공업 지분율이 10.15%에서 25.80%로 높아졌다. 

여기서는 주주들이 이득을 봤을까. 2017년 5월 10일 4개 계열사는 각각 재상장했는데, 당일 주가는 최소 23%에서 최대 48%까지 상승했다. 한데 묶여 있던 사업들이 별도로 나뉘자 각각의 사업들이 시장에서 재평가를 받은 결과였다. 


오너 지배력 늘고 주가는 오락가락

2019년 5월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해 다시 한번 더 분할했다. 이번엔 중간지주사(한국조선해양)를 만들어 현대중공업(지분 100%)을 그 아래에 두는 물적분할이었다. 이를 통해 한국조선해양의 지분을 현대중공업지주가 30.95%(유상 신주 획득) 보유하는 구조로 바뀌었다. 이를 통해 2016년 11월 이전에는 10%대에 불과하던 정 이사장의 현대중공업 지분율은 3배 가까이 높아졌고, 현대중공업도 완전한 자회사로 둘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번엔 주가 상승이 뒤따라오지 않았다. 물적분할 이후 약간의 등락을 거듭하던 주가는 지금까지 줄곧 하락세다. 업황이 좋지 않았던 탓도 있고,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으면서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는 측면도 있다. 대우조선해양 인수 자금 마련을 위한 유상증자 이슈도 주가를 끌어내린 요인 중 하나다. 유상증자를 한다는 건 주주가치가 떨어진다는 의미나 다름없어서다. 결국 분할을 통해 매번 웃은 건 기업 지배력을 높인 최대주주뿐이었다는 얘기다.

롯데그룹의 지주사 전환 과정은 일반주주들의 지배력이 어떻게 약화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사진=뉴시스]
롯데그룹의 지주사 전환 과정은 일반주주들의 지배력이 어떻게 약화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사진=뉴시스]

불투명한 지배구조로 사회적인 지탄을 받고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롯데그룹의 사례도 눈여겨볼 만하다. 2017년 4월 롯데그룹은 롯데제과ㆍ롯데쇼핑ㆍ롯데칠성음료ㆍ롯데푸드 등 4개 계열사를 각각 인적분할해 사업회사와 투자회사로 나누고, 투자회사를 모아 지주사로 만들기로 했다. 

이번에도 최대주주인 신동빈 회장의 지배력은 강화됐다. 예컨대 분할 전 신 회장의 롯데쇼핑 지분율은 13.46%였다. 하지만 분할 이후 신 회장 개인의 지분율은 9.89%로 줄고, 롯데지주의 지분율이 25.87%로 확 높아졌다. 

최대주주는 언제나 기업분할 수혜자

주목할 점은 신 회장과 경영권 다툼을 벌였던 신동주 부회장의 지분율은 7.95%에서 0.48%로 급격히 쪼그라들었다는 거다. 최대주주의 지배력 상승으로 다른 주주의 지배력이 얼마나 약화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롯데제과에서도 신 회장의 직접적인 지분율은 9.07%에서 0%로 줄었지만, 롯데지주의 지분율은 8.23%에서 48.42 %로 상승했다. 롯데칠성음료와 롯데푸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반주주들은 지배력을 잃은 대신 금전적 이득은 챙겼다. 롯데쇼핑만 봐도 분할 계획이 발표된 2017년 4월 26일 25만4500원이었던 주가는 이튿날 26만8000원으로 급등했고, 이후 상승세를 타 6월 14일에는 32만1000원까지 올랐다. 당시 증권업계는 “롯데가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해소하고, 경영권 분쟁까지 마무리한 게 주가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종합하면 기업분할의 최대 수혜자는 최대주주였다. 하지만 분할이 항상 ‘주주가치 제고’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기업분할의 목적이 누굴 위한 것인지는 분명해진다. 답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거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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