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위안칭 레노버 CEO의 ‘배짱경영’

▲ 체스에 말을 두는 양위안칭 레노버 CEO의 눈이 매섭다. PC업계 1위로 올라선 레노버의 비결은 양위안칭의 거칠 것 없는 행마, 바로 배짱경영에 있었다.
“대단하다.” 중국 PC 제조기업 레노버에 쏟아지는 찬사다. PC시장은 고꾸라지는데 레노버는 되레 성장가도를 질주하고 있다. 현상 유지도 힘든 상황에 공격적으로 몸집을 키우는 모습이다. 물살을 거스르는 연어처럼 불황을 뚫고있는 레노버의 저력은 무엇일까. 그 중심에 양위안칭(楊元慶) CEO의 ‘배짱경영’이 있다.

PC업계를 주름잡던 휴렛팩커드(HP)가 힘없이 무너졌다. 올 3분기 HP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15.5%로 전년 동기대비 2% 넘게 빠졌다. 주가는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14.04달러까지 떨어지며 최근 10년 동안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그런데 시장 분위기가 이상하다. HP에 기대도 안 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유는 낮아진 PC시장에 대한 기대치에 있다. 시장조사업체 IDC는 올해 전 세계 PC 시장 출하 증가율이 채 5%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 3분기의 세계 PC 판매대수는 8750만대로 전년 대비 8.3% 떨어졌다. IT 전문가들은 판매량이 급격히 감소하는 경우는 드문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PC업계가 무너질 위기일지 모른다는 분위기가 흐른다.

이런 난세에는 영웅이 등장하게 마련이다. 여러 위협요소에도 강력한 카리스마로 업계를 뒤흔든 기업이 주목을 끌고 있다. 중국의 PC 제조업체 레노버다.

10월 11일 시장조사업체 가트너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레노버는 올 3분기 1377만대의 PC를 팔았다. HP의 1355만대를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 시장점유율도 레노버가 15.7%를 기록해 0.2%포인트 차로 HP를 앞섰다. 미국의 자존심인 HP가 중국기업에 꺾였다는 점은 별 이슈가 되지 못했다. 세계인의 관심은 레노버가 ‘어떻게 심각한 PC시장 정체를 뚫고 성장이 가능했는지’에 쏠렸다.

레노버의 지난해 PC 출하량은 전년비 13% 늘어났다. 같은 기간 성장률이 12% 추락한 PC 시장에서 거둔 눈부신 성적이다. 올 3분기에도 전년 동기 대비 10.2%나 성장했다. HP(-16.4%)•델(-14%)•에이서(-9.6%) 등 주요 PC업체의 성장률이 큰 폭으로 하락한 것과 대조적이다. 똑같은 악조건 속에서 남들보다 더 높이, 멀리 뛴 것이다. 도약을 꿈꾸며 내디딘 달음박질 뒤에는 양위안칭 CEO라는 탄성력 큰 유능한 도약대가 있었다.

 
양위안칭 CEO의 경영자로서의 행보는 무모해 보일 정도로 거침이 없다. 일명 배짱경영이다. 양위안칭은 2005년 빅딜을 성사시켰다. IBM의 PC사업부를 인수한 것이다. IBM PC사업부는 연 6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당시 레노버의 연매출은 30억 달러에 불과했다. 새우가 고래를 집어삼킨 셈이었다. 그렇게 양위안칭은 ‘미국의 상징’을 무너뜨렸다.

자신만만했던 양위안칭과는 달리 시장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무리한 인수로 ‘승자의 저주’에 시달릴 것이라는 예상에서였다. ‘혹시나’하던 시장의 우려는 ‘역시나’로 돌아왔다. IBM PC사업부 인수 이후 레노버의 실적은 악화됐다. 순이익은 감소했고 매출은 크게 줄어들었다. 그 결과, 레노버는 IBM PC사업부 인수 1년 만에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2008년 양위안칭은 무책임한 해외투자의 원흉으로 몰려 낙마설에 휘말리는 등 시련을 겪었다.

공격•방어전략 동시에 구사

그로부터 8년이 흐른 지금, IBM PC 사업부 인수는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의 표본이 됐다. 비결은 IBM PC사업부 인수에 확실하고 구체적인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양위안칭은 IBM의 두 가지를 노렸다. IBM의 글로벌 브랜드 ‘싱크패드’와 그들의 강력한 기술력이었다. 이 두 요소를 갖춰 ‘방어와 공격전략’을 효과적으로 구사하겠다는 게 양위안칭의 구상이었다. 무엇보다 싱크패드는 레노버의 방어카드가 됐다. IBM의 기업용 노트북인 싱크패드 시리즈는 기업 시장(B2B)에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 프리미엄을 레노버가 그대로 안고가면서 기업의 안정적인 성장동력으로 삼았다.

 
공격경영이 필요한 부분은 컨슈머(B2C) 시장이었다. IBM 인수로 얻은 기술력을 총동원해 소비자의 마음을 얻을 만한 제품을 만드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IBM의 뛰어난 기술력은 레노버의 이미지를 ‘하이테크의 기술력을 합리적 가격에 제공하는 기업’으로 바꿔놨다. 또한 이런 기술력으로 생산한 ‘아이디어패드’와 같은 상품을 시장에 선보이며 혁신적인 기업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면 “레노버가 아닌 IBM이 글로벌 PC시장 1위에 오른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양위안칭은 이런 의문에 일침을 날렸다. “사람들은 더 이상 싱크패드 브랜드를 통해 IBM을 떠올리지 않는다. 이제는 레노버를 기억할 것이다.”

실제로 양위안칭은 IBM PC사업부를 인수하고도 그들의 브랜드인 ‘싱크패드’에 기대지 않았다. 많은 돈을 들여 글로벌 기업을 인수하고 왜 실속을 차리지 않느냐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양위안칭은 꿈쩍하지 않았다. IBM의 강력한 브랜드 이미지에 레노버가 묻힐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독자 브랜드와 기술력으로 승부를 보지 않으면 ‘승자의 저주’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미국의 상징 삼킨 양위안칭

▲ PC업계 맹주 HP를 넘어선 양위안칭 레노버 CEO의 다음 목표는 애플이다. 세계경제포럼에 참여한 안위안칭 CEO가 참가자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그 이면에선 레노버 독자 브랜드의 글로벌 론칭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양위안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활용한 스포츠 마케팅으로 레노버 브랜드를 세계에 알렸다. 20억명에 이르는 지구촌의 잠재 소비자는 중국 공영방송국 CCTV 앵커 앞에 놓인 레노버 PC를 봤다. 파워풀한 브랜드의 후광에 기대 성장하려 하는 CEO라면 결코 추진할 수 없는 전략이었다.

최근 레노버는 또 다른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PC 업체라는 이미지를 벗고 스마트 시대를 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분기 설립한 MIDH 부서는 레노버의 변신을 상징하고 있다. MIDH는 모바일•인터넷•디지털•홈의 줄임말로, 레노버의 미래 제품 전략 프로젝트다. 양위안칭이 강조하는 ‘PC+전략’의 키워드다. 양위안칭은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인터넷과 TV, 집을 잇는 스마트 네트워크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도발적이게도 글로벌 IT판을 휘어잡고 있는 삼성과 애플이 그리는 큰 그림과 비전이 똑같다. 세계 IT업계에서는 레노버가 ‘무리수’를 던지고 있다는 견해가 나온다. 그럼에도 양위안칭은 ‘진군의 나팔’을 계속해서 불고 있다. 그의 ‘배짱경영’은 이번에도 알찬 열매를 맺을까.

정다운 기자 justonegoal@thescoop.co.kr|@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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