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필순의 易地思之

▲ 자본금만 있으면 누구나 병원을 차릴 수 있는 시대가 올지 모른다. ‘주식회사 OO병원’ 설립이 가능해진 것이다.
영리병원이 해외자본이나 민간자본에 의해 발전한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영리병원이 성장하면 의료비가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영리병원은 이익을 추구하는 주식회사이기 때문이다.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 설립을 위한 법령이 시행됐다. 정부는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의료기관의 개설허가절차 등에 관한 규칙’을 지난 10월 29일 공포했다.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이라고 불리는 영리병원은 외국법령에 따라 외국인이 의료기관을 설립 ·운영한다. 외국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내국인 환자의 비율은 병상의 50%를 초과할 수 없다. 외국 의료기관의 지나친 특례를 지양하기 위해서다.

또 외국인 전용약국에 종사하는 약사는 외국의료기관에서 처방전을 받은 내국인을 대상으로 의약품을 조제 ·판매할 수 있다. 외국인을 위한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인만을 위한 병원인 것 같다. 하지만 몇 가지 중대한 문제가 있다.

이익 추구하는 영리병원

현재 내국인 방문이 가능하다. 또 지금까지 의사나 비영리 법인만이 병원을 개설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자본금만 있으면 누구나 병원을 차릴 수 있다. ‘주식회사 ○○병원’ 설립이 가능해진 것이다.

문제는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우선협상자로 선정한 투자자가 ‘삼성증권 ·삼성물산’‘KT&G’(이하 50%), 일본의 다이와증권(50%)이라는 점이다. 10년 전 김대중 정부부터 도입이 논의된 영리병원은 찬반이 엇갈린다. 국내 의료기관의 몰락과 의료비 상승, 국제화 수용 등 찬반양론이 있다. 필자는 다른 시각에서 이 문제를 보고자 한다.

의료 서비스는 대표적인 지식서비스 산업이다. 새로운 물질이나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사람의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영리병원이 해외자본이나 민간자본에 의해 발전할 수 있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영리병원이 성장하면 의료비가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영리병원은 이익을 추구하는 주식회사이기 때문이다. 기존 병원과는 다른 회계기준과 세법을 적용해서다. 대기업의 진출 문제도 따져봐야 한다. 인천경제자유구역과 같이 국내 대기업의 참여를 허용한다면 이제 의료 서비스 분야도 조만간 대기업이 독식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동네 의원까지 문을 닫게 될지 모른다. 현재 인천 ·대구 등 6개의 경제자유구역 내에서만 허가를 내주지만 과연 언제까지 지켜질지 알 수 없다. 특히 재벌의 개입은 어떤 경우에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

서비스 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관련 정책을 수립하기 시작한 것은 참여정부 전후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정부와 국민은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2005년 중요 경제 정책 중 서비스 분야는 지식서비스 산업 육성 ·교육과 의료시장 개방 ·선진화 ·서비스 산업용 토지 지방세 감면 등이 포함돼 있다. 교육과 의료 분야가 중요한 지식서비스 산업임을 알지 못하고 이 분야에 재벌이 개입하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모르는 듯하다.

재벌의 영리병원 개입 막아야

지식서비스는 개인의 능력이 중요하다. 이것이 조직화가 되면 창의력이나 도전의식이 반감될 공산이 있다. 재벌그룹이 지식 서비스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 능률과 복종을 요구하기 때문에 더 이상 창의적인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영리병원도 R&D(연구개발)를 한다. 하지만 철저하게 손익계산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 수지타산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의료분야에 일부 대학병원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중소 규모의 병 ·의원이다. 정부는 의료분야를 지식산업으로 봐야 할 것이다. 미래의 국가 발전을 위해서라도 대기업의 진출을 막아야 한다.

영리병원에 재벌이 들어가는 식의 정책이 계속된다면 그나마 남아있는 교육 ·부동산중개 ·광고 ·영화 ·게임 ·소프트웨어 등 시장은 대기업이 잠식할 게 불 보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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