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 대한항공 인수반대 “왜”

카이 인수에 나선 대한항공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2003년 이후 4번째 도전에 나섰지만 상황은 이전보다 더 나쁘다. MB정부의 특혜설에서부터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말 바꾸기 논란까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수북하다.

 
2012년 11월 13일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후문 앞. 한국항공우주산업(KAI•카이) 노조의 매각 반대 시위가 열렸다. 산업은행은 카이 매각 주관사이자 대한항공 주채권은행이다. 시위 현장에서 만난 곽상훈 카이 노조 정책기획실장은 “이제 막 성장하는 카이의 항공기 제작사업은 막대한 정부투자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민간으로 넘어가면 투자가 쉽지 않다”며 “특히 산업은행과 재무구조개선약정을 맺은 대한항공은 자금 조달 부분에서 카이를 이끌기 역부족이다”고 말했다. 그는 “카이 지분 매각, 민영화는 MB정권 말 특정 재벌에 대한 노골적인 특혜”라고 주장했다. 자금 조달 능력은 카이 매각에서 핵심 요인이다. 대한항공이 카이를 인수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이기도 하다.

카이는 전투 훈련용 항공기•헬리콥터를 제작•수출하는 종합항공회사다. 항공기 제작은 국가방위산업으로 투자규모가 크고, 회수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때문에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정부는 현재까지 8조6000억원의 공적자금을 카이에 투자했다. 하지만 민영화(지분매각)에 따라 대한항공이 카이를 인수한다면 정부 지원 규모가 이전과 똑같을 수 없다.

더욱이 인수에 나선 대한항공은 2009년 산업은행과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체결해 재무적 리스크를 안고 있다. 대한항공의 현재 순차입금은 14조원, 부채비율은 800%가 넘는다. 카이 인수과정에서 차입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한항공의 재무상태는 더 악화될 공산이 있다. 카이 인수 금액은 약 1조5000억원으로 예상된다.

노조는 대한항공과 카이의 동반 부실도 우려했다. 곽 실장은 “대한항공이 항공 운송•서비스업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카이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메우려 할 게 뻔하다”며 “국가 항공우주산업이 발전은커녕 퇴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은행 대한항공 카이 인수 ‘부정적’

▲ 한국항공우주산업(카이) 노조는 11월 13일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후문 앞에서 카이 민영화(지분매각) 반대 시위를 벌였다.
산업은행 역시 대한항공의 카이 인수와 관련 재무적 리스크를 경계했다. 산업은행은 한진그룹이 8월 29일 보낸 ‘대한항공 카이 인수 추진 관련 사전협의’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회신 내용이다. “주채권은행으로서 대한항공이 과도한 외부자금 조달 등을 통해 카이를 인수할 경우에는 재무구조개선약정상 제반사항 준수가 곤란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특혜 인수•카이의 불신•성장방향의 혼란 등 대한항공이 카이를 성공적으로 인수하기 위해 넘어야 할 과제는 수북이 쌓여 있다.

대한항공은 무엇보다 보이지 않는 장애물인 ‘특혜 논란’을 잠재워야 한다. 9월 27일 2차 예비입찰 마지막 날 현대중공업이 급작스럽게 카이 인수에 뛰어들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시장은 현대중공업의 참여를 ‘들러리 입찰’이라며 대한항공을 따가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대한항공이 1차 예비입찰에 홀로 참여해 유찰된 카이 인수에 현대중공업을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그 결과, 대한항공과 현대중공업은 본입찰 적격자로 선정됐다. 대한항공 측은 “현대중공업이 자사 판단에 따라 인수에 나선 것일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대한항공의 특혜 논란은 올 8월 인천공항 급유시설의 민영화에서 시작됐다. 대한항공은 이 시설의 입찰에 참여하자마자 특혜 논란에 시달렸다. 당시 청와대 비서관이었던 김태효씨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친인척 관계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는 인천공항이 급유시설을 직접 운영할 수 있음에도 운영권을 민간에 넘기려 했다는 의혹으로 번졌다. 카이 측이 “MB정권 말기 민영화를 통해 대한항공에게 경영권을 주려는 것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야권의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카이의 최대주주인 한국정책금융공사는 정부의 민영화 방침에 따라 카이 매각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야권은 ‘정권 말기 무리하고, 졸속한 정책’이라며 카이 민영화 반대에 나서고 있다. 안철수 무소속 후보도 최근 카이 민영화 재검토를 밝혔다.

10월 16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선 한국정책금융공사가 대한항공의 인수 부적격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날 국감 증인으로 출석한 진영욱 한국정책금융공사 사장은 야권 의원들이 재무적 차원에서 대한항공 선정 적격성 여부를 묻자 “대한항공은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체결한 기업이기 때문에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이를 문제 삼으면 우리(정책금융공사) 역시 대한항공을 인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고 답했다. 이어 “앞으로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과정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라며 “산업은행의 입장을 듣고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카이는 현재 한국정책금융공사와 민간 3사가 공동운영하고 있다. 정책금융공사는 카이의 지분 26.4%, 삼성테크윈 10%, 현대차 10%, 두산이 10%를 보유하고 있다. 민영화를 위한 매각 지분은 정책금융공사 11.41%, 삼성테크윈(10%), 현대차(10%), 두산(5%), 오딘홀딩스(5%,) 산업은행(0.34%) 등 총 41.75%다.

대한항공에 대한 카이의 불신도 해결해야 한다. 노조뿐만 아니라 카이 경영진도 대한항공을 미덥지 않게 생각한다. 대한항공의 카이 인수 시도는 이번이 4번째다. 대한항공은 2003년•2005년•2009년 인수에 나섰지만 고배를 마셨다. 이 과정에서 카이의 불신이 커졌다.

1999년 카이가 정부 빅딜로 통합될 때 대한항공은 ‘항공기 제작사업은 성장이 불투명하다’며 인수전에 참여하지 않았다. 당시 항공기 제작사업은 어려운 상황이었다. 정부는 성장계획에 따라 삼성(삼성항공)•대우(대우중공업)•현대(현대우주항공)•한진(대한항공) 등 4개사에게 항공 관련 사업을 통합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항공운송•서비스와 부품 제작사업으로 충분하다며 거절했고, 현재의 카이가 설립됐다.

4년 후 2003년 대한항공은 카이의 경영정상화와 성장성이 보이자 곧바로 인수에 나섰다. 특히 정부가 나서 수요처를 만들어주고, 지원까지 해주니 더욱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카이 임직원은 강하게 반발했다. 카이 관계자는 “1999년에는 거들떠도 보지 않더니 이제와 말을 바꾼다”며 “대한항공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 대한항공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8월 30일 대한항공의 카이 인수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제시했다. 사진은 산업은행과 한진그룹이 카이 자금조달방안 사전 협의를 위해 주고받은 공문.
2005년 대한항공이 두번째 인수에 나섰을 때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2009년 세번째 시도에선 카이가 전사적 차원으로 비상투쟁위원회를 구성해 전략적으로 대응했다. 대한항공이 피인수 기업인 카이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면 인수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인수 후에도 경영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대한항공 2009년 카이 인수 불참 ‘후회’

대한항공의 카이 인수 후 예상되는 성장방향에 대한 문제도 제기된다. 국내에선 항공기 제조사업에 종사하는 업체는 카이가 유일하다. 관련 전문가•교수들은 대한항공 인수 후 카이의 미래, 다시 말해 국내 항공우주산업(항공기 제작 등)의 미래를 걱정한다. 앞서 언급한 대한항공의 자금력이 문제가 되는 것은 기본이다. 대한항공이 항공기 제작이 아닌 자사와의 시너지 효과가 큰 정비사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도 문제다.

대한항공은 항공기 제작부문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를 전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대한항공은 항공우주산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비중은 전체 사업의 3~5%에 불과하다. 항공기 제작은 1980~1990년대 제공호(KF-5E/F) 제작•생산 이후 별다른 실적이 없다. 투자 또한 미미하다.

익명을 요구한 항공우주산업 전문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카이가 처음 매물로 나왔을 때 조양호 회장은 ‘항공기 제작사업은 성장성이 없어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정비•수리사업을 육성하겠다’ ‘미래 성장사업은 항공기 제작이다’며 말을 바꿨다. 그룹 회장의 미래 성장방향과 전략은 뚜렷해야 한다. 하지만 말을 손바닥 뒤집듯 수시로 바꾸는데 누가 믿겠는가.” 대한항공은 신뢰를 잃었다. 신뢰극복이 급선무다.
박용선 기자 brave11@thescoop.co.kr | @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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