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파트1] 만화산업의 빛과 그림자만화방 3일 夜話

20년 전 그곳에서 쥐포를 뜯었다. 라면을 먹으며 상상의 나래도 펼쳤다. 만화방에서의 아련한 추억이다. 만화책을 집던 그 옛날 그 사람들이 지금은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 건조하지만 편하다. 모든 게 다 들어있다. 만화방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The Scoop가 추억을 더듬기 위해 만화방 찾아 삼만리에 나섰다.

▲ 시대가 변함에 따라 만화방도 변신을 거듭했다. 공원에서 만화를 빌려주던 만화노점에서, 전문적으로 만화만 취급하는 만화방으로, 최근엔 만화방과 카페가 결합한 만화카페로 변신했다. 사진은 신촌의 한 만화카페 모습.

11월 10일 오후 3시. 신촌역 2번 출구에서 나와 연세대 방향으로 이동했다. ‘만화방 찾아 삼만리’의 첫걸음, 전형적인 가을 날씨가 기자의 행보를 반기는 듯했다. 주말 오후 대학가로 몰려나온 젊은이들의 모습이 싱그러웠다. 뭐가 그리 좋은지 서로의 옷깃이 스칠 때마다 깨알 같은 웃음을 터뜨리는 청춘들.

그들 못지않게 기자도 즐거웠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만화를 보러가는 건 설레는 일이니까. 현대백화점을 지나 좌측 상가밀집 지역으로 들어섰다. 조금 걷다보니 B만화카페 간판이 보였다. 입구엔 인기만화순위 리스트가 있었다.

4000원 내면 잠잘 수 있어

1위 「열혈강호」, 2위 「원피스」, 3위「피안도」…. 「열혈강호」는 어디선가 들어봤는데 나머지 작품들은 생소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어른이 됐다는 이유로 만화를 등한시 했나 보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쥐포 굽는 냄새가 진동했다. 예나 지금이나 만화방에선 군것질이 제격이다. 점포의 크기는 약 100㎡. 20명 내외의 젊은이들이 만화를 보고 있었다. 30대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홀로 운영하는 가게였다. 좌석은 싱글석과 커플석으로 나뉘어 있었다. 새우깡을 나눠먹으며 함께 만화를 읽는 연인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실내는 절대 금연. 젊은 취향에 맞춘 신세대 만화방이었다. 주인은 혼자 청소하랴, 쥐포 구우랴, 커피 타랴, 정신이 없다.

‘만화산업백서(2011)’에 따르면 2010년 현재 만화를 취급하는 전국 점포수는 4043개다. 이중 만화책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만화방•만화카페의 수는 902개다. 만화 임대 관련 사업규모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연평균 2.4% 감소 중이다. 만화책 임대업 매출액 현황(책대여점 포함•2010년 기준)을 살펴보면, 총 매출액이 697억원으로 전년 대비 4.5% 감소했다. 전문 만화방의 매출액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2008년 256억4700만원에서 2009년 253억9100만원으로, 2010년에는 248억7200만원으로 감소했다.

 
카운터에서 번호표 24번을 받아들었다. 가격은 시간 당 1800원. 후불제다. 해당 시간에는 가게 안에 있는 모든 만화를 자유롭게 볼 수 있다. 메인코너로 이동했다. 「하루카의 도자기」 「요괴전문 의사선생님」 「칠색잉꼬」 등 일본작가들의 작품이 상당수 눈에 띄었다.

뒤편 순정만화 코너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르미안의 네 딸들」 「작은 아씨들」같은 고전 작품들이 보였다. 순정만화의 스토리가 탄탄한 건 인정한다. 하지만 남자여서인지 그림체가 영 익숙치 않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이거 어떠세요? 신개념 만화인데요. 재미있을 겁니다.”

한가해진 주인이 기자에게 다가와 책을 권했다. 제목은 「살인자O난감」 . 난감했다. 기자의 인상이 범죄자처럼 보였나보다. 살인 이야기를 재미있어 할 것 같다니…. 온라인 만화로 인기를 끌었던 작품인데 최근 오프라인으로 출판한 것이라 했다. 주인장의 성의를 무시하기 어려워 떨떠름히 책을 받아들었다. 간식거리로 3000원짜리 쥐포세트도 주문했다.

주인이 가스레인지로 이동한 자리 뒤편으로 허영만 작가의 「꼴」이 눈에 들어왔다. 「살인자O난감」 상•중•하권과, 「꼴」 1•2•3권을 집어 들고 좌석에 앉았다. 얼마 뒤 쥐포와 치토스가 도착했다.

한국전쟁 이후 만화는 피폐해진 동심童心을 달래주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일본만화 「밀림의 왕자」를 베껴 출판해 큰돈을 번 김성옥이 1956년 만화잡지 「만화세계」를 창간하면서 만화잡지의 시대가 열렸다. 이후 「만화학생」 「7천국」 등이 창간되면서 만화잡지 붐이 일었다.

잡지를 통해 김종래•박기당 등 인기 작가가 탄생했다. 이런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1950년대 중반부터 많은 사람이 모이는 시장이나 공원에 만화를 빌려주는 노점이 등장했다. 만화노점은 1960년대 만화방으로 이어져 전국으로 널리 퍼졌다. 김산호의 「라이파이」, 박기정의 「도전자」, 박기준의 「두통이」, 방영진의 「약동이와 영팔이」 등의 작품이 인기를 끌었다.

11월 12일 저녁 8시.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졌다. 옛 모습의 만화방을 찾을 요량으로 서울역을 찾았다. 1980년대 만화산업이 최전성기를 구가할 때 서울역 인근 만화방도 화려한 시절을 보냈다. 긴장과 기대가 교차했다.

서울역에서 남영동 쪽 방향으로 끝없이 이어지던 만화방들, 북적이던 사람들…. 한쪽 구석에서 라면을 먹고, 성인용 비디오가 24시간 흘러나오던 그곳. 그 추억을 더듬을 수 있을까. 서울역 코너를 돌았다. 기억으론 곧바로 만화의 거리가 시작돼야 했다. 그러나 허름한 식당들만 눈에 띌 뿐 만화방을 찾을 수 없었다. 좀 더 아래로 내려가 보기로 했다. 서울역 13번 출구를 지나 숙대입구 방면으로 내려갔다. 허름한 PC방과 노숙자를 위한 진료소만 눈에 띌 뿐 도무지 만화방이 보이질 않았다.

시커먼 담요에서 새우잠 자는 사람들

화려했던 서울역 만화방 거리는 흔적조차 사라진 것인가. 그만 포기하고 되돌아서야 하나. 갈등이 생길 무렵, K만화방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명맥은 이어지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퀴퀴한 아저씨 냄새가 몰려들었다.

“심야하러 오셨수? 지금 자리가 없는데….”

70대로 보이는 주인 할머니가 표정 없는 얼굴로 기자를 맞았다. 심야라는 말은 무엇일까. 아무튼 자리가 없다는 데야 방법이 없었다. 할머니는 곧 카운터 뒤편으로 들어갔다. 출구 쪽에서 만화를 읽고 있던 50대 남자에게 인근에 또 다른 만화방이 있는지 물었다.

“여기 말고 두 곳 더 있어요. 그러니까 서울역 인근엔 모두 3곳이 남았죠. 예전엔 정말 많았었는데 지금은 다 없어졌어요.”

만화방이 쇠퇴기를 맞은 건 1990년대 후반이다. 비디오가게와 만화책 대여점이 늘어나서다. 2000년대 들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PC방은 만화방에 결정타를 날렸다. 발달한 인터넷과 PC게임은 만화 이상의 재미를 선사했고, 만화방은 시장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K만화방에서 나와 남쪽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30m쯤 걸었을까, C만화방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문을 열어 보니 자리는 충분해 보였다. 하지만 뿌연 담배연기로 눈을 뜨기 힘들 지경이었다. 환풍기도 별 소용이 없었다.

전성기 지난 만화방에 남아 있는 현실

손님은 8명 정도. 40~50대 아저씨들이었다. 60대 노인도 한명 있었다. 모두 초췌한 차림새였다. 노동일을 마치고 갓 돌아온 듯 작업복을 입은 사람도 있었다. 머리가 희끗한 주인이 기자에게 다가왔다. 주인의 질문은 역시 “심야하실거죠?”였다. 심야 말고 일반 시간제로 할 수는 없는지 물어보니, ‘지금은 저녁 7시가 넘었기 때문에 심야요금만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카운터 뒤편엔 방이 있었다. 간이 침상이 20여개 놓여져 있었다.

“주무실 수는 있는데 방으로 만화책 반입은 안 됩니다. 심야는 4000원이고요. 저녁 7시부터 아침 9시까지 이용이 가능합니다.”

7시 이전에 왔을 경우의 이용요금은 5시간에 2000원, 24시간 종일요금은 8000원이라고 했다. 만화진열대 쪽을 훑어보았다. 작은 만화방이었다. 만화홀에 놓인 좌석은 12~13석. 오히려 침상이 놓인 방이 더 커 보였다. 진열대 옆에는 작은 TV가 있었고, 그곳 앞에도 간이 침상 5개가 있었다. 시커멓게 때가 낀 담요도 함께 놓여 있었다. 인근 인력시장에서 일하거나 자활 공공근로를 하는 사람들이 일을 마친 후 값싸게 숙박을 해결하는 곳인 듯 했다. 손님끼리도 김씨, 박씨 호칭하며 꽤 친한 분위기였다.

4000원을 지불한 뒤 자리에 가방을 내려놨다. 눈을 괴롭히던 담배연기는 어느 정도 적응됐다. 머리를 지

 

끈하게 하던 아저씨 냄새도 익숙해졌다. 진열대 쪽으로 이동했다. 신간은 별로 없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야설록 작가의 「남벌」을 집어 들었다. 군대 시절 여러 번 읽었던 만화다. 두어 권 읽다보니 지겨워졌다. 다시 고른 만화는 고행석 작가의 '우렁각시' . 고 작가는 최근 성인만화 쪽으로 방향을 튼 듯 했다. 스토리는 단순한데 표현수위가 적나라했다. 킬링타임용으로 괜찮은 만화였다.

열권 이상 읽다보니 11시가 넘었다. 좁은 자리에서 쭈그리고 있어서인지 등이 쑤셔왔다. 목도 칼칼했다. 콜라 캔 하나를 사 마신 뒤 목을 등 뒤로 젖혀 보았다. 카운터 옆 침상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주무시려면 빨리 자리 잡으셔야 해요. 12시 넘으면 한잔 걸친 사람들이 많이 와요.”

주인이 재촉했다. 집으로 갈까 이곳에서 잘까 갈등이 생겼다. 제대로 체험해보기로 했다. 만화책을 제 자리에 넣고 침상으로 이동했다. 이미 5명 정도가 자리를 잡고 누워 있었다. 물파스 냄새가 진동했다. 일하다 다친 부위에 파스를 뿌린 듯했다. 왼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난방이 되지 않아 추웠다. 아무리 그래도 시커먼 이불을 얼굴부위까지 올려 덮기는 꺼림칙했다. 일단 배 부근까지만 덮었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해 보았다. 소주 한잔이 간절한 밤이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만화업계에 대한 정부의 간섭이 심해졌다. 합동출판사에서 찍어내는 천편일률적인 작품들이 만화방에 공급됐고 독자들은 흥미를 잃어갔다. 만화잡지는 상대적으로 심의에서 자유로웠다. 산업화와 도시화의 영향으로 잡지를 구독할 수 있는 중산층도 늘어났다. 이를 틈새로 아동용 만화잡지의 탄생이 봇물처럼 일어났다.

1964년에 창간된 「새소년」, 1967년에 창간된「어깨동무」, 1969년에 창간된「소년중앙」이 빅3를 형성했다. 특히 후발주자인 소년중앙은 별책부록으로 만화의 분량을 대폭 늘려 호응을 얻기도 했다. 당시 이들 잡지를 통해 연재된 만화는 길창덕의 「꺼벙이」, 신문수의 「도깨비감투」 등 명랑만화가 유명하다.

지금껏 서울 강북지역 만화방만 돌아다닌 것 같다. 강남지역 만화방의 분위기는 어떨까. 11월 13일 오전 11시. 강남역 11번 출구를 나와 강남CGV로 향했다. 모퉁이를 돌아 언덕길을 올랐다. 숨이 차오를 무렵, S만화방이 보였다. 퓨전레스토랑 건물 지하1층에 자리 잡은 곳이었다.

가게 문을 여니 꽤 고급스런 만화공간이 펼쳐졌다. 층고도 높고 깔끔해 카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가게 면적은 200㎡ 이상. 좌석도 편하고 테이블 수도 많았다. 서울역 만화방과는 180도 다른 분위기였다. [그렇다고 서울역 만화방에서의 체험이 안 좋았다는 건 아니다. 비위생적인 부분은 있었을지 몰라도 나름 낭만적이었다.]

카운터에 문의하니 시간당 2000원에 후불제라고 했다. 좌석에 가방을 내려놓은 뒤 주변을 둘러봤다. 낮이라 한가한 편이었다. 그래도 손님은 20명 이상 있었다. 함께 만화책을 나눠보는 연인, 넥타이를 반쯤 풀어헤친 영업사원, 한가롭게 담배피우며 순정만화를 보는 30대 여인 등.

웹툰에 밀린 만화 “아! 옛날이여”

원래 이곳에선 최신판 일본만화를 읽어볼까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30~40편씩 되는 시리즈에 기가 질렸다. 며칠째 만화방만 뒤지고 다녔다. 만화 읽는 것도 고역이었다. 그래서 ‘취미’로 하면 즐겁지만 ‘일’로 하면 힘들다고 하는 모양이다.

▲ 한국전쟁 이후 만화는 피폐해진 동심을 달래주는데 큰 역할을 했다. 사진은 한국만화박물관에 재현된 추억의 만화가게.
학창시절 즐겨 읽던 1980년대 만화를 찾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그거라면 가볍게 읽을 수 있겠다는 마음에 진열대 뒤편 공간으로 이동했다.

1980년대는 ‘한국만화의 황금기’라고 불린다. 만화방•잡지•신문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질적•양적 꽃을 피웠다. 1983년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을 시작으로 박봉성•고행석•허영만 등의 장편극화가 만화방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만화방의 활력은 잡지로도 이어졌다. 1982년 10월호로 창간한 만화전문잡지 「보물섬」은 한국만화산업계의 기념비적 출판물이다. 500쪽에 이르는 두툼한 분량에, 이후 한국만화의 대표 캐릭터가 된 김수정의 「아기공룡 둘리」, 김동화의 「요정핑크」, 이진주의 「달려라 하니」 등이 연재됐다. 「보물섬」이 성공하자 성인용 만화잡지 「만화광장」 과 「주간만화」가 창간됐다.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에는 순정만화잡지「르네상스」와 주간 소년잡지「아이큐 점프」등이 잇따라 창간되며 신개념 만화잡지시대를 열었다.

역시 이곳 만화카페에서도 1980년대 ‘그 시절 만화’는 찾기가 쉽지 않았다. 나중에 중고 책방에서 직접 구입하리라 마음먹었다. 차선책으로 도박사기단 만화를 찾아보기로 했다.

몇달전 회식자리에서 한 후배가 기자에게 ‘좋아하는 창작물 장르가 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기자는 ‘사기극詐欺劇’을 좋아한다고 답했다. 후배가 ‘오우~’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사극史劇’으로 잘못 알아들은 모양이다.

김세영 작가의 「갬블시티」를 집어 들고 자리에 앉았다. 내용은 「타짜」와 비슷했다. 그렇게 일곱 권 정도를 읽은 시점이었다. 고정된 자세를 풀며 기지개를 펴려는데 한 청년이 말을 걸어왔다.

“혹시 짬뽕시키셨어요?”

중국집 배달부였다. 이곳 만화방은 배달음식도 허용이 됐다. 기자 뒤쪽에 앉아 있던 30대 남자가 “어이, 여기에요. 여기~”라고 외치며 손을 흔들었다. 음식 냄새를 맡으니 배가 고팠다. 시간은 오후 1시가 넘었다. 이곳에서 음식을 시켜먹을까, 나가서 사먹을까 잠시 고민했다. 정리할 원고도 쌓여 있어 만화체험은 이쯤에서 접기로 했다. 카운터에 시간카드를 내밀었다. 결제금액은 4300원. 마지막으로 궁금했던 질문을 카운터 직원에게 던졌다.

▲ 2000년대 들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PC방은 만화방에 결정타를 날렸다. 발달한 인터넷과 PC게임은 만화 이상의 재미를 선사했고, 만화방은 시장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요즘도 대여가 되나요?”

“회원에 가입하면 가능합니다. 휴대전화로 신분확인을 거치고요. 보증금 2만원 걸면 9권까지 빌리실 수 있어요. 보증금이 크면 그만큼 대여권수는 많아지고요. 대여시간은 기본 24시간인데, 권수가 많으면 좀 더 융통성 있게 시간 드려요.”

많이 깐깐해지고 각박해진 것 같았다. 만화책 한권 읽는 데 50원이었던 시절, 빌릴 때는 100원만 내면 끝이었다. 20권짜리 시리즈를 2000원에 빌려 친구들끼리 돌려보곤 했었다. 어찌됐던 시대는 변했다.

밖으로 나오니 한 낮임에도 어두웠다. 변덕스런 날씨였다. 양재동 방면으로 5분쯤 걷는데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머리 위로 올린 가방을 피해 비가 들이쳤다. 먼지가 씻겨 나갔다. 만화방의 추억도 함께 씻겨 나갔다. 김밥천국이 눈에 보였다. 만화방을 떠난 기자는 현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자료참조 : 한국만화박물관 전시자료, 한국만화산업백서>
유두진 기자 ydj123@thescoop.co.kr|@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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