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총론] 미생물 미래 보고서

도심에 넘쳐나는 폐수를 정화한다. 음식물 쓰레기를 단숨에 전기로 변환한다. 미생물이 만들 수 있는 기적이다. 폐수를 정화하고 이를 활용해 전기를 만드는 기특한 미생물의 세계를 The Scoop가 들여다봤다. 이른바 ‘미생물 미래 보고서’다.

 
# 2062년 12월 7일 일요일 ○○아파트 201호. ‘띠띠띠띠띠-’ 오전 6시를 알리는 자명종이 울린다. 김민석(가명)씨는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기상 후 그는 습관처럼 하는 일이 있다. 벽면용 모니터에 있는 ‘1일 전력 확인하기’ 메뉴를 터치하는 것이다. 숫자가 눈에 들어온다. 12월 6일 생성된 전력은 10㎾h. 어제 하루 동안 발전된 전기량이다. 이 모니터는 일일 하수ㆍ폐수량의 전기 변환 수치를 보여준다.

김씨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신개념이다. 폐수를 자체적으로 처리하고 이 과정에서 전기를 생산한다. 미생물이 폐수 속 유기물을 분해해서 전기를 만드는 것이다. 말 그대로 ‘미생물 연료전지’ 아파트다.

아파트 베란다에는 소형 발전소가 있다. 발전소는 미생물이 폐수와 하수의 유기물을 분해하는 걸 돕는다. 더불어 전기를 생산한다. 김씨는 씻기 위해 화장실로 간다. 변기에 앉아서 볼일을 본다. ‘띠리릭.’ 화장실 문에 설치된 모니터에 ‘하수 1L’라는 숫자가 뜬다. 그는 양치를 하고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한다. 모니터 화면 위로 ‘하수 30L’가 찍힌다. ‘윙~.’ 미세한 기계음이 들린다. 지하 하수구에 설치된 측량기가 돌아가는 소리다. 측량기와 모니터가 연결돼 하수량 수치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그는 30L 하수를 전력으로 변환하기 위해 모니터에서 ‘Change’ 버튼을 누른다. 30L 하수가 3㎾h의 전력으로 전환된다. 미생물이 하수 유기물을 분해하면서 전력이 생산된 것이다. 그는 전기면도기로 면도를 하고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린다. 화면에 전력 2㎾h가 소비됐다고 뜬다.

김씨 가계는 매월 평균 240㎾h의 전력을 소비한다. 이 수치는 50년 전인 2012년 대한민국 가구당 월평균 전기 사용량과 같다. 당시 윤씨의 아버지는 매달 국가에 전기료 4만7000원을 납부했다. 지금은 전기를 무료로 사용한다. 가정에서 쓰는 하수가 미생물 연료전지 장치를 거쳐 전기로 변환되기 때문이다.

2062년 1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미생물 연료전지 아파트에 입주한 4인 기준 가구의 평균 생활비는 입주 1년 전보다 약 40만원가량 줄었다. 수도세ㆍ전기료ㆍ차량유지비 등이 줄어든 덕분이다. 미생물 연료전지가 가계살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다. 정부는 내년부터 농촌을 중심으로 미생물 연료전지를 기반으로 한 주택을 보급한다. 대량으로 하수를 방출하고 전기를 많이 쓰는 농가에 희소식이 될 전망이다.

미생물 연료전지 상용화 눈 앞에
# 김씨와 똑같은 시대를 사는 직장인 3년차 윤동식씨는 요즘 즐겁다. 미생물 연료전지 덕분에 전기자동차 탈 맛이 나서다. 덕분에 항상 사정이 빠듯했던 호주머니가 조금 넉넉해졌다. 윤씨는 지난해 가을 전기차를 구입했다. 몫 돈이 들어갔다. 영업맨 윤씨에겐 꼭 필요한 지출이었다. 하지만 차량유지비까지 감당할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호재는 지난해 연말에 생겼다. 정부가 2061년 12월 ‘전기차의 미생물 연료전지 등에 관한 규칙’을 공포한 것이다. 앞으로 음식물 쓰레기에서 얻은 생물 가스를 전기차에 주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윤씨는 매일 아침 음식물 쓰레기를 집 앞에 내놓는다. 주민센터 소속 환경미화원이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해서 시내에 위치한 에너지센터로 가져간다. 음식물 쓰레기 미생물에서 메탄가스를 뽑아내기 위해서다. 평균적으로 1t 음식물 쓰레기에서 약 400kwh 전력이 생산된다. 전력은 전기차용 충전 스탠드에 공급된다. 물론 전기가 더 필요한 운전자는 돈으로 구입할 수 있다.

미생물 연료전지로 즐거운 사람은 윤씨만이 아니다. 전기차ㆍ전기스쿠터ㆍ전기자전거 운전자도 혜택을 보고 있다. 나라살림에도 여유가 생겼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 비용과 교통수단 유지비가 줄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미생물 연료전지 도입으로 올해 32조원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 1년 예산 325조원의 10%에 달하는 금액이다.

 
전기차에 탑승한 윤씨는 라디오를 튼다. 뉴스가 나온다. 올해 하반기부터 생물가스의 일부를 압축해서 버스용 연료로 쓸 것이라는 소식이다. 윤씨는 휘파람을 불며 주행속도를 높였다.
영화 ‘백 투 더 퓨처’에는 기발한 장면이 나온다. 바나나 껍질을 넣은 자동차가 달리는 모습이다. 운전자는 기름값 걱정 없이 도로를 누빈다. 쓰레기로 달리는 자동차,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미래 공상과학영화일 뿐이라고? 아니다. 영화 속 장면이 현실이 될지 모른다. 미생물 연료전지는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특허가 출원된지도 오래다. 특허출원 선두 국가는 미국이다. 2011년까지 210건의 특허를 출원했다. 국내 특허는 82건이다. 유럽(29건)과 일본(21건)이 그 뒤를 쫓고 있다.

지금도 미생물 연료전지는 학계의 주목을 끄는 아이템이다. 미생물을 이용해 폐수를 처리하면서 전기도 생산할 수 있어서다. 더구나 친환경적이다.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도랑까지 정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미생물 연료전지는 주인 없는 황금시장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생물의 대사과정을 이용해 미생물로부터 전기를 생산한다. 에너지를 외부에서 끌어오지 않고 시스템 자체에서 공급하는 것이다. 스스로 전기를 만들어 내는 ‘자급자족형 에너지’인 셈이다.

 
미생물 연료전지 분야는 주인 없는 황금시장이다. 블루오션이라는 얘기다. 연구개발(R&D) 초기단계이기 때문에 특정 국가가 기술을 장악하지 못했다. 특허는 미국이 가장 많지만 절대적인 비중은 아니라는 것이다. 산ㆍ학ㆍ연의 효율적인 협력과 꾸준한 R&D투자가 이뤄진다면 미생물 연료전지 분야는 한국경제를 이끄는 힘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가 글로벌 미래전지 시장의 패권을 거머쥘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게다가 미생물 연료전지의 기술력을 쌓으면 응용분야까지 선점할 수 있다. 미생물 연료전지는 로봇기술•약물전달장치기술 등과의 융합 연구가 가능하다. 한국정부가 미생물 연료전지에 대한 관심을 늦추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은 올 3월 미생물 연료전지를 ‘10년 후 한국경제를 책임질 미래 10대 유망기술’로 선정했다.

▲ 하수찌꺼기를 활용해 연료를 개발하는 폐수처리장치.
미생물 연료전지 핵심은 전지 원료다. 놀랍게도 야자열매ㆍ갯벌ㆍ밀집ㆍ동물폐기물ㆍ와인ㆍ맥주ㆍ음식물쓰레기ㆍ폐수가 원료다. 낙농산업에서 발생하는 부산물도 원료로 활용된다.

자세히 살펴보자. 야자 한 개에서 뽑아낸 미생물을 전기로 바꾸면 라디오를 50시간 들을 수 있다. 해저에 사는 유황세균은 바다의 부표나 무인 등대의 전원으로 사용가능하다. 산소가 없는 갯벌에서 사는 해양 침전물인 지오박터는 백열전구를 켤 정도의 전기를 생산한다.

이들 원료의 공통점은 유기성 혼합물질이라는 것이다. 유기성 혼합물질은 동식물이나 가공품 혹은 배출물의 구성 물질을 말한다. 폐기물도 여기에 해당한다.

흥미롭게도 유기물이면서 강한 전지를 낼 수 있는 전지 원료는 음식물 쓰레기와 폐수다. 가정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는 갈거나 말려서 버린다. 그런데 미생물 연료전지 시대가 열리면 훌륭한 전지 원료가 된다.

폐수도 힘이 좋은 원료다. 하수처리장에서 발생한 잉여 슬러지는 환경을 오염시키는 폐기물이 아니라 전기를 생산하는 자원이 된다. 동식물의 배설물도 미생물 연료전지의 좋은 전지원료가 될 수 있다.

미생물 에너지가 뜨는 이유는 뭘까. 친환경적이라는 게 첫째 이유다. 미생물 연료전지는 화석연료와 달리 지구를 뜨겁게 달구지 않는다. 영구자원인 것도 강점이다. 고갈 염려가 없는 것이다. 재활용도 가능하다. 생활 폐기물을 활용해 에너지를 만들 수 있어서다. 경제적 가치도 있다. 미생물 전지가 상용화되면 굳이 비용을 들여 폐수를 처리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미생물 연료전지를 활용하면 폐수 처리비용 30~40%가 절감될 수 있을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폐수 슬러지의 양도 80%까지 줄일 수 있다.

 
미생물 연료전지의 이런 장점은 우리에게 큰 혜택을 줄 것이다. 자원빈국이라는 한계를 ‘미생물’을 통해 극복할 수 있어서다. 우리나라의 해외 에너지 의존도는 97%. 천연자원이 거의 나오지 않는 나라치고 지나치게 높다. 국내 석탄 소비량은 세계 8위이고 소비량은 연간 1100만t이다. 석유 해외 의존도는 세계 5위고, 석유 소비량은 세계 9위다. 미생물 연료전지만 제대로 만들 수 있다면 막대한 국가지출비용을 줄일 수 있다.

정권 바뀌면 미생물 R&D 투자도 바뀌어
관건은 미생물 연료전지의 상용화다. 실제 현장에서 얼마만큼 성능을 내느냐에 따라 산업계 접목 시기가 달라진다. 국내 연구진은 상용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알찬 성과는 조금씩 나오고 있다. 올해 6월 광주과학기술원 환경공학과 장인섭 교수팀은 실제 폐수를 활용해 전력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미생물 연료전지의 현장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연구팀은 우리나라와 미국 등에 특허를 출원한 상태다.

기업들도 미생물 연료전지 연구에 뛰어들고 있다. 한국수자원공사 K-water연구원 상하수도연구소는 태영건설과 손잡고 ‘유산균을 이용한 슬러지 가용화 및 질소ㆍ인 회수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한화E&C와는 ‘저포기형 MBR과 CDI를 연계한 저에너지 물재생기술 개발’을 진행한다. 상하수도연구소와 태영건설•한화E&C은 미생물 연료전지 기반의 에너지 자립형 수水처리 공정을 개발할 예정이다. 기존 수처리 공정 대비 에너지 자립도를 60%로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에너지 자립에 성공하면 슬러지를 기존 대비 70%까지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산업계가 미생물을 활용한 에너지 기술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한국수자원공사와 손을 잡고 미생물 연료전지 연구에 나선 태영건설과 한화E&C가 대표적이다.
김홍석 K-water연구원 상하수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에너지 위기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수처리 패러다임을 개발하고 있다”며 “이번 연구는 수처리 기술을 세계 최초로 확보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미생물 연료전지가 풀어야 할 과제도 있다. 미생물 연료전지의 부품가격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장치의 크기와 사양에 따라 가격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일례로 미생물 연료전지에 사용되는 장치부품 멤브레인은 1500억 달러(약 163조원)다.

미생물에서 뽑아낼 수 있는 전력의 세기도 문제다. 일상생활에서 미생물 연료전지로 혜택을 누리려면 강한 전력을 낼 수 있는 유기물이어야 한다. 유기물 소스가 많을수록 전자가 세지기 때문이다. 현재 기술로는 이론상의 최대 산출량을 얻지 못하고 있다. 산출량은 유기체가 만들어내는 수소나 에너지의 양을 뜻한다.

이런 이유로 학계에서는 미생물 연료전지의 R&D 초점을 에너지 직접 생산보다는 에너지 사용을 절감할 수 있는 쪽에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안대희 명지대(환경생명공학) 교수는 “미생물 연료전기 기술을 응용할 수 있는 분야가 다양한데 그중에서도 폐수처리용 시설을 위한 시도가 가장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미생물 연료전지가 폐수처리 시설에서 문제점과 한계를 극복하고 상용화에 성공할 경우 두가지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기존 에너지의 가격 부담을 덜 수 있다. 미생물 연료전지를 통해 하수처리장이 발전소가 될 수 있어서다.

▲ 미생물 연료전지는 학계의 주목을 끄는 아이템이다. 미생물을 이용해 폐수를 처리하면서 전기도 생산할 수 있어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008년부터 미생물 연료전지의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은 미생물 연료전지 분야를 ‘도약연구’ 분야로 선정했다. 하지만 학계는 이런 투자와 관심이 지속적으로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생물 연료전지 연구가 초기 단계인 만큼 과학기술계의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장인섭 광주과학연구기술원(환경공학) 교수는 “정권교체에 따라 R&D 투자계획이 갑자기 바뀌거나 변경돼서는 안 된다”며 “실패를 지나치게 두려하는 분위기도 해소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생물 연료전지는 융합연구의 산물이다. 연구가 상용화에 성공할 경우 대체에너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하다. 선제적인 투자로 연구 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다.

박길채 특허청 환경에너지심사과장은 “미생물연료전지는 영화 속 흥밋거리가 아닌 현실 산업으로 부각되고 있다”며 “융합연구로 응용분야를 선점하고 기술전쟁시대를 대비해 적극적으로 원천특허를 확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미래의 에너지, 미생물 연료전지
미생물은 미래 사회의 화두다. 도시에서 발생한 오물을 처리하는 일등공신이다. 미생물은 폐수나 음식물 쓰레기에서 발생한 유기물을 먹고 전기를 생산한다. 미생물 연료전지의 개발은 자원 고갈과 넘쳐나는 오폐수 처리에 좋은 대안이다. 그런 점에서 미생물은 거대한 인류의 역사가 담긴 보물창고다. 가장 작은 세계에서 온 미생물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공장과 작업장이 거주지 한가운데 자리 잡고 매연과 치명적인 폐수를 방출했다.’ 알랭 드 보통의 「행복의 건축에서」에 나오는 구절이다. 배경은 1900년 파리 시내다. 그런데 이 풍경은 2012년 한국에서도 보인다.

11월 9일 서울시 특별사법경찰은 폐수를 한강에 무단 방류한 혐의로 14개 업체를 적발했다. ‘수집 및 수생태계 보전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혐의다. 적발된 업체는 연간 2만5000t의 폐수를 흘려보냈다. 적게는 2년, 많게는 10년간 무단 방류했다.

폐기물 투기는 더 심각하다. 정부는 법적으로 한강공원 내 쓰레기 무단투기를 금한다. 폐기물관리법에 근거해 과태료 10만원이 부과된다. 그런데도 한강 쓰레기 여름철 하루 배출량은 무려 20t에 달한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가 밝힌 12개 한강공원에서 배출된 올 8월 한 달간 쓰레기양은 600t이다. 언제까지 이런 퀴퀴한 곳에서 살겠는가. 미생물이 대안이다.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 | @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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