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철강업계 현주소

국내 철강산업은 성장•성숙 단계를 지나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 단계로 진입한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2000년대 이후 설비 증설이 대규모로 이뤄졌고, 그로 인해 철강 공급은 줄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에 반해 수요는 없다. 상황이 만만치 않다.

▲ 철강산업의 위축에 따라 세계 주요 철강사들의 신용등급이 주저앉고 있다. 투자부적격 단계인 정크등급으로 떨어진 철강사도 있다.

2011년 기준 전 세계 철강생산량은 14억9000만t이다. 이중 아시아권에서 배출되는 철강생산량은 연간 9억5000만여t이다. 공급량의 약 64%를 차지한다. 아시아 중에서도 한•중•일 동북아 3국의 생산량은 절대적이다. 8억6000만여t으로 전 세계 생산량의 57%가량을 차지한다.

이런 철강의 대규모 생산은 중국경제의 성장에 기인한다. 철강은 산업계 전반에 꼭 필요한 재료 중 하나다. 2000년대 들어 중국 경제가 크게 용틀임하며 철강수요가 크게 늘었고, 2003년을 기점으로 한•중•일 3국은 공격적인 설비 투자를 진행했다.

철강업에 닥친 전방위적 위기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풍부해진 설비와 생산라인을 통해 공급은 계속되는데 이를 뒷받침할 수요가 부족해서다. 글로벌 경기불황으로 철강의 주요 수요처인 조선업•건설업 등의 경기가 얼어붙은 탓이다. 세계철강협회는 올해 전 세계 철강수요의 증가율을 5.4%에서 3.6%로 하향 조정했다.

그렇다고 감산이 쉬운 것도 아니다. 무리해서 새로 증설한 생산라인을 무작정 멈추는 건 또 다른 비용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업체들은 가격을 내려서라도 살아남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이러한 과잉 가격경쟁은 철강제품의 가격탄력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철강업의 전방위적 불황은 대표생산업체들의 실적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철강업계 1위 아르셀로미탈(ArcelorMittal)은 올 3분기 7억900만 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엔 6억5900만 달러 순익을 기록했던 미탈사였다. 3분기 매출액도 전년 동기 197억 달러보다 18.5% 감소했다. 반면 순부채는 9월 기준 12억 달러 증가한 232억 달러를 기록했다. 신용등급 또한 악화되고 있다. 지난 11월 6일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아르셀로미탈의 신용등급을 ‘Baa3’으로 낮췄다. 투자 부적격인 ‘정크’등급이다.

 
스미토모금속공업과의 합병으로 세계철강업계 2위로 올라선 신일본제철도 고전하고 있긴 마찬가지다. 지난 4월 무디스는 신일본제철의 신용등급을 기존 ‘Baa1’에서 ‘Baa2’로 강등했다. 지난 10월에는 스탠더드앤푸어스(S&P)도 신일본제철의 신용등급을 기존 ‘BBB+’에서 ‘BBB’ 등급으로 낮췄다. 회사재정상태, 철강업황, 이윤 창출 능력 등을 고려한 결과였다.

국내업체들도 상황이 안 좋긴 마찬가지다. 국내대표 철강사인 포스코의 경우 지속적으로 신용등급이 하락하고 있다. 신용평가기관 S&P는 지난 10월 포스코의 신용등급을 기존 ‘A-’에서 ‘BBB+’로 하향조정했다. 무디스 또한 지난 10월 포스코의 신용등급을 ‘A3’에서 ‘Baa1’로 낮췄다. 무디스는 지난해 11월 포스코의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조정하며 신용단계 하락을 예고한바 있다.

향후 전망도 밝지만은 않다. 동양증권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연말 추가적인 고정비를 감안할 때 포스

 

코의 올 4분기 영업이익이 5129억원 수준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3분기 대비 37%포인트 감소한 수치다. 내년에도 수요회복의 한계, 국내 수급여건 악화 등 외적 영업환경이 좋지 않다. 박기현 동양증권 연구원은 “2013년 포스코의 분기 영업이익은 평균 7000억원 수준에서 형성될 것”이라며 “이는 긍정적으로 전망했을 때의 수치일 뿐 실질적으로는 (분기 평균 영업이익이) 7000억원을 하회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동부제철은 지난 10월 전 임직원의 임금을 6개월 간 30% 삭감하기로 했다. 철강산업 장기 불황에 따른 수익성 악화 때문이다. 지난 2009년 1조500억원을 투자해 충남 당진에 전기로 제철공장을 준공한 것도 무리였다는 지적이다. 실적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동국제강 또한 올해 임금을 동결했다. 성과급 또한 올해는 지급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제철은 올 연말 정기인사에서 임원 수를 줄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중국의 경우 아직 철강산업 성장기에 있다고 진단한다. 반면 일본과 미국은 완연한 쇠퇴기(구조조정기)에 접어들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5년을 기점으로 구조조정 단계로 진입한 것으로 평가된다. 철강은 ‘산업의 쌀’로 불리며 경제의 기반을 다지는 재료다. 중요한 산업자원이라 해도 구조조정기에 진입하면 시장의 주류로 자리 잡기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과거 철강업의 구조가 ‘규모의 경제를 통한 이윤 극대화 모델’이었다면 현 시점부터는 ‘시장 확보를 통한 지속가능 모델’ 즉 ‘생존을 위한 버티기’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물론 철강업은 쉽게 흔들리진 않는다. 내수 비중이 높고, 중국과의 기술격차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수시장이 성숙화 되면서 포화상태에 이른 지금, 국내 철강업계는 수출비중을 늘리며 돌파구를 찾으려는 모습이다. 그러나 최근 심화되는 환율하락은 철강수출환경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 결국 근본적인 해결책은 ‘기술 차별화로 새로운 시장을 확보하려는 노력’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그간 철강사들은 기술차별화 보다는 몸집불리기에 나서 부실을 키워왔다. 포스코의 신용등급이 하락한 결정적인 이유는 최근 3~4년간 벌여온 M&A와 대규모 투자로 인한 부채 증가 때문이다. 포스코는 최근까지도 교보증권과의 M&A, 독일 티센그룹 자회사 지분 인수설 등이 소문으로 떠돌 정도로 확장의욕을 보였다. 최근 3년간 포스코가 지분 인수와 출자에 투자한 비용은 5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들어 포스코는 유통계열사를 줄이려는 모습을 보이며 구조조정에 나섰다. 매각 대상은 베트남 호찌민시 내 주상복합건물 ‘다이아몬드 플라자’와 부산 주상복합쇼핑몰 ‘센트럴스퀘어’, 창원에 위치한 ‘대우백화점’ 등이다. 현재 포스코의 유통물건에 관심을 보이는 업체는 롯데•한화•이랜드 등 총 3곳이다. 그러나 매도•매수자 간 원하는 가격차가 워낙 커 실제 거래가 이뤄질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구조조정기에 맞는 운영 필요

세계 1위 철강사 아르셀로미탈도 무리한 M&A가 발목을 잡은 경우다. 미탈사는 오로지 M&A만으로 성장했다. 회장 락시미 미탈은 인도출신 사업가다. 1976년 창업 이후, 약 20여개 회사를 병합하며 몸집을 불렸다. 때문에 고로 하나 못 만드는 철강사 CEO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미탈사는 합병을 통해 매출을 거의 300배 가까이 늘리면서 승승장구 했다. 그러나 경기불황에 매출이 급감하면서 회사 핵심자산을 이곳저곳에 처분 중이다. 무리한 M&A 때문에 생긴 차입금을 해결해야해서다.

전문가들은 위기 돌파를 위해선 구조조정 외에 철강생산에도 차별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유진투자증권은 최근 발표한 ‘2013년 철강금속 연간전망 보고서’에서 “소품종으로 생산성을 높여 불특정한 시장에 파는 전략이 아니라, 각각의 소비자에 맞는 여러 품종을 생산해 실수요자에게 파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유두진 기자 ydj123@thescoop.co.kr|@itvfm.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