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파트1] 금강산 관광 중단 4년, 고성은 지금…

▲ 1000여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식당이지만 지금은 잡초만 무성하다.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지 올해로 14주년. 하지만 2008년 7월부터 지금까지 4년이 넘도록 관광이 중단돼 사실은 10주년에 머물러 있다. 2003년부터 금강산 관광 하나만 바라보며 살아온 강원도 고성군 주민의 시간도 멈췄다. 그동안 관광 재개만 기다리던 그들의 마음엔 원망과 한숨만 쌓였다.

“벌써 4년이 지났는데 금강산 관광이 다시 된다는 소식은 없고. 선거 앞둔 정치인들은 죄다 와서 사진만 찍고 가고. 기자들도 취재한답시고 왔다 가도 바뀌는 것도 없고. 다시 되긴 한데? 언제쯤 된데? 갚을 빚은 까마득한데 하소연을 할 데도 없고….”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지 4년여가 흐른 지금,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주민은 비슷한 넋두리를 늘어놨다. 관광 중단 이후 삶이 팍팍해졌기 때문이다. 고성 주민 가운데 상당수는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를 한다. 

남북출입사무소 길목에 방치된 건물들

그래서일까. 어부들이 잡은 물고기를 풀어놓는 대진항을 빼면 웃고 떠드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금강산 관광객이 집결하던 화진포 아산 휴게소도, 인근 식당들도, 돌아가는 관광객이 선물을 사 가던 건어물 가게도 한산하다. 대신 외지 사람이 말을 걸면 기다렸다는 듯 한숨부터 내쉰다.

마을 곳곳의 풍경도 답답한 주민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특히 화진포 아산 휴게소에서부터 동해선도로남북출입사무소(이하 남북출입사무소)를 가는 길목에 흉물스럽게 방치된 건물은 한둘이 아니다.

1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식당 건물은 짓자마자 관광이 중단돼 임대를 해도 나가질 않는다.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어느 식당의 간판은 관광이 한창일 땐 적절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금강산이 막히면서 폐업을 한 상황에선 간판을 보는 주민들의 답답한 마음을 더 후벼 팠다. 때로는 스산함까지 풍겼다. 사람의 손길이 닿은 지 오래돼 아세테이트지가 군데군데 벗겨진 몇몇 건어물 가게 유리문도 주민의 마음을 대변했다. 이 모두가 한창 관광객을 맞다가 폐업한 곳들이다.

 
하지만 관광 중단으로 인한 피해보다 주민이 더 답답해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직접적인 피해를 입으면서도 짐작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거였다.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기약은 없었다. 결국 하염없이 관광 재개만 기다리다 지쳐버렸다.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대진항에서 횟집을 운영하고 있는 신현근(가명)씨. 겉에서 보면 꽤 큰 이층집 횟집이다. 하지만 횟집은 그동안 모아둔 돈에 빚을 보태 얻은 것이다. 서울에서 건축업계에 종사했다는 그는 이 지역이 관광지로 발전할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12년 전 횟집을 차렸다. 하지만 고스란히 빚만 남았다.

- 관광이 중단되기 전과 현재의 경기를 비교하면 어떤가.
“관광 중단 전에는 단체 관광이 많으니까 좋았다. 여행 일정보다 하루 일찍 와서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어서 숙박업과 식당이 잘 됐다. 그래서 원주민이든 외지인이든 숙박업과 식당을 차린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잠깐이었다. 예상과 다르게 관광이 중단되니까 빚을 내서 시작한 사람들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인근에 활어 회센터가 있는데 그것도 7~8년 전에 들어선 거다. 거기 투자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땅을 친다. 옆에 밥집도 횟집이었고, 건어물집도 횟집이었다. 그런데 타산이 안 맞아서 다들 장사 그만두고 떠났다.” 

 
잃어버린 4년, 누구 탓할까.

- 관광이 재개되면 예전처럼 다시 활기를 띨 것 같나.
“그렇게 보고 있는데, 확신을 못하겠다. 순식간에 그런 사건 하나로 관광이 중단되면서 모두들 손가락만 빨게 되니까 나중에도 그런 일이 있으면 글쎄…. 또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앞이 깜깜하다.”

대진항을 지나 남북출입사무소에 가까워질수록 풍경은 더욱 음산해진다. 사람이 없어서다. 지나다니는 차도 많지 않다. 현내면 명파리는 남북출입사무소에 가장 인접한 마을이다. 관광객이 금강산을 다녀오면서 각종 건어물을 사가는 곳이기도 하다. 관광이 중단되기 전 마을 사람들은 관광객 유치를 위해 고성군청의 도움을 받아 도로주변에 상가 간판들을 예쁘게 단장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말짱 도루묵이 됐다.

민박집 간판을 내건 건물은 문이 닫혀 있다. 역시 폐업한 곳이다. 그 옆으로 내다 팔 건어물은 하나도 없지만 건어물이라고 적힌 유리문 안으로 김장 무를 다듬던 할머니가 보였다. 충청도가 고향이라는 할머니는 남편을 따라 고성까지 왔다는 할머니에게 현지 사정을 물었다.

- 언제부터 이 지역에서 장사를 했나.
“장사는 아니고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기 전부터 세를 놨다. 그걸로 노후 준비하면 되겠다 싶었는데 일이 이렇게 꼬였다. 금강산 관광이 막상 중단됐을 때만 해도 걱정은 했지만 잠깐 지나가는 구름이겠거니 생각했다. 근데 세입자들이 나가고, 버티다 못한 원주민들까지 장사를 접고 타지로 나가면서 ‘이게 보통 일이 아니구나’ 생각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길게 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

-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지 않고 있는 게 누구 탓이라고 생각하나.
“죽은 사람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그 사람이 거기서 죽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되진 않았을 거 같다. 그 사람이 제일 원망스럽다.”

- 대선 후보들 모두 금강산 관광을 재개시킨다니 다행 아닌가.
“안 믿는다. 된다고 해도 당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왜 지금 정부에선 못하나. 어떻게 될지 이젠 못 믿겠다. 며칠 전에도 정치인들이 우르르 몰려 왔다가 사진만 찍고 갔다. 지역 사정을 얼마나 아는지 모르겠다.”

- 장사를 방치해 두고 있는데 왜 떠나지 않나.
“장사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한몫 잡던 맛을 잊지 못한다.”

할머니는 2009년 금강산에서 피격당해 사망한 박왕자씨에게 4년간의 한풀이를 하고 있었다. 인근에는 도로에까지 나와 오징어 피데기를 팔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아직 장사를 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가게 중 하나였다. 가게 안을 가득 채운 건어물들이 눈에 띈다. 다른 가게에서는 전혀 보지 못하던 광경이다. 고성 토박이인 김명길(가명)씨는 ‘일심이네’라는 간판을 내걸고 이곳에서 10여년이 넘도록 건어물 가게를 했다.

- 요즘 사정이 어떤가.
“말도 마라. 사실 금강산 관광 안 해도 우린 먹고살았다. 근데 괜히 그딴 걸 해가지고선 손해만 보고 있다. 하소연할 데도 없어서 답답하기만 하다.”

- 금강산 관광 자체도 필요 없었다는 말인가.
“그렇다. 관광 재개해야 된다고 사람들이 그러는데, 원래대로만 돌아가도 좋겠다. 사실 예전에는 통일전망대 오러 보는 관광객도 많았다. 근데 금강산 관광이 뚫리면서 기왕 통일전망대 보러 오는 거면 금강산 가자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거다. 금강산 관광 없어도 장사 잘 될 때는 하루에 수백만원까지 매출을 올릴 때도 있었다. 물론 관광이 시작되면서 더 잘 되긴 했다. 하지만 수요에 맞추려고 은행에서 큰돈을 빌려 냉장시설을 갖췄는데, 그거 들여놓자마자 관광 중단되면서 딱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미칠 노릇이다.”

- 설비 투자에 얼마 정도 들었나.
“1억원이 조금 넘는다.”

- 왜 이렇게 관광 재개가 안 되고 있다고 생각하나.
“다 정치하는 사람들 잘못 아니겠나. 빨리 정부가 바뀌어서 뭔가 조치를 취해줬으면 좋겠다. 문제는 이 지역 사람들은 누구를 뽑아야 지역경제에 도움이 될지 잘 모른다는 거다.”

 
한결같이 ‘이 상태론 못 살겠다’는 주민의 얘기를 듣다보니 금강관 관광 중단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궁금해졌다. 고성군청 신성장개발과 담당자는 “경제적 손실액과 실업자는 늘고, 전체 인구와 관광객, 매출액은 줄었다”며 약간의 자료를 보내왔다. 자료에 따르면 관광이 중단된 2008년 8월부터 2012년 9월말까지 업종별로 총 1421억원(월 평균 29억원)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했다. 구직을 위한 타지역 전입으로 결손가정과 독거노인도 늘었다. 지방세체납액과 실업자도 늘었다.

관광객은 확 줄었다. 육로 관광이 개통된 2003년 당시 3만6705명이던 금강산 관광객은 사건이 발생하기 전인 2007년 34만5006명까지 늘었다가 2008년 19만9966명으로 다시 줄었다. 고성군 전체 관광객은 2007년 626만명에서 2011년 483만명으로 약 143만명 감소했다.

고성군청이 제시하는 통계수치는 주민의 심정을 잘 대변하고 있었다. 주민에게 미친 파급효과가 이렇다면 선봉에 있다가 날벼락을 맞은 현대아산은 어떨까.

금강산 관광객이 집결하던 화진포 아산 휴게소. 과거엔 하루 평균 5000여명의 관광객이 드나들었던 곳이지만 지금은 휑하니 언덕배기만 지키고 있었다. 편의점과 대합실 등 시설물 출입구는 쇠사슬로 꽁꽁 잠겨 있었다. 휴게소 건너편에는 현대아산이 숙박시설을 짓기 위해 2007년 말 매입한 공터가 방치돼 있었다. 2층 사무실에는 북적대던 관광객을 맞이했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수십여명의 직원이 근무할 수 있도록 갖춰진 사무용 집기들은 예전 그대로였다. 그곳에서 화진포 아산 휴게소를 지키고 있는 현대아산 직원을 만났다. 이기호 관광지원팀 팀장이다.

- 원래 함께 일하던 직원들은 어디 가고 혼자 있나.
“일이 없다 보니까 어떤 직원은 다른 일을 찾기 위해 퇴사했고, 어떤 직원들은 경비절감 차원에서 정리됐다. 계열사 간 이동이 불가능해 회사가 마냥 책임질 수 없어서다. 혼자 남았지만 그나마도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오전에는 휴게소를 관리하고 오후에는 양양국제공항 면세점을 운영한다. 회사의 자구책인 셈이다.”

- 처음에 이곳에서 바쁘게 일할 때는 보람이 컸을 것 같다.
“맞다. 물론 사업이 돈을 버는 목적도 있지만, 실향민의 아픔을 달래주고 통일을 앞당기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하는 사업이었기 때문에 힘들어도 힘든 줄 몰랐다. 다들 자부심이 대단했다. 드나드는 사람이 많을 때는 하루에 8000명도 됐다. 여기가 최초 집결지이기 때문에 항상 북적댔다. 일손이 부족했다.”

- 관광이 중단된 지금은 어떤가.
“정치적인 문제가 엮여 있어서 회사 측에서도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 답답할 뿐이다. 그저 하루라도 빨리 관광을 재개하는 게 회사는 물론 지역민들과 북한까지 득을 보는 길이라 생각한다.”

- 혼자 있으면 외롭지 않나.
“물론 외롭다. 하지만 관광이 재개되면 일을 다시 시작해야 되니까 누군가는 여길 남아서 지켜야 된다.”

- 관광 재개가 잘 될 것 같나.

“대선주자들이 모두들 열심히 하겠다고 하니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때를 대비하며 마냥 기다릴 뿐이다.”

날이 추웠지만 이 팀장은 “혼자 있는데 큰 사무실을 다 데울 수는 없다”며 히터도 틀지 않았다. 가뜩이나 수익도 없는데 전기요금이라도 아껴야 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그가 외로움과 추위를 참고 견디는 이유는 하나다. 관광이 재개돼 이전의 호황기를 다시 찾을 것이란 기대감에서다. 

▲ 사람들로 붐비던 화진포 아산 휴게소는 현재 황량하기 그지없다.
관광중단 막는 안정장치 있어야

하지만 정치적인 환경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현대아산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노지환 현대아산 과장은 “사실 처음엔 경제 문제였는데, 나중에 천안함이나 연평도 등 사건이 발생하니까 정부 차원의 문제로 바뀌었다”며 “현정은 회장이 북한에 다녀왔지만 특별한 진전은 없다”고 말했다.

이기호 팀장이 추운 사무실에서 강조한 말이 떠올랐다.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어떻게든 관광이 재개될 것이다. 하지만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는 것보다 정치논리에 따라 사업이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게 더 중요한 숙제다.” 

글•사진 |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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