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일의 Art Talk | 작가 김기철
인터넷으로 전 세계의 움직임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됐다.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우리 대중문화(영화ㆍ드라마ㆍ음악)가 한류 붐을 타고 전 세계 대중문화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가수 싸이는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전 세계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는 전 세계 대중음악 시장에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싸이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 지구촌의 문화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예전처럼 자신만의 문화를 고집하던 시대는 사라지고 있다. 흥미를 유발하고 관심을 끌 만한 확고한 콘텐트가 있다면 그 어떤 것도 통하는 게 요즘 세상이다.
작가 김기철의 작품은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과거를 여행한다. 단순하던 그의 작품은 역사를 현대적으로 풀어내며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김기철의 초기 작업은 간결하고 단순한 붓질이 주를 이룬다. 자신의 감정은 철저히 배제되고 드러나지 않는다. 구체적인 형태나 화사한 색상 하나 없이 극히 절제된 채색만 존재했다.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현기증을 자아내게 했다.
언젠가부터 그는 속마음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는 작품을 통해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를 지우고 또 지운다. 작가의 염세적 사고가 결국 지우는 작업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는 작가의 무력감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끝없이 지우는 행위 속에서 하나 둘 여백을 꺼내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꺼져가는 불빛 속에서도 작은 희망의 불씨를 놓치지 않으려는 시도다.
작품 통해 역사 재해석
요즘 그는 또 달라졌다. 궁궐 그리기에 푹 빠졌다. 대한민국 보물 1호인 흥인지문을 그렸는데 그 특징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특히 흥인지문의 옹성(성문 바깥쪽의 반원 모양)을 강조했다. 처마형태가 가느다란 조선후기의 건축양식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인 ‘근정전’ 역시 새롭다. 근정전은 원래 경복궁의 중심이었다. 과거 국가의 중대한 의식을 거행한 상징적 건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작가는 이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다.
근정전의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 1502년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되고 흥선대원군에 의해 재건됐지만 1910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또 한 번의 수난을 겪었던 슬픈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다. 작가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삼고 처마 끝 초승달을 강조하며 근정전의 슬픈 과거를 보여준다. 또 다른 작품 ‘수원화성’은 당쟁의 역사인 애달픈 이야기(뒤주에서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작가는 석축이나 벽돌을 이용한 축성으로 군사적 기능을 충실히 하면서도 상업적 기능을 겸비한 성곽으로의 위용을 강조했다.
지난날 김기철은 단순한 반복의 행위(지우기)를 보여주는 데 열중했다. 그의 작품은 무감각ㆍ무표정으로 일관하며 ‘비움’의 형상들을 보여줬다. 하지만 요즘 그의 작품은 완전히 달라졌다.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 세상을 바로보기 시작한 듯하다. 김기철은 역사 속 궁궐을 표현하면서 자신만의 느낌으로 이를 재해석한다. 무념의 경지에 이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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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일 문화전문기자 human3ks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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