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일의 Art Talk | 작가 김기철

인터넷으로 전 세계의 움직임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됐다.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우리 대중문화(영화ㆍ드라마ㆍ음악)가 한류 붐을 타고 전 세계 대중문화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가수 싸이는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전 세계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는 전 세계 대중음악 시장에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 수원화성 193.9x99.0㎝, Acrylic on canvas, 2011
싸이의 음악은 재미와 흥미를 최우선으로 한듯 단순해 보인다. 하지만 그의 음악에는 ‘즐거움’을 전달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싸이는 강남스타일로 하나의 새로운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잡고 있다.
싸이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 지구촌의 문화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예전처럼 자신만의 문화를 고집하던 시대는 사라지고 있다. 흥미를 유발하고 관심을 끌 만한 확고한 콘텐트가 있다면 그 어떤 것도 통하는 게 요즘 세상이다.

▲ 근정전 100x41㎝, Acrylic on canvas, 2011
작가 김기철의 작품은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과거를 여행한다. 단순하던 그의 작품은 역사를 현대적으로 풀어내며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김기철의 초기 작업은 간결하고 단순한 붓질이 주를 이룬다. 자신의 감정은 철저히 배제되고 드러나지 않는다. 구체적인 형태나 화사한 색상 하나 없이 극히 절제된 채색만 존재했다.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현기증을 자아내게 했다.

언젠가부터 그는 속마음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는 작품을 통해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를 지우고 또 지운다. 작가의 염세적 사고가 결국 지우는 작업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는 작가의 무력감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끝없이 지우는 행위 속에서 하나 둘 여백을 꺼내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꺼져가는 불빛 속에서도 작은 희망의 불씨를 놓치지 않으려는 시도다.

작품 통해 역사 재해석
요즘 그는 또 달라졌다. 궁궐 그리기에 푹 빠졌다. 대한민국 보물 1호인 흥인지문을 그렸는데 그 특징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특히 흥인지문의 옹성(성문 바깥쪽의 반원 모양)을 강조했다. 처마형태가 가느다란 조선후기의 건축양식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인 ‘근정전’ 역시 새롭다. 근정전은 원래 경복궁의 중심이었다. 과거 국가의 중대한 의식을 거행한 상징적 건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작가는 이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다.

근정전의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 1502년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되고 흥선대원군에 의해 재건됐지만 1910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또 한 번의 수난을 겪었던 슬픈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다. 작가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삼고 처마 끝 초승달을 강조하며 근정전의 슬픈 과거를 보여준다. 또 다른 작품 ‘수원화성’은 당쟁의 역사인 애달픈 이야기(뒤주에서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작가는 석축이나 벽돌을 이용한 축성으로 군사적 기능을 충실히 하면서도 상업적 기능을 겸비한 성곽으로의 위용을 강조했다.

지난날 김기철은 단순한 반복의 행위(지우기)를 보여주는 데 열중했다. 그의 작품은 무감각ㆍ무표정으로 일관하며 ‘비움’의 형상들을 보여줬다. 하지만 요즘 그의 작품은 완전히 달라졌다.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 세상을 바로보기 시작한 듯하다. 김기철은 역사 속 궁궐을 표현하면서 자신만의 느낌으로 이를 재해석한다. 무념의 경지에 이른 듯하다.

전시회 소식

Tom Price展

▲ 수원화성 193.9x99.0㎝, Acrylic on canvas, 2011
라리오 갤러리 서울 청담에서는 독특한 물성의 실험으로 영국 현대 디자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작가 톰 프라이스의 개인전을 11월 20일부터 12월 30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대표적인 작품인 ‘Melt down’ 시리즈의 의자 작품 10점과 작가의 총체적인 작업 세계를 보여주는 대형 설치 작품 ‘PP Tree’, 회화 작품 ‘PP EXP’를 포함해 총 12점이 설치된다. 예술과 예술 산업 간의 영역 구분이 점점 희미해지는 요즘 순수 미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아우르는 톰 프라이스의 작업을 통해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정희우展 - Peeling the City

▲ 톰 프라이스 'PP Tree' 폴리프로필렌 파이프,

나일론 케이블, 스테인리스 와이어 로프, 가변크기, 2011

도시의 대로를 그리고 기록하는 작업을 해온 정희우 작가의 ‘Peeling the City’전이 부띠크모나코미술관에서 11월 21일부터 12월 6일까지 열린다. 정희우 작가는 도시를 직접 관찰하고 보행하면서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기호인 도로 표시기호•보도블럭•맨홀뚜껑 등을 탁본한다. 사람들이 매일 밟고 있는 도시의 흐려진 기호들을 원형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회에서 그는 우리가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익숙해져 버린 도시의 일상적 표면을 벗겨낸다. 도시 속에 감춰진 작은 이야기들을 드러내고 있다. 
김상일 문화전문기자 human3ks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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