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석유회사 ‘기름값 20% 인하론’ 갑론을박

▲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는 올해 6월 정유사의 가격 담합을 규탄하며 LPG 가격 안정화를 정부에 요구했다.(사진=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제공)
국민이 주주로 참여하는 국민석유회사가 화제다. 기존보다 20% 저렴한 기름을 제공하겠다고 선언해서다. 정유업계는 “터무니없는 소리”라 말한다. 누구 말이 맞을까. 이태복 국민석유회사 설립위원회 대표와 익명을 원한 정유업계 관계자를 만나, ‘20% 저렴한 기름’의 가능성을 물어봤다. 둘은 갑론을박을 거듭했다.

최근 SK에너지 기업 블로그에 흥미로운 글이 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는 한국보다 정유사가 적은 곳이 많다. 국내 정유시장이 독과점 구조라는 주장은 틀렸다.”

정유4사의 독과점을 비판해온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주장과 다르다. 국민석유회사 설립 준비위원회(이하 국민석유회사)는 “시장 독과점 주장의 근거는 정유사가 4곳밖에 없어서가 아니라 가격담합 때문”이라며 “정유사 개수는 별개”라고 발끈했다.

두 주장에 대한 국민의 생각은 어떨까. 국민석유회사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편이다. 이유는 정유4사가 이미 담합으로 적발된 적이 있고, 유가 변동치를 제때 소매가격에 반영하지 않아서다. 국민석유회사가 출범을 선언 후 단 5개월 만에 잠재적 주주 10만명을 확보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름값은 가계에 가장 큰 부담을 주는 비용 중 하나다. 국민석유회사는 “가격이 비싸다”고 주장하고, 정유업계는 “그렇지 않다”고 반박한다. 문제는 국민의 생각이다. 기름값이 싸다는 데 동의하는 국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국민석유회사는 국민적 지지X를 등에 업고 이르면 연내에 설립될 예정이다. 회사 설립에 필요하다고 밝힌 자금은 총 5000억원. 이 중 초기 자금 1000억원은 주식을 약정하는 방식으로 모금하고, 나머지는 공모를 통해 마련할 방침이다. 현재 870억여원의 자금을 모았다.

정유업계에 강력한 라이벌이 등장한 셈이지만, 국민석유회사의 기름값 20% 인하 주장에 대해 정유업계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과연 가능할까’ 하는 의심의 정도가 아니라 ‘현실을 잘 모르는 허황된 주장’이라는 의견이 많다.

어느 쪽 주장이 더 타당할까. 이태복 국민석유회사 설립준비위원회 대표와 익명을 원한 정유업계 관계자를 만나 각각의 주장을 들어봤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둘의 주장에 근거가 되는 정보들이 A부터 Z까지 달랐다. 먼저 국내 정유사의 독과점 논란에 대해 물었다.

 
정유사 수로 독과점 여부 판단 못해

이태복 대표(이하 이태복): “휴대전화 요금에 대해 법원이 원가를 공개하라고 했다. 이를 원유에도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 국내 정유사가 독과점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는 건 단순히 정유사 수의 문제가 아니라 가격 담합 때문이다. 미국은 석유재벌기업 록펠러를 반트러스트법(셔먼독점금지법)으로 해체한 적이 있다. 독점구조가 그만큼 심각한 폐해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깨달아서다. 독점이나 과점을 없애려면 완전경쟁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완전경쟁의 전제 조건은 수입 원가 공개다.”

정유업계 관계자(이하 관계자): “정유4사가 임의로 가격을 조정할 수가 없다. 아시아 역내에서는 싱가포르 선물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개방된 시장이다. 또 정유사의 영업이익은 평균 2%다. 마진율이 높지 않다. 임의로 담합을 할 수 있다면 왜 손해를 보겠나. 정유사가 손해를 본 이유는 비쌀 때 산 기름을 쌀 때 팔아서다. 특히 관세청과 석유공사에 이미 원가는 공개돼 있다.”

이 대표 주장의 요지는 ‘담합으로 가격을 올린다’는 것이다. 정유업체는 ‘원가가 공개되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반박한다. 주목할 점은 두 사람이 말하는 원가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마진율을 알 수 있는 정유사 개별 수입 원가를 말한다. 업계 관계자는 전체 수입물량에 대한 총 원가다. 총 물량을 석유의 단위 ‘L’로 나누면 수입원가가 나온다는 설명이다.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사실관계를 밝힐 순 없지만 논리적으로 설득력을 얻는 쪽은 이 대표다. 정유업체가 담합을 통해 가격을 끌어올리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9년에는 정유4사의 LPG 가격담합으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6690억원의 과징금을 내라는 명령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주유소 관리 담합으로 435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기도 했다.

그럼 “20%가량 저렴하게 기름을 공급하겠다”는 이 대표의 주장은 사실일까.

 
이태복: “석유회사를 설립하려면 중동의 오일메이저로부터 기술을 지원받아야 했다. 그래서 유황 함유량이 많은 중동산 중질유를 수입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맞는 정제설비를 추가로 갖춰야 하기 때문에 돈이 많이 든 것이다. 시베리아산과 캐나다산의 경질유를 들여오면 정제시설 설치비를 줄일 수 있다. 더구나 중동의 오일메이저는 지금껏 아무런 근거도 없이 ‘아시아 프리미엄’이라고 해서 배럴당 1달러의 마진을 챙겨왔다. 최근 없어지긴 했지만 국내 정유사는 오랫동안 이 부분을 숨기고 소비자가격에 반영했다.”

석유공사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 들여오는 원유의 약 80%는 중동산 중질유다.

관계자: “시베리아산 원유와 캐나다산 원유는 싸지 않다. 양이 많지도 않다. 중동산 기름을 들여오는 것은 좀 더 저렴해서다. 거리가 짧은 시베리아나 캐나다에서 원유를 수입해 유통마진이 줄이고, 이를 발판으로 가격을 낮추겠다는 얘기인데, 나중에 가격을 비교하면 현실성이 없다는 걸 알게 될 거다. 이 대표가 말하는 정제시설은 고도화 시설 같다. 그런데 이런 시설이 없어도 된다면 왜 만들었겠나. 만약 시설을 만들지 않으면 이윤을 더 남길 수 있을텐데 말이다. 최근 GS칼텍스는 고도화시설 비용으로 약 2조원을 썼다. 규모가 작다고 해서 돈이 적게 드는 것도 아니다.”

정유업계 관계자의 말을 반대로 해석하면 또 다른 의문이 남는다. 기업은 마진을 남기기 위해 좀 더 비용을 줄이려 할 텐데 굳이 이런 시설투자를 하는 이유가 뭘까. 이 대표는 “정유사들이 유황 함유량이 높은 중동산 중질유를 고집하고 있다”며 “중질유는 탈황시설 등을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기 때문에 시설투자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유업계의 구조적 문제”라고 꼬집었다. 업계 관계자는 “정제마진을 남기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설비 투자”라고 설명했다.

국민석유회사의 주장 가운데 가장 설득력을 얻는 것은 ‘배당금을 줄이자’다. 주주 배당금을 줄이면 기름값을 큰 폭으로 내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태복: “정유사의 주주 배당금이 너무 많다. 최대주주인 외국계 오일메이저가 정유사의 이익을 고스란히 가져가니까 소비자는 비싼 기름을 구입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배당금 대신 기름을 싸게 공급할 것이다.”
관계자: “주식회사에서 주주에게 배당을 주는 것은 당연한 거다. 배당을 하지 않으면 누가 투자를 하겠나.”

SK에너지를 제외한 정유3사의 지분 구조를 보면 이 대표의 주장을 이해할 수 있다. 현재 GS칼텍스의 지분 50%는 미국의 국제석유기업인 셰브런이 갖고 있다. 에쓰오일의 최대주주는 35% 지분을 가진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생산업체 아람코다. 현대오일뱅크는 2010년 현대중공업이 인수하기 전까지 14년간 아부다비국영석유투자회사(IPIC)가 대주주였다. 

 
배당금 줄이면 기름값 떨어질까 

2010년과 2011년 배당금 추이를 보면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은 순수익의 40% 이상을 배당금으로 줬다. 현대오일뱅크의 같은 시기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떨어졌는데도 순수익의 23%를 배당금으로 지불했다. SK이노베이션만 순수익이 늘었음에도 배당금을 절반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SK이노베이션의 대주주는 33.4%를 가진 SK다. 대주주가 누구냐에 따라 배당금이 달라진다는 얘기다. 이 대표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두 사람 모두 유류세가 너무 비싸다는 것에는 동의했다. 하지만 해법은 달랐다. 업계가 수동적이라면 이 대표는 능동적이다.

관계자: “국민석유회사가 20% 싼 기름을 공급한다는 건 현실성이 없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을 찾으라면 정부가 기름값의 47%에 달하는 유류세를 줄이는 것이다.”

이태복: “정유시장의 구조를 바꾸는 게 먼저다. 20% 싼 기름을 공급하면 정부에도 세금을 낮춰 달라고 요구할 생각이다.”

국민석유회사와 정유업계의 주장은 평행선을 그린다. 관점도 다르고 주장의 근거도 다르다. 어떤 주장이 사실에 근접해 있는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국민석유회사가 정식 출범하면 주장의 진위가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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