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파트1] 재래시장서 ‘카드 수수료 인하공약’ 물어보니…

재래시장을 이틀 동안 휘젓고 다녔다. 걸음걸음마다 수많은 상인이 스쳐갔다. 상인마다 꿈꾸고 바라는 세상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은 같은 소원을 빌고 있는 듯했다. 평범한 자신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진심어린 지도자의 출현을…. 바람이 찼다. 재래시장의 민심도 찼다.

▲ 각 대선후보가 골목상권 보호와 재래시장 살리기를 위한 다양한 공약을 내걸었다. 하지만 상인들의 삶은 여전히 팍팍하다. 사진은 대형마트의 입점을 앞두고 혼란을 겪고 있는망원시장.

“카드로 결제하신다고요? 1만원인데 그냥 현금으로 하시지. 카드로 하시려면 1만1000원 끊을게요.”
 12월 3일 오후 5시,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양말상점 상인과 작은 실랑이가 있었다. 1000원짜리 양말 10개를 집어 들고 카드를 내밀었는데 점포 측은 수수료로 10%를 더 붙이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기자는 카드결제 1만원을 고집했다. 30대 초반의 젊은 주인이 결국 짜증을 냈다.

“어휴, 손님도 참, 동대문시장에서 카드결제를 하면 거의 모든 가게에서 10% 붙여요. 이거 팔아봐야 카드수수료 떼면 남는 게 얼마 없어서 그런다고요.”

현실과 동떨어진 카드수수료 인하

박근혜 새누리당,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의 공약 중 공통점이 있다.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한 ‘카드수수료 인하’다. 백화점 판매 수수료•은행 수수료 등 소상공인을 위한 수수료 인하도 마찬가지다. 최대 재래시장인 동대문시장에서 카드수수료 인하가 약발이 있을까를 체크하는 와중이었다.

기자는 양말 사는 걸 포기하고 신평화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녁장사 위주인 곳이라 절반 이상 점포

▲ 재래시장을 살린다는 취지의 '카드수수료 인하'공약은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레퍼토리다. 사진은 동대문 평화시장 주변모습.

의 문이 닫혀 있었다. 건물로 들어서니 한 판매문구가 눈에 띈다. 남성용 트렁크 팬티 3장을 1만원에 판다는 내용이다. 색깔별로 팬티를 고른 후 카드를 내밀었다. 40대 여주인은 카드받기를 거부했다. 공장에서 바로 떼어와 부가세를 포함하지 않고 파는 거라 그렇다고 말했다.

“손님, 죄송해요. 우린 카드를 별로 안 좋아해요. 시장에서 카드는 인기 없잖아요.”
“그래요? 이상하네요. 앞으로 대통령 하겠다는 분들이 재래시장 카드수수료 인하를 공약에 넣었잖아요. 카드거래가 꽤 활성화된 줄 알았는데요.”

“수수료 인하요? 순진한 얘기하시네요. 제가 여기서 9년 넘게 장사했는데요. 카드수수료 인하니 뭐니 하는 건 선거철마다 나오는 얘기예요. 여기 있는 상인들 거의 현금장사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에요. 수수료 약간 깎는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소득내역만 다 공개돼 버리지. 차라리 경제를 살려서 손님이나 많이 보내주든지, 자영업자 세금이나 좀 깎아주든지 하는 게 현실적이죠.”

목소리를 높이는 주인에게 어떤 세금이 부담되느냐고 물어 보았다. 주인은 “뭐, 세금이면… 부가세나… 소득세나… 뭐…”라며 말을 얼버무렸다. 이 순진한 아주머니는 자신이 내고 있는 세금을 정확히 잘 모르는 듯했다.

 
신평화시장을 빠져나와 동평화시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스포츠용품 도매점을 거쳐 뒤편 패션코너에 진입했다. 중간 쯤 위치한 점포에서 예쁜 갈색 무스탕을 발견했다. 입어보는 거야 돈 드는 일이 아니라서 무스탕에 손을 뻗었다. 그때였다. “참...참쉬만요~”라는 낯선 발음이 들려온다. 이후 투박한 손길이 기자 어깨를 쑤욱 스쳐 무스탕을 집는다. 고개를 돌려봤다. 깊은 눈매의 우즈베키스탄 남자가 서 있다. 새치기를 한 것이다.

“아까 와서 입어봤던 사람이거든요. 지금 다시 와서 사려는데 손님이 앞에 있어서 급하게 손을 뻗은 거 같아요. 이해하세요.”

황당해하는 기자에게 50대 점포 주인이 상황을 설명한다. 우즈벡 손님은 혹여 기자에게 무스탕을 빼앗길까봐 곧바로 돈을 지불했다. 가격은 8만원. 주인은 기자에게 미안했는지 이온음료를 하나 건넸다. 푸근해 보이는 인상의 아주머니다.

“외국손님이 많은가 보네요.”
“그럼요. 요즘은 외국손님들이 매상을 많이 올려줘요. 중국•우즈벡•동남아 손님들이 많이 와요. 깎아달라고 떼를 쓰기는 하지만 한국제품이 품질이 좋아서 불평은 별로 없어요. 한국 손님은 얼마나 오냐고요? 에이그, 말도 말아요. 확 줄었어요”

여기서 얼마나 장사했냐는 질문에 아주머니는 그냥 “꽤 됐어요” 라고 짧게 답한다. 그에게 차기 대통령으로 어떤 사람을 선호하는지 물어봤다. ‘옷 보러온 사람이 별걸 다 묻는다’는 눈길이 꽂힌다. 멋쩍게 웃으며 신분을 밝혔다. 약간 당황스러워 하던 아주머니가 곧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뭐, 별거 있겠어요. 한국 손님 많이 올 수 있게 해주는 분, 경제를 살려서 북적이게 해 주는 분 뽑아야죠. 외국 손님으로 장사하는 건 한계가 있으니까요.”

12월 4일 낮 1시,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을 찾았다. 입구에 걸린 대형 현수막이 인상적이다. ‘골목상권 죽이는 홈플러스 합정점 개점을 반대한다’는 내용이다. 대형마트를 강력히 규제해 골목상권을 보호하겠다는 공약은 박근혜, 문재인 두 후보의 공통된 내용이다. 상인의 생각은 어떨까.

시장 안으로 들어섰다. 한낮임에도 체감기온은 영하를 밑도는 날씨였다. 시장 중간 지점에 위치한 분식집에서 꼬치어묵을 집어 들었다. 한 개를 10초 만에 없애버렸다. 두 번째 꼬치를 집어 드는데 천천히 드시라며 주인이 어묵 국물을 손수 떠 준다. 그에게 홈플러스와 관련된 상황을 물어봤다.

“글쎄요. 지금 영업 못하게 막고는 있는데, 모르죠. 언제까지 막을 수 있을는지….”

홈플러스 합정점은 올해 8월 개점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주변 재래시장 상인의 반대로 보류됐다. 상인들

 

에 따르면 망원시장과 홈플러스의 지도상 거리는 650m에 불과하다. 어묵국물을 마시며 주인에게 ‘대통령 후보들의 골목상권 보호 공약’을 언급했다. 옆에서 떡볶이를 젓던 부인이 거든다.

“선거 때 뿐이지요. 어차피 힘 있는 사람들이 밀어붙이면 다 되는 세상 아닌가요. 홈플러스도 결국 들어오겠지요. 우리 같은 사람들 목소리에 누가 관심 가져 주냐고요.”

어묵값을 지불한 뒤, 남쪽 방향으로 내려왔다. 출구에 이르렀을 무렵 C의류점 앞에 놓인 오리털 파카가 눈에 들어왔다. 파카를 집어 들고 가게로 들어갔다. 상인 두명이서 대화 중이었다. 한명은 주인이고 다른 한명은 옆 가게에서 놀러온 상인인듯 했다. 상인들의 대화 주제는 박근혜 후보 보좌관의 사고였다. 기자가 말을 붙이기도 전에 그들의 얘기는 대선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우연이라면 우연이었다. 그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가진 자가 더 갖는 세상은 안 돼

“그러게 대통령을 잘 뽑아야 해.”
“맞아, 이명박씨도 잘살게 해 준다고 해서 뽑았지. 그런데 나아진 게 뭐가 있냐고.”

상인이 체념한 듯 말했다. 주인에게 오리털 파카 큰 사이즈는 없냐고 말을 붙였다. 손님이 온 것을 눈치 챈 주인이 부스스하게 일어났다. 잠깐 옷 얘기를 나누다가 그들의 얘기에 끼어들었다.

“그럼, 사장님은 야당 후보를 뽑으실 계획이신가요?”
“에이, 그걸 어떻게 지금 말해요. 내 마음 나도 모르지. 그래도 가진 사람이 더 많이 갖는 세상은 옳은 게 아니죠. 홈플러스도 그렇지. 저게 들어오면 우리 시장 매출이 40%가 떨어져요. 그런데도 들어오겠다고 들이대지 않느냐고요. 대통령은 진짜 잘 뽑아야 해.”

시장을 나와 망원역으로 이동했다. 망원역 1번 출구 앞에 ‘사람이 먼저다’는 현수막이 보인다. 기호2번 문재인 후보다. 그는 정말 사람이 우선인, 소수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는 대통령이 될 것인가. 문 후보의 현수막만 있는 게 이상해 고개를 돌려봤다. 건너편 건물에 ‘준비된 여성대통령’이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기호 1번 박근혜 후보다. 그는 자신의 표어처럼 준비된 마음으로 민심을 보살필 수 있을까. 싸늘한 바람이 파고들었다. 재래시장 상인의 마음처럼 유난히 차게 느껴졌다.
유두진 기자 ydj123@thescoop.co.kr|@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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