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파트6] 고시원에 대선은 없다

▲ 대선후보들은 침체된 부동산 시장에 대한 공약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고시원 등에 거주하는 주거취약계층은 사각지대에 몰려있다.
21세기의 쪽방촌으로 불리는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거주자가 해마다 늘고 있다. 원룸 월세가 50만원이 훌쩍 넘는 요즘 비교적 저렴하게 지낼 수 있어서다. 하지만 이들 고시원의 주거환경은 열악하기만 하다. 주거취약계층으로 분류되는 이들이 1평 남짓한 이곳에서 한숨을 쉬고 있다.

 
군대에 있을 때는 시간만 흐르면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곳 고시원은 언제 벗어날 수 있을지 아무런 기약이 없습니다.” 2년 전 대학을 졸업한 김성구(29 ·가명)씨는 월 28만원을 내고 노량진에 있는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학원비와 책값만 해도 월 수십만원이 들어가는데다 생활비까지 감안하면 원룸 월세를 감당하기는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 고시원이다.

김씨와 함께 고시원에 들어서자 좁은 복도를 따라 수많은 방이 빼곡히 이어졌다. 배치된 문의 간격만 봐도 방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갔다. 그가 자신의 방이라며 문을 열자 간신히 발을 뻗을 수 있는 1인용 침대와 책상, 옷장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1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 이 가구들이 용케도 들어가는구나 싶다. 남은 공간에 성인 남자 둘이 들어서자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었다.

딱딱하고 좁은 침대에 걸터앉아 고시원 생활에 대해 얘기를 나누던 도중 옆방에서 벽을 “쿵쿵쿵” 두드렸다. 조용히 해달라는 신호였다. 합판 패널로 된 객실 벽은 방음이 되지 않아 옆방의 발걸음 소리마저 들을 수 있었다. 화장실과 샤워실 ·주방 ·세탁기는 20여명이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청년실업 문제는 악화일로에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0월 기준 취업 경험이 없는 20~30대 실업자는 3만6000명으로, 9월 2만6000명보다 1만명 늘어났다. 20대의 비경제활동인구 비율은 38.8%에 달한다. 10명 중 4명이 직장을 찾지 못했다는 얘기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하기는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렵다. 젊은 청년이 생업을 찾는 것 대신 공무원 시험을 도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수험 기간 생활비가 만만치 않다. 그나마 가정형편이 나은 학생은 월 40만원 이상 하는 원룸에서 지낼 수 있지만 김씨와 같은 대다수 학생은 남루한 고시원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다.

고시원에는 고시생만 있는 게 아니다. 취업준비생 ·직장인 ·일용직 노동자 등도 거주하고 있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홍일표 새누리당(국토해양위) 의원이 서울시로부터 받은 ‘서울시 주거취약계층 현황’에 따르면 서울시내 주거취약계층은 지난해 말 11만3099가구, 11만8108명으로 조사됐다. 그중 고시원에 거주하는 인구는 7만6511명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월세 내기도 빠듯한 이들에게 내집 마련은 꿈속의 이야기다.

박근혜 새누리당,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측은 연일 청년실업 문제나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주거복지대책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공약은 5년 전에도 언급됐던 정책들이다.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에게 대선후보의 공약이 와닿지 않는 이유다. 김씨는 “어느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든 이 상황이 개선되진 않을 것”이라며 “서울의 전세값을 고려하면 시험에 합격해도 고시원을 벗어나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심하용 기자 stone@thescoop.co.kr | @itvfm.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