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파트5] 어느 택시기사의 한탄

민생의 풍향계라는 택시기사. 그들은 하루 10시간 이상 핸들을 잡는다. 하지만 주머니 사정은 시원치 않다. 한달에 100만원 벌기조차 어렵다. 개인택시라고 다를 게 없다. 정부정책 실패로 택시가 넘쳐나서다. 택시기사의 한숨을 들어봤다.

▲ 올해 연말은 택시기사들에게 반갑지 않다. 경기가 안 좋은 데다 선거까지 있어 승객이 부쩍 줄었기 때문이다. 하루 10시간 꼬박 운전해도 한달 급여는 100만원이 안 된다.
12월 4일 오전 7시50분. 체감온도 영하 12도. 기온이 뚝 떨어졌다.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된다고 뉴스에서 예보했던 터라 옷을 단단히 챙겨 입고 나왔다. 웬걸, 집에서 나오자마자 발이 꽁꽁 얼었다. 구두코에 닿은 발가락의 감각이 없다. 평소와 같은 출근길이지만 오늘은 다르다. 택시를 타고 출근하는 건 처음이다. 공연히 기분이 들떴다. 돌곶이역 1번 출구 앞에서 택시를 잡았다. 법인택시가 미끄러지듯 멈춰 섰다. 목적지는 충무로역이다.

“어서 오세요. 날씨가 제법 춥죠.” 넉살 좋은 택시기사가 반갑게 맞았다. 택시기사는 히터의 세기를 한단계 높였다. 바람의 방향을 위로 올리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서비스가 제법 괜찮다. 택시는 출발한 지 5분 만에 월곡역에서 속도가 떨어졌다.

출근시간 교통체증이 시작된 것이다. 도로에 나온 자동차가 고구마 줄기 엮이듯 길게 늘어섰다. 택시기사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요즘 연말인데 승객은 많습니까.” 기사가 사이드미러로 기자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경기가 안 좋은 데다 대선까지 있어서 다들 회식을 생략하는 분위기입니다. 연말이어도 옛날 같지 않아요.”

법인택시 경력 6년의 이창선씨. 그는 2007년부터 택시 핸들을 잡았다. 이씨는 경기가 안 좋은 걸 체감한다. 12월 초면 연말 모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올해는 조용하다. “아무래도 공무원들은 선거가 끝나면 망년회를 할 모양입니다. 지금 같아선 대기업도 간소하게 밥 한 끼 먹는 걸로 끝낼 것 같아요.”

이씨는 이번주 주간근무다. 근무시간은 오전 4시부터 다음날 오후 4시다. 밥 먹고 화장실 가고 담배 피우는 시간을 제외하고 꼬박 10시간 운전만 한다. 이씨가 속한 택시업체의 사납금은 주간 10만2000원•야간 12만2000원이다.

사납금을 채우고 이씨가 가져가는 몫은 한달 기준으로 100만원이 안 된다. 기본금 65만원에 승무수당ㆍ보조수당ㆍ장려수당ㆍ상여금이 붙으면 120만원이 조금 넘는다. 하지만 실수령액은 이보다 적다. 4대보험을 공제하고 노조 조합비에 경조사비까지 빠져서다.

 
택시로 밥 먹고 살기 힘들어
이씨가 손에 쥐는 건 불과 90만~100만원 사이. 네식구가 먹고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데 요즘은 이보다 형편이 더 궁한 사람이 많다. 이씨는 나지막이 한마디 보탰다. “주변 택시기사의 월급명세서를 보면 실수령 금액이 20만~30만원 찍혀요. 하루하루가 정말 고달픕니다.”

이번에는 차량이 한가한 시간에 택시를 타기로 했다. 오전 10시 40분. 충무로역 4번 출구에서 택시를 탔다. 목적지는 역삼역 2번 출구. 강남 일대 기사식당으로 갈 요량이었다.

개인택시 기사 이용선씨는 버스기사를 하다가 개인택시기사로 전향했다. 택시를 몬 지 올해로 3년. 그는 액화석유가스(LPG) 가격부담을 호소했다. 하루 평균 LPG 지출액은 평균 7만원 수준, 한달이면 150만원이 족히 든다.

그런데 정부가 지원하는 택시 가스 보조금은 L당 221원이다. 한달에 15만~20만원을 지원받는 셈이다. 이씨가 쓰는 LPG의 13% 수준에 불과하다. “가스비 인하가 절실합니다. 800~900원대로 내려달라는 게 택시업계의 요구인데, 사실 900원대도 빠듯해요.”

12월 현재 LPG의 가격은 L당 1123원. 고공행진을 지속하던 LPG 가격이 5개월 만에 내림세로 돌아섰지만 국내 LPG 공급가 인하는 쉽지 않아 보인다. 올 8월부터 11월까지 LPG 국제가격이 연속으로 올랐지만 국내 LPG 수입업체들이 10월 한번만 국내 공급가를 올리고 나머지 기간은 동결했기 때문이다.

▲ 현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정부정책 탓에 택시업계는 공급과잉 상태다.
이씨의 어깨를 짓누르는 것은 가스비만이 아니다. 이젠 개인택시로 먹고사는 게 힘들다는 현실이 이씨를 초라하게 만든다. ‘개인택시는 돈 잘 번다’는 말이 옛말이 된 것이다. 법인택시보다 사정은 낫지만 개인택시도 불황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요즘 같아선 하루 일당 10만원도 채우기 버겁다.

이씨가 지난 이틀 동안 번 금액은 18만원. LPG값을 제외한 금액이다. 12월 1일 새벽 6시부터 3일 새벽 6시까지 일한 대가치곤 박하다. 중간에 5시간 낮잠 자고 밥 먹고 한숨 돌리고 휴식 취한 13시간을 제외하고 35시간 동안 운전한 것이다.

“이틀 동안 30시간 넘게 일하나 쉬엄쉬엄 20시간 일하나 버는 수입은 비슷합니다. 오히려 더 벌겠다고 일하다가 몸만 상하죠. 그런데도 이 짓을 합니다. 승객 한 명이라도 더 태우려고요. 요즘 같아선 1만~2만원도 큰돈입니다.”

오전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 역삼역에 도착했다. 2번 출구에서 스타타워 골목을 끼고 10m가량 걸었다. 칼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몸이 으스스 떨렸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좌측 첫번째 좁은 골목에 들어서자 기사식당 간판이 보였다. 점심시간 전이라 식당은 한산했다. 북어찜을 주문했다. 옆 테이블의 택시기사에게 “요즘 택시가 많은 것 같다”며 말을 걸었다. 그는 택시업계에 교통정리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영삼 정부 때 구조조정하면서 운전직 공무원에게 개인택시를 대거 내줬어요. 3순위까지 다 내주다보니까 이제는 공급과잉이 된 겁니다. 정부가 수요예측을 잘못한 거죠. 요즘 택시업계의 경쟁은 살벌해요.”

서울 시내 택시는 총 7만2302대(2011년 기준)다. 그중 법인택시가 2만2831대고, 개인택시가 4만9471대다. 법인택시 운수업체는 255곳이다. 전국의 택시기사는 28만8650명에 달한다. 대수는 25만5295대. 법인택시가 9만1541대고, 개인택시가 16만3754대다. 많긴 많다.

역삼역에서 택시를 타고 노원구 월계동으로 이동했다. 택시운수업체 K통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운수업체에서 만난 택시기사들은 저마다 기본요금에 대해 한마디씩 했다. “택시가 대중교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고급수단도 아닙니다. 요즘엔 승객 4명이 1000원씩 모아서 택시 타요. 버스 타는 것보다 차비가 더 싸거든요. 돈 많은 사람이 택시 탄다고 하는데 택시 타는 승객 대부분이 서민입니다. 차 없는 사람들이 택시 타는 거예요. 이제 택시는 고급 교통수단이라고 볼 수 없어요.”

 
택시기사 목소리 듣고 정책 만들었으면
조용하던 차고는 오후 3시가 넘어서자 시끄러워졌다. 3시와 5시 사이에 택시기사의 교대가 이뤄진다. 1일2교대 체제로 운영되는 법인택시는 오후 4시를 기점으로 교대를 한다. K통상 관계자는 “기사들은 차고에서 교대하는데 최근에는 교통비 아끼고자 교대자의 집 앞에서 만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오후 5시20분. 교통이 혼잡한 퇴근길에 택시를 타고 시내로 나가보기로 했다. 마침 서울 노원구 인덕대 정문 앞에 택시 3~4대가 서 있었다. 시내로 나가거나 귀가하는 학생들을 태우려는 듯했다. 그중 법인택시를 골라 탔다. 택시기사 김홍복씨는 7년째 법인택시를 운행하는 베테랑 기사다. 김씨에게 최근 화두인 택시법(대중교통 육성ㆍ이용 촉진법 개정안) 파동으로 불거진 요금 인상에 대해 물었다.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기본요금이 올라가면 회사 사납금이 덩달아 올라갈 거예요. 자연히 손님은 줄어들겠죠. 결국 운수업체의 배만 불리는 격입니다. 현장을 제대로 판단하지 않고 법 개정을 추진하는 겁니다. 대체 뭐하는지 모르겠어요.”

택시법은 택시의 대중교통화를 목적으로 하는 법안이다. 현재 택시법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상태다.

오래전 김씨는 소박한 꿈을 키웠다. 개인택시를 모는 거였다. 운수업에 뛰어든 이상 자신의 이름을 건 택시를 갖고 싶었다. 하지만 3년 전 마음을 접었다. 개인택시 업자가 너무 많아서다. 택시 줄이려는 마당에 빚까지 내서 개인택시 모는 게 덜컥 겁이 났다. 요즘 같아선 개인택시 한다고 해서 돈벌이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지도 않다. 앞으로 얼마나 더 택시를 몰 수 있을까. 아내와 오붓한 시간을 보낸 게 까마득하다. 가족을 생각하는 김씨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 | @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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