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총론] 대통령 후보가 봐야 할 서민의 자화상

악수하는 게 일이다. 선거캠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얼굴조차 보기 어렵다. 18대 유력 대선후보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경제민주화를 외치지만 정작 민생은 제대로 살피지 않는다. 민생을 모르면 국민의 고통과 애환을 공감하기 어렵다. 후보들이 지금 경청해야 할 말이 있다. “Public friendly Please!”

대금지獨對禁止. 조선시대 군주와 신하 사이엔 불문율이 있었다. 왕과 신하가 주위를 물린 채 마주 앉아선 안 된다는 규정이었다. 왕의 권위를 세우려는 술책이 아니었다. ‘나쁜 짓을 모색하는 게 아니라면 공개하지 못할 말이 무어냐’는 논리가 깔려 있었다. 그래서 왕이 신하를 만날 땐 승정원•춘추관 관리가 동석했다. 조선시대 정치인들은 ‘열린 문화’를 중요한 가치로 여겼을지 모른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조선시대 군주 가운데 궁을 몰래 빠져나가 민생을 살핀 사례는 거의 없다. 그러나 개혁성향의 군주는 종종 암행暗行에 나섰다. 정조가 승하하고 순조가 즉위한 19세기, 조선 8도엔 세도정치가 판을 쳤다. 국정은 도탄에 빠졌고, 민생은 파탄 났다.

왕권을 회복하려 애썼던 소명세자는 현장에서 해법을 찾으려 했다. 그는 시시때때로 궁을 빠져나갔다. 그 힘겨운 과정을 통해 발탁한 인사가 실학자 박규수다. 백성의 애환을 듣기 위해 현장에 능통한 이를 중용한 거다.

조선에는 백성의 말을 귀담아들을 수 있는 시스템도 있었다. ‘구언求言제도’라는 것인데, 백성이 어떤 요청을 하든 처벌하지 않았다. (주장이 옳든 그르든) 정부를 비판했다고 국민을 잡아간 MB정부보다 ‘퍼블릭 프렌들리(Public friendly)’하다.

백성과 소통 시도한 조선시대 왕

효과도 꽤 괜찮았다. 구언을 하면 ‘왕명王命’이 즉각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물며 왕조시대 군주도 백성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소현세자는 세상 밖으로 나가 인재를 구하고 민심을 읽었다. 지금은 어떤가. 헌법 제1조를 보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렇다. 국민은 나라의 주인이자 근본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은 국민의 대리인에 불과하다. 그런데 우리 정치인, 현장의 애환을 너무 모른다. ‘높으신 양반’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선거철이 고작이다. 국민과 동거동락하려 애쓰는 정치인은 괴짜로 여겨지기 일쑤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전 의원. 현역 의원 시절 그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일이 잦았다. 정치동료들과 회식을 한 후에는 꼭 지하철을 탔다고 한다. 동료들이 “꼭 그럴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뜯어 말려도 김 전 의원은 손사래를 치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바야흐로 대선정국, 늘 그랬듯 집권세력과 야권은 한바탕 싸움박질 중이다. 네거티브 공세는 기본이다. 최근엔 민생파탄의 책임이 서로에게 있다며 날을 세운다. 먹고살기조차 버거운 국민이 눈살을 찌푸리는 건 아랑곳하지 않는다. 국민과 함께하려했던 김근태 전 의원은 이 모습을 어떻게 볼까.

시계추를 올해 11월 29일로 돌려보자. 민주통합당은 이날 MB정부에 ‘돌직구’를 날렸다. 요지는 이랬다. “이명박(MB) 대통령과 새누리당 정권 5년은 대한민국 발전의 암흑기다. 빵점 정권이다.” 실정失政을 했다는 주장이다.

MB정부 집권 4년(2008~2011년)의 경제지표를 보면 일리 없는 말은 아니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4년 평균 3.1%에 머물렀다. 2007년 대선유세 당시 MB가 호언장담했던 ‘7% 경제성장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자신들이 ‘경제파탄의 장본인’으로 몰아세운 참여정부의 5년(2003~2007년) 평균 경제성장률 4.3%보다도 1.2%포인트 낮다. 경제규모는 2007년 세계 14위에서 지난해 15위로 밀렸고, 가계부채는 1000조원을 훌쩍 넘었다. 양극화의 척도로 불리는 지니계수는 2007년 0.431에서 2010년 0.446으로 악화됐다.

민주통합당이 경제지표를 들먹이자 청와대가 즉각 맞불을 놨다.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 유로존 재정위기(2010년)를 겪은 MB정부의 경제성장률과 참여정부를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것이었다.
MB정부 관계자는 “세계경제가 2.9% 성장하는 동안 MB정부는 연평균 3%가 넘는 경제성장을 달성했다”고 말했다. 선진국이 죽을 쑬 때 자신들은 선전했다는 자평이다.

다른 관계자는 “세계가 한국경제의 힘을 보면서 깜짝 놀라지 않았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국가신용등급이 사상 처음으로 일본을 역전한 것과 세계 7번째로 ‘20-50클럽(국민소득 2만 달러•인구 5000만명)’에 가입한 것은 MB정부의 공적”이라고 자화자찬했다.

MB정권의 자화자찬 언제까지…

MB정부가 위기를 선방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경제의 내상內傷까지 치유하진 못했다. 서민경제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세계불황의 회오리를 정부와 대기업, 그리고 부자들은 피했을지 몰라도 서민은 직격탄을 맞았다는 얘기다.

민주통합당의 주장처럼 MB정권이 실정을 했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집권세력이 현장을 찾아가 서민의 살림살이를 살펴봤다면 ‘자화자찬’은 못했을 거다. 문제의 핵심은 집권세력이 현장의 애환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민생지표를 꼼꼼히 살펴보자. MB정부 집권 4년 동안 한국의 연평균 실질소득은 평균 3.2% 늘었다. 가계의 실질소득은 2.4% 성장에 그쳤다. 한국의 실질소득을 끌어올린 것은 기업이었다. 기업의 실질소득 증가율은 가계보다 13.7%포인트 많은 16.1%에 달했다. 성장의 과실을 가계가 아닌 기업이 따먹었다는 얘기인데, MB의 경제철학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가 한몫했을 것이다.

양극화 심화를 보여주는 지표도 많다. 지난해 한국의 소득분배개선율(정부개입으로 소득격차가 얼마나 완화됐는지 보여주는 지표)은 9.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약 30%)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약해진 고용안정성이다. 국내 임시직 노동자 비율은 24.8%다. OECD 회원국 가운데 폴란드(27.3%)•스페인(24.9%)에 이어 세번째로 높다.

노동계는 임시직 노동자에 시간제•장기 임시 일용직 노동자를 더해 비정규직 규모를 산출한다. 이 개념에 따르면 올 3월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48%에 달한다. 노동자 10명 중 5명의 직장이 직장 같지 않다는 얘기다.

민생은 악화일로, 정부는 지표계산만

소득은 줄고 평생직장 개념은 완전히 사라졌지만 집값은 껑충 뛰었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 동안 소득이 10.2% 오를 때 전세가격은 26%나 증가했다. 서울 아파트 기준 평균 전세가격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2억6000만원에 이른다. 월급 300만원을 받는 직장인이 7년 동안 소비하지 않고 저축만 해야 마련할 수 있는 금액이다. 하우스푸어가 속출하고, 주택담보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직장인만 벼랑에 몰린 건 아니다. 길거리에는 청년백수가 넘쳐난다. 대학 다니는 것도 이젠 쉬운 일이 아니다. 대학등록금이 천정부지로 치솟아서다. 한국의 대학등록금은 미국 다음으로 높은 세계 2위다. 국공립대 연간 평균 대학등록금을 구매력지수(PPP•물가와 환율이 동등하다는 가정 아래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능력)로 비교하면 미국은 6312달러(약 682만원), 한국은 5315달러(약 575만원)다.

설상가상으로 민생고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도 잇따른다. 한국의 자살사망률은 인구 10만명 중 33.5명이다. OECD 회원국의 평균 12.8명보다 20.7명 많다. 가뜩이나 자살사망률이 높은데 최근 10년 사이(2000~2010년) 101.8%나 증가했다. 한국사회가 심상치 않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MB정부 들어 민생이 악화일로를 걸은 이유는 많다. 첫째는 낙수효과(trickle down)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다. MB정부는 집권 중반까지 부자•대기업을 위한 정책을 폈다. 부유층의 소득이 늘어나면 물이 아래로 흐르듯(낙수•落水) 저소득층에도 혜택이 돌아간다는 논리에서였다.

MB정부가 끝나가는 지금, 윗선엔 물이 넘치지만 아래에는 물이 흐르지 않는다. 분배•조세정책이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의미다. 이상동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연구센터장은 “MB정부가 집권하면서 부자기업, 가난한 가계의 양극화 문제가 심해졌다”며 “조세정책과 사회보험료의 재분배 효과가 낮은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 스웨덴은 국민행복지수가 높은 국가로 유명하다. 여기엔 노사의 협력은 물론 정치권의 노력이 숨어 있다.
틀린 말이 아니다. 한국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38%다. 영국(50%)•프랑스(40%)•독일(45%)•일본(40%)보다 낮다. 복지를 위한 정부지출은 미미하다. 우리나라 총조세 중 사회보장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18.8%로 미국(26.6%)•일본(38.3%)•독일(40.3%)•프랑스(37%)•스웨덴(30.1%)에 비해 현저히 낮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보장비 지출비율도 우리나라는 6.1%인 반면 스웨덴은 28.9%, 프랑스는 28.5%다. 18대 대선후보들이 경제민주화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들이 집권했을 때 지금처럼 경제민주화를 외칠지는 의문이다. 경제민주화는 민생과 연관성이 깊다. 민생을 모르면 경제민주화의 필요성을 느끼기 어렵다. 아쉽게도 유력 대선후보는 민생을 살피는 데 인색하다. 재래시장 유세에선 악수하는 게 일이다. 철거위기에 몰린 노점상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혹여 민생현장에 나타나도 캠프 관계자들에 둘러싸여 얼굴조차 보기 어렵다.

그러니 현실성 없는 대선공약이 속출할 수밖에 없다. 생뚱맞은 대표적인 공약은 재래시장 카드지원 수수료 인하책이다[※참고 : Cover Part I]. 재래시장에서 사용하는 카드의 수수료를 낮추면 고객이 늘어날 것이라는 게 인하책의 골자다. 하지만 상인들은 콧방귀를 뀌면서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대부분의 상인이 카드결제를 하고 있지 않아서다.

민생을 회복하려면 현장을 잘 아는 정치인이 필요하다. 세계에서 국민행복지수가 네 번째로 높은 스웨덴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스웨덴은 연봉협상을 업종별로 한다. 회사가 아니라 반도체•정유•유통업별로 임금을 결정하는 것이다. 당연히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차가 크지 않다. 1938년 체결된 샬트셰바덴 협약의 효과다.

스웨덴의 대기업은 당시 중소기업과의 임금격차를 줄이는 게 급선무라며 기득권을 내려놨다. 그렇다고 대기업의 힘만으로 이 협약이 탄생한 건 아니다. 세상과 소통하면서 양극화 문제를 고심하던 정치권이 멍석을 깔지 않았다면 샬트셰바덴 협약은 체결되지 못했을지 모른다.

스웨덴 샬트셰바덴 협약에 숨은 의미

이처럼 현장에 능통한 정치인이 민생을 꿰뚫어보면 세상이 바뀌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혼란에 빠진다. 다시 조선시대 구언제도를 살펴보자. 백성의 소원수리 창구였던 구언제도는 조선 후기 힘을 잃었다. 위세를 떨치던 외척세력이 백성의 목소리가 왕에게 전달되는 걸 교묘히 막았기 때문이다. 왕은 민생을 살필 통로를 잃었고, 백성은 왕을 딴 세상사는 사람으로 취급했다.

조선은 이때부터 망국의 길로 접어들었다. 집권자가 세상과 불통不通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김근태 전 의원이 지하철을 타면서 한 말이 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눈으로 봐야 하지 않겠는가. 지하철을 타면 안타까우면서도 행복하다.” 현장과 소통하는 대선후보가 필요하다. 서민경제가 중병을 앓고 있어서다. 더 늦으면 민생은 불치병에 걸린다.
이윤찬 기자 chan4877@thescoop.co.kr|@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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