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개척전략 vs 롯데 추종전략

두 유통공룡 롯데와 신세계의 경쟁이 2라운드에 접어들고 있다. 백화점ㆍ마트에 이어 프리미엄아울렛ㆍ창고형할인점ㆍ드러그스토어 분야에서도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어서다. 신세계는 “우리가 시작하면 롯데가 따라한다”고 비판한다. 롯데는 ‘추종전략(fast follow)’을 비난해선 안 된다고 맞선다. 롯데ㆍ신세계의 유통대전을 들여다봤다.

 

▲ 롯데의 패스트팔로워 전략에 신세계가 뿔났다. 프리미엄아울렛을 열면 근처 지역에 또 다른 프리미엄아울렛을 오픈하는 식이라서다. 사진은 신세계사이먼 프리미엄아울렛 파주점.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다.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업종은 유통이다. 불황 때문에 소비자가 지갑을 열지 않고 있어서다. ‘직장인 유리지갑’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나돌 정도다. 실제로 백화점과 대형할인점 매출은 갈수록 줄어든다. 성장률은 마이너스 행진이다. 실적이 부진한 건 유통공룡 롯데와 신세계도 마찬가지다.

두 공룡이 영역을 가리지 않고 충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들어 롯데와 신세계는 백화점ㆍ대형할인점을 넘어 프리미엄아울렛ㆍ창고형할인점ㆍ드러그스토어 분야에서도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자존심 싸움을 넘어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인천터미널 부지 놓고 신경전

최근에는 인천종합터미널 부지를 두고 두 유통공룡의 갈등이 극에 달했다. 인천시가 신세계백화점 인천점(인천점)ㆍ이마트가 입점한 인천종합터미널 부지와 건물을 롯데쇼핑에 8751억원을 받고 매각을 추진한 게 발단이다.

신세계는 인천시와 장기 임대차 계약을 맺고 인천점을 운영해 왔다. 그런데 인천시가 돌연 롯데에 인천종합터미널 부지를 매각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매각이 성사되면 신세계 인천점은 임대차 계약이 끝나는 2017년 롯데로 넘어갈 가능성이 커진다. 신세계가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그럴 법도 하다. 1997년 신세계는 허허벌판이었던 인천터미널 부지에 백화점을 세웠다. 당시에는 무모한 도전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신세계백화점 인천점은 전국 10개의 신세계백화점 중 연매출액 4위를 기록하는 알짜배기가 됐다. 더구나 지난해 인천시에 보증금과 3년치 임대료를 선지급했다. 1만6500㎡(약 5000평) 규모의 점포를 증축하고 800대의 차량이 들어가는 주차타워도 신설했다.

 
문제는 롯데가 인천터미널의 주인이 되면 이마저도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거다. 신세계가 인천점을 쉽사리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신세계 관계자는 “롯데가 2002년 인천점에서 200m 떨어진 곳에 백화점을 오픈하더니 이제는 인천터미널 부지 전체를 사들여 백화점을 빼앗으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신세계는 이번 매각건을 무효라고 주장한다. 법원에 가처분 신청도 냈다. 이를 두고 일부 유통업체는 신세계가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꼬집고 있다. 하지만 신세계가 초강수를 두는 것은 인천점 때문만은 아니다. 비슷한 사례가 숱하게 많았기 때문이다. 신세계 관계자는 “인천점처럼 롯데는 신세계가 시장을 개척하면 곧바로 따라온다”며 “국내 5위 기업인 롯데가 업계를 선도하기는커녕 자금력을 앞세워 남이 일궈놓은 사업을 가로채고 있다”고 비판했다.

무슨 말일까. 신세계와 롯데의 행보를 살펴보자. 최근 롯데는 드러그스토어 사업에 진출하겠다고 밝혔다. 올 7월 강성현 롯데미래전략센터 이사를 주축으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드러그스토어 준비에 들어갔다. 신세계는 이미 올 4월 분스로 드러그스토어 사업에 진출했다. 드러그스토어만이 아니다. 프리미엄아울렛도 마찬가지 경로를 밟았다.

프리미엄아울렛의 시초는 신세계다. 2007년 6월 경기도 여주에 국내 최초로 프리미엄아울렛을 세웠다. 당시는 백화점 업계가 호황을 누리던 때다. 신세계가 여주 프리미엄아울렛을 열 때 다른 유통업체들이 비아냥거렸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판다고 여주까지 쇼핑을 가는 사람이 있겠냐”며 콧방귀를 끼는 업체도 많았다. 그중엔 롯데도 있었다.

지금은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여주 아울렛을 보며 비웃던 롯데가 프리미엄아울렛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다. 롯데가 현재 운영하고 있는 프리미엄아울렛은 경기도 파주ㆍ김해 두곳이다. 룻데는 신세계가 여주점을 오픈한 지 1년6개월 만인 2008년 프리미엄아울렛 시장에 뛰어들었다. 2013년엔 충북 부여와 경기도 이천에, 2014년에는 부산 기장군 동부산 관광단지에 프리미엄아울렛을 오픈한다. 2014년이 되면 롯데의 프리미엄아울렛은 5곳으로 늘어나 신세계(3곳)를 따돌리고 점포수 에서 1위에 오른다.

 
신세계가 롯데를 비판하는 이유는 프리미엄아울렛 사업에 뛰어들어서가 아니다. 신세계가 시장을 개척하면 왜 바로 옆에 점포를 오픈하느냐는 거다. 신세계는 내년 9월에 부산점을 오픈할 예정이다. 롯데는 2014년 부산 기장군 동부산관광단지에 프리미엄아울렛을 착공한다. 신세계 부산점에서 불과 14㎞ 떨어진 곳이다. 신세계 관계자는 “많은 부지 중 왜 신세계 근처만 고집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은 파주에서도 연출되고 있다. 2011년 3월 신세계가 3만1113㎡ 규모의 파주점을 오픈하자 롯데는 고작 8개월 후 5.6㎞ 떨어진 곳에 더 큰 규모(3만5000㎡)의 아울렛을 개장했다. 내년에는 신세계 여주점에서 20㎞ 떨어진 이천 지역에 또 다른 프리미엄아울렛을 오픈할 예정이다.

신세계 관계자는 “이 정도면 점잖은 편”이라면서 말을 이었다. “대전 관저구 일원 구봉지구에 대규모 복합쇼핑몰 개발하겠다고 발표한지 얼마 안 돼 롯데가 12㎞ 떨어진 대전 엑스포 과학공원에 대형 테마파크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하남시의 유니온스퀘어 착공이 다가오자 3㎞ 떨어진 중부고속도로 하남 하이웨이파크(만남의 광장) 입찰에 나서는 식이다.”

롯데는 신세계가 과잉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반박했다. 롯데 관계자는 “신세계를 염두에 두고 부지선정을 하는 게 아니라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해 해당 부지를 사들인 것”이라며 “프리미엄아울렛도 신세계가 한다고 따라한 게 아니라 유망한 유통채널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수많은 유통채널서 두 공룡 격돌

그렇다면 롯데가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시장을 먼저 개척한 사례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사례를 찾기는 쉽지 않다. 롯데는 다른 유통채널에서도 신세계를 따라가는 모양새다. 국내에 대형할인점을 처음 선보인 것은 신세계다. 1993년 이마트 창동점을 국내 최초로 열었다. 그로부터 5년 후인 1998년 롯데는 롯데마트(롯데마그넷) 강변점을 오픈했다.

 
신세계 관계자의 말이다. “신세계가 대형할인점을 오픈할 때 ‘가능성이 없다’던 롯데가 이마트가 잘되는 모습을 보자 자금력을 앞세워 할인점 사업에 뛰어들었다.” 현재 이마트는 국내 147개, 롯데마트는 97개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창고형할인점의 사례도 비슷하다. 이마트는 2010년 10월 이마트 용인구성점을 리뉴얼해 창고형할인점 이마트 트레이더스를 개장했다. 롯데는 두고 보지만은 않았다. 올 6월 롯데마트 금천점을 리뉴얼해 창고형할인점 빅마켓을 오픈했다.

롯데ㆍ신세계 장단점 달라

많은 사람이 창고형할인점하면 코스트코를 떠올린다. 신세계도 코스트코를 벤치마킹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많다. 실제론 그렇지 않다. 1990년 초 대형할인점 사업을 시작한 신세계는 국내 최초로 회원제 창고형할인점으로 프라이스클럽을 열었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신세계는 미국 프라이스에 지분을 넘겼고, 지금의 코스트코가 됐다.

▲ 신세계와 롯데가 이마트, 롯데마트에 이어 창고형할인점을 두고 2차 경쟁에 돌입했다. 신세계는 2010년 이마트트레이더스를, 롯데는 올 6월 빅마켓을 오픈했다. 사진은 이마트트레이더스 1호점인 구성점과 빅마켓 1호점인 금천점.
신세계 관계자는 “창고형할인점 코스트코가 국내에 안착한 지는 20년 가까이 됐다”며 “롯데가 창고형할인점 사업에 뛰어들려고 마음먹었다면 벌써 진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롯데의 전략은 뻔하다”며 “신세계가 진출해 사업이 될 것 같다 싶으면 바로 따라붙는 식”이고 말한다. 신사업 리스크를 교모하게 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롯데가 ‘패스트 팔로워(fast follwer•빠른 추종자)’ 전략을 쓰고 있다고 말한다. 누군가 신사업을 시작하면 그 가능성을 판단해 따라붙는다는 것이다. 롯데가 진출한 유통 사업 대부분은 다른 업체가 일전에 일궈놓은 분야다. 대형할인점(이마트)ㆍ프리미엄아울렛(신세계사이먼)ㆍ홈쇼핑(CJㆍGS)ㆍSSM(홈플러스)•복합쇼핑몰(코엑스)을 들 수 있다. 국내 첫 편의점인 세븐일레븐 역시 지금은 롯데가 운영하지만 1994년 코리아세븐으로부터 인수했다.

롯데가 신세계를 따라했다기보다 진출한 시기가 다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 증권 전문가는 “유통채널은 한정돼 있고 업체 간 경쟁은 치열하다”며 “진출 시기가 서로 다른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시장을 먼저 개척했다고 꼭 유능한 유통채널이라는 건 아니다. 패스트 팔로워도 저력이 없으면 시장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애플이 개척한 스마트폰 시장을 삼성이 장악했다고 비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논리다.

롯데 역시 나름의 강점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사업 포트폴리오가 다양하다. 백화점ㆍ할인점ㆍ편의점ㆍ면세점ㆍ아울렛ㆍ홈쇼핑에 최근에는 하이마트까지 인수했다. 호텔에 극장ㆍ카드ㆍ테마파크 등 소비ㆍ레저 관련 사업까지 진출해 있다. 초대형 복합타운을 단독으로 조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유통업체는 롯데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롯데 vs 신세계 대전 2라운드

전문가들은 신세계와 롯데의 장단점이 다르다고 말한다. 신세계는 백화점ㆍ할인점‥프리미엄아울렛 등 신사업에 적극적이고 롯데는 다양한 유통채널과 빠른 추진력이 강점이다. 한 해외투자회사 전문가는 “롯데는 시장에서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규모를 확장하는 데 집중하는 편”이라며 “대분의 사업을 늦게 시작한 건 맞지만 한번 의사결정이 이뤄지면 저돌적으로 추진해 목표를 달성하는 것도 높게 평가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업계를 선도하는 신세계와 규모의 경제를 이룬 롯데. 덩치로만 보면 롯데의 승리다. 하지만 신세계는 차별성과 추진력을 앞세우고 있다. 성숙기에 접어든 국내 유통시장서 끝까지 살아남아 시장을 호령할 최종 승자는 누구일까.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 경쟁 라운드는 아직 많이 남았다.
김미선 기자 story@thescoop.co.kr|@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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