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당 김기환 선생의 이순신공세가(李舜臣公世家) 제15회 ①

 
적장들이 말하였다. “조선군이라면 적을 보면 싸우기도 전에 스스로 먼저 도망가는 약한 군사 중에도 의외로 강한 이순신의 군사가 있다니”하고 서로 돌아보며 얼굴빛이 변하였다.

이순신의 함대는 명색은 80여 척이라 하나 정말 병선이라고 할 만한 배는 30척도 다 못된다. 이러한 약한 부대를 가지고 500여 척이니 700여척이니 하는 일본의 대함대를 맞아 싸우려는 것은 누가 보든지 어림없는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말하자면 신립의 8000병이나 김명원의 7000병이나 일반이었다. 이 소수의 군함을 가지고 대적과 항전하려는 것은 다만 이순신의 하늘같은 담략이었다.

“망령되이 움직이지 말고 산같이 무겁게 하라” 하는 장령으로 전군을 경계하였다. 이순신은 전 함대를 몰고 평산포 상주포를 지나 미조항 창선도1)를 거쳐서 고성의 사량도2)앞바다에 다다랐다.

남해현령 기효근奇孝謹 평산포만호 김축金軸 미조항첨사 김승룡金勝龍 등은 다 일본군이 무서워서 달아나 깊은 산골짜기에 잠복하고 그 병선과 군기는 다 저희들 손으로 바다 물속에 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래서 영남 연안 일대는 온통 무인지경이 되고 지나가는 어부에게 물어보면 영남 해상은 일본군의 천지라는 소문뿐이었다.

경상우수사 원균의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5월 6일에 원균이 노량 근처에 숨었다가 작은 배 한 척을 타고 순신의 함대를 바라보고 적량도3)부근에서 찾아와 만나게 되었다.

원균은 어부의 복색을 입고 [이일은 상투를 풀고 달아나고, 김명원은 폐양립을 쓰고 달아나고, 원균은 어부의 복색을 하고 숨었으니 용하다] 형용이 초췌하여 중병 들었던 사람과 같았다.

원균은 순신의 앞에서 울며 “소인은 전후 조처가 잘못되어 속죄할 수 없는 죄인이오” 하고 백번이나 순신의 응원하여 온 것을 감격하였다. 순신이 원균을 위로하여 군복 일습을 내어주어 위의를 갖추게 하고 병선 일척을 주어 타게 하였다.

원균이 순신의 군복을 얻어 입고 보니 그때의 군복은 남천익(남철릭)이었다. 장대한 순신의 옷이라 너무 길어서 비 맞은 장닭이 꼬리를 끄는 것처럼 보였다. 제장들은 그 모양을 보고 입을 막고 몰래 웃었으나 원균은 군복 자락을 걷어들고 순신의 후의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며 “영감은 패군지장을 이처럼 하시니 참 재생의 은인이오” 하고 수없이 사례하였다.

순신은 원균을 대하여 묻기를 “적선의 있는 곳이 어디며 그 형세와 많고 적음이며 접전할 순서를 영감은 어떻게 생각하오? 영남 해상의 사정은 영감의 관할 내이니 상세히 일러주오” 하였다.

원균은 눈으로 적을 보지도 못하였으며 바람 부는 가지에 앉은 새와 같은 정세로 언뜻하면 날아갈 심리를 가졌기 때문에 그 대답이 분명치 못하여 어물어물하다가 이랬다저랬다 하여서 그 요령을 취득할 수 없었다. 순신은 짐작할 뿐이었다.

또 도망하여 숨었던 남해현령 기효근, 미조항첨사 김승룡, 평산포만호 김축 등이 순신의 부대의 위세를 보고 신뢰심이 생겨서 어디 가 숨었다가 판옥선 한 척을 삼인이 같이 타고 약간의 군사를 데리고 찾아오고, 사량만호 이여념李汝恬 소비포4)권관 이영남도[이영남은 그동안에 율포만호에서 소비포로 옮겼다] 각각 협판선挾板船 일척씩을 타고 오고, 영등포만호 우치적 지세포5)만호 한백록韓百祿 옥포만호 이운룡 등도 판옥선 두 척을 아울러 타고 찾아왔다.

▲ 바다 위에 불타는 적선은 해가 지도록 불과 연기를 토하여 하늘을 가렸다. 적의 죽음도 부지기수였다. 사진은 KBS 드라마 중 한 장면.
이 모양으로 다 이순신의 날개 밑으로 의탁하여 모여 들었다. 경상도 병선 수량은 다음과 같다.

판옥대맹선 1척 이운룡
판옥대맹선 1척 우치적 한백록 2인 병승
판옥대맹선 1척 기효근 김승룡 김축 3인 병승
협판중맹선 1척 이영남
협판중맹선 1척 이여념 이상 합 5척
남 영남 양도 연합함대가 합 91척이었다.

순신은 이들 도망하였던 경상도 제장을 조금도 미워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부하와 동일시하여 똑같은 대우를 하고 각기 소임을 주어 진충보국하도록 장려하였다. 이날 행선하여 거제 송미포6)앞바다에 와서 밤을 지내고 적선이 있다는 천성 가덕을 향하였다.

옥포만호 이운룡과 영등포만호 우치적으로 향도장을 삼아 길을 인도하게 하였다. 가는 길에 옥포 앞바다에 이르러 척후장 사도첨사 김완, 여도권관 김인영의 배로부터 마황기麻黃旗를 들고 신기포를 쏜다. 적선이 보인다는 것을 주장에게 보고하는 뜻이었다.

순신이 척후선의 신호를 듣더니 곧 초요기7)를 높이 달아 제장을 불렀다. 전후좌우에 옹위하여오던 제장선이 모두 노를 저어 주장의 명령을 들으려고 모여들었다. 영남 제장들도 사실상 순신의 절제를 받기를 기꺼이 따라 같이 모여들었다.

순신은 제장을 자기가 탄 기함8)에 불러놓고 명령을 내리기를 “우리는 국가의 무신이 되어 나아가 싸우는 데 충용을 다하라. 만일에 겁내어 물러나는 자 있으면 군법이 용서치 못하리라. 전투에서 용기 없음은 무신의 일이 아니다. 전년 손죽도 싸움에 당시 좌수사 심암이 구하지 아니하여 녹도만호 이대원이 힘써 싸우다 죽었으니 제공은 서로 위급한 때에 상호 구원하여야 한다. 이것이 무신의 본분이며 대의이다” 하는 말로 약속을 거듭 밝혔다.

제장들은 엄숙히 장령을 듣고 죽기로 싸우기를 결심하였다. 순신은 약속이 끝난 뒤에 전 함대를 지휘하여 위무당당하게 옥포를 향하였다. 이날은 5월 7일이었다.

옥포 선창에는 적의 병선이 50여척이나 있고 옥포 시가에는 적군이 약탈방화하여 연기가 하늘에 퍼져 가득하였다.

이때에는 적의 수군 제장은 정발 박홍 원균의 무리 조선 수군 제장을 연파하고 파죽지세로 경상좌우도의 해상권을 거의 장악하여 전 함대를 다섯 부대에 나누어 가지고 기탄없이 횡행하여 장차 전라도 바다로 진군하려 하였다.

옥포에 정박한 적선 중에 제일 큰 누각선에는 사면에 장막을 둘렀는데 오색 채색으로 그림을 그리고 붉은 기와 흰 기를 달았는데 다 비단으로 만든 것이라 광채가 일광에 비쳐 사람의 눈을 현란케 하였다.

적군들은 대부분이 배에서 내려 마을로 들어가 재물과 부녀를 노략하여 살육을 자행하다가 우리 함대를 보고는 창황히 배에 올라 바다 가운데로 나오지 아니하고 바닷가로 연이어 일자 모양으로 나온다.

그중에 선봉 여섯 척이 앞서서 나오는 것을 보고 순신은 북을 울려 치기를 명하였다.

제일 앞선 배 좌우척후장인 김완과 김인영의 배가 겁을 내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고 후부장 정운이 분기를 참지 못하여 칼을 빼어 들고 노군을 재촉하여 앞서서 나아갔다.

적선에서도 응전하여 화살과 조총이 깨 볶듯 날아왔다. 정운의 배가 포위를 당함을 보고 순신은 북을 울리고 함성을 지를 것을 명하여 나아가 싸우기를 재촉하니 제장들도 주장의 명령을 두려워하여 일제히 노를 저어 풍우같이 달려들어 싸움이 어우러졌다.

원균의 배 한 척만은 먼 거리에 뒤떨어져 있어서 보고만 있었다.

▲ 바다 위에 불타는 적선은 해가 지도록 불과 연기를 토하여 하늘을 가렸다. 적의 죽음도 부지기수였다. 사진은 KBS 드라마 중 한 장면.
순신의 전 함대는 일제히 각양 대완구, 불랑기, 천ㆍ현자 총통, 화전 및 각양 궁노가 함께 발사되어 뇌성벽력이 산과 바다를 뒤집는 듯하여 순식간에 적선 십여척을 깨뜨려 불사르고 요란한 포성에 천지가 뛰노는 듯하고 검은 연기가 자욱하여 지척을 분별하지 못하였다.

충무전서에 일본군의 무기는 조총이 제일이요 그다음에는 궁시가 있다하나, 우리 수군은 전쟁 처음부터 총통銃筒을 사용하였다.

총통이란 것은 즉 중량이 정철正鐵 200근인 천자天字총통, 정철 150 근인 지자地字총통, 정철 50 근인 현자玄字총통과, 기타 대발화와 대장군전과 화전 등 무기9)가 다 이공의 연구 개량함으로 발명되어 거북선과 함께 제조되어 있었다.

이공의 옥포전승첩서 즉 국왕에게 올린 장계 중에도 “포와 활을 쏘니 빠르기가 바람과 우레 같았습니다” 하여 그 파괴력의 위대함을 말하였다. 후인들은 이것을 알지 못하고 단지 활로만 가지고 일본군의 조총을 대항한 줄로만 아는 이가 많은 듯하다.

적의 병선이 밀집하여 있는 곳에 거북선을 놓았다.10)거북선은 빠르기가 나는 듯하고 72의 포혈로 각양 천ㆍ지ㆍ현자 대포를 놓고 용의 입을 번득 들어 불과 연기를 토하며 좌충우돌하여 다닥뜨리는 대로 적선이 부서지거나 불이 붙거나 하였다.

이 모양으로 적군은 대패하여 포탄에 맞아 배가 부서지고 화살에 맞아 죽고 화전과 불에 타서 죽고 물에 빠져 죽고 하여서 마침내 그 강하고 잘 싸운다는 일본군도 결국 견디지 못하여 남은 배를 끌고 한 줄기 혈로를 뚫고 도망하여 숨고 말았다. 이 싸움에 패한 적장은 등당고호의 무리라 한다.

적장들은 이르기를 “조선군이라면 적을 보면 싸우기도 전에 스스로 먼저 도망하는 약한 군사 중에도 의외로 강한 이순신의 군사가 있다니” 하고 서로 돌아보며 얼굴빛이 변하였다.

첫 번에 겁내던 좌부장 낙안군수 신호는 주장의 독려로 대담해져서 적의 대선 1척을 당파11)하고 적장의 수급을 베었는데 검은 갑옷과 관복으로 보아서 장수의 것으로 판명하였다.

우부장 보성군수 김득광은 대선 1척을 깨뜨리고 포로가 되었던 조선 사람 1명을 사로잡고, 전부장 흥양현감 배흥립은 대선 2척을 깨뜨리고, 중부장겸 선봉 광양현감 어영담은 중선 2척과 소선 2척 합 4척을 깨뜨렸다.

처음에는 겁을 내던 우척후장 사도첨사 김완은 대선 1척을 깨뜨리고, 우부 기전통장12)사도진군관 이춘李春은 중선 1척을 깨뜨렸다.

영남 제장 중에서 남해현령 기효근은 대선 1척을 깨뜨렸다.

도합 적의 병선 26척을 깨뜨렸은즉 지금으로 말하면 적의 대함대를 격파한 것이었다. 바다 위에 불타는 적선은 해가 지도록 불과 연기를 토하여 하늘을 가렸다.

적의 죽음도 부지기수였다. 살아남은 적군은 견디지 못하여 물에 뛰어들어 헤엄쳐 달아나 산으로 올라가 숲속에 숨어서 죽음을 간신히 면하였다.

순신은 활 잘 쏘는 군관 몇 개 부대를 상륙시켜 추격하였으나 이 거제도巨濟島는 산이 험하고 겸하여 산로가 험할뿐더러 나무가 무성하였다. 또 날이 저물었으므로 약간 쏘아 죽이고 난 뒤에 군을 거두었다.13)
정리 | 이남석 더 스쿠프 대표 cvo@thescoop.co.kr 자료제공 | 교육지대(대표 장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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