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파트1] SNS선거의 역설

문재인 전 후보는 ‘SNS 대통령’이었다. SNS라는 사이버 공간에선 박근혜 당선인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실제 결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SNS에서 목소리를 내던 젊은층은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SNS에서 침묵하던 5060 이후 세대는 현장에서 대동단결했다. SNS의 목소리는 컸지만 울림은 작았다.

 
누가 인터넷이 대통령을 만든다고 했던가. 대통령 후보가 방탄차를 타고 유세를 벌이던 그때,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다. 허무맹랑한 상상이 현실로 나타난 건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 때의 일이다. 계보도 돈도 없던 노 전 대통령이 집권할 수 있었던 건 수천억원 규모도, 대규모 군중집회 때문도 아니었다. 인터넷이라는 ‘첨단 무기’ 덕택이었다. ‘노사모(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인 팬클럽)’가 2000년 4•13 총선 직후 한 PC방에서 결성된 점을 감안하면 노무현의 역사는 ‘인터넷’과 관통한다. 그가 ‘인터넷 대통령’이라고 불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文, SNS 공간에선 이겼지만…

16대 대선에서 민주당과 노 전 대통령은 초라하기 짝이 없던 홈페이지를 통합해 TV방송국과 라디오 방송국을 운영했다. 인터넷이라는 ‘신기한 공간’에서 뛰놀던 젊은 누리꾼이 흥분했다. ‘니들이 게맛을 알아’라는 광고카피를 패러디해 만든 ‘니들이 노무현을 알아’라는 코너는 인터넷 TV방송국의 최고 인기프로그램이 됐다.

라디오 방송국 개국 때는 노 전 대통령이 직접 출연해 누리꾼과 실시간으로 갑론을박을 펼쳤다. 인터넷의 쌍방향성을 적절히 활용한 전략이었다. 물론 노 전 대통령의 승리는 ‘아름다운 단일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권성향이 강한 젊은층의 디지털 감성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면 ‘아름다운 단일화’는 집권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2007년 17대 대선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2002년 이회창ㆍ노무현 후보가 박빙의 승부를 벌인 것과 달리 이명박ㆍ정동영 후보의 승부는 싱겁게 막을 내렸다. 투표율은 63%로 역대 최저였다. 후보간 격차도 컸다. 인터넷으로 대통령을 만들었던 젊은층도 이번엔 시무룩했다. 젊은 누리꾼의 선거의지를 끌어낼 만한 인물이 없었던 까닭도 있지만 참여정부가 ‘실패’했다는 섣부른 판단도 한몫했다.

그로부터 5년이 또 지났다. IT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유선 인터넷 시대가 가고 ‘모바일’ 시대가 열렸다.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인터넷’을 무기로 활용했던 노 전 대통령마저 깜짝 놀랄 만한 스마트폰•태블릿PC가 일상을 파고들었다. 이번에 당선될 대통령은 분명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대통령’이 될 거라는 말까지 나왔다. 스마트기기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SNS가 뉴미디어로 급부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근혜 당선인, 문재인 전 후보는 ‘SNS 선거전’에 화력을 집중했다. SNS전담팀까지 가동하면서 트위터ㆍ페이스북ㆍ카카오톡ㆍ유튜브 등 모든 SNS를 총동원해 여론몰이에 나섰다. 각 후보의 선거공략과 홈페이지를 모바일로 간편하게 볼 수 있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Smart 박근혜’ ‘문톡’까지 등장했다. ‘카카오톡’도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리트윗•공유하기 등이 없는 카톡은 메시지 확산효과는 제한적이었지만 많은 젊은층이 사용한다는 장점이 있었다. SNS를 통해 ‘입소문’을 내기 제격이었다는 얘기다. 박 당선인은 카톡 플러스 친구맺기 전략을 사용했다. 문 전 후보는 ‘카페트(카카오톡•페이스북•트위터) 전략’으로 맞대응했다.

하지만 SNS 선거전은 2002년 인터넷의 위력을 뛰어넘지 못했다. SNS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문 전 후보가 낙선했기 때문이다. 문 전 후보는 선거 전부터 ‘SNS 대통령’이라는 애칭을 얻을 정도로 SNS 사용에 밝았다. 올 4ㆍ11 총선 이후부터 트위터에 직접 글을 올리는 등 진솔한 모습으로 젊은층에 어필했다. 수적으로도 우세했다. 선거 당일 기준으로 문 전 후보의 공식 트위터 팔로워수는 34만여명, 페이스북에서 지지의사를 표명한 ‘좋아요’는 14만5000여명이었다. 박 당선인의 트위터 팔로워수는 25만여명, 페이스북 좋아요는 3만5000여명에 그쳤다.

▲ 이번 대선에서 SNS 선거운동이 대세를 이뤘다. 문재인 전 후보, 박근혜 당선인 모두 트위터, 페이스북, 유투브 등의 SNS를 총동원해 유권자들 사로잡기에 나섰다.
이른바 ‘SNS 군단’도 문 전 후보를 지지했다. SNS 공간에서 유명인사로 통하는 조국 서울대 교수, 진중권 동양대 교수, 이외수•공지영 작가 등이 문 전 후보를 지지하면서 세력을 결집했다. 딴지일보의 인터넷 라디오(팟캐스트) 프로그램 ‘나는 꼼수다(나꼼수)’ 진행자들도 박 당선인과 새누리당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쏟아내며 젊은층을 유인하는 데 성공했다.

SNS 공간에서 대통령은 분명히 ‘문재인’이었다. ‘박근혜’는 젊은층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데 실패했다. 대선 막판까지 이런 구도가 이어졌다. 대선 선거운동이 끝날 무렵, 트위터•페이스북에는 문 전 후보에 대한 긍정적인 언급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소셜매트릭스에 따르면 대선 당일 12월 19일 트위터에는 문 후보를 긍정적으로 언급한 글(2569건)이 박 당선인(1490건)보다 훨씬 많았다.

SNS 주도한 20대 투표율 저조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다. SNS에서 열광하던 젊은층은 정작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20대 투표율이 이전 대선보다 조금 상승했지만 대동단결한 ‘5060 세대’를 따라가지 못했다. 20대 다음으로 SNS 활용에 적극적이었던 30대 투표율 역시 저조했다. 전체 투표율 75.8%에 못 미치는 72.5%를 기록했다. SNS를 울린 젊은 목소리가 실제 현장에선 ‘공허한 메아리’만 남겼을 뿐이라는 얘기다.

이유는 무엇일까. SNS에는 진보성향의 젊은 유권자가 많다. 이들은 다소 과격하게 표현하고, 반대의견을 철저하게 묵살한다. 중도 성향의 유권자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아니었다. 이런 이유로 소수에 불과한 의견이 다수론처럼 보이게 하는 ‘착시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반대로 SNS에서는 침묵하던 5060 세대는 현장에서 무섭게 결집하는 모습을 보였다. SNS의 목소리는 컸지만 울림은 작았다는 것이다. SNS 여론이 대선의 승패를 판가름할 거라는 믿음은 깨졌다. SNS보다 무서운 건 현장의 목소리였다. 
김미선 기자 story@thescoop.co.kr|@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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