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파트5]朴 경제민주화 성공할까

▲ 박근혜 당선인은 경제민주화가 누굴 위한 것이고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명확히 해야 한다. 사진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 상정이 무산되자 11월 23일 전국유통상인연합회 회원들이 새누리당에 책임을 묻는 기자회견 모습.(사진=뉴시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라는 화두를 던진 것은 대단한 변화다. 하지만 박근혜 당선인의 경제민주화에는 사후약방론만 가득하고 사전예방책은 빠졌다. 도둑에게 새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대신 처벌만 하면 경제민주화가 달성된다는 식이다. 당연히 우려가 나온다.

이제 공은 박근혜 18대 대통령 당선인에게 넘어갔다. 후보 간 의견이 분분했던 경제민주화 정책은 ‘박근혜식 경제민주화’로 추진될 예정이다.

재계는 박 당선인보다 더 강력한 대기업집단 규제를 내건 문재인 후보의 경제민주화가 아니라서 한숨 돌린 상황이다. 박 당선인은 출자총액제한제 재도입 반대, 기존 순환출자 인정 등을 주장해 문 전 후보보다는 재벌개혁에 유연한 입장을 취해왔다.

그뿐만 아니다. 박 당선인은 개혁 성향이 강한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영입해 ‘경제민주화’를 제시했다. 하지만 기존순환출자 의결권 제한, 대규모 집단법 재정, 재벌총수 범죄에 대한 국민참여재판 등 김 위원장이 주장한 대부분의 내용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 당선인이 주장한 경제민주화의 기본 방침은 시장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경제적 약자를 실질적으로 돕는 데 있다. 예컨대 국민경제에 부담을 주거나 국민적 공감대가 적은 정책은 단계적으로 접근하겠다고 밝힌 것은 재벌을 크게 손볼 경우 돌아올 부작용을 의식했다는 방증이다. 모험보다는 안전한 행로를 택한 것이라는 평가다.

그렇다고 박 당선인의 경제민주화 공약에 재벌개혁 정책이 없는 건 아니다. 박 당선인은 중소기업적합업종제도 실시, 중소도시 대형마트 신규입점 제한, 재벌 총수일가 사면권 제한, 신규 순환출자 금지 등 재벌을 규제하는 공약을 내걸었다. 또 재벌 총수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횡령 등에 대해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도록 형량을 강화하고, 사면권을 엄격히 제한하기로 했다. ‘대기업 봐주기’라는 비판이 가시지 않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은 일부 개방해 조달청이나 중소기업청, 감사원에서도 고발을 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재계는 박 당선인이 취임 후 재벌개혁의 칼날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휘두를지 긴장하고 있다. 재계가 “경제민주화보다는 경제위기 극복이 먼저”라는 주장과 함께 벌써부터 경제민주화에 대한 방어막을 펼치고 있는 이유다.

재계는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추진에는 찬성한다면서도 충분한 논의와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또 경제민주화 추진이 재벌개혁과 동일시돼서도,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해서도 안 된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경제민주화에 대해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며 “다만 경제민주화가 ‘재벌 때리기’를 위한 목적으로 추진되는 것은 많은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와 정치권은 경제민주화를 추진할 때 국민적 합의를 끌어낼 수 있도록 차분하면서도 충분한 논의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계는 벌써 경제민주화 방어

하지만 경제민주화는 그동안 박 당선인이 가장 공을 들여 준비해 온 대선공약 중 하나다. 더구나 이미 올해 4•11 총선을 준비하면서부터 경제민주화를 주장해 총선 승리라는 결과도 얻었다. 바꿔 말하면 총선 승리와 대선 승리를 안겨준 공약을 쉽게 폐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이제 와서 말 바꾸기를 한다면 ‘선거용 공약’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경제 관련 전문가나 학자들은 발 빠르게 진행되는 재계의 대응을 보며 “벌써부터 경제민주화에 제동이 걸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박 당선인의 확고한 경제철학이 없기 때문에 재계의 논리에 흔들릴 수 있다는 게 주장의 근거다.

일단 경제 관련 전문가나 학자들은 경제민주화 자체에 대해서는 매우 긍정적이라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다만 국회에서의 통과 가능성과 입법화 된 후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원칙론을 넘어 세부규정 사항을 마련해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많다.

 
경제민주화의 핵심과제로 재벌개혁을 줄기차게 주장해온 학자들은 박 당선인의 경제민주화 정책공약은 “재벌과 기득권 세력의 공격에 매우 취약하다”며 진정성과 실효성에 의문을 던졌다.

대표적인 진보 성향 경제학자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박 당선인의 경제민주화 공약이 정확하게 이행된다면 경제민주화의 상당 부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리나라 보수정당이 이 정도로 변화했다는 건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으로 부상했음을 표현하는 결정적 증거”라고 평가했다. 다만 김 교수는 “재벌의 잘못된 지배구조나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해선 재벌이 사전에 그런 행위를 못하도록 해야 하는데 박 당선인의 공약은 사전 방지가 아니라 사후수단뿐”이라며 “문제의식이 없는 경제철학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최근 박 당선인이 경제민주화와 성장의 ‘투 트랙(two-track)’론을 주장하며 경제위기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는 사실을 들어 “여전히 재벌을 비롯한 기득권 세력의 공격에서 매우 취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이런 행보를 보면 박 당선인이 대통령이 된 뒤 약속한 것을 잘 지키지 못해 진정성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닐지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유종일 KDI 교수는 “가장인 도둑이 도둑질을 해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있다면 그 도둑에게 다른 걸 가르치든가, 다른 사람이 가족을 먹여 살리도록 해야 하는데 박 당선인은 도둑질을 하면 심하게 벌을 주겠다고만 하는 격”이라며 박 당선인의 경제민주화를 평가절하했다. 
  
‘박근혜식 경제민주화 실효성’에 의구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김남근 변호사 또한 기존순환출자를 해소하지 않겠다는 박 당선인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김 변호사는 “기존 순환출자는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은 현재의 경제적 집중은 개혁하지 않고 장래 더 큰 경제력 집중만 막겠다는 것”이라며 “그것만으로는 우리 사회가 맞닥뜨린 현안 해결에는 큰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병권 새로운세상을여는연구원 부원장의 입장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박근혜 당선인은 초창기 재벌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국민 앞에 약속하고 김종인 위원장을 영입한 것과 달리, 11월 중순 실제 경제 민주화 공약에서는 김 위원장의 제안이나 새누리당 ‘경실모’ 제안의 핵심 내용을 모두 거부했다”며 “또한 최저임금법과 유통산업 발전법 등 최소한의 입법 통과도 거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실 박 당선인을 비롯해 대선 후보들이 주장한 경제민주화 정책들은 이미 예전부터 진보진영에서 주장해온 재벌개혁 정책의 일부를 수용 또는 변형한 것들이다. 박 당선인은 이 정책들을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엮은 공약을 발판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경제민주화가 누구를 위한 것이고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명확하게 짚어 의구심을 해소해야 하는 이유다. 향후 ‘박근혜식 경제민주화’의 평가는 거기서부터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김정덕 기자•박상권 뉴시스 기자  juckys@thescoop.co.kr|@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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