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 ‘학폭’
드라마로 본 학교폭력의 민낯

최근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가 ‘학교폭력(학폭)’이다. 체육계, 연예계에선 과거 학폭 관련 폭로가 터져 나왔다. 드라마에서도 학폭이 주된 소재로 다뤄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필자는 학폭 관련 언론 인터뷰 중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드라마에 나오는 ‘학폭’은 실제보다 많이 과장된 거죠?” 차라리 그랬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는 학폭은 드라마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학교폭력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학교폭력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드라마 속 학교폭력을 들여다보면 학교에서 ‘현재 진행형’인 학교폭력이 얼마나 심각하고 교묘하게 이뤄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필자는 방영 중인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를 중심으로 학교폭력의 현실을 다뤄보고자 한다. 초호화 펜트하우스를 배경으로 한 이 드라마의 스토리 중심에도 학교폭력이 있다. 

드라마 속 첫번째 피해학생 ‘민설아(조수민 분)’를 괴롭히던 학생들은 또다른 피해학생 ‘배로나’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이어 한때 가해학생 중 한명이었던 ‘유제니(진지희 분)’까지 폭력의 대상으로 삼는다. 부모들은 자녀들의 학교폭력의 사실을 알고도 입시에 악영향을 끼칠까봐 이를 숨기려 한다.

결국 문제는 더 커지고, 가해학생 중 한명이 배로나의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이 섬뜩한 이야기 속에서 실제 학교폭력의 수법을 찾아낼 수 있다. 필자가 학교폭력의 수법을 소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를 알아두는 것만으로도 자칫 지나칠 수 있는 학교폭력을 ‘발견’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철저한 고립 =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유제니는 한때 가해학생들과 어울리며 배로나를 괴롭혔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배로나를 돕게 된다. 이 사실을 알아챈 가해학생들은 ‘유제니가 배신을 했다’며 대상을 바꿔 유제니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이는 실제 학교폭력 가해학생들의 괴롭힘 수법과 유사하다. ‘쟤(피해학생)랑 어울리면 너도 따돌림을 당한다’는 일종의 경고를 줘 다른 학생들까지 학교폭력을 방관·가담하게 하는 셈이다. 결국 다른 주변 학생들까지 피해학생을 멀리하게 되고, 피해학생은 철저한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교묘한 사이버 폭력 = 드라마 속 가해학생들은 유제니에게 음식을 억지로 먹게 하고, 굴욕적인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하며 재미있어 한다. 가해학생들이 이렇게 교묘한 방식으로 괴롭힘을 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들이 직접 때리면 명백한 ‘폭행’이라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학생 스스로 괴롭힘을 당하도록 조정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가해학생들은 학교폭력 가해자로 신고당하더라도 빠져나갈 가능성이 적지 않다. 

“피해학생이 스스로 (음식을) 먹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혐의를 부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교폭력 조사 담당자가 사건을 면밀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자칫 가해학생의 주장에 속아 넘어갈 수 있다. 

아울러 ‘동영상 촬영’은 2차 가해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되기 쉽다. 가해학생들은 괴롭힘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한다. 피해학생을 철저히 무력화하고 수치심을 주기 위해서다. 더 큰 문제는 피해학생으로선 자신의 수치스러운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언제 어떻게 유포될지 몰라 불안감에 떨어야 한다는 점이다. 나아가 실제 동영상이 주변 학생들에게 유포되는 2차 가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가해자로 둔갑 = 다시 드라마로 돌아가 보자. 가해학생들은 배로나를 괴롭히고 화장실에 감금한다. 그 상황을 목격한 목격자는 다름 아닌 유제니였다. 가해학생들은 유제니에게 허위진술을 강요한다. ‘배로나가 피해학생이 아닌 가해학생’이라고 진술하라는 것이었다. 결국 교사와 학부모들은 유제니의 허위진술을 그대로 믿고 배로나를 가해학생 취급한다.

급기야 학교에서 퇴출하려 한다.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해야 할 ‘학교’가 피해학생을 가해학생으로 둔갑시키고 사건을 일단락 지으려 한 셈이다. 그 과정에서 유제니가 사실을 실토하고, 배로나의 부모가 교육청에 감사를 청구하면서 상황은 반전된다. 

체육계, 연예계를 막론하고 연일 과거 학교폭력 폭로가 터져 나왔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체육계, 연예계를 막론하고 연일 과거 학교폭력 폭로가 터져 나왔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이 지점에서 한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드라마와 달리 현실에선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가 교육지원청으로 이관돼 좀 더 객관성 있는 판단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사실 지난해만 하더라도 학폭위가 학교 내에서 진행됐다. 이 때문에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학교가 피해학생을 가해학생으로 둔갑시키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실제로 필자도 비슷한 사례를 수차례 경험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드라마처럼 소위 ‘명문고’에서 이런 행태가 자주 나타났다. ‘피해학생만 학교를 나가면 모두가 평화로워진다’ ‘학교가 불명예를 안아서는 안 된다’ ‘가해학생들의 입시에 악영향을 미쳐선 안 된다’ 등 이기심이 학교 안에 팽배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필자는 보는 내내 안타까움과 씁쓸함을 느끼게 하는 이 드라마 속에서 몇가지 교훈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가해학생의 부모들이 사건을 축소·은폐하지 않고 자녀를 선도해야 한다는 점이다. 드라마 속에선 가해학생의 부모들이 오로지 입시만 중시하는 우를 저지르고 만다. 결국 가해학생들은 폭력을 반복하다 살인까지 저지르는 범죄자로 전락해 버린다. 자녀의 폭력을 두둔하고 감싸는 것은 자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폭력이 만연한 학교에선 누구나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유제니처럼 내 자녀도 언젠가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이 드라마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장면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유제니가 자신이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머니에게 털어놓는 장면이다. 어머니 강마리(신은경 분)는 딸에게 “네가 뭐가 모자라서 따돌림을 당해?”라며 다그친다. 비단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학교폭력 피해자는 뭔가 부족해서 폭력을 당한다’는 인식이 만연해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체육계·연예계 학교폭력 폭로 사태가 확산하면서, 비난받을 사람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라는 분위기가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학교폭력을 뿌리 뽑을 때까지 가해자에게 굴복하거나 문제를 회피해선 안 될 것이다. 필자는 지금도 폭력에 맞서고 있을 많은 학생에게 응원의 말을 전하고 싶다. 

노윤호 법률사무소 사월 변호사
yhnoh@aprillaw.co.kr | 더스쿠프

정리=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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