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지갑 소비자 저가에 열광하다
유리지갑 소비자 저가에 열광하다
  • 김미선 기자
  • 호수 25
  • 승인 2013.01.02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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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파트6] 2013 경제키워드‘저가ㆍ반값’

▲ 경기불황 때문에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은 지출할 여력이 없다. 올해 유통업계가 저가 상품을 연이어 선보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로벌 불황이 바꿔놓은 한 장면. 소비자는 유리지갑을 들고 다닌다. 물건을 살 때는 가격부터 본다. 그렇다. 불황이 저가열풍을 불렀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는데, 소득은 오르지 않았으니 소비자로선 싼 제품을 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저가열풍은 올해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항공업계에서 통용되지 않는 얘기가 있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다. 저비용항공사 (LCCㆍLow Cost Carrier)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어서다. LCC 이용승객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올 3분기 LCC 이용객은 338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86만명) 보다 18% 증가했다. 특히 국내선 LCC의 가파른 상승세가 눈에 띈다. LCC의 국내항공 시장점유율(43.6%)은 대형 항공사(56.4%)의 턱밑까지 쫓아왔다.

그렇다. 2012년 항공업계의 키워드는 단연 LCC다. 글로벌 불황 탓에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에게 LCC의 저렴한 항공료가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국내 LCC의 운임은 대형 항공사의 70~80%다. 올 12월 26일 평일 기준 부산~김포 노선을 보면 LCC 에어부산의 운임은 7만6200원이다. 대한항공 9만7100원보다 2만900원 싸다. 단돈 1000원이 아까운 불황기에 2만원의 차이는 소비자를 유혹하기 충분하다.

값싸고 서비스 좋은 LCC의 고공비행

 
값만 싼 게 아니다. 서비스의 질도 대형 항공사 못지않다. 에어부산은 국내선에서 다양한 음료와 커피ㆍ신문 등을 제공하고 있다. 노선별로 차이가 있지만 국내 LCC의 맏형 제주항공, 대한항공 자회사 진에어의 서비스 수준도 비슷하다. 비행의 꽃이라 불리는 승무원의 친절한 서비스는 보너스다. 에어부산은 일본 최대 여행 포털사이트 ‘AB-로드’가 40개 항공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12년 항공사 만족도 조사’에서 종합순위 5위에 올랐다.

저가항공사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은 사라진 지 오래다. ‘싸니까 믿지 못하겠다’에서 ‘다른 조건이 괜찮으니까 싼 것을 타겠다’고 바뀐 것이다. LCC의 고공비행은 2013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2012년 저가열풍이 분 곳은 항공업계만이 아니다. 2008년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2010년 유로존 재정위기까지 불거지자 국내 경기는 꽁꽁 얼어붙었다. 국민의 실질 가처분소득은 줄어들고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소비자로선 ‘저가구매’를 통해 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저가열풍이 가장 강력하게 휘몰아친 분야는 유통업계다.

 
올 한해 대형할인점은 경기침체와 정부규제의 이중고를 겪었다. 벼랑에 몰린 대형할인점을 살려낸 것은 뜻밖에도 ‘반값.’ 경기불황을 겪고 소비자는 저렴하면서도 좋은 품질의 반값상품의 연이은 등장에 환호했다. 반값 개념을 처음 도입한 이마트는 올 한해에도 다양한 반값상품을 선보였다. 올 3월 이마트는 직소싱해 들여온 반값자전거 6000대 분량을 모두 팔았다. 9만5000원밖에 되지 않는 접이식자전거(20인치)는 시중가 대비 55% 저렴한 가격이었다. 유명 자전거 브랜드를 생산하는 중국 공장을 미리 섭외해 선주문하는 방식으로 가격을 낮췄다.

 
가공식품 시장에도 반값 열풍이 불었다. 올 한해 물가는 소비자가 신음소리를 낼 정도로 껑충 뛰었다. 특히 콜라ㆍ맥주ㆍ소주 등 소비자가 자주 찾는 가공식품이 많이 올랐다. 이마트는 고물가의 틈새를 파고들었다. 355mL 용량의 6캔들이 콜라(베스콜라)를 2450원에 내놨다. 같은 용량의 콜라와 비교하면 시중 편의점 대비 최대 66%, 다른 할인점과 비교하면 37% 저렴했다. 반값전략은 소비자와 통通하고 있다. 올 9월부터 현재까지 약 80만캔이 팔려나갔을 정도로 인기가 좋다. 판매 초기에는 코카콜라 판매량의 90%까지 따라잡으며 맹추격전을 벌이기도 했다.

롯데마트가 내놓은 반값맥주도 비슷한 맥락이다. 독일 맥주업체 웨팅어사와 손잡고 캔당 1600원(500mL) 하는 반값맥주(L맥주) 3종을 내놨다.비슷한 용량의 수입맥주가 2000 ~4980원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20~70% 저렴하다. 9월 중순 판매를 시작한 반값맥주 3종은 올 10월 18일부터 11월 25일까지 약 30만캔이 팔려나갔다. 기존에 잘나가던 수입맥주까지 따돌리며 선두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다. 가격부담 때문에 수입맥주를 멀리하던 소비자를 끌어안았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값맥주 3종은 롯데마트 수입맥주 판매 부문 1•2•3위를 나란히 석권했다. 오랜 기간 상위를 점령하던 하이네켄ㆍ아사히ㆍ밀러는 뒤로 밀렸다.

 
물가가 치솟고 원재료 값이 껑충 뛰어올랐음에도 가격을 올리지 않은 상품도 큰 호응을 얻었다. 박카스가 대표적이다. 박카스는 착한 가격으로 승부를 걸었다. 박카스D의 1991년 약국 공급가는 330원(부가세 제외)이었다. 현재는 370원(부가세 제외)으로 20년 동안 12% 밖에 오르지 않았다. 최근 10년 동안 국내 소비자 물가가 35% 이상 오른 것을 감안하면 되레 가격이 떨어진 셈이다.

오뚜기카레 역시 찬한 가격의 대명사다. ‘프리미엄 바몬드카레’ ‘백세카레’ 고형(분말) 제품은 출시 이후 단 한번도 가격을 인상하지 않았다. 2003년 가격과 비교하면 전체 카레 제품의 평균 인상률은 19.6%에 불과하다. 오뚜기 관계자는 “오랜 생산 노하우와 초기 설비 투자로 저렴한 가격을 유지할 수 있었다”며 “착한 가격 때문인지 카레시장에서 90%에 가까운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직소싱으로 가격 낮춘 반값상품 불티

내년에도 반값 열풍은 계속될 전망이다. 소비자를 잡기 위해선 업체 스스로 가격경쟁력을 키울 수밖에 없어서다. 이마트 관계자는 “2013년에도 반값 상품을 포함한 저가상품을 꾸준히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이마트는 해외직소싱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대형할인점 업체가 직접 해외업체와 직거래 계약을 체결해 가격을 낮추는 유통방식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일본ㆍLAㆍ베트남 등에 사무소를 두고 현지 업체나 농장을 직접 발굴해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며 “2013년에는 해외소싱처를 확보하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존에 계약을 맺은 해외소싱처와는 꾸준한 신뢰를 통해 국내 소비자가 원하는 품질의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카스의 동아제약과 오뚜기카레의 오뚜기 역시 당분간 가격을 올릴 계획이 없다. 원재료 값 상승으로 가격인상 압박을 끊임없이 받고 있지만 소비자가 먼저라는 생각 때문이다. 유류비 상승으로 영업이익에 타격을 입고 있는 국내 LCC 역시 ‘가격경쟁력’ 만은 유지할 방침이다.

경기침체는 2013년에도 계속될 게 분명하다.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의 알뜰소비 경향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국내 기업의 과제는 더 나은 품질의 제품을 남보다 저렴하게 파는 것이다. 2012년 ‘반값 열풍’이 불었기 때문에 2013년에는 가격싸움이 더 치열해질 가능성이 크다. 2012년과 2013년을 관통하는 키워드 ‘저가와 반값.’ 100년만에 찾아온 불황의 현주소를 가장 잘 보여주는 단어다.
김미선ㆍ박용선 기자 story@thescoop.co.kr | @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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