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의 프리즘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 2차 합의
노사, 양보하는 자세 견지할 필요성
가격 인상, 서비스 안정화로 이어져야

택배노조의 파업이 장기화하지 않고 노사가 합의를 이룬 것은 반가운 일이다. 관건은 2차 합의사항을 확실하게 이행하느냐다. 이번처럼 노사가 한걸음씩 양보하는 지혜가 필요하다.[사진=뉴시스]
택배노조의 파업이 장기화하지 않고 노사가 합의를 이룬 것은 반가운 일이다. 관건은 2차 합의사항을 확실하게 이행하느냐다. 이번처럼 노사가 한걸음씩 양보하는 지혜가 필요하다.[사진=뉴시스]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를 막기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의 16일 전체회의에서 택배노조와 민간 택배사들이 정부 여당의 중재안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9일부터 일주일간 이어진 파업은 종료됐다. 합의안의 핵심은 택배기사를 내년 1월 1일부터 분류작업에서 완전 배제하고, 택배기사의 노동시간을 하루 12시간, 일주일에 60시간을 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올 1월 1차 합의안과 의제는 같은데, 구체적 이행 시기를 정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했다.  

택배 노사와 정부, 더불어민주당, 소비자단체 등이 참여한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합의가 도출돼 다행이다. 합의는 노사가 한걸음씩 양보함에 따라 가능했다. 관건은 2차 합의사항에 대한 확실한 이행이다. 택배사들은 오는 9월과 12월, 두 차례로 나눠 분류 전담인력을 투입하기로 한 데 맞춰 연말 안에 인력 배치를 마쳐야 할 것이다.

사실 1차 합의안도 분류작업 전담인력 투입, 일 최대 12시간, 주 최대 60시간 근로 등이 핵심이었다. 하지만 합의 내용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노사가 서로 자신들 몫은 감당하지 않은 채 상대의 양보를 요구했다. 택배사는 택배요금을 한차례 인상했는데도 비용 부담을 이유로 분류 전담인력 투입에 속도를 내지 않았다. 노조는 택배 물량이 감소하고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데 따른 수입(수수료) 보전을 요구했다. 

이행 시기를 결정하지 못한 1차 합의의 한계도 노출됐다. 노조는 합의를 즉각 이행하라고 촉구했고, 택배사들은 분류인력 투입과 자동화기기 설치에 시간과 비용이 드는 만큼 시점을 늦춰야 한다고 맞섰다. 결국 1월 합의 이후 반년 가까이 진전을 보지 못하다가 파업 사태에 이르렀고, 일부 지역에서 배송이 지연되는 등 소비자 피해가 나타났다. 그래도 이번에 노사가 양보해 합의한 것은 의미가 있다. 이행 시점을 놓고 ‘1년 유예’를 주장했던 택배사들이 연내 인력 투입, 내년 시행으로 물러섰다. 노조는 또 다른 쟁점이었던 수수료 보전 요구를 철회했다. 

6ㆍ16 합의안은 원가 상승요인이 170원이라는 비용 문제를 담고 있다. 결국 택배요금이 170원 정도 오른다는 의미다. 이는 택배사가 분류 전담인력을 추가로 고용하고 자동 분류장치(휠소터)를 설치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물론 택배기사들의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가입비(노조 측은 20원이라고 주장)를 합친 것이다. 택배사별로 구체적 사용 내역은 다를 수 있다. 택배요금이 오르는 만큼 이를 소비자가 납득할 수 있도록 택배 노사는 서비스를 안정화하는 노력을 더해야 할 것이다.

택배사가 분류 전담인력 투입을 완료하기 전까지 현실적으로 택배 노동자들이 일정 시간 분류작업을 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 경우 상응하는 대가(수수료)를 지급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1차 사회적 합의 때 결정된 것인 만큼 택배 노사가 다시 이 문제로 대립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1차 사회적 합의가 나온 올 1월 이후 과로로 숨진 택배 노동자가 5명, 지난해부터 17개월 동안 과로로 사망한 택배 노동자는 21명에 이른다. 2000년 개당 3500원선이었던 택배 단가는 지난해 2200원선으로 하락했다. 택배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에 나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장시간 노동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과로사는 언제 또 나타날지 모른다.


택배 서비스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급속히 확산한 비대면 비즈니스 시대에서 필수 산업이 됐다. 노사 간 갈등과 대립이 대화와 타협으로 해소되지 않고 파업 등 파국을 빚으면 노사 양측이 손해를 보는 것은 물론 물류 차질과 소비자 피해 등 사회적 손실이 막대하다. 7월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까지 주 52시간 노동제가 적용된다. 노동환경 및 수수료 배분 체계 개선을 위한 사측의 노력, 노동시간 감축에 따른 소득 감소를 사회제도 변화의 결과로 받아들이는 노조의 인식 전환이 요구된다. 

파업이 장기화하지 않고 노사정이 참여한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노사가 서로 양보하고 절충해 합의에 이른 것은 반가운 일이다. 앞으로 노사가 대립하는 여러 현안에서 정부 여당이 적극 중재에 나서고, 노사는 역지사지하는 성숙한 협상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노사는 서로 자기 입장만 고집하지 않고 합리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아울러 노사가 비용 분담과 자구책을 먼저 이행한 뒤 소비자에게 미칠 가격 부담 등 이해를 구해야 고객으로부터 외면당하지 않고 지속가능한 길을 걸을 수 있다. 

양재찬 더스쿠프 편집인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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