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노동자 파업 반복 이유, 대체 뭔가
2차 중재안 합의… 신뢰 회복 이어져야

“분류작업 인원 배치됐나요?” “아니요” “이번엔 배치됐나요?” “아니요” “아직도 안 됐나요” “안 됐어요” CJ대한통운 택배기사 A씨와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세번에 걸쳐 나눈 대화다. 앞서 택배3사(CJ대한통운ㆍ롯데택배ㆍ한진택배)는 지난해 10월 택배기사를 ‘장시간ㆍ고강도’ 노동으로 내모는 ‘분류작업’에 인력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후에는 정부와 택배 노사가 참여한 ‘사회적 합의기구’까지 마련됐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택배기사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늘 ‘아니요’였다. 반복되는 대답처럼 택배 종사자 문제는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유가 뭘까.

총파업으로 치닫았던 택배사와 노조 간 갈등이 중재안에 합의하며 마무리됐다.[사진=뉴시스]
총파업으로 치닫았던 택배사와 노조 간 갈등이 중재안에 합의하며 마무리됐다.[사진=뉴시스]

“봄꿈만 붙잡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지난 1월 택배종사자 과로사 대책 사회적 합의기구가 첫번째 합의문을 발표했다. 지난해 16명의 택배노동자가 과로사 등으로 세상을 떠난 뒤에야 겨우 나온 대책이었다. 노ㆍ사ㆍ정이 참여한 합의문에는 ▲택배 분류작업 명확화 ▲분류작업 전담인력 투입 ▲택배기사 분류작업 시 택배사가 수수료 지급 ▲택배비·택배요금 거래구조 개선 ▲표준계약서 도입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합의문이 제대로 지켜지기만 한다면 택배기사를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지킬 수 있는 방안이었다. 

하지만 당시 일부 택배기사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제대로 지켜질지 의구심이 든다”는 이도 숱했다. 실제로 택배사(CJ대한통운ㆍ한진택배ㆍ롯데택배 등 3사)들은 합의문 발표 직후에도 약속한 분류작업 인원 6000명(CJ대한통운ㆍ4000명, 한진택배ㆍ1000명, 롯데택배ㆍ1000명)을 제대로 투입하지 않아 한차례 총파업 위기를 초래했다. 결국 택배사들이 약속을 이행하겠다고 밝히면서 택배노조는 총파업 계획을 철회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5개월여가 지난 지금 택배기사들은 또다시 거리로 나왔다. 무엇이 이들을 거리로 나오게 만들었을까. 택배종사자 과로사 대책은 왜 이렇게 갈피를 못 잡고 난항을 겪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CJ대한통운 택배기사 A씨를 다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지난 9일 시작된 파업이 16일까지 이어졌다. 택배기사들이 파업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뭔가.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서다. 사회적 합의기구가 발표한 합의안을 택배사가 일방적으로 지키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지켜지지 않았나. 
“무엇보다 택배사가 약속한 분류작업 인원이 제대로 지원되지 않았다. 당연히 하루 15~16시간 장시간 노동도 그대로다.” 

✚ 앞서 1차 합의안 발표 직후에도 똑같지 않았나. 택배사들이 분류작업 인력 지원 약속을 지키지 않아 문제가 됐었다. 
“맞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택배사들이 ‘약속을 이행하겠다’고 나서면서 일단락됐다. 사실 택배기사도 파업은 당연히 피하고 싶다. 소비자에게 불편을 끼치고 싶지 않고, 생계가 달린 일이기도 하다. 문제는 택배사들이 그때나 지금이나 말뿐이라는 거다. 당시 택배사들이 약속을 이행하겠다고 나선 건 설 명절을 앞두고 당장 ‘택배 대란’만 막자는 계획이었던 거다.” 

✚ 택배사 측은 지난 2월까지 약속한 분류인력을 모두 지원했다는 입장이다. 어떻게 된일인가. 
“(분류작업 인원을) 어디에 지원한 건지 되묻고 싶다. 우리 터미널의 경우 100여명의 택배기사가 속해 있다. 회사 측이 공언한 대로라면 5명당 1명꼴로 적어도 20명의 분류인력이 지원됐어야 한다. 하지만 지난 5개월간 단 한 명의 분류작업 인원도 지원되지 않았다.” 

✚ 그래서인가. 지난 13일 롯데택배(롯데글로벌로지스) 소속 40대 택배기사가 뇌출혈로 쓰러져 뇌사상태에 빠졌다. 택배노조는 과로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와 달라진 게 전혀 없다는 방증이다. 그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스스로도 위기감을 느끼고 두렵다.” 

✚ 해당 택배기사는 하루 평균 15시간 이상, 주 6일 근무했다고 한다. 합의안에서 금지한 ‘심야배송’도 여전하다는 얘기 아닌가. 
“당연하다. 내 경우, 오전 6~7시에 출근해 분류작업을 한다. 분류작업을 마치고 오후 2시에야 배송을 출발할 수 있다. 출발 시간이 늦어지니 밤 11~12시까지 일할 수밖에 없다. 밤 10시에 꺼지는 건 ‘시스템’뿐이다. 일한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고 심야배송이 없어지진 않는다.” 

택배종사자 과로사 대책이 마련됐지만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다.[사진=뉴시스]
택배종사자 과로사 대책이 마련됐지만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다.[사진=뉴시스]

✚ 합의안에 따르면 분류작업 인원이 지원되지 않거나, 택배기사가 분류작업을 할 경우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수수료로 지급하도록 돼 있다. 추가 수수료가 지급됐나. 
“수수료는 전혀 달라진 게 없다. 택배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택배 박스당 680원 그대로다.” 

그런데도 택배사들은 과로사 방지대책 이행을 명분으로 택배비를 인상했다. 택배비를 인상해 ‘분류작업 인력’을 지원하고 ‘자동화 설비’에 투자하겠다는 거다. 실제로 지난 3월 CJ대한통운은 기업고객의 택배단가를 250~300원(2㎏ 이하·1600원→1850원, 5㎏ 이하·1800원→2100원) 인상했다. 같은 달 롯데택배도 기업고객의 택배단가를 150원(5㎏ 이하·1750원→1900원) 올렸다. 

지난 15일을 기점으로는 CJ대한통운을 이용하는 편의점(GS25ㆍCU) 택배가격도 인상됐다. CJ대한통운의 택배단가 인상이 편의점 업계에 반영된 것으로, 무게별로 최소 300원에서 최대 1000원까지 올랐다. 문제는 택배기사가 받는 수수료는 그대로라는 점이다. 

✚ 택배사들은 사회적합의 이행을 명분으로 내세워 택배비를 인상했다. 그런데도 달라진 게 없었나. 
“없다. 자기들 배만 불린 것 아니겠나. 지난해만 해도 코로나19 택배 물량이 급증하면서 택배사들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터미널을 관리하는 지사장(CJ대한통운 소속) 등은 ‘성과급 잔치’를 했다고 하더라. 그런 얘기를 들으니 허탈했다.”

✚ 최근엔 편의점 택배비도 인상됐다. 
“오늘(15일) 아침 라디오를 통해 들었다. 어이가 없었다. 택배사들은 택배기사를 앞세워 택배단가를 올리면서 정작 사회적합의 이행을 유예하려고 하고 있다. 택배단가를 300원 인상했을 때 그중 200원만 택배기사 수수료로 올려줘도 이렇게 사람이 죽어나갈 정도로 일하지는 않아도 될 거다. 과로사 대책은 뒷전이고 당장 자기 곳간만 채우려 하고 있다.” 

지난 6월 8일 사회적 합의기구가 ‘2차 합의안’을 마련하기 위해 회의를 시작했다. 노ㆍ사ㆍ정이 모여 1차 합의안의 세부방안을 마련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회의가 결렬되면서 택배노조는 9일 총파업에 돌입했다. 택배노조 측은 “택배사가 사회적 합의안 적용시점을 1년 유예하려 한다는 게 파행의 주된 원인이다”고 꼬집었다. 

이후 사회적 합의기구는 15일부터 이틀간 회의를 재개하고 중재안에 합의했다. 내용은 1차 합의안과 별반 다르지 않다. 분류인력 투입ㆍ고용보험ㆍ산재보험 등에 필요한 원가 상승분을 170원으로 산정하고, 택배요금 인상을 통해 조달하도록 했다. 쟁점이었던 택배기사의 분류작업 중단 이행 시한은 2022년 1월 1일로 정해졌다.

✚ 추후 수수료 인상 가능성도 있지 않나. 
“20원이나 올려줄까 싶다. 지금까지 택배사들이 보여준 모습이 그렇다.” 

✚ 그런데 파업으로 인해 소비자 불편이 잦아지다 보니 택배기사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도 많아지는 듯하다. 어떤가. 
“죄송하고 안타깝다. 물론 지지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많다. 택배사들이 약속을 번복하고, 택배기사들은 거기에 끌려 다니다 보니 결국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됐다. 사회적 합의안이 제대로 지켜져 과로사 걱정 없이 일하고 싶다.”

지난 1월 택배기사들은 사회적 합의기구가 내놓은 1차 합의안에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그저 ‘봄꿈’이었을 뿐 ‘봄’은 오지 않았다. 이들이 30도의 더위에 또다시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던 이유다. ‘2차 합의안’은 진짜 봄을 데려올까.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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