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편 더 취약해진 취약계층
코로나19가 위기 더 키워
대상자들 위한 보호 시스템 필요

엄마가 일하러 간 사이 끼니를 거르며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아이, 온라인 수업 중간중간 엄마의 빈자리를 대신해 동생을 돌봐야 하는 아이, 친구들처럼 학원에 가고 싶지만 엄마 앞에서 ‘학원 보내달라’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는 아이…. 이런 아이들에게 학교는 ‘원격수업’에 참여하라며 태블릿PC 등 원격수업 기기를 보급했다. 하지만 이 기기들은 팍팍한 가정으로 들어간 아이들에게 큰 힘이 되지 못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코로나19로 인한 원격수업이 한창이던 지난 6월 한부모·다문화·새터민 가정의 민낯을 만났다. “힘들지만 그래도 행복하다”는 그들의 옅은 미소 뒤로 고단함이 물씬 풍겼다.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취재한 코로나19 시대와 교육 불평등 두번째 이야기, ‘교육 사각지대의 아이들’이다.

원격수업 시스템에서 취약계층은 이전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 빠져버렸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원격수업 시스템에서 취약계층은 이전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 빠져버렸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학업 성취의 수준을 결정하는 중요 요인은 학교가 아니라 가정환경이다.” 1960년대 미국 사회 전반에서 성별·인구·인종·교육 등 각종 불평등 문제가 발생했다. 이 격차를 줄이기 위해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됐다.

존스홉킨스 대학의 사회학과 교수인 제임스 콜먼(James Coleman)은 교육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도대체 어떤 것이 교육의 불평등을 야기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졌고, 그 답을 찾기 위해 4000개 학교, 60만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1966년 ‘콜먼 보고서’의 결과가 발표됐다. 1300쪽에 달하는 보고서의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당초 콜먼은 학교가 학생들의 학업 열의, 성취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다.

그가 “학교 시설이나 교사 봉급 등 불평등한 학교 자원이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에 영향을 줄 것이다”는 가설을 세운 것도 당연히 학교가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연구를 통해 얻은 답은 가설에서 완전히 빗나갔다. 콜먼 보고서에 따르면 학생의 학업 성취도는 학교의 시설, 설비, 교사의 능력을 비롯한 이른바 ‘학교 효과’보다 부모의 양육방법, 부모의 자본, 부모의 가정배경,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 등 학교 외적인 요인에 더 큰 영향을 받았다. 불평등한 학교 자원이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콜먼의 가설과 완전히 배치되는 결과였던 셈이다. 

이 보고서는 두고두고 논란이 됐다. 학교 효과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긴 보고서이지만 동시에 학교 교육을 비판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이런 콜먼 보고서가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다시 거론되고 있다. ‘온라인 개학’ ‘원격수업’이라는 사상 초유의 시스템이 가동되면서 학교 교육의 역할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고 있어서다.


코로나19 이후 국내에서도 수많은 ‘교육’ 보고서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지난해 7편에 걸쳐 ‘코로나19와 교육’ 시리즈를 발간한 경기도교육연구원의 연구보고서는 코로나19가 교육에 미치는 영향과 실태를 심도 있게 다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중에서도 ‘코로나19와 교육: 학교구성원의 생활과 인식을 중심으로(경기도교육연구원, 이정연 외, 2020)’ 시리즈는 코로나19 이후 드러난 가정 경제수준별 교육 불평등의 여실히 보여준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가정의 경제수준에 따라 원격수업의 환경, 원격수업의 이해도, 돌봄 등에서 격차가 나타났다. 가정환경이 열악할수록 원격수업에 집중하기 어렵거나 학습에 방해가 되는 장소에서 수업을 받는다는 응답률이 높았고, 원격수업 전용 디지털 기기 소유 여부, 기기의 성능에 따라서도 차이가 났다. 

돌봄 공백에서 격차가 드러났다. 경제 수준이 낮을수록 낮시간 동안 형제 또는 자매와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고, 점심식사를 거르는 경우도 많았다. 정서와 심리적인 면에서도 우려할 부분이 많았다. 보호자 없이 낮시간을 보내는 학생들은 건강에 대한 염려, 미래에 대한 불안감, 우울감 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만난 취약계층도 이 보고서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원격수업 전용기기를 제대로 갖추지 못해 수업에 집중하기 힘들어 하거나 부모의 부재 속에서 끼니를 거르는 아이들도 있었다. 

■한부모가정 미선씨와 막내의 태블릿 = 서울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유미선(이하 가명·51)씨는 세 자녀를 둔 한부모가정의 가장이다. 10년 전부터 세 아이를 홀로 키우고 있다. 첫째 정우(15)와 둘째 정연(13)은 중학생, 막내 정민(11)은 초등학생이다. 사무보조로 생계를 이어가는 미선씨는 하루빨리 정상 등교가 이뤄지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아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인지 예전보다 많이 싸우더라고요.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니 우울해하는 것도 같고요. 학습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학교에 가는 게 아이들한텐 여러모로 좋아요.”

중학생인 정우와 정연이는 격주로 등교한다. 전교생이 300명 이하인 초등학교에 다니는 막내 정민이는 매일 등교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엔 일주일에 이틀만 등교하고 나머지 사흘은 집에서 원격수업을 했다.

원격수업을 받을 때 세 아이는 모두 수업에 필요한 스마트기기를 학교에서 대여했다. 정우와 정연이는 노트북, 정민이는 태블릿PC로 수업을 들었다. 미선씨는 “중학생 아이들은 그나마 괜찮은데, 막내 정민이는 수업에 집중하기 어려워하더라”고 토로했다.

“화면도 작고, 마우스가 아닌 손가락으로 조작을 해야 하니까 불편해하더라고요. 그런 모습 보면서 ‘형편이 괜찮았더라면 노트북 하나 사줄 텐데’라는 생각에 마음이 영 안 좋았죠. 수업 초기 시스템에 문제가 있어서 접속도 잘 안 됐어요. 그래도 뭐 별수 있나요. 그냥 넘어가야죠.” 

학교 외적 요인이 학업 성취도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있다.[사진=뉴시스]
학교 외적 요인이 학업 성취도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있다.[사진=뉴시스]

그렇게 한달 두달이 지나며 막내 정민이는 원격수업에서 손을 뗐다. 출석체크만 한 뒤 교과서로 공부하는 ‘독학’에 들어간 거다. 불편함을 호소하는 정민이를 생각해 미선씨가 내린 결단이었지만 정민이도 “태블릿PC로 수업받는 것보다 그게 훨씬 나았다”고 말했다.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땐 형, 누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시스템이 훌륭하고, 수업 내용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장비가 시원찮으면 학습에 도움이 안 되더라고요.” 

■다문화가정 은정씨와 깨진 중고PC = 학습기기 문제는 미선씨 가족만 겪은 문제가 아니다. 경기도 성남에 거주하는 이은정(37)씨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은정씨는 결혼이주여성이다. 15년 전 베트남을 떠나 한국에 와 결혼했고, 곧바로 아이를 낳았다. 지금은 중학생이 된 딸 아름(13)과 둘이 살고 있다. 


은정씨는 조그만 봉제공장에서 미싱사 보조로 일한다. 아침 8시 반부터 저녁 7시까지 일하며 한달에 버는 돈은 120만원 남짓. 야근을 하고 주말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하면 180만원까지 벌기도 한다. 두 식구 생활비에 보험료, 아름이 학원비까지 내고 나면 한달 생활이 빠듯하다.

“다른 건 어떻게든 줄일 수 있는데 고정지출은 줄이기가 쉽지 않아요. 게다가 여름만 되면 어지럼증이 생겨서 일을 제대로 못하거든요. 이번 여름은 또 어떻게 보내야 할지 걱정이네요.”


은정씨에게 코로나19는 전혀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두 식구 살림이 더 곤궁해졌기 때문이다. “집에 노트북이 없어서 원격수업을 받으려고 학교에서 태블릿PC를 대여했어요. 그런데 성능이 좋지 않았어요. 수업시간만 되면 미진이가 태블릿PC를 들고 낑낑대기에 모아놓은 돈을 털어 중고PC를 하나 사줬어요.” 예상치 못한 지출이었다. 비록 모니터 액정에 살짝 금이 간 컴퓨터지만 아름이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했고, 그걸 보는 은정씨도 못내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은정씨는 늘 걱정이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탓에 아이 식사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서다. 어떻게든 챙겨주려 하지만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름인 요즘 밥도 제대로 먹지 않는다. “가끔 만두나 볶음밥 같은 걸 후원받으면 그건 좀 챙겨 먹는데 끼니를 거르다보니 1년 사이에 몸무게가 많이 줄었어요.”

게다가 코로나19 이후 학교폭력, 왕따 등의 이슈가 많아진 거 같아 혹여 다문화가정이면서 한부모가정에서 자라는 아름이가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진 않을까 노심초사다. 그럴 때마다 “한국말이라도 더 잘했으면…”하는 자책이 은정씨를 짓누른다. 그가 없는 살림을 쪼개 아름이를 학원에 보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달 벌어 한달 사는 형편이지만 아름이가 하고 싶다는 것은 최대한 지원해주고 싶어요.” 

은정씨는 아름이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 다해주겠다는 마음이지만 결정을 내리기까진 수많은 고민의 시간들을 보낸다. 학원비가 만만치 않아서다. “지난해 보내던 학원은 23만원이었는데, 올해 옮긴 학원은 두 과목 수업 받는데 43만원이에요. 남들한텐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저한텐 굉장히 큰돈이거든요. 아름이에게 생각할 시간을 좀 달라고 했는데, 무척 가고 싶은 눈치더라고요. 어쩌겠어요. 보내야죠. 저 먹을 것 좀 줄이면 돼요.” 


은정씨는 “삼시세끼만 먹을 수 있게 매일 기도한다”며 “몇번이고 무너지고 싶었지만 아름이를 보며 힘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새터민 성희씨와 아픈 손가락 = 경기도 성남에 거주하는 김성희(41)씨는 새터민이다. 2013년 한국에 왔다. 둘째 민영(17)이 먼저 내려오고, 성희씨는 첫째 선영(20)과 고초를 겪으며 왔다. 셋째 아영(7)은 여기 와서 낳았다.

성희씨는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 홀로 세 아이를 키운다. 새터민이라 정부에서 지원을 받기도 하지만 편의점 알바로 네 식구 생활하는 게 그리 녹록지만은 않다. 그래도 성희씨는 아이들이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둘째 민영인 학원도 보냈다. “기초학력을 쌓고 왔다고 해도 한국은 워낙 교육열이 높잖아요. 출발점 자체가 다르더라고요.” 

하지만 코로나19로 원격수업을 하면서 학력 격차는 더 벌어졌다. 성희씨는 학원을 다니면 그 격차가 조금이나마 줄어들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성희씨의 욕심이었다. 오히려 민영이는 점점 더 벌어지는 격차 탓에 수업내용을 따라가는 걸 버거워했다.

게다가 정부 지원금으로 학원을 보내는 새터민이란 소문이 학원에 났는지 민영이에게 차가운 시선이 꽂혔고, 아이는 그걸 힘들어했다. 결국 민영이는 학원을 그만뒀고, 성희씨는 말리지 못했다. 

취약계층에 스마트기기가 보급됐지만 성능이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사진=뉴시스]
취약계층에 스마트기기가 보급됐지만 성능이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사진=뉴시스]

고등학생인 민영이는 요즘 격주로 등교를 한다. 막내 아영이는 초등학교 저학년이어서 매일 등교한다. 아영이가 유치원에 다니던 지난해엔 민영이가 동생의 등하원 챙기랴 원격수업 받으랴 신경 써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런 민영이를 바라보는 성희씨는 마음이 놓이면서도 괜히 자신의 짐을 아이에게 지우게 한 건 아닌가 싶어 이래저래 복잡하다고 말했다.

이렇듯 코로나19로 갑작스레 이뤄진 원격수업 시스템에서 우리 사회의 취약계층은 이전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 빠져버렸다. 가난은 더 깊게 생활 속에 파고들었고, 차가운 시선은 온몸에 송곳처럼 꽂혔다.


정재훈 서울여대(사회복지학) 교수는 “취약계층의 아이들을 학교 울타리 안에서 보호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그럴 수 없다면 우리 지역사회에서 잘 보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각 지자체별로 복지관이나 지역아동센터 같은 시설이 있다. 그걸 활용해 취약계층을 충분히 끌어안을 수 있다. 한부모가정지원센터, 다문화가정지원센터 등 각 대상자를 위한 시설이 있다. 하지만 각 사업이 정형화돼 있고 분절적이다 보니 이런 보호가 부족한 게 사실이다. 지금 같은 팬데믹에선 기존의 기능과 역할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돌봄에 초점을 맞춰 조직을 다시 재정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 이 콘텐츠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 받아 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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