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인순이와의 차 한잔
사회 공헌 활동가 꿈꾸는 이현우 학생의 고민

이현우(25) 학생은 사회 변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법과 사회정의가 전공이지만 졸업한 뒤에는 사회적기업이나 비영리재단에서 일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도 있습니다. 로스쿨, 대기업을 준비하는 주변 친구들을 보고 있으면 자신이 맞는 길을 가고 있는지 의문이 들어서입니다.

가수 인순이(55)는 두려워하는 현우 학생에게 “괜찮다”며 따스한 눈빛을 보냈습니다. “실패하더라도 걱정하지 마세요. 계속 준비하다 보면 언젠가 때를 만날 겁니다.” 기나긴 슬럼프를 딛고 일어섰던 인순이의 말은 평범했지만 그 속엔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두 사람의 ‘티토링(Tea-toring)’을 공개합니다. 티토링은 더스쿠프(The SCOOP)와 멘토링 전문 NGO 러빙핸즈, 한국사회공헌협회가 공동으로 기획한 ‘멘토링 프로젝트’입니다. 꿈을 꾸는 청년 멘티와 꿈을 이룬 멘토를 매칭해 차 한잔을 마시면서 공감대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입니다. 티토링 그 여섯번째 편, 사회 공헌 활동가를 꿈꾸는 이현우 학생과 가수 인순이의 만남입니다.

티토링으로 만난 가수 인순이와 이현우 학생.[사진=천막사진관]
티토링으로 만난 가수 인순이와 이현우 학생.[사진=천막사진관]

이현우 학생은 ‘공공의 이익’에 관심이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지역 사회에 도움이 될 지를 고민하는 게 이 청년의 즐거움이랍니다. 그래서 대학 학과도 법을 공부하는 ‘사회정의리더십’을 택했습니다. 현우 학생의 꿈은 졸업 후 사회적기업이나 비영리재단에서 일하는 겁니다.

이렇게 꿈이 명확하지만, 현우 학생에게도 두려움은 있습니다. 대기업이나 로스쿨을 준비하는 친구들과 너무 다른 길을 걷는 것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들어서입니다. “제가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나요.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는 게 맞는 걸까요?”

현우 학생의 고민에 가수 인순이가 대답했습니다. 한국에서 손꼽히는 톱가수인 그는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언을 건넸습니다. “자신의 길이 옳다고 생각하고 나아가세요. 지금 쌓는 경험은 인생 어디에선가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지금은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가수가 됐지만 그에게도 삶의 곡절이 숱했습니다. 나이트클럽 같은 ‘뒷무대’를 전전할 수밖에 없는 슬럼프도 겪었죠.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버텨냈습니다. 인순이는 “마음의 끈만 놓지 않으면 실패는 기회가 되고 경험이 된다”며 현우 학생을 응원했습니다.

#티토링 첫번째 음미 : 두갈래 길

가수 인순이(이하 인순이) : “사회정의리더십학과? 전공 이름이 꽤 기네요?”

이현우 학생(이하 현우) : “간단하게 설명하면 법과 정치철학을 함께 공부하는 학과예요. 법이 어떻게 현실에서 적용되고 사회정의와 이어지는지, 사회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논의하죠.”

인순이 : “그렇구나. 그러면 법 관련 직업을 꿈꾸고 있겠네요?”

현우 : “저는 그보다는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것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졸업한 뒤에 사회적기업이나 비영리재단에 들어가서 일을 하고 싶어요. 로스쿨이나 대기업을 목표로 삼고 있는 동기들과는 꿈이 많이 다르죠.”

남들과 다른 길을 걸어서일까. 대기업 취업이나 로스쿨 입학을 차근차근 준비하는 동기들을 보면서 현우 학생은 조급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고 털어놨다.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 저를 괴롭혀요. 이러다가 실패하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도 들고요.”

인순이는 “젊은 청춘들을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가장 많이 듣게 되는 고민”이라며 현우 학생의 말에 공감했다. “(청년들이)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건 저도 헷갈려요. 당연히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돈 버는 일을 잘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란 생각도 들거든요. 쉽지 않은 선택이죠. 내 딸이 물어보면 난 어떻게 대답할까?”

현우 : “그것도 여쭤보고 싶었어요. 예전에 인순이 선생님 인터뷰에서 따님이 마이크로소프트(MS)를 다니다가 그만두고 창업을 한 걸 본 적이 있거든요. 따님과도 이런 얘기를 했다면 어떻게 말씀하셨을 것 같나요?”

인순이 : “우리 딸이 MS 나온다고 보따리를 쌌을 때, 힘이 돼주고 싶어서 놀란 척을 하지 않았어요. 물론 속으론 끙끙 앓았죠(웃음). 좋은 직장을 걷어찬 딸이 걱정됐으니까요.”

인순이의 자녀 박세인씨는 미국 대학에서 과학기술사회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유엔을 거쳐 MS에 취직했다. 남들에게 ‘신의 직장’으로 불릴 만한 회사였지만, 세인씨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사표를 던지고 웰니스 플랫폼 ‘넉 아웃’을 차렸다. 이는 운동은 물론 심신 단련과 취미 활동을 장려하는 ‘부티크 짐(Boutique Gym)’이었는데, 세인씨의 전공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이런 점에서 현우 학생과 세인씨의 행보는 결이 같았다.

인순이 : “딸이 체육관 일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어머, 얜 도대체 뭐야?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딸이 제게 무슨 얘기를 한 줄 아세요?”

현우 : “뭐라고 했는데요?”

인순이 : “‘엄마, 외국에선 실패한 사람이 더 취직이 잘돼’라고 하더라고요. 실패한 경험까지 커리어에 플러스로 추가되기 때문이래요. 실패를 해봐야 그 이상 실패하지 않는 방법도 알 것이고, 그렇다면 CEO의 마음도 알 거라는 이유였죠.”

그러면서 인순이는 “실패란 단어는 ‘경험’이란 말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이 길이 아니다 싶으면 다른 길을 가면 돼요. 지금은 100세 시대잖아요. 요즘 30대는 우리 세대로 따지면 20대 초반과 비슷해요. 100세 시대인 만큼 더 길게 봐야 한다는 거죠. 늦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는 이유죠.”

#티토링 두번째 음미 : 조급함

현우 : “사실 제가 걱정을 하는 건 친구들이 목표로 삼고 있는 로스쿨이나 대기업에 가고 싶어서가 아니에요. ‘남들이 가는 길을 걷지 않았다가 실패를 하면 어떡하지’란 두려움이에요.”

인순이 : “조급해하지 않아도 돼요. 현우 학생이 사회적기업이나 재단에서 활동하다가 나중에 변호사로 방향을 전환해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그만큼 넓은 견문을 가진 변호사가 될 수 있으니까요.”

현우 : “하지만 정해진 순서대로 착착 길을 걸어간 사람들보단 뒤처지지 않을까요?”

인순이 : “사회나 고정관념이 정해놓은 ‘룰’대로 가는 것도 때론 좋겠죠. 하지만 현우 학생이 남들과 다른 길을 걸으면 특별한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어요. 저는 그렇게 견문을 넓히는 것에 한표를 주고 싶어요.”

#티토링 세번째 음미 : 대안학교는 내 운명

현우 학생은 대안학교 얘기를 꺼냈다. ‘노래하는 사람’ 인순이가 2013년 다문화 가정을 위한 대안학교 ‘해밀학교’를 세운 이유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인순이 선생님은 훌륭한 가수이기도 하지만 대안학교를 세우면서 사회에도 많은 공헌을 하셨잖아요. 어떻게 그 길을 걷기로 결심했는지 궁금해요.”

인순이 : “확신 같은 건 없이 시작했어요. 조직을 운영하거나 학교와 관련된 일을 해본 적도 없었고요. ‘얼떨결에 시작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아요.”

현우 : “계기가 있나요?”

인순이 : “처음 하고 싶었던 건 양로원이었어요. 16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던 날, 공연을 나가느라 임종을 지켜드리지 못했거든요. 그게 한이 됐는지 어머니에게 못했던 걸 다른 어르신들에게 해드리자는 생각을 했었죠.”

양로원을 세울 터까지 손수 알아보러 다녔지만 인순이는 그 결심이 오래가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가슴에 와닿지 않았어요, 가슴에….”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던 인순이의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한 건 2010년 어느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뉴스를 들은 이후였다. “다문화 가정에서 자란 고등학생의 졸업률이 28%밖에 되지 않는다는 얘길 들었어요. 그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걸 직감했죠.”

미군이었던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그였기에 아이들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인순이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부터 설득해야 했다. 대안학교를 세운다는 소문이 퍼지면 분명 자신의 ‘얘기’가 다시 세간에 오르내릴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티토링 6편 ‘가수 인순이와의 차 한잔’의 스틸컷.[사진=더스쿠프 포토]
티토링 6편 ‘가수 인순이와의 차 한잔’의 스틸컷.[사진=더스쿠프 포토]

인순이 : “2~3개월 고민했던 것 같아요. 다시 그 힘든 시간을 떠올려야 한다는 게 싫었거든요. 하지만 딸을 키우는 어머니로서 아이들을 외면할 수 없었죠. 그 마음이 결국엔 두려움을 이기더라고요. 조금만 도와주면 아이들이 자기 정체성을 찾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거든요. 나도 그랬으니까.”

현우 : “결국 도전을 택했던 거네요.”

인순이 : “그렇죠. 운명적으로 두갈래 길이 올 때가 있어요. 이걸 항상 성공과 실패로 나누는 건 옳지 않은 것 같아요.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에요. 그저 길을 정했으면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죠.”

#티토링 네번째 음미 : 노래하는 사람 인순이

현우 학생은 문득 ‘가수 인순이’의 스토리를 듣고 싶었다. 한국 톱가수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그가 세상에 흩뿌린 노력이 궁금해서였다.

인순이 : “전 데뷔하자마자 신데렐라처럼 성공했어요. 나 걸그룹이었는데, 알아요?”

현우 : “네, ‘희자매’로 데뷔하셨죠.”

인순이 : “요즘은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내가 자랑할 정도예요.”

1978년 ‘희자매’로 데뷔한 인순이는 타이틀곡 ‘실버들’로 혜성처럼 등장해 인기를 끌었다. 단 1년 만에 솔로로 전향한 그는 ‘밤이면 밤마다(1983년)’란 공전의 히트곡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인순이는 그후 10년이란 긴 암흑기를 보내야 했다. ‘밤이면 밤마다’ 이후 대중의 귀를 사로잡을 만한 노래를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인순이는 “사실 난 히트곡이 몇개 없다”며 자신의 인기곡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실버벨’ ‘밤이면 밤마다’ ‘친구여’ ‘거위의 꿈’ ‘아버지’…. 40년을 넘게 노래한 인순이의 히트곡은 생각보다 적었다. “그것도 대부분은 제 음악 인생 마지막 10년 안에 만들어진 곡들이에요. 중간에는 내 곡이 하나도 없었죠. 그땐 그저 남의 노래를 불렀어야 했어요.”

대중들에게 서서히 잊히기 시작한 인순이는 생계를 위해 밤무대를 뛰었다. 식상해진 자신의 노래 대신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부르면서 하루를 버텼지만 경쟁이 치열한 탓에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제가 선택한 방법은 ‘남들과 달라야 한다’는 거였어요. 내 노래만 계속 부르거나 남들과 똑같이 노래를 부른다면 저를 무대에 세울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어요.”

현우: “달라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인순이 : “남들의 가장 좋은 부분만을 취하려고 노력했어요. 가령, 내가 어떤 노래를 부른다고 쳐요. 그러면 그걸 부른 가수들의 노래를 다 수집했어요. 누가 어느 마디에서 가장 잘 불렀는지 전부 분석했죠. 그렇게 가장 좋은 부분만 떼다가 제 음악에 그대로 녹여냈어요. 한마디로 노래를 짜깁기한 거죠.”

현우 : “여러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걸 주저하지 않은 거네요.”

인순이는 반짝 데뷔에 성공한 후 오랜 기간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털어놨다.[사진=인순이 제공]
인순이는 반짝 데뷔에 성공한 후 오랜 기간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털어놨다.[사진=인순이 제공]

인순이 : “당연하죠. 전 이 과정을 무대에 올라설 때마다 매번 했어요. 그런 혹독한 과정을 거치니까 비로소 ‘나만의 특별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더라고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현우 : “굉장히 어려운 일일 것 같아요.”

인순이 : “정말 힘들어요. 그런데, 그렇게 해서 무대에 올라간 다음 결과를 나중에 보면 기분이 정말 좋고 행복해요. 그래서 이 고생을 놓을 수가 없죠. 이걸 반복했기 때문에 지금의 인순이가 있는 것 아닐까요?”

#티토링 다섯번째 음미 : 12회와 1200회

인순이 :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있어요. ‘준비와 때가 만났을 때 빅뱅을 일으킨다.’ 잊지 마세요. 준비하고 있으면 기회는 반드시 오게 돼 있어요.”

잠시 과거를 회상하던 인순이는 현우 학생에게 열린음악회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열린음악회가 생기고 12회 때 제가 처음 출연을 했어요. 그때가 2~3년 방송국에서 절 찾지 않았던 때였거든요. 그런 저에게 열린음악회는 더없는 기회였죠.”

오랜만의 방송 무대에 떨릴 법도 했지만 인순이는 자신이 있었다. 밤엔 나이트클럽 무대, 낮엔 야외공연을 다니며 내공을 쌓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에버랜드지만, 우리 땐 자연농원이라고 불렀거든요(웃음). 거기서 아기들부터 어르신들까지 모두를 위해 노래를 부르곤 했어요. 아기들에겐 ‘앞으로 앞으로’, 20~30대에겐 ‘람바다’, 40~50대를 위해선 ‘사공의 뱃노래’를 불러줬어요. 그러면서 제 음악의 폭도 자연스럽게 넓어졌죠,”

열린음악회 무대 위에서 인순이는 ‘님은 먼 곳에’와 ‘라밤바’를 불렀다. 분위기가 전혀 다른 2곡을 능숙하게 연이어 부르자 무대 여기저기서 박수갈채가 쏟아졌고, 앙코르를 외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결정적인 ‘한방’은 앙코르 무대에서 터졌다. “그야말로 뒤집어졌어요. 제가 무반주로 ‘창’을 불렀거든요. 외모로 보나 뭘로 보나 제가 창을 부를 거라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날로 제 인생이 확 바뀌었죠. 이후로 10년간 격주로 열린음악회 무대에 섰던 것 같아요.”

현우 : “길었던 슬럼프가 도움이 된 셈이네요.”

인순이 : “그렇죠. 그 경험은 열린음악회 이후에도 큰 도움이 됐어요. 격주로 무대에 서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레퍼토리가 다양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전 10년간 그것만 해 왔잖아요. 데이터가 충분히 쌓여있어서 어떤 무대든 훌륭하게 소화해냈죠.”

오늘날의 인순이를 있게 해준 무대라서일까. 시간이 흘러 1200회를 맞은 열린음악회 무대는 인순이에게도 감회가 남달랐다. 인순이는 12회 때 착용했던 드레스를 다시 입었다. 벅찬 감정이 몰려왔다. “리허설 때 눈물이 흐르더라고요. 여기까지 정말 잘 버텼다는 생각에 스스로가 정말 대견했어요.”

현우 :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도 준비하는 걸 게을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얻은 값진 결과인 것 같아요.”

인순이 : “그렇죠. 그래서 전 부딪쳐 보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실패의 두려움을 없애는 건 무척 중요해요. 상처도 받아보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그런 경험이 없다면 깊어지지 않습니다.”

#티토링 여섯번째 음미 : 점과 선

현우 학생은 인순이의 조언에 쉽게 공감하지 못했다. 실패에 관대하지 않은 한국 사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경험이 중요하다곤 하지만 실패했을 때의 리스크가 너무 큰 것 같아요. 한국에선 첫번째 실패도 용납하질 않잖아요.”

인순이 : “이해해요, 하지만 말이죠….”

잠시 뜸을 들이던 인순이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현우 학생에게 인생 선배로서의 진심을 건네고 있었다. “처음 고난을 맞닥뜨렸을 때는 어찌할 수 없는 대들보처럼 느껴질 거예요. 그건 어쩔 수 없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건 그냥 한 점이에요. 내 인생에서 점 하나에 지나지 않죠. 그 점들이 모여서 인생이란 긴 선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인순이는 “실패란 굴레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따스한 미소를 건넸다. “내가 마음만 잡으면 모든 게 달라져요. 내가 좌절했을 때 그 시간은 실패가 되지만 그걸 경험이라고 생각하면 기회가 됩니다.”

현우 학생에게 마지막 질문을 건넸다. “난 용기를 낼 수 있고, 다시 일어설 수 있고, 상처받아도 금세 아물 수 있는 현우 학생의 청춘이 부러워요. 현우 학생이 그 시점에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제 다시 한번 현우 학생의 마음을 들려줘요. 그 길, 계속 걸을 수 있겠어요?” 현우 학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입가에 미소가 담겼다. 그들의 티토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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