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준 비알씨테크 CFO
창업은 긴 기다림의 시간
고정비 줄이고 타이밍 기다려야

비알씨테크는 산업용 PCㆍ모니터 제조ㆍ유통업체다. 신귀현 대표와 김창준 CFO가 공동창업했다. 지금은 인천국제공항공사 등 공공기관에 산업용 PCㆍ모니터를 납품할 정도로 신뢰성을 인정받고 있지만 이들의 창업 1년차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전공이 아닌 ‘건조버섯제품’을 앞세워 출사표를 던졌다가 창업 1년 만에 고배를 마셨기 때문이다.

비알씨테크는 창업 초창기 고정비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비알씨테크는 창업 초창기 고정비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누군가는 이 순간에도 꿈을 키우고 있을지 모르겠군요. 2005년 창업을 준비하던 저처럼 말이죠. 창업! 말만 들어도 가슴 벅찬 단어입니다. 어릴 때부터 사업을 하고 싶었던 제겐 더욱 그렇습니다. 아마 그래서였을 겁니다. 잘 다니던 모니터 제조ㆍ유통업체에 사표를 던졌을 때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제게 창업은 꿈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꿈과 현실이 다르다는 걸 알아차리는 덴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전 첫 단추를 잘못 끼웠고, 그걸 바로잡기 위해 상당한 기회 비용을 날려야 했습니다. 예비창업자를 위해 ‘내 창업의 1년’이란 주제로 레터를 써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아픈 기억’부터 떠오른 건 이 때문인 듯합니다.[※참고: 김창준 CFO는 예비창업자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는 강사이기도 하다.]


저는 중견 모니터 제조·유통업체를 다녔습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업한 덕분인지, 팀장 역할도 꽤 오래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창업 아이템은 ‘식품’으로 정했습니다(2006년 창업).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할 거면 창업할 필요가 없다”는 거였죠. 패착이었습니다. ‘버섯건조제품’이란 핫한 아이템을 내세우긴 했지만 저에겐 시장을 통제할 만한 능력이 없었습니다. ‘버섯건조제품’이 소비자에게 먹힐지, 경쟁업체엔 그런 제품이 있는지… 그 어떤 것도 담보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1년은 실패로 점철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몇몇은 회사를 떠났고, 몇몇은 ‘도로 직장인’을 택했습니다. 저 역시 갈림길에 섰습니다. “잘하는 걸 할까, 아님 새로운 아이템으로 다시 도전할까”란 생각에서였죠. 고민 끝에 그간 해온 모니터 제조 유통업을 기반으로 아이템을 확장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도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걸어온 길과 경험을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창업한 지 1년도 채 안된 작은 회사에 ‘레퍼런스’를 요구하는 곳도 많았습니다. 대부분의 창업자라면 이런 아픔을 겪었을 겁니다. 시장에서 스타트업은 ‘증명할 게 없는’ 초짜 기업일 뿐입니다. 창업자가 어디서 어떤 이력을 쌓아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 예비창업자를 만나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가장 먼저 던집니다. “모든 걸 버리고 발로 뛸 준비가 돼 있나요?” 전 창업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다리로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철저하게 ‘을乙’이 돼야 합니다.

창업한 사람에게 “너도 위대한 잡스처럼 될 거야”라면서 희망의 말을 건네거나 기대를 품어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갑자기 수십억원을 지원해주는 기업이나 후원자가 나타나는 것도 언론에나 나올 법한 얘기입니다. 창업할 때 ‘고정비’를 낮춰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시장에서 실력을 인정해줄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니 창업한 지 15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지금은 직원이 꽤 많아졌고, 매출도 크게 늘었지만 시장은 여전히 만만한 곳이 아닙니다. 잊지 마세요. 시장은 ‘작은 기업’에 인색한 곳입니다. 창업을 끝이 아닌 시작으로 여겨야 하는 이유입니다.

김창준 비알씨테크 CFO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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