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국 합의가 유가에 큰 영항
셰일오일 늘지 않으면 공급 부족
당분간은 수요가 더 많을 듯

국제유가가 급격히 올랐다. 상승률은 올해 초 대비 평균 50% 이상이다. 7월 중순 산유국들이 감산 규모를 완화하는 데 합의하고, 최근 미국 내 델타 변이 확산 우려까지 겹치면서 상승세가 잠깐 꺾이긴 했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 회복세와 함께 훌쩍 늘어난 원유 수요를 공급이 맞추기 힘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OPEC+의 합의로 국제유가가 잠깐 하락했지만, 다시 반등하고 있다.[사진=뉴시스]
OPEC+의 합의로 국제유가가 잠깐 하락했지만, 다시 반등하고 있다.[사진=뉴시스]

“2021년 국제유가는 소폭 상승하는 데 그칠 것이다.” 지난해 12월 산업통상자원부가 온라인으로 개최한 ‘2020 석유 콘퍼런스’에서 나온 전망이었다. 

국내뿐만이 아니다. 해외 주요 기관들의 전망도 비슷했다. 브렌트유를 기준으로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48.5달러(이하 배럴당), 영국의 리서치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45.0달러, 프랑스 최대 은행그룹인 BNP파리바는 56.0달러, 미국의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는 48.1달러, 영국 금융서비스 기업인 바클레이즈는 53.0달러로 내다봤다.

[※참고: 브렌트유는 두바이유ㆍ서부텍사스산원유(WTI)와 함께 3대 유종에 속한다. 우리나라에선 두바이유를 가장 많이 수입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선 브렌트유가 더 광범위하게 거래된다.] 

하지만 국내외 기관들의 이런 전망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올해 국제유가 상승 속도가 예상보다 가팔라서다. 올해 초 배럴당 52.49달러(싱가포르 현물가격 기준)였던 두바이유는 지난 7월 6일 75.88달러를 기록했다. 47.62달러였던 WTI도 지난 7월 13일 75.25달러로 치솟았다. 브렌트유 역시 51.09달러에서 7월 5일 77.16달러로 올랐다. 평균적으로 국제유가가 연초 대비 50% 이상 급등한 셈인데, 이는 2018년 10월 이후 최고점이다. 

전망이 빗나간 이유는 뭘까. 당초 국내외 기관들은 글로벌 경기가 살아나 석유 수요가 회복하더라도 석유 재고가 많이 남아 있고, OPEC+(석유수출국기구와 그 외 주요 산유국)가 감산 규모를 줄일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들어 국제유가 상승세가 가파르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전망과 달리 미국의 석유 재고량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고, ‘감산 규모를 줄일지 말지’를 둘러싼 OPEC+의 결정은 더뎠다.

무엇보다 OPEC+의 행보가 미친 영향은 컸다. 감산을 유지할지 감산 규모를 줄일지를 놓고 고민하던 OPEC+는 지난 3월 일부 증산만을 허용하고 기존 감산량을 유지하기로 했다. 그러자 국제유가가 상승일로를 걸었고, OPEC+는 올해 6월부터 하반기 감산 규모 축소 수준을 놓고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7월 초까지도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면서 국제유가의 상승세를 제어하지 못했다. 

국제유가를 올린 요인은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셰일오일 채굴이 크게 늘지 않았다는 점이다. 2015년부터 지금까지 국제유가가 일정 수준을 넘기면 셰일오일 채굴도 늘어 국제유가 평균치가 배럴당 50달러대를 유지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양상은 지난해 달라졌다. 코로나19가 터진 이후 석유 수요가 급격히 줄어 국제유가가 폭락하면서 셰일오일 채굴도 줄었다. 셰일오일을 생산하는 미국의 에너지 기업들이 줄줄이 설비투자를 줄인 탓이었다. 

OPEC 합의로 상승세 제동

문제는 국제유가가 오르고 있는 지금도 미국 셰일오일 생산업체들이 투자를 늘리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에너지관리청(EIA)에 따르면 2019년 4분기 기준 미국에서 가동 중인 셰일오일 생산업체들의 원유 시추설비(리그 수)는 821개(평균치)였는데, 지난해 4분기엔 310개로 뚝 떨어졌다. 올해 1분기에도 392개에 머물렀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원유 시추설비가 늘긴 했지만 코로나19가 터지기 직전인 2019년 4분기에 비해선 절반도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사실 미국 셰일오일 생산업체들이 투자를 늘리지 않는 덴 숨은 이유가 있다. 지난해 국제유가가 배럴당 10달러대로 폭락했을 때, 상당수의 셰일오일 생산업체들은 석유를 일정한 가격 이상으로 판매할 수 있는 ‘장기간의 헤지(hedgeㆍ위험회피) 계약’을 맺었다. 이 계약에 발목이 잡혀 있어 국제유가가 오른다고 해도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없다. 이에 따라 굳이 설비를 늘려 원유를 생산할 필요가 셰일오일 생산업체들엔 없다는 거다.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후 미국 에너지정책 기조가 석유 증산보다 친환경에너지에 맞춰져 있다는 점도 이들의 투자에 제동을 거는 요인이다. 그러다보니 석유 수요가 늘어나도 당장 증산이 쉽지 않다.[※참고: 물론 다른 의견도 있다. 셰일오일 생산업체들이 증산을 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거다. 김소현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일부 셰일업체가 석유 생산량을 늘릴 수는 있다”면서 “기존 유전과 달리 셰일오일은 단기간에 생산을 재개할 수 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 국제유가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 일단 상승세에 제동은 걸렸다. 7월 18일(현지시간) OPEC+가 석유장관 회의를 열어 8월부터 12월까지 일일 감산량을 매월 40만 배럴씩 줄이기로 합의해서다. 현재 OPEC+의 일일 감산량은 580만 배럴이다.[※참고: 그동안 아랍에미리트(UAE)는 “자국의 석유 생산 기준이 애초부터 너무 낮게 설정돼 있었다”면서 감산 완화 합의 조건으로 이 기준을 상향해 달라고 주장했는데, 이를 두고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잠정적인 합의를 보는 데 성공했다.] 

그동안 국제유가의 균형을 맞춰왔던 셰일오일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고 있다.[사진=뉴시스]
그동안 국제유가의 균형을 맞춰왔던 셰일오일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고 있다.[사진=뉴시스]

OPEC+의 합의는 국제유가에 영향을 미쳤다. 7월 19일 뉴욕상업거래소 기준으로 두바이유는 전 거래일 대비 2.61%, WTI는 7.28%, 브렌트유는 6.75% 떨어졌다. 하지만 국제유가는 하루 만에 다시 반등했다. 7월 23일 기준으로 두바이유는 7월 19일보다 1.13%, WTI는 8.62%, 브렌트유는 7.99% 올랐다. OPEC+가 감산량을 줄이기로 했지만 아직은 공급보다 수요가 훨씬 많아서다. 

수요 우위 지속 가능성 높아

OPEC가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세계 석유시장의 일평균 수요량 대비 공급량은 -17만 배럴이었다. 2분기에는 -158만 배럴로 늘었다. OPEC가 내놓은 향후 수요량과 공급량 전망치를 봐도 공급보다 수요가 많은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전망치에 따르면, OPEC가 하반기부터 40만 배럴씩 추가로 생산할 것까지 반영해도 3분기와 4분기 공급량은 각각 261만 배럴, 326만 배럴 모자란다. 공급부족 현상이 갈수록 심화할 것이란 얘기다.  

전규연 하나금융그룹 이코노미스트는 현재의 상황을 이렇게 진단했다. “산유국들이 완만한 증산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글로벌 경제의 정상화와 함께 미국 원유 재고량이 감소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상업용 원유 재고도 코로나19 이전 수준까지 다다랐다. 여름철에 미국의 휘발유 수요도 늘어난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당분간 수요 우위의 시장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당분간 국제유가가 70달러대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공급이 늘지 않는 상황에선 국제유가가 내려가긴 힘들 거라는 얘기다.[※참고: 물론 코로나19는 여전히 변수다. 실제로 지난 8월 2일과 3일, 이틀 간 델타 변이 확산 우려가 커지면서 국제유가가 하락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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