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총 순위로 본 시대별 주도산업

1980년대 글로벌 시장을 지배한 곳은 제조업 기반의 일본이다. 제조업 강세현상은 잭 웰치의 GE가 시장을 평정했던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2010년대에 들어선 정유회사가 시장을 재편하더니, 그 기세를 애플·MS 등 IT기업이 이어받았다. 2021년 시대의 지배자는 여전히 애플이지만, 아마존·테슬라·알리바바 등 신기술로 무장한 기업들의 위세도 뜨겁다. 그럼 시장을 이끌 ‘넥스트 선도자’는 누구일까.

2007년 아이폰 출시 당시 3달러에 불과했던 애플의 주가는 15년 만에 50배 가까이 상승했다.[사진=뉴시스] 
2007년 아이폰 출시 당시 3달러에 불과했던 애플의 주가는 15년 만에 50배 가까이 상승했다.[사진=뉴시스] 

산업 생태계는 바다와 같다. 바다의 수온과 해류가 변하면 바닷속의 생태계도 완전히 달라진다. 수천년을 살아온 물고기들이 떠나고 새로운 종이 빈자리를 채운다. 당연히 생태계의 변화를 인지한 어부는 성공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떠난 물고기를 찾느라 시간과 돈을 허비할 가능성이 높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쇠퇴기에 접어든 산업에서 성장기업을 찾는 것은 떠난 물고기를 찾아 헤매는 어부와 다를 바 없다.

산업 생태계를 바꾸는 건 기술의 발전과 혁신이다. 새로운 것이 등장할 때마다 산업과 기업은 변화를 선택했다. 1700년대 영국에서 발명한 면직기와 증기기관이 산업혁명으로 이어진 게 대표적이다. 전기를 이용한 대량생산, 컴퓨터가 현실화한 자동화 등도 세상을 크게 바꾸면서 또다른 산업혁명을 일으켰다.


기술의 발전과 변화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1990년대 서비스를 시작한 초고속 인터넷과 2007년 등장한 아이폰은 그 어떤 산업혁명보다도 강력한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이 몰고 온 변화는 엄청나다. ‘스마트폰을 손에 쥔 인류’란 의미의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 ens)라는 용어가 등장했을 정도다.

실제로 ‘스마트폰을 손에 쥔 인류’를 위한 새로운 기업은 무수히 생겨났다. 미국의 백화점을 벼랑 끝까지 몰아넣은 아마존과 은행산업을 바꾼 인터넷전문은행이 대표적이다. 우버는 100년 넘게 변화가 없던 택시시장을 흔들어 놨다. 이런 변화 속에서 혁신에 성공한 기업들이 등장했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1989년과 2018년 글로벌 시가총액 기준 기업 순위를 비교해 보면 이런 변화는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1989년 당시 글로벌 기업의 시총 10위권에는 제조업 기반의 일본기업이 7개나 있었다. 하지만 30여년이 흐른 2018년 글로벌 기업 시총 10위권에서 일본기업은 찾아볼 수 없다. 1위 애플을 필두로 아마존·구글·마이크로소프트(MS) 등 인터넷 기반의 기업이 앞자리를 차지했다. 스마트폰과 IT에 기반한 기업이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산업 생태계의 변화를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1996년부터 5년 간격으로 글로벌 기업의 시총 순위 변화를 분석해 봤다. 1996년 글로벌 기업 시총 1위 기업은 ‘경영의 신’ 잭 웰치가 이끈 미국의 제조업체 제너럴일렉트릭(GE)이었다. 코카콜라는 2위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전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었던 일본의 통신기업 NTT와 도요타가 각각 4위와 5위였다. IT기업으로는 윈도95를 흥행시킨 MS(7위)가 유일했다.

스마트폰이 이끈 산업의 변화

2000년 초 정점을 찍었던 IT 시대에선 글로벌 기업의 시총 순위가 크게 달라졌다. GE가 여전히 1위를 지켰지만 MS가 2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인텔과 IBM도 각각 7위와 8위를 기록하며 글로벌 시총 순위 10위권에 진입했다.

2006년은 중국의 부상浮上 시기로 표현할 수 있다. IT 버블이 붕괴하면서 관련 업체의 순위는 아래로 밀렸다. 반면, 중국 고성장의 수혜를 입은 정유업체가 크게 약진했다. 미국의 정유사인 엑슨모빌이 GE를 밀어내고 1위를 차지했다.

러시아 국영 천연가스 기업 가스프롬(5위), 중국 석유·천연가스 회사 페트로차이나(6위), 영국 석유회사 로열더치셸(10위) 등이 10위권 안에 이름을 올렸다. 이 시기엔 국내에서도 에너지 관련 기업이 크게 부각됐다. 미래에셋증권이 중국 펀드를 출시해 큰 성과를 올린 것도 이 무렵이다.


그로부터 5년이 흐른 2011년엔 상황이 또 달라졌다. 2005년부터 시장에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스마트폰과 IT기업의 성장세가 더 가팔라졌다. 애플은 글로벌 시총 2위까지 올라갔고, 알파벳(구글)도 9위를 기록하며 10위권에 진입했다. 스마트폰과 IT 기업의 본격적인 상승세가 시작된 것이 2011년이었다는 것이다.

이후부턴 스마트폰과 IT기업의 천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6년엔 애플(1위)·알파벳(2위·구글 지주회사)·MS(3위)·아마존(6위)·페이스북(7위) 등이 글로벌 시총 상위권을 차지했다. 시총 순위 10위 중 절반이 스마트폰과 IT기업인 셈이다.


하지만 제조업체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 2011년까지 글로벌 시총 순위 1위를 차지했던 GE는 2018년 6월 다우존스지수 구성 종목에서 퇴출당했다. 1907년 GE가 다우존스 구성 종목으로 포함된 지 111년 만의 일이었다.[※참고: 다우존스는 뉴욕증권시장에 상장된 우량기업 주식 30개 종목의 주가를 바탕으로 다우존스지수를 산출한다.]

제조업을 대표했던 제너럴일렉트릭은 지난 2018년 다우존스 구성종목에서 퇴출당했다.[사진=연합뉴스]
제조업을 대표했던 제너럴일렉트릭은 지난 2018년 다우존스 구성종목에서 퇴출당했다.[사진=연합뉴스]

IT기업의 성장세는 더욱더 가팔라지고 있다. 지난 7월 16일 기준 글로벌 시총 1~10위 기업은 애플·MS·사우디 아람코·아마존·알파벳·페이스북·텐센트·버크셔 해서웨이·테슬라·알리바바다. 사우디 아람코와 워런 버핏의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를 제외한 8개 기업이 사실상 IT기업이라 할 수 있다. 애플과 알파벳이 시총 10위권에 진입한 2011년 이후 10년 만에 산업의 생태계가 ‘싹’ 바뀐 셈이다.

이런 변화는 국내 증시에서도 엿볼 수 있다. 코스피지수가 처음 1000포인트에 도달했던 1989년엔 포스코와 은행들이 시총 순위 상위권을 장악했다. 2000포인트를 기록했던 2007년에는 삼성전자·현대중공업·현대차·SK하이닉스 등 제조업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지수가 3000포인트를 달성한 올해는 반도체 기업을 필두로 네이버·카카오 등 인터넷 플랫폼 기업과 2차전지, 제약·바이오 기업이 상위권을 점령했다.


글로벌 시총 상위 10곳 중 8곳은 IT 기업

코스피지수가 1000포인트에서 3000포인트로 오르면서 은행 중심이었던 국내 주력 산업이 제조업에서 IT, 제약·바이오로 변화했다. 새로운 산업이 있었기 때문에 코스피지수가 3000포인트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코스피지수가 4000포인트, 50 00포인트로 상승하기 위해서 또다른 혁신산업이 필요한 이유다.

이를 위해선 산업의 흐름을 읽은 기업의 노력과 새로운 산업에 도전하는 창업가정신, 그리고 이를 뒷받침해줄 정부의 지원 등 많은 것이 필요하다. 산업의 흐름을 바꿀 혁신기업이 등장하기 위해선 과감한 투자와 기업이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거다. 무엇보다 기업의 도전과 혁신은 성장이 아닌 생존을 위한 것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투자자도 관점을 바꿔야 한다. 단기정보나 타이밍에 집착하기보단 시장의 변화를 주목하는 게 좋다. 떠난 물고기 찾는 못난 어부가 되는 걸 피하려면 수시로 바뀌는 산업의 흐름을 살펴야 한다는 얘기다.

글=정우철 바른투자자문 대표
www.barunib.com

정리=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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