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리포트 믿지 못하는 이유

▲ 전문가들은 “증권사 리포트를 맹신하기보다 자신만의 투자전략에 맞춰 증시 현황을 분석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국내 증권사 리포트는 믿을 만한가. 리포트가 제시한 목표주가는 추격해야 할까. 두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다. “신뢰할 수 없다”“추격하지 마라.” 국내 증권사 리포트 10개 중 7개는 기업실적이 과대 포장돼 있다. 국내 리포트에 의존하는 개미들의 손실이 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인투자자 김영훈(가명·40)씨는 올해 9월 두산인프라코어에 종잣돈을 투자했다. 모 증권사 리포트에서 해당 기업의 실적이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전망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이 리포트를 철석같이 믿었지만 ‘손실 부메랑’만 날아왔다. 실제로 발표된 두산인프라코어의 영업이익은 전망치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고 주가는 큰 폭으로 떨어졌다.

주가가 하락하자 해당 증권사는 오히려 저가매수의 기회라며 계속해 매수의견을 냈다. 리포트를 받아 본 김씨는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물타기(주식시장에서 매입한 주식이 하락했을 때 저가로 사들임으로써 매입평균단가를 낮추는 투자법)’를 시도했지만 주가는 더욱 하락했다. 결과적으로 손해만 키운 셈이다. 김씨는 리포트를 작성한 애널리스트를 원망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기업 눈치 보는 애널리스트

해마다 연말이면 증권사들이 일제히 코스피 주요 기업의 다음 연도 영업이익 전망치와 목표주가를 발표한다. 많은 개인투자자가 참고하는 이 증권사 리포트의 적중률은 얼마나 될까.
투자자의 기대와는 달리 국내 증권사가 제시하는 대부분의 종목은 목표주가에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적 전망치도 지나치게 부풀려진 것으로 밝혀졌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코스피 상장사 가운데 3개 이상 증권사가 분석한 157개 종목 중 6개월 목표주가 평균추정치(2011년 12월 말 기준)를 올해 상반기 말에 달성한 종목은 7개에 그쳤다. 157개 종목의 주가는 지난해 말 평균 11만2774원이었고 증권사들은 6개월 후 목표주가를 33.5% 상승한 15만562원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6개월 후인 올해 상반기 말 이들 기업의 평균주가는 11만3604원으로 0.7% 오르는 데 그쳤다.

영업이익 전망치는 실제 영업이익보다 높은 경향을 보였다. 2005년 1분기부터 올해 3분기까지 총 31개 분기 중 영업이익 평균전망치가 실제 영업이익보다 높았던 경우는 22개 분기(71%)에 달했다. 평균전망치가 실제보다 낮았던 경우는 8개 분기(25.8%)였고, 전망치가 실제발표와 같았던 경우는 1개 분기(3.2%)에 불과했다.

증권사들이 실적전망을 부풀린 것은 올해도 이어졌다. 증권사들은 지난해 말 올해 3분기 상장사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4%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지만 실제로는 26% 증가에 그쳤다.

목표주가와 실적전망에 대한 증권사 리포트가 어긋나는 이유는 애널리스트와 기업의 관계에 있다. 담당하는 기업의 주가와 실적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할 경우 담당기업으로부터 항의전화를 받거나 불리한 대우를 받아서다. 애널리스트는 기업 주식담당자와의 네트워크가 중요하기 때문에 기업의 반응을 무시할 수 없다.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목표주가를 크게 낮추거나 매도의견을 낼 경우 기업탐방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며 “한국 증권시장에서 소신대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실적전망에 대한 정보를 기업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받는다는 점도 문제다. 기업들이 자사에 불리한 정보를 노출하지 않으면 증권사는 객관적인 실적 전망을 도출하기 어렵다. 게다가 투자자들을 증시에 끌어들이려는 증권사의 욕구도 애널리스트들이 예상실적이나 목표주가를 쉽게 하향조정하지 못하게 만든다.

외국계 증권사는 매수 일색인 국내 증권사와는 달리 비중감소나 매도의견의 평균 비중이 16.8%에 달한다. 이들은 기업과의 관계에 자유롭기 때문에 비교적 객관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외국인이나 기관투자자들이 외국계 증권사의 매도의견을 따르고 있는 이유다.

▲ 증권사들이 분기마다 예측하는 상장사들의 실적과 목표주가가 실제 숫자보다 크게 부풀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진은 여의도 증권사 빌딩들.
실제로 올 2월 초 CLSA증권이 LG전자의 목표주가로 실제 주가보다 30% 이상 낮은 6만2000원을 제시하며 매도 의견을 담은 리포트를 낸 적이 있다. 당시 대부분의 국내 증권사는 지난해 4분기 영업실적의 흑자전환을 근거로 목표가를 올리기 바빴다.

결과는 CLSA증권의 예측대로였다. LG전자의 주가는 CLSA의 리포트 발표 이후 계속 떨어져 7월에는 5만원대까지 하락했다. 결국 국내 증권사의 리포트를 믿은 개인투자자만 큰 피해를 본 것이다.

국내 증권사가 제시한 목표주가가 외국계 증권사의 목표주가를 크게 웃도는 사례도 많다. 한때 게임업계 대장주였던 엔씨소프트는 9월 초만 해도 주가가 30만원에 육박했지만 석 달이 채 지나지 않아 15만원대로 반토막 났다. 이 기간 국내 증권사들은 큰 폭의 하락세에도 목표주가를 30만~40만원을 유지했다. 모 증권사는 “다시없는 저가매수의 기회”라며 적극추천하기도 했다.

엔씨소프트의 지속적인 주가하락의 이면에는 외국계 증권사의 매도의견 보고서가 있었다. 올 2월 엔씨소프트에 대해 첫 매도의견을 제시한 이후 수차례 목표주가를 하향조정한 시티증권은 11월 7일 “3분기 영업이익이 예상보다 20% 부진했다”고 평가하며 목표주가를 18만원에서 15만원으로 대폭 낮췄다.

기관들은 씨티은행의 리포트에 충실했다. 보고서가 나온 직후인 11월 8일 기관은 무려 36만주를 순매도했고 11월 19일까지 8거래일 연속 매도세를 이어갔다. 이 기간 순매도량만 75만주에 이르렀다. 애널리스트들은 터무니없이 높은 목표주가를 제시하며 개미들을 끌어들이는 동안 기관은 팔아치우는데 급급했던 거다.

 
리포트 수치 맹신은 금물

증권사 리포트를 맹신하는 것은 금물이다. 상대적으로 정보를 얻을 창구가 부족한 개인투자자들은 증권사 리포트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증권사 리포트를 곧이곧대로 믿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사 연구원은 “주가가 하락할 경우 목표주가를 하향조정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애널리스트가 손을 대지 않는다”며 “그럴 경우 하락세임에도 목표주가와 실제가격의 괴리율이 커져 투자자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다”고 말했다. 그는 “증권사 리포트는 기업의 상황·업황을 파악해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가이드 정도로 활용해야 한다”며 “종목을 살 때는 리포트의 투자의견보다는 자신만의 투자전략에 따라 정확하게 분석해 정석대로 장기투자를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최영구 금융투자협회 부장은 “일반투자자의 경우 제목·투자의견·목표가만 읽고서 목표가격과 실제가격의 차이가 많이 나면 강력추천하는 것으로 오인한다”며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긍정적인 시장상황을 전제로 깔고 목표가격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심하용 기자 stone@thescoop.co.kr | @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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