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속 찾아가는 도서관
이동도서관 따라간 길
독서 경험 키우는 수단

책을 가득 실은 작은 버스가 아파트 단지에 조용히 멈춰 선다. 이동도서관이다. 아파트 복판에 자리를 잡은 이동도서관은 언제나 슈베르트의 ‘송어’를 틀었다. 아파트 단지 사람들에게 ‘도서관이 왔어요’라고 알려주는 신호였다. 그럴 때면 가방에 책을 잔뜩 넣어온 할아버지나 아이의 책을 대신 빌리러 온 아주머니, 같은 학교에 다니는 초등학생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모두 책을 빌리러 온 사람이었는데, 어렸을 때 기자도 거기에 있었다. 그래서 기자는 슈베르트의 송어가 흘러나오면 이동도서관이 오버랩되곤 한다. 

하지만 많은 이에게 이동도서관은 생경한 존재일지 모른다. 그만큼 이동도서관은 사회의 ‘관심 밖’에서 동네를 다녔고, 그 때문에 조금씩 기운을 잃고 있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이동도서관이 ‘교육사각지대를 메워줄 작은 대안’으로 떠오른 건 그래서 흥미롭다. 더스쿠프(The SCOOP)는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코로나19 시대와 교육 불평등의 문제점을 취재했다. 코로나19로 교육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의 현주소를 짚어봄과 동시에 ‘바이러스 시대’에 우리가 무엇을 더 준비해야 하는지도 살펴봤다. 그 일곱번째 편 ‘이동도서관의 길’을 소개한다. 

[코로나19와 교육사각지대➐] 도서관이 달리자 사각이 사라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이동도서관은 50년 전 종로도서관에서 탄생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1971년 서울 종로구에서 책 700여권을 실은 차가 서울 전역을 돌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이동도서관이었다. 50여년 전 처음 만들어진 이동도서관은 탄생할 때부터 ‘도서관이 없는 동네의 가정과 변두리 학교’를 목적지로 삼았다. 국민 모두에게 독서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종로도서관에서 첫 운행을 시작했던 이동도서관은 이제 전국 2000여곳을 순회하는 공공 서비스로 성장했다. 문제는 이런 이동도서관의 입지가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는 점이다. 2017년 2255곳이었던 순회 장소는 2019년 2158개로 약 4% 줄었다. 

언덕 위 도서관

하지만 이동도서관의 의미까지 사라진 건 아니다. 오히려 코로나19로 외출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일반 도서관이 아닌 이동도서관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도 있다. 아울러 이동도서관이 코로나19로 더 커져버린 ‘교육사각지대’를 메울 솔루션을 제공할 가능성도 있다. ‘정기적으로’ 주택가를 방문하는 이동도서관의 특성은 일반 도서관이나 코로나19 시대 속 학교가 가질 수 없는 장점이다. 

그래서 더스쿠프(The SCOOP)는 직접 이동도서관의 운행을 따라다녀 보기로 했다. 그 대상으론 경기도 성남시의 새마을문고 이동도서관을 선택했다.[※참고: 이동도서관은 공공과 민간 운영으로 나뉜다. 새마을문고 중앙회는 이동도서관을 운영하는 대표적인 민간단체다.]

지하철 8호선 단대오거리역에 내리면 바로 고가도로가 보인다. 고가도로의 끝은 언덕 중턱에 걸쳐진다. 한창 공사 중인 아파트 단지의 경계를 따라 언덕을 오르다 보면 정상까지는 10분 조금 넘는 시간이 걸린다. 오래된 주택이 모여있는 동네에는 일주일에 한번 이동도서관이 찾아온다. 주민센터 앞이 바로 그 정류장이다.

오전 10시. 이동도서관이 오기로 한 시간이다. 한치의 오차 없이 이동도서관은 약속 시각을 지켰다. 파란색 소형 버스가 언덕 아래에서부터 머리를 드러냈다. 주민센터 앞에 정차한 이동도서관은 창문을 개조한 양날개를 활짝 펼쳤다. 유리창이 있어야 할 자리에 책이 빼곡했다. 어릴 때 보던 모습에서 크게 달라진 점이 없었다. 어린이들이 높이 있는 책을 뽑아 볼 때 필요한 발 받침대도 버스 옆에 놓였다.

 

코로나19 이후 이동도서관을 이용하게 된 사람들도 있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코로나19 이후 이동도서관을 이용하게 된 사람들도 있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이동도서관이 한 정류장에 머무르는 시간은 1시간이다. 그 시간이 지나면 다음 순회 장소로 떠난다. 이동도서관의 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용자가 마음을 먹고 시간을 정해 방문하는 일반도서관과 달리 시간에 맞춰 알아서 찾아온다. 도서관에 갈 시간을 따로 정해주는 셈이다. 

이른 오전 시간이라 그랬는지 이용자가 많지는 않았다. 혹시라도 도서를 빌리러 오는 어린이나 청소년이 있다면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이동도서관 정류장 근처에서 기다려보기로 했다.

이동도서관이 정차한 지 30분쯤 지났을 때 초등학생 한명과 보호자가 책을 빌려 나오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손가방에는 책이 잔뜩 들어있었다. 떠나려던 두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보호자의 손을 잡고 나온 어린이는 자신을 초등학교 4학년이라고 소개했다.[※참고: 코로나19 방역 방침에 따라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에서 거리를 두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기자 : “언제부터 이동도서관을 이용했나요?”
보호자 : “이제 이용한 지 1년쯤 됐네요. 지난해부터예요.”
기자 : “이동도서관이 운행 중이라는 건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보호자 : “동네 이웃들이 말해줬어요. 그전에는 몰랐죠.”
기자 : “이동도서관을 이용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코로나19 때문이었나요.”
보호자 : “맞아요.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친구들을 못 만나다 보니까 아이가 많이 심심해하더라고요.”

책을 읽는 어린이와도 이야기를 나눠봤다.

기자 : “주로 어떤 책을 읽나요.”
어린이 : “만화책을 많이 빌려요.”
기자 : “책을 읽으면 뭐가 제일 좋아요?”
어린이 : “(웃음) 재밌으니까.”

당연하고도 솔직한 대답이었다. 어린이의 대답을 듣고 이동도서관에 꽂혀 있는 도서를 살펴봤다. 역사 만화나 과학 만화처럼 어린이들의 흥미를 끄는 학습 만화가 많았다. 만화라면 일단 흰자를 드러내며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책을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하려면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다. 짤막한 인사를 나누고 모녀와 헤어졌다.

 

학교를 가지 않는 상황에서 학습 흥미를 이끌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교실은 온라인에서 학생들을 만나지만 이동도서관은 다르다. 집 앞까지 직접 찾아갈 수 있다. 독서 시간이 학습 태도를 바꾸고 성적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연구(※참고: 더스쿠프 통권 452-453호 이동도서관은 달리고 싶다)로도 증명됐다. 등교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주택가 옆 도서관의 중요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코로나19 국면에서 불거진 ‘교육사각지대’를 이동도서관으로 조금은 메울 수 있지 않을까. 궁금증을 품은 채 이동도서관의 또다른 정류장으로 향했다. 분당구에 있는 두번째 정류장은 시간을 계산해보니 따라잡기가 어려울 것 같아 성남에 있는 공립도서관을 거쳐 세번째 정류장으로 가보기로 했다. 

언덕을 따라 내려왔다. 다시 지하도를 건넜다. 다시 또 언덕이다. 어릴 적에는 가방에 책을 몇권씩 넣고 오르던 길이었다. 가파른 희망대공원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경기 성남교육도서관이 나온다. 언덕에 있지만 도서관 근처까지 오는 버스가 없어 차를 타고 오거나 직접 걷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아파트에는 도서관 있다지만

도서관은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가 완료되기 전까지는 전자책만 대출이 가능했다. 대부분의 도서관은 이렇게 언덕 위처럼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에 있다. 도서관이라는 시설의 특성 때문이다. 

책을 보관하고 사람들이 앉을 넓은 장소가 필요하지만 수익을 낼 수 있는 시설은 아니다. 땅값이 저렴한 곳에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도서관이 일반 시민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방책을 계속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동도서관의 함의는 상당하다. 

교육도서관을 지나 다시 도로로 향했다. 언덕길을 올라왔으니 다시 또 내려갈 시간이다. 이곳에서도 주택 재개발이 한창이었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아파트 단지는 대부분 ‘도서관’을 단지에 품는다.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500세대 이상의 공동주택에는 1000권 이상을 보유한 작은 도서관을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신축 아파트라면 이동도서관이 올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는 곳에 따라 접할 수 있는 문화 시설에도 차이가 생긴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공립 도서관을 지나 이동도서관의 다음 정류장으로 향했다. 오후 3시. 역시 이번에도 언덕길을 올라야 했다. 주공아파트의 주차장에 멈춰선 새마을문고 이동도서관 앞에서 이번에는 관계자와 직접 이야기를 나눴다.

기자 : “코로나19로 운영에 변화가 있나요.”
관계자 : “QR코드를 체크하고 출입자 명부를 만들고 있어요. 일도 더 늘었어요.”
기자 : “어떤 부분에서 일이 더 늘었나요.”
관계자 : “반납되는 모든 책은 가방 하나에 담고 소독도 따로 진행해요. 일손이 더 필요할 수밖에 없어요.”
기자 : “도서관의 특성상 불특정 다수가 책을 만지게 될 텐데요.”
관계자 : “맞아요. 책을 읽으려면 반드시 손으로 잡아야 하잖아요. 접촉을 최대한 줄이려고 예약 시스템으로 운영을 했어요. 시민들이 원하는 책을 미리 차에 싣고 오는 거죠. 손 소독제 사용도 계속 공지하고 있습니다.”
기자 : “청소년들이 학교에 직접 등교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는데 이용자에 변화가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관계자 : “많진 않았지만 중학생 한명이 왔어요. 집에서 수업을 받다가 나온 거였죠.”
기자 : “오전에 집에 있으니 올 수 있었던 거군요.”
관계자 : “맞아요. 그전에는 동네에 이동도서관이 온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더라고요. 아이들이 격주로 등교를 하다 보니까 책을 반납하러 그 친구 동생이 대신 올 때도 있어요.”
기자 : “한명이 더 늘었네요.”
관계자 : “그런 셈이죠.”

일주일에 이동도서관 차 한 대가 멈춰서는 정류장은 20개에 이른다. 벽돌 하나 없이 만들어진 도서관이 20곳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언덕길을 오르는 이동도서관은 2021년에도 여전히 달리고 있다. 언젠가 만나게 될 또 다른 이용자를 위해서다. 

재택 수업을 받는 중학생이나 멀리 있는 도서관까지 데려다 줄 보호자가 없는 어린이들은 이곳에서 책을 빌리고 여유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매주 만나게 되는 누군가는 짧은 시간일 뿐이라면서 의미를 두지 않겠지만, 코로나19로 학력 격차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이동도서관이 제공하는 1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이 특별한 시간을 선물하는 게 우리의 몫이 아닐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 이 콘텐츠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 받아 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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