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 앨리스의 불편한 진실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가 연일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동네빵집의 절절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하면서 서민의 폭발적인 반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청담동 앨리스에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동네빵집을 사지로 몰았다고 비판을 받는 대형 프랜차이즈 제과업체 파리바게뜨가 협찬사라서다.

▲ 청담동 앨리스에 제작지원하는 파리바게뜨가 드라마 곳곳에 등장하고 있다. 사진은 한세경(문근영 분)과 서윤주(소이현 분)가 파리바게뜨에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
SBS 주말드라마 청담동 앨리스가 연일 화제다. 똑똑하고 순수하지만 가난한 여주인공의 ‘청담동 며느리 입성 프로젝트’를 다루며 2030세대 여성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드라마 여주인공 한세경(문근영 분)은 청담동 입성을 위해 결혼을 일생일대의 비즈니스로 삼고 좌충우돌한다. 그가 청담동 며느리를 목표로 삼은 이유는 가난이다.

세경은 높은 학력과 탄탄한 스펙에도 유학을 가지 못했다는 이유로 오랜 시간 백수생활을 한다. 3년 만에 취업한 회사에서 맡은 업무는 대표 부인의 심부름이다. 충격적인 사실은 대표 부인이 학창시절 자신보다 잘 하는 게 많지 않았던 친구라는 점이다. 드라마는 취업난에 시달리는 20대의 눈물과 50대 하우스푸어의 슬픔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많은 이의 공감을 얻고 있다.

드라마에서 50대 하우스푸어의 슬픔은 세경의 아버지 한득기(정인기 분)에 투영돼 있다. 동네빵집을 운영하던 세경의 아버지는 30년 동안 운영하던 빵집(동네빵집)을 닫아야 하는 처지에 내몰린다. 건너편에 오픈한 대형마트와의 경쟁에서 밀린 게 이유였다. 12월 9일 방영분(4회차)에서 득기는 이렇게 말한다. “집 팔고 전세 가자. 빵집도 처분했어. 코앞에 JK마트 생긴 이후로 계속 마이너스야. 끼고 있어 봤자 빚만 더 늘어.”
대형마트의 저가공세로 빵집을 닫고 졸지에 실업자가 돼 버린 득기는 세경에게 이렇게 말한다. “미안하다. 아빠가 더는 못하겠다. 나도 이 나이쯤 되면 내 이름으로 된 집 한칸 갖고 있다가 너희들에게 물려줄 줄 알았어. 그런데 서울에 쌔고 쌘 게 아파트인데 내 것 하나가 없다. 30년간 너희들 키운 빵집 처분하고 남은 건 고작 500만원. 30년 세월의 대가다.”

누가 동네빵집을 죽였나

 
득기의 집 창문으론 대형마트 JK로 몰리는 손님, 왕큰빵을 2000원에 판다는 전단이 오버랩된다. 생계에 내몰린 자영업자의 어려운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헤비급이랑 라이트급이랑 싸우는데 어떻게 이기냐”는 득기의 일침처럼 라이트급의 동네빵집(득기의 빵집)은 헤비급의 대형마트와 상대 자체가 되지 않는다. 정부가 발의한 유통개정법안(대형마트 월 2회 의무휴업과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내용)이 최근 국회를 통과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드라마는 대형마트의 공격적 영업으로 설자리가 좁아지는 골목상권의 애환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동네빵집을 사지로 내몰았다고 비판받는 대형 프랜차이즈 제과업체 파리바게뜨가 이 드라마를 지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파리바게뜨는 청담동 앨리스의 메인 제작지원 업체로 드라마 전반에 배경으로 자주 등장한다. 드라마 관계자에 따르면 제작지원 메인업체로 참여하려면 5억원 이상을 써야 한다. 제품을 노출하려면 추가비용이 발생한다. 파리바게뜨로선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불하며 드라마를 지원한다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드라마 등장인물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 대부분이 파리바게뜨다. 주인공들은 파리바게뜨 케이크를 먹으며 중요한 이야기를 나눈다. 등장인물 중 하나는 파리바게뜨 매장 점주로 나온다. 극중 세경과 러브라인을 형성하고 있는 재벌2세 차승조(박시후 분)가 개최하는 명품브랜드의 VVIP파티에도 파리바게뜨 케이크가 등장했다.

이런 과도한 간접광고(PPL)에 눈살을 찌푸리는 시청자도 많다. 한 시청자는 자신의 블로그에 이런 글을 올렸다. “드라마 제작 과정에서 PPL을 배제하기 힘들다는 건 알지만 심한 것 같다. 서울에 좋은 곳도 많은데 왜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파리바게뜨에서 만나는지 모르겠다.” 또 다른 시청자는 “명색이 명품브랜드 VVIP 파티에 파리바게뜨 케이크가 등장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PPL 논란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드라마 제작비는 일반적으로 수십억원이 넘는다. 드라마 회당 제작비가 2억~3억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납득이 되는 금액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PPL이 아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동네빵집 논란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면 이 드라마가 불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동네빵집을 대변하는 대한제과협회(제과협회)는 지난해 12월 5일 기자회견을 열고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 두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을 고발했다. 이들의 무분별한 확장으로 동네빵집이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는 게 고발이유였다. 지난해 10월 기준 두 업체의 매장수는 파리바게뜨 3200개, 뚜레쥬르는 1250개다. 반면 동네빵집의 수는 갈수록 줄고 있다. 이성구 제과협회 부회장은 기자회견에서 “2000년만 해도 동네빵집은 1만8000개에 달했다”며 “하지만 프랜차이즈 제과점이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살아남은 동네빵집이 4000여개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제과협회는 제빵업종을 중소기업적합업종(중기적합업종)으로 지정을 요구하고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에 더 이상의 출점을 금지하는 총량제를 요구했다. 뚜레쥬르는 “상생 차원에서 추가 확장을 자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파리바게뜨는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제과협회와 파리바게뜨가 대립각을 세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처럼 파리바게뜨는 동네빵집과 상생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런데 동네빵집의 어려움을 생생하게 비판하고 있는 드라마에 파리바게뜨가 협찬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색하다. 특히 드라마에서 주인공 아버지가 빵집문을 닫은 게 대형마트 때문이라는 설정이 그렇다.

자칫하면 동네빵집의 몰락이 대형마트 때문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실제로 주인공 아버지 빵집이 동네마트 때문에 망한 것도 모자라 대기업의 도움을 받아 로얄크라상(파리바게뜨)에 제빵사로 취직한다.
파리바게뜨 관계자는 “원한다고 해서 작가가 내용을 마음대로 바꿔주는 것은 아니다”라며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빵집이 망하는 이유가 대형마트라고 나왔다 해서 이를 확대해석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 크리스마스 대형마트의 케이크 판매는 늘어났는데 파리바게뜨의 판매량은 오히려 13% 줄었다”고 덧붙였다.

▲ 청담동 앨리스 협산사가 대형마트였다면 파리바게뜨가 동네빵집을 죽이는 스토리가 전개됐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관계자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한 영화 관계자는 “협찬사에 따라 시나리오가 바뀌는 일은 비일비재하다”며 “한 유명 영화의 경우 협찬사의 요청으로 시나리오를 37번이나 고쳤다”고 말했다. 또 다른 드라마 작가는 “기획단계에서 협찬사의 요청에 따라 시나리오가 바뀌는 것은 주변에서 흔한 일”이라며 “대형마트에서 협찬을 했다면 파리바게뜨 때문에 동네빵집이 망하는 시나리오로 전개됐을 게 뻔하다”고 말했다.

과도한 PPL 보다 더 큰 문제는…

드라마는 픽션이다. 하지만 청담동 앨리스는 방영 초부터 사회문제를 꼬집으면서 화제가 됐다. 하지만 빵집만은 소비자의 눈을 속이고 있다. 겉으론 빵집을 비판하고 있지만 대형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대형마트를 공격하고 있다. 문제는 동네빵집 점주들마저 대형마트보다는 프랜차이즈가 더 생존권을 위협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서중 대한제과협회 회장은 “대형마트가 동네빵집에 미치는 영향력은 미비하다”며 “파리바게뜨가 막대한 마케팅 자금을 도입해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슬픈 동네빵집 주인과 가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 청담동 앨리스를 보면볼수록 불편한 이유다. 
김미선 기자 story@thescoop.co.kr|@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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