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코로나 시대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면서 스멀스멀 피어나던 우리의 희망이 ‘변이’로 명찰을 바꿔 단 바이러스의 기세에 눌려 다시 주저앉고 있다. ‘백신 주권’을 갖지 못했으니 대한민국과 한낱 외국 기업의 납품계약은 별 의미가 없다. 팬데믹을 종식할 게임 체인저인 백신을 갖지 못한 국가의 국민은 그저 매몰된 지하에서 구조대를 기다리는 조난자와 다를 바 없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젊은층에 어울리지 않는다. 위드 코로나 시대가 빨리 열려야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회적 거리두기는 젊은층에 어울리지 않는다. 위드 코로나 시대가 빨리 열려야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얼마 전 백신을 예약하던 집사람의 예를 들어보자. 오후 8시에 예약이 시작됐는데, 컴퓨터 화면에 대기시간 1400분, 대기자 8만명이란 자막이 뜬다. “IT강국 맞네, 50대의 스마트폰 이용률도 선진국답고….” 중얼거리는 필자를 돌아보는 아내의 표정이 비아냥대느냐는 듯 험상궂다. 누군가의 노쇼(No-show) 덕분에 백신을 접종해 ‘예약 지옥’을 피한 남편이 영 마땅치 않은 것이다.

팬데믹에 집구석에서 근육이라도 붙일 심산으로 아령을 들던 필자는 저항 운동을 멈춤과 동시에 지금은 아내에게 저항할 때가 아니란 걸 깨닫는다. 이름이 깡으로 끝나는 과자 한 움큼과 얼음을 던져 넣은 커피를 분이 안 풀린 아내 옆에 공손히 들이밀고 노트북의 전원을 켠다.

대리 예약으로 아내를 돕고자 접속을 해보니 시간도, 접종 희망자도 오히려 큰 폭으로 늘어나 있다. 단시간에 재산이 이렇게 급증하면 얼마나 좋을까.


망연자실하게 화면을 바라보던 필자는 2년을 향해 달리는 팬데믹 시대의 삶이 문득 떠올랐다. 뭉치면 죽고 흩어져야 산다고 했으니 마스크 쓴 채 헉헉대며 일하다 땅거미가 깔리면 온전히 집으로 가야 하는 참 이상한 시대다. 

올해 대학을 들어간 필자의 쌍둥이는 입학식도 못 한 채 비대면 수업으로 지난 학기를 마감했다. 큰 녀석 여자 친구는 등록금 내고 다니는 학교를 아직 한 번도 간 적이 없다고 한다. 자녀들이 다니는 대학을 주말에 가족들이 견학을 가서 차로 둘러보는 형편이다. 심지어 지난해 입학한 전문대 학생들은 동기생도 제대로 못 본 채 졸업을 할 지경에 이르렀다. 

인간은 집단 속에서 공존하고 기대며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런 면에서 만날 사람과 갈 곳이 대략 정해진 기성세대에 비해 정해지지 않은 길을 가고 다양한 이들을 접하며 온 세상의 이치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여야 할 젊은 세대와 거리두기는 어울리지 않는다. 

젊은이뿐만이 아니다. 거리두기로 더욱 소외된 독거노인과 장애인의 사회적 피해, 4단계 지속으로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벼랑에 몰린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경제적 피해 등은 어떻게 감당해 나갈 것인가. 

코로나19에 맞서는 우리의 목표 중 집단 면역은 애당초 백신의 개발 취지와 맞지 않는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에 맞서는 우리의 목표 중 집단 면역은 애당초 백신의 개발 취지와 맞지 않는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비단 특정 계층의 일이 아니라 일반 국민 역시 사적 모임 규제와 다중이용시설 제한 등 거리두기의 피로감을 감당하기 쉽지 않다. 코로나19에 맞서는 우리의 목표 중 집단 면역은 애당초 백신의 개발 취지와 맞지 않는 허망한 희망에 불과했다. 백신의 개발 자체는 위중증으로 가거나 사망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지 감염 자체를 원천적으로 막는 게 아니다.

감염이란 세균·바이러스 등 미생물(물론 바이러스를 생물로 혹은 무생물로 볼 것인가는 논란이 있다)이 우리 몸에 들어와 그 수가 많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미생물이 과하게 증식해 열·염증 등 증상이 발생했다면 ‘감염 질환’이란 딱지가 붙고, 세를 불리는 게 보잘것없어 해가 없다면 ‘무증상 감염’이라 불린다. 

백신은 세균이나 바이러스 따위가 아예 접근을 못 하도록 막는 철통 요새를 세우는 게 아니라 특정 감염체를 기억하는 보초나 경계병을 세우는 것에 가깝다. 항원 기억이 생생하고 오래갈 수 있는 생리적 특성을 갖는 백신을 효과가 좋은 백신이라 할 수 있다. 


노인, 고위험군, 더 나아가 20대 이상의 접종이 완료되면 치명률은 현저히 낮아져 코로나19는 독감 수준의 질환 정도에 그칠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없이 자발적 마스크 쓰기와 손 씻기 생활화 정도로 충분히 바이러스와 공존하는 ‘위드 코로나’ 전략으로 살아갈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박창희 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 교수 
hankookjo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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