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 빛과 그림자

지난 6월, 어느 스타트업 대표의 SNS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가끔은 일찍 상장한 게 후회스럽다.” 이 회사는 지난 몇 년 간 빠르게 성장해 경쟁자를 제치고 업계 1위에 오른 곳이었다. 그런 스타트업을 일궈낸 CEO가 왜 IPO 회의론을 설파한 걸까. 더스쿠프(The SCOOP)가 IPO 시장의 빛과 그림자를 살펴봤다.

지난해부터 투자시장이 과열돼 기업공개(IPO)와 벤처투자 시장도 활황이다. [사진=뉴시스] 
지난해부터 투자시장이 과열돼 기업공개(IPO)와 벤처투자 시장도 활황이다. [사진=뉴시스] 

기업공개(IPO) 시장이 호황을 이어가고 있다. 투자 열풍과 풍부한 유동성 덕에 올해 상반기 공모금만 무려 5조8000억원대를 기록했다. 2020년 한해 공모금(4조5426억원)을 훌쩍 뛰어넘은 규모다. 카카오뱅크·제주맥주·SKIET 등 청약 흥행에 성공한 기업도 많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컬리·야놀자·쏘카·비바리퍼블리카 등 많은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설립 10년 이하 비상장사)이 IPO를 추진하고 있다. 

숱한 스타트업이 IPO를 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투자금을 회수하고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다. 이는 스타트업 생태계가 ‘선순환’하는 데 꼭 필요한 절차이기도 하다.

유효상 유니콘 경영경제연구원장(전 숭실대 교수)은 “창업~투자~성장~엑시트~재창업·재투자의 선순환 구조가 이어져야 더 많은 스타트업이 생긴다”며 “자금 회수뿐만 아니라 함께 고생한 직원에게 수익을 나눌 수 있고, 시장에 공개되면서 신뢰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IPO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랜 업력業歷을 가진 기업 중에서도 IPO를 시도했다가 실패하는 곳이 적지 않다. 스타트업 중 IPO에 성공하는 곳도 채 1%가 되지 않는다.

유니콘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의 공유오피스 업체 위워크는 2019년 IPO에 실패했고, 미국 증시 상장을 노리던 컬리는 국내 상장으로 방향을 바꿨지만 주관사 선정을 미루면서 또 지연됐다. 공모 흥행 여부는 둘째 치고 상장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거다. 신한금융투자가 8월 발표한 ‘상장하지 말 걸 그랬어요’란 제목의 리포트가 눈길을 사로잡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푸드테크 업체 ‘푸드나무’를 분석한 리포트였다. ‘랭킹닭컴’ ‘피키 다이어트’ ‘개근질마트’ 등을 운영하는 푸드나무는 2018년 10월 업계 최초로 코스닥 시장 상장에 성공했다.

이 회사는 그 이후 3년간 다이어트·헬스 열풍을 타고 예상을 훌쩍 넘는 규모로 성장했는데, 리포트는 “일찍 상장한 탓에 기업가치가 고평가될 기회를 놓쳤다”고 짚었다. 최근 비상장 이커머스 기업에 3배 이상의 PSR(주가매출비율=시가총액을 매출로 나눈 값)을 매기는 추세인 만큼 지금보다 3~5배의 평가는 받을 수 있었다는 거다.

정말 상장 이후 기업가치가 저평가될까. 전문가들은 “상장을 하면 IPO 때와 다른 방식으로 기업가치가 책정되기 때문에 낮아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IPO 과정에선 벤처캐피털(VC) 등 소수의 투자자가 기업가치를 판단한다. 이들은 막대한 투자금을 넣은 만큼 높은 수익을 위해 기업가치를 극대화한다. ‘프리미엄’ 혹은 ‘버블’이 생기는 이유다. 

엑시트 위한 효율적 수단이지만…


하지만 상장 이후엔 기관·개인투자자 등 시장의 수많은 주체가 기업가치를 판단한다. 이들은 기업의 수익성과 미래 성장성을 가늠해 주식을 계속 보유할지, 팔아서 수익을 실현할지 결정한다.

중소기업·스타트업을 전문으로 분석하는 나승두 SK증권 애널리스트는 “상장 이전에는 투자자가 기업의 매력을 부각해 최대한 가치를 높인다면, 상장 이후엔 실현 수익률을 고정하거나 차익 실현을 하려는 니즈가 커진다”며 “(투자자가) 기업가치를 보수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기업은 성장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기업의 성장률은 완숙기에 접어들수록 완만해진다. 기업이 좋은 실적을 내더라도 가치가 가파르게 오르지 않을 수 있다는 거다. 반면 불안정한 스타트업의 성장률은 꾸준히 실적을 내는 기업보다 높다. 성장성을 가치평가의 지표로 삼는다면 기업가치는 상장 전보다 낮아질 수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전문가는 “기업은 IPO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면서도, IPO가 기업에 유리하냐는 질문엔 “케이스 바이 케이스” 혹은 “선택의 문제”라며 여지를 둔다. IPO 이후 기업이나 경영진에게 미치는 영향이 꼭 긍정적이지만은 않아서다.  

그렇다면 자금 조달을 위해서 IPO는 필수불가결한 단계일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투자시장 호황으로 투자금을 끌어올 방법이 다양해져서다.

나수미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의 모태펀드가 시장서 마중물 역할을 하면서 국내 벤처투자 업계에 자금이 풍부해진 상황”이라며 “자금 조달의 관점에서 보면 지금은 스타트업이 사업하기 좋은 환경”이라고 말했다. 나 애널리스트도 “기술력이 괜찮다면 좋은 조건으로 자금을 모을 수 있다”며 “전환사채(CB) 등 낮은 금리로 돈을 조달하는 방법도 다양해졌다”고 설명했다.

IPO가 꼭 필요한 단계가 아닌 이유는 또 있다. 한창 성장하는 스타트업엔 상장이 각종 ‘족쇄’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각종 금융 규제의 적용을 받고 정보공개 등 지켜야 할 의무가 늘어난다. 김민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스타트업에 사람과 기술 등 무형의 요소가 경쟁력”이라며 “정보의 비대칭을 해결하기 위함이지만 기업엔 리스크가 된다”고 전했다. 
 

숱한 스타트업이 IPO를 시도하지만 성공하는 곳은 적다. [사진=뉴시스[
숱한 스타트업이 IPO를 시도하지만 성공하는 곳은 적다. [사진=뉴시스[

주주의 ‘눈치’를 보느라 신사업을 주저하게 되는 것도 문제다. ‘젝시믹스(애슬레저)’ ‘포켓도시락(다이어트식)’ ‘젤라또팩토리(네일)’ 등을 운영하는 브랜드엑스코퍼레이션의 강민준 대표가 지난 6월 개인 SNS에 올린 글에서도 이런 고민이 드러난다. 강 대표는 글에서 “가끔은 코스닥 상장을 왜 이렇게 일찍 했을까 후회하기도 한다”고 토로했다.[※참고: 브랜드엑스코퍼레이션은 2020년 8월 코스닥시장에 상장했다.]

“상장사는 이익이 전 분기보다 감소하면 바로 주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신규 사업을 소극적으로 전개해야 합니다. 저는 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명이 있습니다. … 신규 프로젝트는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의 자금이 들어갑니다. 비상장사는 이익이 감소해도 신규 사업을 눈치 보지 않고 적극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참고: 브랜드엑스코퍼레이션은 3분기에 이익이 증가할 것으로 보고 주주에게 이익을 환원하기 위해 지난 9일 분기배당을 결정했다.] 

강 대표처럼 성장성을 위해 사업을 다방면으로 확장하고 싶다면 IPO를 서두르지 않는 게 유리할 수 있다는 거다. 김민기 연구위원도 비슷한 조언을 했다. “회사가 브레인스토밍을 하며 성장하는 단계라면 회사를 믿어주는 소수의 투자자를 찾는 게 서로에게 윈윈이다. 사적 자본 시장이 커지고 있는 만큼 자금조달에 제약이 없다면 비상장 상태로 남는 게 나을 수 있다.” 기업이든 투자자든 IPO의 빛과 그림자를 따져봐야 한다는 얘기다.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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