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꿈꾸는 이예지 학생의 고민

이예은(21) 학생은 아이돌을 꿈꾸고 있습니다. 아이돌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컴퓨터공학과를 다니고 있지만 춤과 노래 연습을 꾸준히 하며 무대 위에 설 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안함은 자꾸만 커져갑니다. 아이돌에 ‘올인’했다가 실패하면 어떡하나 하는 조바심 때문입니다.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는 아이돌 지망생이 숱한데, 경쟁력이 있을까’란 두려움도 많습니다.

가수 김현철(53)은 그런 예은 학생에게 “자질은 충분하다”며 격려를 보냈습니다. “꾸준히 준비하세요. 우연한 기회도 노력하는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법입니다. 분명 그때가 올 겁니다.”

지금부터 두 사람의 ‘티토링(Tea-toring)’을 공개합니다. 티토링은 더스쿠프(The SCOOP)와 멘토링 전문 NGO 러빙핸즈, 한국사회공헌협회가 공동으로 기획한 ‘멘토링 프로젝트’입니다. 꿈을 꾸는 청년 멘티와 꿈을 이룬 멘토를 매칭해 차 한잔을 마시면서 공감대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입니다. 티토링 그 일곱번째 편, 아이돌을 꿈꾸는 이예은 학생과 가수 김현철의 만남입니다.

티토링으로 만난 가수 김현철과 이예은 학생.[사진=천막사진관]
티토링으로 만난 가수 김현철과 이예은 학생.[사진=천막사진관]

# 티토링 첫번째 음미 : 0.1%의 비밀

가수 김현철(이하 현철) : “아이돌을 준비한다고 들었는데, 대학은 컴퓨터공학과를 전공하고 있네요. 독특해요.”

이예은 학생(이하 예은) : “어렸을 때부터 춤추는 거랑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어요. 주변에서 잘한다는 칭찬도 많이 들었고요. 그래서 그 두가지를 같이 할 수 있는 아이돌을 꿈꿨죠. 하지만 꿈에 다가서진 못했어요. 진학 상담 때 선생님이 ‘일단 공부를 해서 대학교를 가고 그다음에 네가 원하는 것을 해라’고 조언해서 이렇게 됐죠.“

현철 : “이렇게 됐죠라니요. 그건 일이 잘 안 풀렸다는 말이잖아요. 컴퓨터공학이 어디 쉬운 분야인가요? 예은 학생이 이뤄낸 업적이죠.”

현철은 예은 학생에게 아이돌 연습생이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 것 같으냐고 물었다. 예은 학생은 “아이돌은 0.1% 중에서 0.1%가 살아남는 직업 아닌가요”라면서 되물었다. 예은 학생의 말대로 수십만명의 아이돌 지망생은 오늘도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 바늘구멍을 뚫고 아이돌이 됐다고 해도 인기를 끌지는 미지수다. 한해에만 숱한 아이돌 그룹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지난해엔 70여개 아이돌 그룹이 데뷔했지만 이들 중 “떴다”고 말할 수 있는 그룹은 손에 꼽을 만큼 적다.

“노래나 춤을 보여줄 수 있느냐”는 현철의 질문에 예은 학생은 고등학교 춤 동아리에서 활동했을 때의 영상을 스마트폰으로 보여줬다. 현철은 “군계일학이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현철 : “예은 학생의 외모나 춤실력을 보면 지금 아이돌을 준비하는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손색이 없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얘기하지 않는 게 있어요. 바로 ‘인성’이에요. 아이돌이 되는 과정은 자기의 실력을 연마하면서 데뷔 전까지의 시간을 견뎌내는 일의 연속이거든요. 결국 자기 자신과의 싸움인데, 성품이 나쁘면 그 시간을 버티지 못합니다. 성공하더라도 오래가지 못하죠. 어렸을 때부터 착하단 소리는 많이 들었나요?”

예은 : “그런 건 아닌데 조용히 모범적으로 살았던 것 같아요.”

현철 : “좋아요. 사람이 무대 위와 아래가 꼭 같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평소엔 얌전한 친구도 무대에선 관객을 휘어잡을 에너지를 얼마든지 내뿜을 수 있죠. 그렇기에 모범적으로 살아온 예은 학생의 태도는 아이돌 연습생으로서 충분히 플러스 점수가 될 수 있어요.”

# 티토링 두번째 음미 : 티켓 한장서 시작된 운명

예은 : “현철쌤은 어떻게 가수로 데뷔하게 됐는지 궁금해요.”

현철 : “저도 예은 학생과 비슷하게 공부를 그런대로 잘했어요. 나름 의대를 목표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우연에 우연이 겹치더라고요.”

의대생을 꿈꾸던 현철이 가수가 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고등학교 3학년 수능(당시 대입학력고사)이 끝난 직후였다. 고모로부터 받은 한 공연 티켓이 그의 인생을 바꿔놨다.

현철 : “고모가 사정상 못 가게 돼서 제가 대신 가게 된 거죠. 김수철씨 아세요? ‘정신차려’를 부른 가수인데.”

예은 : “노래는 들어본 것 같아요.”

현철 : “우리 때엔 전설적이었던 가수죠. 하여튼 대학입학시험을 치른 뒤 김수철씨의 공연을 보러 갔는데 거기 초대가수로 나온 그룹이 제가 가장 좋아했던 포크 듀오 ‘어떤날(이병우·조동익)’이었어요. 직접 보고 싶은 사람을 코앞에서 보는데 마음이 어땠겠어요. 너무 영광스러워서 바들바들 떨리더라고요. 공연 내내 떨림이 멈추질 않았죠.”

티토링 7편 ‘가수 김현철과의 차 한잔’의 스틸컷.[사진=더스쿠프 포토]
티토링 7편 ‘가수 김현철과의 차 한잔’의 스틸컷.[사진=더스쿠프 포토]

공연이 끝나고 공연장을 빠져나오던 현철은 우연히 어떤날의 멤버 조동익을 만났다. 뭔가에 홀린 듯 그에게 말을 건 현철을 기특하게 봤는지 조동익은 현철에게 연락처를 줬고, 그렇게 그와 친해지면서 현철은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했다.

현철 : “모든 게 제가 계획한 일이 아니었어요. 그 공연을 보러 가기 위해 티켓을 산 것도 아니고, 그 공연에서 ‘어떤날’이 나올 줄도 몰랐고, 조동익씨를 보려고 시간 맞춰 공연장을 빠져나온 것도 아닙니다. 무엇보다 조동익씨의 연락처를 받은 게 우연치곤 대단한 일이었죠.”

예은 : “어떻게 연락처를 받았나요?”

현철 : “방송 용어로 ‘마가 뜬다’고 해요. 아무도 말 안 하고 있는 순간을 뜻하는데, 제가 신이 나서 떠들다가 멈추니까 마가 뜬 거예요. 그때 조동익씨가 집 전화번호를 알려준다는 얘기를 꺼냈죠. 그 전화번호 덕분에 오늘날 제가 이 자리에서 예은 학생과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현철은 “인생이라는 것이 꼭 자기가 뜻한 바대로 되는 건 아니더라”면서도 “필연은 우연이라는 얼굴을 쓰고 찾아온다”고 강조했다. “예은 학생이 앞으로 살면서 얼마나 많은 우연을 만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건 자신의 몫이에요.”

# 티토링 세번째 음미 : 우연과 필연

예은 : “그럼 현철쌤은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현철 : “그건 의지만으론 안 되는 것 같아요. 그 티켓 사건도 지금 돌이켜 보니까 ‘필연이었네’라고 말할 수 있는 거지, 그땐 그게 우연인지 필연인지 분간을 못 했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제게 오는 일들 중에서 뭐가 우연이고 뭐가 필연인지를 판단하기 어려워요. 우연과 필연을 가늠하는 기준은 ‘시간’이란 겁니다. 예은 학생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자신한테 일어났던 일을 평가할 수 있을 겁니다.”

김현철은 우연한 기회로 가수의 길을 걷게 됐다. 하지만 그는 “그걸 우연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사진=연합뉴스]
김현철은 우연한 기회로 가수의 길을 걷게 됐다. 하지만 그는 “그걸 우연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사진=연합뉴스]

예은 학생은 고개를 갸웃했다. 현철의 말대로 우연과 필연을 분간할 수 없다면,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것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예은 : “그럼 우연 같은 필연이 오길 마냥 기다려야 하나요?”


현철 : “제가 음악을 하게 된 그 우연한 일들을 다시 짚어보죠. 고모가 제게 그 티켓을 왜 줬을까요? 제가 보면 좋아할 거란 믿음이 있었겠죠. 고모의 마음에 그런 믿음이 생긴 건 제가 평소 음악에 열정을 갖고 있다는 걸 주위 사람들에게 표현했기 때문일 겁니다. 제가 조동익씨를 한눈에 알아본 것도 마찬가지고요. 그때 저의 수준은 여러 아티스트의 음악을 연주하고 어느 정도 따라 부를 수 있는 정도였어요. 그러니 조동익씨도 제게 관심을 가진 거겠죠. 이런 우연찮은 기회들이 아무런 준비도 안 했는데 행운처럼 찾아온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철은 예은 학생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하라”면서 말을 이었다. “전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다 보면 기회가 찾아오고, 그 기회를 통해 뭔가 이뤄질 거란 믿음을 갖고 있어요.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온 우연은 필연이 되는 법입니다.”

예은 : “그럼 제가 현철쌤을 만난 것도 마냥 우연이라고 볼 수 없는 거네요.”

현철 : “맞아요.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닙니다. 노사연씨의 ‘만남’, 이건 알죠?”

예은 : “그럼요(웃음).”

# 티토링 네번째 음미 : 슬럼프! 너 잘 왔어

예은 학생은 현철에게 “슬럼프를 겪은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천재 아티스트’로 데뷔한 그에게 굴곡 따윈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 가볍게 건넨 질문이었지만, 그는 뜻밖의 답변을 꺼냈다.

현철 : “너무 많았죠. 그중에서도 2006년 9집 앨범을 내고 나서 13년간 음악 활동을 못한 게 가장 컸어요. 안 하니까 더 못 하게 되더라고요. 악순환이었죠. 그런데, 그거 아세요? 어려운 시기를 스스로 슬럼프라고 명명하기 전까지는 그건 슬럼프가 아닙니다.”

예은 : “무슨 뜻이에요?”

현철 : “음악 활동을 중단했을 때 제가 이 기간을 슬럼프라고 여겼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럼 13년이란 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어요.”

예은 : “그럼 어떻게 마음을 먹어야 될까요?”

예은 학생의 질문에 현철은 “현재의 자신을 인정해야 한다”고 답했다. “어느 순간 제가 음악을 싫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하지만 굳이 극복하려 하지 않았어요. 부정도 하지 않고 그저 받아들였죠. 그렇게 흘려보내니까 다시 음반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가 오더라고요. 다시 일어설 힘을 얻은 거죠.”

김현철은 13년간의 음악 공백기를 겪었지만 이를 슬럼프라고 생각하지 않고 꾸준히 활동했다.[사진=연합뉴스]
김현철은 13년간의 음악 공백기를 겪었지만 이를 슬럼프라고 생각하지 않고 꾸준히 활동했다.[사진=연합뉴스]

2019년 5월 10집을 발표한 현철은 지난 6월 정규 11집을 냈다. 오랜만에 음반을 냈지만 ‘김현철은 역시 김현철’이란 평가를 받았다. “슬럼프를 인정하지 않고 그걸 극복하려고 애쓰다 보면 스스로 피폐해집니다. 슬럼프를 벗어나지도 못하고요. ‘어이, 슬럼프! 그래, 잘 왔어’하고 넘겨버리세요. 바로 그게 슬럼프에 대처하는 시작점입니다.”

# 티토링 다섯번째 음미 : 작은 실패

예은 : “현철쌤은 당시에 천재 아티스트로 불렸잖아요. 그런 현철쌤이 생각하기에 더 천재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었을 텐데, 그 사람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어요?”

현철 : “천재라니, 과찬이에요. 당연히 저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죠. 처음엔 신경질이 났어요. ‘쟤도 밥 먹고 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 사람 음악을 듣지 않으려고도 했어요.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그 사람이 음악을 하지 않는 건 아니더라고요.”

현철은 “가능하면 나보다 뛰어난 상대방을 빠르게 인정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나보다 뛰어난 상대를 인정하는 덴 ‘인지’ ‘명명’ ‘수용’ 이렇게 세 단계가 있습니다. 진심으로 ‘정말 잘하는구나’라는 걸 받아들이면 사실 힘들 일도 없죠.”

예은 : “저는 사실 다른 활동도 굉장히 많이 해요. 대외활동은 기본이고 영어 자격증 공부에 수화까지 배웠죠.”

현철 : “수화까지? 대단하네요.”

예은 : “그런데 이건 모두 실패하기 싫어서 매달린 일들이에요. 한국에선 실패의 경험을 인정하지 않으니까요. 제가 아이돌이 되지 못한다면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까요?”

현철 : “그 많은 활동 중에서 실패해본 게 있나요?”

예은 : “아니요, 없어요.”

현철은 “실패 그거 별거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실패가 그렇게 아프지만은 않다는 조언도 곁들였다. “제가 실패가 ‘어떻다’ ‘저떻다’ 떠들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실패를 극복해봐야 나름의 방법이 생길 겁니다. 능히 이겨낼 수도 있고요. 실패를 겪고 일어섰을 때 예은 학생은 더 단단해질 거예요.”

1시간여의 티토링이 끝났다. 예은 학생에게 현철은 “아직도 나는 누군가에겐 아이돌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말을 이었다. “그게 뭐든 늦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항상 밝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면 될 일도 뜻대로 흘러가지 않거든요. 지금의 미소를 간직하면서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우연’이 찾아올 거예요. 그 우연을 절대 놓치지 마세요.” 예은 학생이 활짝 웃었다. 현철이 은은한 미소로 답했다. 두 사람의 티토링은 끝나지 않았다.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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