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기 한국GM 지부장“우리가 싸우는 이유”

한국GM의 노사갈등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사측은 2014년 크루즈 생산 중단을 밝혔고, 노측은 ‘수출기지화’라며 반박하고 있다. 한국GM은 지난해 출범 10주년을 맞았다. 올해는 새로운 10년의 첫해다. 갈등을 해소하지 않으면 앞으로의 10년이 흔들릴 수 있다. 민기(44) 한국GM 지부장을 만나 ‘왜 싸우는지’에 대해 물었다.

 
지난해 말 한국GM에서는 3개의 사건이 일어났다. GM이 산업은행이 보유한 한국GM 지분(17.02%•비토권 포함) 인수에 나섰다. 동시에 한국GM은 군산공장의 2014년 신형 크루즈 생산중단을 발표했고, 200여명의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한국GM 노조(민주노총 전국금속노조 한국GM지부)는 “노조 길들이기이자 한국GM을 단순 수출기지로 만들려는 술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GM의 부평•창원•군산공장은 지역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GM은 지난해 총 80만639대를 판매했고, 고용인원만 1700명이다. 지난해 11월 군산공장에서 크루즈 모델 생산중단을 발표하자 김완주 전북도지사가 반대에 나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GM 노조를 이끌고 있는 민기 전국금속노조 한국GM 지부장을 1월 2일 한국GM 부평공장에서 만났다. 사무실 곳곳에 “단결, 투쟁, 물량 협박 분쇄! 고용안정 쟁취!”라고 적힌 문구가 눈에 띄었다.  올해 노조의 핵심쟁점은 군산공장의 2014년 신형 크루즈 재생산이다. 이는 한국GM의 미래가 달려 있는 사안이다. 물량이 있어야 일을 할 수 있는 자동차 노동자에게 신차와 주요 차량의 생산은 목숨과도 같다. 민기 지부장은 “신형 크루즈 생산중단은 한국GM을 단순 수출 물량기지의 역할로 만들겠다는 의미”라며 “한국GM의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 민기 지부장은 “군산공장의 2014년 크루즈 생산중단은 한국GM을 단순 수출 물량기지로 만들겠다는 의미”라며 “한국GM의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강조했다.
✚ GM의 산업은행이 보유한 비토권 인수, 군산공장 생산량 조절, 희망퇴직 3개 사건이 일어났다.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나.
“두 달 사이에 이 세 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해 임단협을 체결한 후 일어난 것이다. 임단협을 해마다 진행했지만 지난해 강도 높은 파업이 있었다. 이후 사측이 취한 조치들이다. 특히 신형 크루즈 생산량 중단은 내년 한국GM의 노사 갈등의 원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GM의 대표 차량인 크루즈 후속 모델을 생산하지 않겠다는 것은 한국GM의 미래 성장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 산업은행의 역할이 중요하다.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는데.
“산업은행의 민영화가 진행된다면 GM이 산업은행이 보유한 지분 17.02%(비토권)를 인수하게 된다. 산업은행은 국책은행으로서 기업대출•정책금융 등의 역할이 있다. 특히 국내 자동차 산업의 발전과 지역경제•고용안전 부분에서 산업은행의 역할은 분명하다. 하지만 시중은행으로서의 역할만을 내비치고 있는 상황이다.”

✚ 미국정부가 GM, 프랑스 정부는 푸조를 금융지원하고 있는 등 자국의 자동차산업을 보호하는 것이 세계적인 흐름 아닌가. 한국은 반대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자동차 산업은 국가경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세계 여러 나라가 자국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한다. 한국GM은 외국자본이 투자한 회사다. 하지만 국내시장에 3개 공장을 보유하고 있고, 전체 직원 1700명 중 88%에 해당하는 1500명이 국내 근로자다. 국가 차원에서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산업은행의 비토권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시중은행 역할만 하는 산은

✚ 산업은행의 비토권이 사라진 후 한국GM의 미래를 어떻게 보는가.
“GM이 한국시장에서 자본을 완전히 뺄 것이라는 말이 떠도는데 이는 너무 앞서간 해석이다. 인력 구조조정도 당분간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차세대 크루즈 생산 중단의 의미는 매우 크다. 크루즈는 세계에서 인정받는 한국GM의 대표 차종이다. 이 물량을 뺀다는 것은 앞으로 한국시장을 신경쓰지 않겠다는 의미다. 한국GM을 종합 자동차 회사가 아닌 단순 수출 물량기지의 역할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한국GM의 미래가 불투명하다.”

✚ 노사 갈등이 예상된다. 노조의 계획은 무엇인가.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다. 신형 크루즈 재생산 등 GM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올해 노사갈등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으로 보면 GM은 공장의 물량을 줄여 협상에 나선 노조를 한발 물러나게 했다. 최근 독일 보슘 공장을 2016년 폐쇄하기로 결정한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노조는 올해 특별단체교섭을 진행해 사측과 신차계획, 고용불안을 유발하는 사안을 집중 논의할 계획이다.”

✚ 신차계획을 노조에 공개해야 하는 것인가.
“우리는 회사와 미래를 함께하는 조직원이다. 정확한 미래비전과 계획을 알고 그 길을 함께 가는 것이 근로자의 의무이자 권리다. 차세대 크루즈 생산중단 문제부터 해결하고, 앞으로 부평•창원•군산공장에서 어떤 차량을 언제부터 생산할지에 대한 계획을 물을 작정이다.”

✚ 한국GM은 그동안 노사 관계가 원만했다. 지난해 갈등의 불씨가 생겼다고 볼 수 있는데, 이유가 무엇인가.
“그동안 한국GM은 파업 없이 임단협을 타결한 경우가 많았다. 파업을 해도 20시간 미만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60시간 이상 파업했다. GM이 한국시장에 진출한 지 10년 만에 가장 격렬한 투쟁이었다. 10주년은 축하해야 할 일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10년 동안 살인적으로 노동력을 제공한 근로자가 있었다. 현대차 노동자가 60~70% 일한다면 우리는 100%를 일한다. 1분의 공정시간이 필요한 자동차 생산라인에서 현대차 노동자가 35초를 일한다면 우리는 55초 일한다. 임금을 계산하는 총 노동시간은 같지만 실제로 일하는 시간은 우리가 훨씬 많고 고되다. 또한 사무직이 지난해 노조 조합원으로 들어왔다. GM의 미국식 인사 정책으로 차별과 피해를 봤기 때문이다. 10년 동안 참았던 게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다.”

▲ 민기 지부장은 “한국GM의 10주년은 축하할 일이지만 노동자의 노력도 알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한국GM 군산공장 차체조립 라인.
✚ 현대차와 비교했는데 회사의 생산 시스템이 문제 아닌가.
“시스템이 아니라 투자는 최저로 하고 수입은 최고로 얻으려는 경영진, 사측의 의지와 태도가 문제다. 시스템이 부족하다면 설비투자를 늘리거나 인원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도저도 하지 않으면서 생산량만 확보하기 위해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 자동차 노조를 두고 귀족노조라고 비판하는 시각이 많다. 당연히 파업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은데.
“우리 사회에선 노조라고 말하면 부정적인 생각을 먼저 한다. 이런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상류층이 아니다. 자동차 회사의 노동자가 일하는 환경과 가정생활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학자금 지원 등 가장 필요한 부분만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자본가나 사측이 알아서 분배하고, 혜택을 주는 경우는 없다. 가령 우리가 일한 대가로 100원을 요구하면 그들은 50원도 주지 않으려고 한다. 사실 정부가 나서야 할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 나서는 것이다.”

한국GM 출범 10주년 이후 노사갈등 심화

✚ 주간 2교대제 시행을 앞두고 있다.
“2014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 이는 우리의 삶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동안 자동차 노동자는 야간에도 일했다. 그러면 새벽 5시나 6시 일을 마무리하고 집에 들어간다. 낮과 밤이 바뀌고, 일상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늦어도 새벽 1~2시에 끝나는 2교대제가 실시된다면 노동자의 삶의 질이 한단계 올라가는 동시에 노동효율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노사가 싸우는 것만이 아니라 함께 머리를 맞대면 보다 좋은 노동환경이 만들어지고 생산효율성도 높아진다. 이게 노조가 있어야 할 이유가 아니겠는가.”

✚ 박근혜 당선인은 후보 시절 인천지역 유세 현장에서 “한국GM의 힘든 부분을 잘 안다”며 “힘쓰겠다”고 말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많은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 노동계를 탄압하고, 자본가의 입장을 대변하는 MB정권과 비슷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쌍용차 사태는 여전히 해결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한진중공업•현대중공업 정리해고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동자들이 더욱 불안해하고 있다.”
박용선 기자 brave11@thescoop.co.kr | @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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