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자재 B2B 시장 기회와 위기
7000여개 영세업체 수두룩
또 다른 골목상권 침해 가능성

식자재 B2B 시장이 달아오르고 있다. 농협, GS리테일 등 대형 유통업체가 이 시장에 뛰어들 가능성이 제기되면서다. 배달앱 업체 우아한형제들처럼 이미 시장에 진입한 곳도 있다. 하지만 우려 요인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식자재 B2B 시장엔 이미 수천개의 중소형 업체가 진출해 있다. 대형 유통업체의 진출이 또다른 ‘골목상권 침투’의 예가 될 수 있다는 거다. 아울러 식자재 B2B 시장의 구조가 워낙 복잡해 대형 유통업체가 뿌리내리기도 쉽지 않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떠오르는 식자재 B2B 시장을 취재했다.

우아한형제들은 외식업체를 대상으로 한 식자재몰 ‘배민상회’를 운영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더스쿠프 포토 ]
우아한형제들은 외식업체를 대상으로 한 식자재몰 ‘배민상회’를 운영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더스쿠프 포토 ]

농협(농협경제지주)이 ‘공유주방’을 열었다. 공유주방 업체 ‘위대한상사’와 협업해 지난 7일 경기도 성남에 ‘농협공유주방’을 론칭했다. 이 공유주방에 입점한 업체는 농협하나로마트 성남점으로부터 식자재를 공급받을 수 있다. 

주문은 농협몰 앱이나 온라인 사이트에서 가능하다. 일정 금액 이상을 구매하면 농협 캐시백 혜택도 받는다. 농협은 시범사업인 이번 공유주방을 통해 새로운 유통모델을 시험해 본다는 방침이다.

농협의 국산 식재료를 외식업체에 공급하는 B2B(기업 대 기업 간 거래) 서비스의 ‘테스트 베드’인 셈이다. 농협 측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식자재 배달 시장이 성장하는 등 유통환경이 변화하고 있다”면서 “새로운 유통사업 진출 여부를 타진해 보기 위해 시범사업을 진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참고: 농협은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식자재전문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공유주방 시범사업을 통해 외식업체와의 연계를 강화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식자재 B2B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건 농협뿐만이 아니다. GS리테일 역시 식자재 B2B 시장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 2014년 론칭했다가 잠정 중단한 ‘GS비즈클럽’을 통해서다. GS비즈클럽은 당초 동네슈퍼 등 사업자를 대상으로 식자재를 공급하는 모델이었는데, 업계 안팎에선 다음과 같은 말이 나돌고 있다.

“배달앱 2위 업체 ‘요기요’를 인수한 GS리테일이 식자재 B2B 서비스를 기존 동네슈퍼에서 외식업체로 넓힐 가능성이 있다.”

요기요에 입점한 외식업체를 대상으로 한 식자재 공급 서비스를 시작할 거란 전망이다.[※참고: GS리테일은 8월 13일 사모투자펀드(PEF)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ㆍ퍼미라와의 컨소시엄을 통해 요기요 운영사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의 지분 100% 인수계약을 체결했다. GS리테일은 총 인수금액 8000억원 중 2400억원(지분 30%가량)을 투자했다.] 

GS리테일 측은 “GS비즈클럽은 아직 시스템 검토 단계에 있다”면서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식자재 B2B 시장에 진출할 가능성은 충분하다.배달앱 1위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이 이미 식자재 B2B 사업을 전개하고 있어서다. 2017년 론칭한 플랫폼 ‘배민상회’를 통해서다.

배민상회는 외식업체가 주로 구매하는 대용량 식자재뿐만 아니라 배달용기, 포장용품 등 1만7000여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평일 오후 5시 이전 주문 시 전국 어디든 다음날 배송을 완료한다.


우아한형제들은 배민상회 서비스 확대를 위해 지난 9월 배달 전문업체 ‘부릉(메쉬코리아)’과 손잡았다. 부릉이 보유한 전국 450여개 물류센터, 저온·냉장·냉동 탑차를 활용해 제품을 배송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배민상회는 ‘외식업 사장님을 위한 종합식자재몰’이다”면서 “배달의민족 입점 점주 3명 중 1명이 배민상회에서 식자재를 공급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식자재 B2B 시장에 관심을 갖는 업체가 증가하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식자재 B2B 시장에 관심을 갖는 업체가 증가하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이렇게 유통업계의 눈이 식자재 B2B 시장으로 쏠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시장 규모가 50조원에 달하지만 아직까지 과점 사업자가 없어서다. 한국식자재유통협회에 따르면 국내 식자재 B2B 시장의 70~80%가량은 7000~8000여개의 중소규모 업체가 담당하고 있다.

대형 유통업체로선 출혈경쟁을 벌이고 있는 B2C(기업 대 소비자 간 거래) 식품 시장에 비해 B2B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더구나 식자재 B2B 사업은 한번 거래를 시작하면 일정한 품목을 장기적으로 공급해 안정적으로 사업을 유지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농협, GS리테일, 우아한형제들 등 업체들은 식자재 B2B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기존 식자재 업체가 갖추지 못한 ‘차별점’을 확보한다면 경쟁력이 있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장지혜 카카오페이증권 애널리스트의 말을 들어보자. “배민상회의 경우 배달앱(배달의민족)을 운영하며 쌓아온 ‘데이터 베이스’를 자산으로 갖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외식업체 점주가 원하는 차별화한 식자재와 서비스를 적재적소에 공급한다면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업계 안팎에서 식자재 B2B 시장의 ‘시스템 업그레이드’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는 점도 기회요인이다. 앞서 언급했듯 식자재 B2B 업체 중엔 영세한 곳이 많다 보니 무자료 거래, 식품안전 관리 미흡 등의 문제점이 지적돼 왔기 때문이다. 

김성훈 충남대(농업경제학)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현재 식자재 B2B 시장은 불법과 편법이 넘나드는 ‘회색시장’으로 볼 수 있다.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대기업이 시장에 진출한다면 시장에 건전한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영업 시장에서 ‘프랜차이즈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식자재 B2B 시장을 노리는 유통업체들엔 긍정적인 시그널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 외식업체들은 중소규모 식자재 업체와 오랜 거래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프랜차이즈 비중이 높아진다면 새로 시장에 진입하는 대기업으로선 거래선 확보가 수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참고: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외식업 프랜차이즈 브랜드 수는 지난해 5385개로 전년 대비 14.1% 증가했다. 외식업 프랜차이즈 점포 수도 같은 기간 5.3%(12만1709개→12만8225개) 늘었다.]

그렇다고 우려 요인이 없는 건 아니다. 대기업 유통업체가 식자재 B2B 시장에 뛰어들어도 ‘큰 재미’를 보기가 쉽지 않을 거란 전망도 적지 않다. 식자재 B2B 유통의 시스템이 워낙 복잡한 데다 난이도가 높은 사업이기 때문이다. ‘고객’인 외식업체 역시 규모가 작고, 필요로 하는 상품이나 공급주기 등이 제각각이다. 다시 말해 사업을 ‘정형화’하기가 어렵고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거다. 

한국식자재유통협회 관계자는 “대기업 유통업체가 식자재 B2B 시장에 진출하는 건 어렵지 않다”면서 “하지만 완성도 있는 유통 모델과 시스템을 만드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CJ프레시웨이, 신세계푸드, 풀무원 등 기존의 대기업 식자재 업체들이 외식업이 아닌 단체급식 위주로 B2B 사업을 이어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식자재 B2B 시장이 주목 받고 있지만 골목상권 침해 우려도 적지 않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식자재 B2B 시장이 주목 받고 있지만 골목상권 침해 우려도 적지 않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자칫 ‘골목상권 침해’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 언급했듯 식자재 B2B 시장에는 중소형 업체부터 소규모 ‘중간상’까지 7000~8000여개 업체가 참여하고 있다.

그중에는 오토바이나 트럭 한대로 영업을 하는 영세업체도 수두룩하다. 한때 ‘식자재 유통업’을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던 이유다.[※참고: 전국유통상인연합회 등은 지난 2013년 동반성장위원회에 식자재 유통업의 중기적합업종을 신청했다. 이후 수년간 논란이 지속됐지만 현재까지 식자재 유통업은 중기적합업종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근본적인 위기 요인도 있다. 외식 시장이 깊은 침체기에 빠졌다는 점이다. 전방산업인 외식업이 활성화하지 않으면 식자재 B2B 시장 역시 침체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 식자재 업체들도 코로나19 사태 이후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다”면서 “앞으로 제2, 제3의 코로나19 사태가 터질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의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시장을 노리는 자’도 ‘지키려는 자’도 많은 식자재 B2B 시장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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