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폰트개발업체의 끝없는 소송
기업 대상 형사고소만 전국 545건
하지만 소권 남용 막을 길은 없어

545건. 한 폰트개발업체가 최근 몇년간 수많은 기업을 상대로 “저작권을 침해당했다”면서 형사고소를 진행한 건수다. 민사소송까지 포함하면 건수는 훨씬 더 늘어난다. 얼마나 억울하기에 이렇게까지 소송을 제기하나 싶지만, 수사기관은 “폰트개발업체가 저작권 침해를 조장해 돈벌이를 하는 듯하다”고 꼬집는다. 문제는 그 업체의 소송 범주에 비영리법인(NGO)까지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비영리법인이 무료 폰트를 잘못 사용했다가 소송 공포에 휘말렸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비영리법인이 무료 폰트를 잘못 사용했다가 소송 공포에 휘말렸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당신은 폰트(글꼴) 저작권을 위반했습니다. 정식 폰트프로그램을 구입하지 않으면 법적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같은 내용증명을 받아본 적 있는가. 폰트를 쓸 일이 없다면 모르겠지만 관공서부터 기업, 학교, 간판을 달고 영업하는 자영업자에 이르기까지 저작권이 있는 줄 모르고 썼다가 폰트 저작권 문제에 휘말린 이들은 차고 넘친다. 

관련 상담 건수도 적지 않다. 한국저작권위원회에 따르면 2017년 1926건이던 폰트 저작권 상담 건수는 2018년 2795건, 2019년 3886건으로 증가했다. 2020년엔 3127건으로 약간 줄었지만 2021년엔 상반기에만 1723건의 상담이 진행됐다. 추세만 보면 지난해보다 상담 건수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소송 건수도 제법 많다. 오죽하면 일부에선 ‘법무법인이 폰트 사냥에 나서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물론 저작권은 마땅히 보호받아야 한다. 저작권자의 ‘미래 수익’과 직결돼 있어서다. 하지만 저작권 보호를 빌미로 수사기관에 마구잡이식 수사를 요청하거나 압박용 소송을 제기해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면 그건 저작권의 보호와는 별개로 따져볼 문제다. 그런 경우 저작권보호로 발생하는 사회적 이익보다 손실이 더 클 수도 있어서다. 

이런 맥락에서 1대1 멘토링 전문 NGO인 러빙핸즈와 폰트개발업체 A사와의 소송은 생각해 볼 여지가 많다.[※참고: 러빙핸즈는 한부모가정이나 조손가정의 아이들과 성인 멘토를 1대1로 연결해 ‘아동보호의 법적 사각지대’를 메우는 역할을 하는 비영리법인이다.] 

자! 지금부터 러빙핸즈와 A사의 끝없는 소송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2019년 5월 러빙핸즈 박현홍 대표에게 뜻밖의 고소장(형사)이 전달됐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러빙핸즈가 2013부터 2014년 사이에 만든 저작물에 A사의 폰트를 무단으로 복제해 사용했다. 저작권법을 위반했으니 처벌해 달라.” A사 측은 민사소송도 함께 제기했다.

러빙핸즈 측은 부랴부랴 사태 파악에 나섰고, 허점을 찾아냈다. NGO 특성상 자원봉사자들의 재능기부를 통해 저작물을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일부 자원봉사자가 A사의 폰트를 자원봉사자 모임을 위한 소식지 등에 일부 사용했던 거다. 

문제는 자원봉사자가 너무 많은 데다 5년이나 지난 일이어서 누가 작업을 했는지 찾아낼 수 없다는 점이었다. 

책임지려 해도 협의 쉽지 않아

러빙핸즈 측은 이런 사실을 확인한 후 A사에 협의를 요청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혹시 다른 저작물에도 A사의 폰트가 사용됐을지도 모르니 이를 일괄해 금액 등을 협의했으면 합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지겠다는 거였다. 러빙핸즈가 비영리 NGO란 점을 감안하더라도 당연한 조치였다. 

러빙핸즈 측은 원만한 협의를 기대했지만 A사는 뜻밖의 입장을 전해왔다. “회사 내규와 라이선스 정책에 따라 작성된 견적서(다양한 폰트가 포함된 패키지 가격)에 기재된 방법 외에는 다른 대안은 제시할 수 없다. 다른 홍보물에도 우리의 폰트가 사용되는 게 발견되면 건별로 견적서를 제시하겠다.” 

물론 A사의 주장에 설득력이 없는 건 아니다. 공들여 만든 창작물을 헐값에 넘길 수는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A사가 러빙핸즈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였는지는 따져볼 여지가 있다. 

특히 A사는 러빙핸즈를 상대로 4차례의 민사소송과 3차례의 형사고소를 진행했는데, 한편에선 ‘과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참고: A사가 폰트 저작권과 관련해 전국의 기업과 단체를 상대로 제기한 형사고소만 500건이 넘는다.] 

그럼 A사의 대응 방식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지 하나씩 따져보자. 

■논란❶ 대응 적절한가 과한가 = 우선 러빙핸즈 자원봉사자가 A사의 폰트를 처음 사용한 2013년으로 시계추를 돌려보자. 당시, A사의 폰트는 개인이 비영리 용도로 사용한다면 ‘무료’였다. 더구나 A사의 폰트는 공식홈페이지나 공식블로그뿐만 아니라 인터넷 카페, 개인 블로그 등에서도 내려받을 수 있었다.

2013년 당시 자원봉사자 입장에선 자신이 개인인 데다 비영리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니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했을 소지가 크다.[※참고: A사가 폰트 무료사용 정책을 중단한 건 지난해 11월(공식블로그 공지 기준)이었다. 이유는 ‘무료 폰트의 무단도용이 심하다’는 거였다. 2013년을 기준으로 삼아도 무려 7년여 동안 폰트무료사용 정책을 유지해온 셈이다.] 

그럼에도 A사 측은 언급했듯 ‘다양한 폰트가 꾸러미로 담긴 패키지 가격(약 360만원)’을 제시하면서 “러빙핸즈의 작업물에서 또 다른 도용 건이 발견될 때마다 추가로 별도의 견적서를 제시해 돈을 받겠다”는 주장을 고수했다. 이런 상황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면 러빙핸즈 측의 업무는 마비될 수밖에 없다. 당초 러빙핸즈 측이 ‘일괄 처리’를 요청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법원은 이 논란을 어떻게 봤을까. 양측의 협의가 잘 이뤄지지 않으면서 이 사건은 법적 소송까지 갔고, 올해 3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결과는 “러빙핸즈(피고)가 A사(원고)에 50만원을 지급하라”는 거였다. 원고 승소였지만 금액은 A사가 요구한 건당 360만원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러빙핸즈의 법적 대리인인 최정규 변호사(원곡법률사무소)는 “이 정도면 원고(A사)가 이겼다고 보기 어려운 판결”이라면서 “저작권 침해 소송은 협의를 통해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은데, 왜 덮어놓고 고소와 소송을 진행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소권 남용을 막을 방법은 없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현행법상 소권 남용을 막을 방법은 없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논란❷ 형사고소 압박용인가 = A사의 대응 중 꼬집어야 할 건 또 있다. 다름 아닌 ‘형사고소’ 건이다. 앞서 언급했듯 A사는 민사소송뿐만 아니라 형사고소도 수차례 제기했다. 그런데 형사고소를 한 이유가 불분명하다. 수사기관에서도 ‘이유가 불분명한 소訴’라고 수차례 주장했기 때문이다. 

사례를 살펴보자. 2019년 5월 A사의 형사고소건을 접수한 서울서부지검은 ‘각하’로 결론내리면서 다음과 같은 이유를 제시했다.

“고소인(A사)은 애초에 폰트를 무료로 배포한 만큼 피의자(실제 폰트를 사용한 러빙핸즈 측 자원봉사자)의 범행으로 인한 피해가 크지 않다. 피의자가 특정되지도 않았다. 피의자를 특정한다고 해도 저작권 침해의 고의성을 입증해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다. 러빙핸즈 측은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으려 네이버 무료폰트나 돈을 주고 쓰는 폰트 프로그램을 이미 사용 중이었다. 더구나 피의자가 해당 폰트를 다운로드하는 행위는 고소인의 허락하에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한정적 용도로만 사용해야 하는 계약이 있었다고 볼 수 있지만 러빙핸즈는 비영리법인으로 용도에 어긋났다고 보기도 힘들다. 따라서 고소인이 피의자에게 민사상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형사고소할 건은 아니다.”

문제는 A사가 러빙핸즈 외 다른 기업에 제기한 폰트 관련 형사고소 건을 검찰이 각하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란 점이다. 지난해 4월 서울중앙지검은 A사가 특정업체를 상대로 제기한  폰트 관련 형사고소 건을 각하하면서 다음과 같은 의견을 냈다. 

“고소인의 무료 폰트프로그램은 블로그나 카페 등을 통해 공공연히 배포됐고, 이들은 쉽게 특정할 수 있다. 형사고소를 하려면 폰트를 무작위로 유포하는 이들을 고소해야 마땅함에도 고소인은 이들을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한 적이 없고, 기업들만을 대상으로 형사고소했다. 고소인이 실질적으로 저작권을 지키려는 것인지 의문이다.” 

특히 서울중앙지검은 고소인의 의도가 의심스럽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수사기관이 피고소인을 특정해 피의자 조사를 위한 출석을 요구하면 그 자체가 민사합의 독촉장이 된다. 고소인은 애초에 저작권법 위반을 조장한 후, 이를 잘 모르고 사용한 업체들을 대상으로 고소를 하고, 수사기관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수사기관의 이런 법적 판단을 법률전문가는 어떻게 해석할까. 

최정규 변호사는 “웹상에서 다양한 제한 조건을 걸어두고 ‘무료 서비스’를 제공한 후 합의금을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이런 유형의 소송이 워낙 많으니까 검찰도 이 사건을 유사한 케이스로 보고 각하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 변호사는 이렇게 지적했다. “A사는 민사로 해결할 수 있는 걸 굳이 형사고소까지 진행하는 등 고소권을 남발하고 있다. 또한 협의 제안은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피고소인이 같으면 여러 건을 한데 묶어 처리할 수 있는데도 계속해서 별건으로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이런 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소송의 목적이 저작권 지키기라고 보기엔 설득력이 떨어진다.” 

소권 남용 막을 장치 없어

문제는 현행 법체계에서 이같은 ‘소권訴權 남용’을 막을 장치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민법상 ‘신의성실의 원칙(2조ㆍ권리남용금지 원칙)’에 근거해 남용 우려가 있는 소를 각하하는 일이 간혹 있지만, 소 남용 자체를 막을 순 없다. 실제로 A사는 지난 3월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별건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4~6월 세차례에 걸쳐 각각의 추가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5월과 7월에는 안양경찰서(미통보)와 마포경찰서(각하)에 형사고소도 진행했다. 

러빙핸즈 관계자는 “A사와 협의를 하려 해도 쉽지 않고, 소송에 매달리는 것도 한계가 있어 난감하다”면서 “A사의 폰트를 사용한 게 어디서 또 나올지 두렵기까지 하다”고 한탄했다. 그럼 A사는 이런 상황을 알고 있을까. A사는 “이 사건에는 일절 대응하지 않겠다”면서 입을 닫았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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