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차 시장서 엇갈리는 완성차 업계
높은 투자비용 대비 시장성 불확실해
그래도 개발 선도하는 현대차·도요타
‘수소연료전지시스템’ 확장성에 기대
두 회사 끈기 어떤 결과로 돌아올까

수소차 개발을 두고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이 엇갈린 행보를 보이고 있다. 폭스바겐 · BMW는 수소차 개발을 중단한 반면 수소차 연구 ‘1세대’인 현대차와 도요타는 꿋꿋하게 수소차 개발의 길을 걷고 있다. 이처럼 수소차는 왜 포기그룹과 선도그룹으로 극명하게 나뉜 걸까. 과연 미래 시장에선 누구의 선택이 맞아떨어질까.

현대차는 지난 9월 '하이드로젠 웨이브' 행사를 통해 연료전지시스템에 기반한 수소사회 비전을 공개했다.[사진=현대차 제공]
현대차는 지난 9월 '하이드로젠 웨이브' 행사를 통해 연료전지시스템에 기반한 수소사회 비전을 공개했다.[사진=현대차 제공]

‘365조원’. 2030년까지 세계 각국이 수소산업에 쏟아부을 것으로 예상되는 투자 규모다. 한전경영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30개 이상의 나라가 ‘수소로드맵’을 발표하고 수소의 생산 · 유통 · 소비를 아우르는 밸류체인 구축에 돌입했다.

그런데 이와는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자동차 업계다. 지난해 4월 메르세데스-벤츠를 시작으로 올 초 폭스바겐과 혼다, BMW까지 잇따라 수소연료전지차(이하 수소차) 개발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탄소배출 저감이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상당수 완성차 기업의 ‘탈脫수소차’ 러시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환경규제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자동차 업계에서 수소차는 탄소제로를 실현할 수 있는 궁극적인 대안으로 꼽혀왔기 때문이다.

최근 수소차 시장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현대차 · 도요타의 행보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다. 두 회사가 얼마나 진화한 수소차를 론칭하느냐에 따라 시장의 판도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어서다.

[※참고: 1990년대 수소차 연구 · 개발(R&D)을 시작한 현대차와 도요타는 대표 모델인 ‘넥쏘’와 ‘미라이’를 통해 세계 수소승용차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두 회사는 전기차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다른 완성차 기업과 달리 투트랙(전기차 · 수소차) 전략을 고집스럽게 이어가고 있다.]

■질문➊ 수소차 포기그룹의 근거 = 이런 상황 때문에 우리는 몇가지 질문을 풀어봐야 한다. 갈수록 강력해지는 환경규제에도 상당수 완성차 기업이 수소차 개발을 중단한 배경은 무엇일까. 수소차 시장은 왜 소수의 ‘선도그룹(현대차 · 도요타)’과 다수의 ‘포기그룹’으로 극명하게 나뉘게 된 것일까. 지금부터 그 배경을 자세히 살펴보자.

폭스바겐과 혼다를 비롯한 상당수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이 수소차 개발을 잠정 중단하거나 포기한다고 선언했다.[사진=연합뉴스]
폭스바겐과 혼다를 비롯한 상당수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이 수소차 개발을 잠정 중단하거나 포기한다고 선언했다.[사진=연합뉴스]

지난 3월 헤르베르트 디스 폭스바겐 최고경영자(CEO)는 수소차 시장에 진출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자동차 시장에서 폭스바겐이 만든 수소차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수소차 개발에 필요한 물리학이 매우 무리한(unreason able) 수준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지난해 4월과 올해 9월 각각 수소차 개발을 잠정 보류하겠다고 밝힌 벤츠와 BMW는 “수소차를 만드는 데 너무 많이 비용이 든다” “충전 인프라가 없는 상태에서 수소는 대중적인 솔루션이 될 수 없다”면서 그 이유를 설명했다.

수소차 ‘포기그룹’의 말을 종합하면 상당수 완성차 기업이 수소차 시장 진출을 주저한 배경을 세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바로 ▲기술장벽 ▲ 높은 투자비용 ▲불확실한 시장성이다. 그렇다면 이 세가지 키워드는 합당한 근거를 갖고 있을까.

김필수 대림대(자동차학)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수소차는 전기차에 비해 구동 과정이 복잡하다 보니 자동차 설계도 전기차보다 복잡하다. 문제는 수소연료탱크나 전기분해장치 등 성능과 직결되는 부품이 아직 기술적으로 초기 단계에 있어 값이 비싸다는 점이다. 수소차 제작비용이 전기차보다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수소차 시장에 던져진 질문

수소차의 단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구동 과정에서 전기차보다 에너지 손실 발생률이 높고 각 부품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도 난제다. 수소차가 시장성을 갖추려면 효율성을 개선해야 하는데, 현재 기술력으론 한계가 있다.

가령, 수소는 밀도가 낮아서 연료로 사용할 만한 충분한 양을 자동차에 탑재하려면 수소를 담는 용기(수소연료탱크)의 부피를 늘려야 한다. 하지만 부피를 늘리면 중량이 무거워지는 딜레마가 있다.


그래서 찾은 방법이 수소를 압축해서 담는 것인데, 현재 기술로는 일반 휘발유의 11분의 1 수준의 양밖에 담지 못한다. 또다른 대안으로 액화수소(수소를 액체로 변환한 것)를 연료로 활용하는 방법이 있지만 고압기체수소보다 기술적 난도가 높고 발전 속도도 훨씬 더디다. 정리하면 수소차 포기그룹이 내세운 ‘세가지 키워드’ 모두 그럴듯한 근거를 갖고 있는 셈이다.

■질문➋ 수소차 선도그룹의 근거 = 그렇다면 현대차와 도요타는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걸까. 수소차 포기그룹의 주장과 근거만 보면, 두 회사의 미래는 불투명해 보인다. 현대차와 도요타가 수소차에 역량을 분산시키는 것이 되레 비효율적이라는 주장도 숱하다. 하지만 ‘수소차 포기그룹’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현대차와 도요타가 수소차 개발을 놓지 않는 또다른 이유다.

현대차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는 업계 전문가의 말을 들어보자. “수소차의 핵심은 내연기관차의 엔진과 같은 역할을 하는 ‘연료전지시스템’이다. 연료전지시스템은 자동차뿐만 아니라 선박 · 열차 · 드론부터 발전소까지 활용 범위가 무궁무진하다. 현대차와 도요타가 수소차 개발을 고수하는 근본적인 목적은 연료전지시스템을 활용한 신산업의 선점에 있을 것이다.”

실제로 수소 기반의 연료전지시스템은 이점이 많다. 무엇보다 고효율 · 장시간 전력 운용이 가능하다. 폐열을 활용해 스팀(에너지를 전달하는 매개체)을 생산할 수도 있다. 현대차와 도요타가 ‘수소 연료전지시스템’을 미래 플랜의 중심에 놓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대차는 지난 9월 7일 개최한 전략발표회인 ‘하이드로젠 웨이브’에서 연료전지시스템 중심의 ‘수소사회’ 비전을 공개했다. 20 40년까지 주택 · 빌딩 · 공장 등 일상과 산업에서 연료전지시스템이 근간인 에너지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내용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앞으로 현대차는 ‘자동차 회사’가 아닌 종합 모빌리티 기업을 목표로 수소사회를 위한 환경을 조성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 일환으로 현대차는 지난 9월 스위스의 에너지 관련 스타트업에 발전기용 연료전지시스템을 판매하며 수출길을 열기 시작했다. 도요타의 기본 방향 역시 현대차와 마찬가지다. 도요타는 지난 2월 트럭 · 버스 · 선박 등 다양한 곳에 활용 가능한 연료전지시스템 모듈을 출시하고 운수사와 전력회사에 판매 중이다.

물론 기술적 난제를 이유로 들어 연료전지시스템의 상용화 가능성에 의문을 표하는 목소리도 많다. 하지만 연료전지시스템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과정을 결과로 호도해서는 안 된다”며 “장기적 관점에서 연료전지시스템을 중심으로 한 ‘수소사회’는 반드시 도달할 수밖에 없는 미래”라고 입을 모았다.

엄석기 한양대(융합기계공학) 교수는 “도로 위 전기차가 늘어날수록 전력의 수급 불균형 현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에너지 캐리어’의 측면에서만 봐도 수소는 주 발전원을 보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며 이는 미래 사회에 연료전지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참고: 에너지 캐리어란 에너지원을 대량 생산 · 저장해 추후 소비 전력으로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본질은 연료전지시스템

이렇듯 현대차와 도요타는 불확실한 미래가 아닌 확실한 시장을 염두에 두고 연료전지시스템에 투자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관건은 현재의 기술적 한계를 어떻게 극복해 가느냐에 달려있는 셈이다.

엄석기 교수는 “연료전지시스템의 기술 개발이 빠른 속도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건 기계공학 · 전기 · 화학 · 소재 등 다방면에서 융 · 복합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진입장벽이 높은 기술인 만큼 노하우를 쌓아 원천기술을 확보해 나갈수록 되레 기술 발전의 속도는 빨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현대차와 도요타가 기술 혁신에 성공한다면 수소사회로 가는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수소를 향한 현대차와 도요타의 끈기는 과연 어떤 결과로 돌아올까. 그 답은 미래가 쥐고 있다.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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