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대 LINC+ 사업단 공동기획
PJ팀의 쓰레기 수거함 뚜껑 만들기
직관적인 쓰레기 분리배출 유도 전략

수백만톤(t)의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첫걸음은 시민 한명의 분리배출에서 시작된다. 제대로 분리수거할지, 아무렇게나 쓰레기를 버릴지는 오로지 그 시민의 마음에 달려있다. 어떻게 해야 그가 올바른 분리배출을 하게끔 이끌 수 있을까. ‘가톨릭대 사회혁신 캡스톤디자인: 디자인싱킹’ 수업에 참여한 ‘PJ팀’은 쓰레기 수거함 뚜껑에서 답을 찾으려 했다.

쓰레기 분리배출은 오로지 시민의 양심으로 이뤄진다. 그래서 더 어려운 일이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쓰레기 분리배출은 오로지 시민의 양심으로 이뤄진다. 그래서 더 어려운 일이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국의 플라스틱 재활용률은 22.7%밖에 되지 않는다.” 2019년 12월 그린피스는 ‘플라스틱 대한민국, 일회용품의 유혹’ 자료를 발표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한국의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이 67.4㎏(유로맵·2020년 기준)으로 세계 2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그린피스의 발표에 경각심을 가질 만하다.

한국의 쓰레기 재활용률이 낮은 이유를 한가지로 콕 집어 설명하기는 어렵다. 재활용은 크게 분리배출-수거-선별-처리의 4단계로 이뤄지는데, 단계마다 재활용을 어렵게 만드는 문제가 산적해 있어서다. 업계 관계자들은 그중에서도 재활용의 시작점인 분리배출 단계가 원활하게 이뤄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쓰레기가 제대로 분리배출되지 않으면 나머지 단계에서 부하가 걸리게 되기 마련이라서다.


문제는 분리배출이 전적으로 시민들의 참여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한국리서치가 진행한 설문조사(성인남녀 1000명 대상·8월 기준) 결과를 보면, ‘재활용 쓰레기 및 음식물쓰레기 분리배출 기준을 미준수한 경험’을 묻는 질문에 전체의 92.0%가 ‘있다’고 답했다. 1995년 재활용 분리배출을 도입한 지 2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시민들은 분리수거함 앞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시민들이 제대로 분리배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이 없을까. 가톨릭대 사회혁신 캡스톤 디자인: 디자인싱킹 수업에 참여한 ‘Philosophy J(PJ·김동한·현수미·이지현 학생)팀’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먼저 PJ팀은 쓰레기 재활용률이 낮은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부천시 자원순환센터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만난 선별업체의 한 관계자는 “자원순환센터에서는 쓰레기봉투를 파봉한 다음에 세척·선별·재분류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분리배출이 잘된 경우엔 이 과정을 상당 부분 생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민들이 제대로 분리배출만 해줘도 선별업체의 부담을 줄일 수 있고, 쓰레기 재활용률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얘기였다.

PJ팀은 분리배출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걸 프로젝트의 목표로 삼기로 했다. 그 방법을 고민한 끝에 학생들은 몇가지 아이디어를 도출해 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건 ‘수거함 뚜껑 만들기’였다.

김동한 학생의 얘기를 들어보자. “어떻게 하면 시민들이 직관적으로 쓰레기를 분리배출할 수 있을까를 가장 많이 고민했어요. 그러다 수거함을 자세히 살펴봤는데, 어느 곳에 비닐과 캔·종이를 버려야 하는지 한눈에 보기 어렵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죠. 또 뚜껑이 없어 수거함이 지저분해 보였는데, 그러면 시민들이 불쾌감 때문에 제대로 분리배출을 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따라서 분리배출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수거함을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다다랐습니다.”

학생들은 수거함을 효과적으로 바꿀 수 있는 방안을 해외에서 찾아냈다. 캐나다의 한 마을에서 페트병·유리병·신문지·비닐봉지 형상으로 구멍을 뚫은 뚜껑을 쓰레기 수거함에 설치했는데, 그것만으로도 분리배출률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자료를 찾으면서부터였다. 강요가 아닌 자연스러운 상황을 만들어 시민들이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돕는 ‘넛지효과’가 접목된 해결법이었다.

PJ팀은 즉시 이를 실행에 옮겼다. 도안을 그리고, 목공소에 찾아가 나무 뚜껑을 제작했다. 심미성을 높이고 구별하기 쉽도록 색도 입혔다. 그런 다음 PJ팀은 사전에 협조를 요청했던 오피스텔 단지에 뚜껑을 설치했다. 쓰레기를 구멍 속에 ‘쏙’ 넣는다는 뜻으로 ‘쏙 프로젝트’라는 프로젝트명도 정했다.

PJ팀은 프로젝트를 실시하기 전후의 분리배출 상황을 꼼꼼히 기록했다. 뚜껑을 설치하기 전 2차례에 걸쳐 쓰레기를 분석한 결과, 이 오피스텔의 분리배출률은 각각 6.3 %·14.3%로 조사됐다. 분리배출률이 극히 낮았던 만큼 학생들은 쏙 프로젝트로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학생들의 예상과 정반대였다. 뚜껑 설치 후의 측정에서 오피스텔의 분리배출률이 되레 0%로 곤두박질쳤다. 뚜껑만으론 제대로 된 분리배출을 이끌어낼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원인이었다.

현수미 학생의 설명을 들어보자. “정확히 분리배출이 되려면 내용물을 다 빼고 라벨지와 뚜껑 링도 제거해야 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해요. 하지만 단순히 쓰레기 모양을 표현하는 뚜껑으론 이를 설명하는 게 불가능하죠.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예요.”

뚜껑의 구멍이 쓰레기 모양과 맞지 않았다는 문제도 있었다. 뚜껑을 열고 쓰레기를 버리거나 엉뚱한 곳에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수거함 주변에 붙였던 포스터도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이지현 학생은 “아무리 자세히 설명을 해 놔도 버릴 사람은 버리더라”라면서 “보다 근본적인 차원의 해결법이 필요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시민들이 쓰레기 분리배출을 하게 만드려면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소통이 필요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시민들이 쓰레기 분리배출을 하게 만드려면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소통이 필요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래도 PJ팀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피드백을 통해 오피스텔 주민들이 이 프로젝트에 꽤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걸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뚜껑을 보면서 분리배출을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며 PJ팀에 고마움을 표현했다. 오피스텔 관리인도 “뚜껑 없이 그냥 열어두는 것보다 닫혀있는 게 훨씬 보기 좋고 깨끗했다”면서 “돈을 들여서라도 만들고 싶은 퀄리티”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분리배출이 전적으로 시민들의 참여로 이뤄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분명 작지 않은 성과였다.

프로젝트를 마친 PJ팀은 솔직한 소감을 전했다. “우여곡절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어요. 뚜껑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아 공장을 전전하기도 했고, 주민들의 협조를 구하는 과정도 무척 힘들었어요. 결과도 기대만큼 좋지 않았고요. 그래도 자부심은 있습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답은 결국 ‘소통’에 있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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