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Philosophy J팀
쓰레기 분리배출의 시작은 사람
쓰레기 뚜껑만으론 문제 해결 안 돼
시민들과의 적극적인 소통 필요
한밤중에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수거함에 서 있다고 가정해보자. 안내 표시가 잘 보이지 않는 지저분한 수거함을 보고 있으면 대충 버리고 빨리 자리를 뜨고 싶다는 마음도 생긴다. 그럼 쓰레기 수거함을 바꾸면 이런 생각도 바뀌지 않을까. ‘가톨릭대 사회혁신 캡스톤 디자인 : 디자인씽킹’ 수업에 참여한 Philosophy J팀이 쓰레기 수거함 뚜껑을 만들기 시작한 이유다. 하지만 문제는 수거함 뚜껑이 아니라 ‘마음의 뚜껑’이었다.
✚ 쓰레기 분리배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있나요?
김동한 학생(이하 김동한) : “일단 쓰레기 재활용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하기로 팀원들과 어느 정도 얘기가 돼 있던 상태였어요. 그런 뒤 부천시 이곳저곳을 돌면서 현장을 살펴봤는데요. 일반 쓰레기를 종량제봉투가 아닌 일반 봉지에 버리거나 페트병을 제대로 분리배출하지 않고 버리는 경우를 무척 많이 봤어요.”
현수미 학생(이하 현수미) : “특히 플라스틱 분리배출 문제가 심각했어요. 플라스틱 쓰레기에 음식물이 묻어있거나 라벨지가 그대로 붙어있는 경우가 무척 많았어요. 이러면 재활용을 할 수가 없거든요.”
쓰레기 분리배출률을 높이려면 시민의 협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다양한 종류의 쓰레기를 분리배출하는 방법을 일일이 시민들에게 알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정확한 방법을 모른채 쓰레기를 분리하면 재활용이 더 어려워진다. 한국의 쓰레기 분리배출률이 69%(2017년)로 높은 편에 속하지만 실제 재활용률은 낮다는 지적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 시민들이 분리배출을 하도록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요.
이지현 학생(이하 이지현) : “맞아요. 자발적으로 분리배출을 하도록 장려해야 하는데, 모든 시민에게 대대적인 교육을 하기란 불가능하죠. 분리배출만 잘해도 재활용률을 크게 높일 수 있는데, 안타까워요.”
현수미 : “그래서 시민들이 분리배출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한달 넘게 그 고민만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6~7가지 아이디어를 도출해 냈는데, 대부분이 쓰레기 수거함을 개선하는 내용이었어요. 여기가 우리 프로젝트의 출발점이었죠.”
✚ 쓰레기 수거함이 어떤 문제가 있나요?
현수미 : “대부분의 쓰레기 수거장에 어떻게 해야 플라스틱을 분리배출할 수 있는지를 돕는 안내 문구가 없었어요. 플라스틱·유리병·비닐 등을 종류별로 버릴 수 있도록 하는 안내 표시의 크기도 작아서 잘 보이지 않았고요. 이런 것들을 눈에 띄게 표시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김동한 : “단순히 안내문구를 잘 보이는 곳에 놓는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닌 듯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시민들이 직관적으로 분리배출을 할 수 있게 만들까를 고민하다가 해외 사례에서 답을 찾았어요.”
✚ 그게 무엇이었나요.
김동한 : “캐나다에서 어느 정도 효과가 입증된 방식인데, 쓰레기 수거함에 뚜껑을 달아놓는 거였어요. 그 뚜껑엔 페트병·유리병·비닐·종이 등의 생김새를 본떠 만든 구멍이 있어요. 그 구멍이 있으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그 구멍에 맞는 쓰레기를 버리게 돼요. 직관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죠. 국내엔 아직까지 도입된 사례가 없었기에 이걸 벤치마킹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현수미 : “먼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오피스텔에 협조를 구했어요. 그런 뒤 그 오피스텔의 쓰레기 수거함의 치수를 재고, 그에 맞는 크기로 뚜껑 도면을 그렸죠.”
이지현 : “처음엔 아크릴을 써서 튼튼하게 뚜껑을 만들려고 했는데, 그러려면 금형을 만들어야 하거든요. 재단소에서 견적을 내봤더니 100만원이 훌쩍 넘더라고요. 프로젝트에서 감당할 수 있는 예산이 아니라서 어쩔 수 없이 나무로 제작하기로 결정했죠.”
김동한 : “재질을 바꿔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어요. 목공소를 여러 곳 수소문했는데, 저희가 제안한 예산으론 사실상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어요. 다행히 한곳의 사장님이 흔쾌히 수락을 하셔서 가까스로 뚜껑을 만들 수 있었어요.”
✚ 뚜껑 외에 다른 아이디어도 활용했나요?
현수미 : “수거함 근처에 분리배출 방법을 안내하는 포스터를 만들어 붙였어요. 분리배출을 제대로 하면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페트병 분리배출하는 방법 등이 적혀 있는 포스터였어요.”
✚ 뚜껑을 설치하기 전후의 결과는 어떻게 비교했나요?
김동한 : “뚜껑을 설치하기 전에 2차례 수거함을 조사해서 쓰레기를 전부 살펴봤어요. 분리배출률이 얼마나 되는지 통계를 냈는데, 1차 조사에서 쓰레기의 93.7%, 2차엔 85.7%가 제대로 분리배출되지 않았죠.”
현수미 : “뚜껑 설치 후엔 3번에 걸쳐 조사를 했는데요. 1차 조사 때 수거업체에서 쓰레기를 수거하는 바람에 측정을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2차례 더 조사를 했죠.”
✚ 결과가 어땠나요.
이지현 : “생각했던 것과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어요. 2·3차 조사에서 모든 쓰레기가 제대로 분리배출되지 않았어요. 분리배출률이 사실상 ‘제로’였던 셈이죠.”
✚ 그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현수미 : “일단 플라스틱 쓰레기가 제대로 분리배출이 되려면 내용물이 없어야 하고, 라벨지가 제거되고, 페트병의 경우엔 병뚜껑과 뚜껑 링이 없어야 해요. 하지만 수거함 뚜껑을 설치하는 것만으론 이런 세세한 안내를 하는 게 불가능하죠. 이게 분리배출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인 것 같아요.”
김동한 : “뚜껑의 구멍 크기와 실제로 버리는 쓰레기 크기가 맞지 않는 문제도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뚜껑을 열고 쓰레기를 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죠.”
이지현 : “병과 캔을 구별하지 않았던 것도 문제가 됐어요. 구멍을 병 모양으로만 뚫어놓다 보니까 캔을 어디에 버려야 할지 몰랐다는 주민들의 피드백을 받았거든요.”
✚ 결과가 좋지 않았으니 실망이 컸겠네요.
현수미 : “그랬죠. 이 프로젝트를 한학기 내내 했거든요. 고생한 만큼의 성과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다들 풀이 죽어 있었어요.”
✚ 주민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김동한 : “그래도 다행인 게 주민들의 반응이 기대 이상으로 좋았어요. 프로젝트 이후의 설문조사에서 ‘페트병을 세척하고 라벨을 제거해 배출하나’라는 질문에 전부 ‘그렇다’고 답변했거든요. 저희와 계속 대화를 나누면서 분리배출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이지현 : “오피스텔 관리인도 프로젝트에 큰 관심을 보여주셨어요. 덕분에 그분께 많은 도움을 받아 프로젝트를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었죠. 뚜껑을 설치하니 지저분해 보이지 않아 수거함 주변의 미관도 살고 분리배출에도 도움이 된다는 피드백도 받았고요. 이번 프로젝트의 소득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란 걸 깨달았어요.”
✚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느낀 점이 있다면.
현수미 : “프로젝트를 지도하신 교수님이 ‘일단 실패해라’는 얘기를 많이 했거든요. 처음부터 완벽하게 하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 그 말이 잘 와닿지 않았어요. 하지만 뚜껑이 가진 문제점들을 프로젝트 막바지에 알게 되면서 그 말이 다시 생각났죠. 저에겐 큰 깨달음이었어요.”
김동한 : “솔직히 저는 뚜껑만 설치하면 엄청난 변화가 생길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죠. 오히려 주민들과 메신저를 통해 꾸준하게 나눴던 대화가 주민들의 분리배출 참여율을 높일 수 있는 열쇠였단 걸 깨달았어요. 결국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건 아이디어가 아닌 ‘사람’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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