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지표로 분석한 국내 증시
숫자들 ‘거품’ 징조 가리키고 있어
닷컴버블·금융위기 역사 돌아보고
증시 붕괴 위험에 대비해야 할 때

우리는 11월 첫째주 통권 466호 커버스토리를 통해 국내 증시의 ‘버블’을 분석했다. 증시의 흐름을 가늠하는 세 가지 지표를 분석했는데, 버핏지수는 135%(이하 10월 22일 기준), 후행 PER 지수(중위값 기준)는 22.03배, 가계자산 중 주식이 차지하는 비율은 21.6%로 나타났다. 숫자만 보면, 세 지표는 모두 ‘거품’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린 무엇을 대비해야 할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버블의 역사’를 기록해 본 이유다. 

2000년 닷컴버블 당시 증시를 주도한 것은 정보통신 관련 벤처기업이었다.[사진=연합뉴스]
2000년 닷컴버블 당시 증시를 주도한 것은 정보통신 관련 벤처기업이었다.[사진=연합뉴스]

버블의 역사를 논할 때 19세기 영국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영국에선 중남미 광산을 둘러싼 투자 붐이 일어났다. 하지만 도로망이 부실하고 숙달된 노동자가 부족하다는 현지 사정을 무시한 ‘묻지마식’ 투자는 경제적 재난으로 돌아왔다. 현대사에 기록된 최초의 ‘이머징 마켓’ 버블의 폐해였다.  

그렇다고 버블이 부작용만 낳는 건 아니다. 일시적으로 쏟아지는 대규모 투자금은 한 산업의 기술 혁신에 기여하기도 했다. 19세기 말 영국의 ‘자전거 버블’은 자전거ㆍ자동차ㆍ오토바이 등 이동수단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2000년대의 ‘닷컴 버블’ 역시 일부 정보통신 기업의 성장에 영향을 미쳤다.

버블의 역사를 국내 증시에 적용해도 다르지 않다. 주식시장이 끓어올랐던 2000년 닷컴버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 국내 상황을 보면 버블의 후유증과 수혜가 뒤섞여 있다. 거품의 정점에서 흔적 없이 사라진 기업이 있는 반면 거품을 등에 업고 지금까지 증시에서 세를 과시하는 곳도 있다. 

그렇다면 2000년 닷컴버블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증시에 낀 거품은 어느 정도였을까. 그때 그 버블을 만든 요주의 종목들은 과연 어떤 미래를 맞이했을까. 

■2000년 닷컴버블 전후 = 2000년 1월 4일. 이날 코스피지수는 1059.04포인트를 기록하며 정점을 찍었다. 1999년부터 불기 시작한 ‘벤처 붐’ 덕분이었다. 인터넷에 기반한 새로운 산업의 출현은 외환위기 여파로 신음하던 국내 증시의 분위기를 바꿔놨다. 인터넷광고ㆍ인터넷전화 등 정보통신 기술로 무장한 벤처기업들의 창업이 쏟아지고 이들의 주가도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제대로 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지 않은 상태에서 우후죽순 생겨난 신생 기업들은 무너졌고 증시에 쌓였던 거품도 꺼졌다. 연초 1000포인트를 상회하던 코스피지수는 2000년 12월 말 504.62포인트를 기록하며 반토막 났다. 이후 코스피지수가 다시 1000선을 회복하기까지 4년의 시간이 걸렸다. ‘닷컴버블’이 남긴 극심한 후유증이었다.

그만큼 당시 증시에 낀 거품의 정도는 어마어마했다. 거품이 붕괴하기 직전 코스피에 상장된 시가총액 상위 50개 기업의 평균 후행 PER(Price Earning Ratioㆍ주가수익비율) 지수는 126.36배였다. 기업들의 이익에 비해 주가가 126배 높게 평가되고 있었다는 뜻이다. 

거품의 중심에 있던 종목은 단연 정보통신주였다. 그중 키움닷컴(현 키움증권)의 지주사였던 IT기업 ‘다우기술’의 후행 PER 지수가 2892.86배로 가장 높았다. 다우기술의 주당순이익은 14원에 불과했다. 

동원그룹의 정보통신 관련 계열사였던 ‘성미전자’가 후행 PER 지수 324.07배, 주당순이익은 54원으로 그 뒤를 이었다. 이밖에 ▲SK텔레콤(209.35배) ▲KT의 전신인 한국통신공사(204.35배) ▲미래산업(200.00배) ▲콤텍시스템(108.65배) 등 정보통신 기업들이 당시 증시 거품의 한복판에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란히 거품 위에 올라탔던 이들 기업의 미래는 달랐다. ‘거품 중 거품’이라 불릴 만했던 다우기술의 현재는 흥미로웠다. 지난 10월 22일 기준 다우기술의 후행 PER 지수는 3.67배로 나타났다. 업종(서비스업) 평균 후행 PER 지수가 13.30배인 점을 감안하면 다우기술은 과거와 달리 증시에서 지나치게 저평가되고 있는 셈이다.

현재 다우기술은 ‘다우키움그룹’의 중간지주회사로 기업에 업무용 통신 인프라를 제공하는 시스템 구축 사업과 인터넷 사업 등을 영위하고 있다. 2017년부터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꾸준히 늘어나면서 실적개선을 거듭하고 있지만 다우기술의 주가는 4년째 ‘박스권(2만4000~7000원)’에 갇혀 있다. 

같은 거품 달라진 미래 

증권업계에서는 주요 고객이자 자회사인 키움증권으로 인해 모회사 격인 다우기술이 되레 ‘더블카운팅’의 손해를 입고 있다고 평했다. 닷컴버블 당시 자회사(키움닷컴)의 수혜를 톡톡히 입었던 다우기술 입장에서는 ‘웃픈’ 상황이다.[※참고: 모회사와 자회사가 모두 상장할 경우 시장에서 형성된 시가총액에 두 기업의 가치가 중복 계상되는 만큼 모회사의 주가가 할인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를 더블카운팅이라고 한다.]

하지만 다우기술은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를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모른다. 닷컴버블 이후 증시 역사에서 아예 사라져버린 기업도 있기 때문이다. 성미전자가 대표적이다. 

1995년 동원그룹이 인수한 성미전자는 언론에 ‘IMF에도 부도가 나지 않는 회사’로 소개될 만큼 탄탄한 회사였다. 성미전자가 설립한 자회사 ‘해피텔레콤’은 무선호출기(일명 삐삐) 사업자로 선정돼 성공가도를 달렸다. 1998년 1월 7일엔 주가 5만3000원을 기록, 삼성전자(4만2800원)를 앞서기도 했다.

증시에 낀 거품이 언제 발생하고 붕괴할지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사진은 2000년 4월 증시 현황.[사진=연합뉴스]
증시에 낀 거품이 언제 발생하고 붕괴할지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사진은 2000년 4월 증시 현황.[사진=연합뉴스]

하지만 2000년대로 접어들며 증시 거품이 무너지고 무선호출기 산업마저 쇠퇴하면서 성미전자의 사세도 기울었다. 진퇴양난에 빠진 성미전자는 2005년 모회사인 동원그룹의 계열사 동원EnC와 통합해 ‘동원시스템즈’로 개칭한 뒤 유ㆍ무선통신 분야에서 부활을 노렸다. 

이후 2013년 성미전자는 다시 동원시스템즈의 통신부문 자회사(동원티앤아이)로 물적분할된 뒤 2016년 동원시스템즈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매각 처리됐다. 당시 동원시스템즈가 동원티앤아이의 주식 60만주를 전량 처분한 금액은 130억원에 불과했다. 한때 주식시장의 샛별이었던 성미전자의 최후치곤 초라한 몸값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 = 앞서 살펴본 2000년 1월 닷컴버블 이후 가장 거대한 버블은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코스피지수는 1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2007년 4월 9일 사상 최초로 1500선을 돌파(1501.0포인트)한 코스피지수는 7월 25일 한국 증시 역사상 처음으로 2000선을 돌파(2004.22포인트)했다. 주식시장의 급등세는 11월 1일 코스피지수가 장중 최고치(2085.45포인트)를 찍으며 절정에 달했다. 

당시 주식시장의 거품은 후행 PER 지수에서도 나타났다. 2007년 11월 1일 기준 코스피에 상장된 시가총액 상위 50개 기업의 평균 후행 PER 지수는 42.57배였다. 이 시기 증시의 특징은 조선ㆍ해운업 종목을 중심으로 주가에 거품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200배가 넘는 후행 PER 지수를 기록한 두산중공업(211.56배)을 필두로 ▲대우조선해양(181.67배) ▲STX(126.48배) ▲삼성중공업(78.37배) ▲STX 팬오션(73.47배) ▲HMM(당시 현대상선ㆍ52.54배) 등 조선ㆍ해운사들이 증시 과열을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조선ㆍ해운업은 6년간 장기 호황을 누리고 있던 시점이었다.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후 해운 교역량과 선박 발주량이 급증한 덕이다. 실제로 2001년 1872만 CGT였던 글로벌 선박 발주량은 2007년 9197만 CGT로 6년간 391% 증가했다. 기업의 미래 가치에 투자하는 주식시장에서 업황이 좋은 조선ㆍ해운사의 주가가 뛰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하지만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로 증시 거품이 붕괴하면서 조선ㆍ해운사들의 주가는 폭락했다. 2007년 18만3000원(11월 1일 기준)이었던 두산중공업의 주가는 2008년 6만9500원(9월 1일 기준)을 기록하며 62% 하락했다. 같은 기간 ▲STX(13만9000원→2만7000원) ▲대우조선해양(5만6500원→2만9900원) ▲삼성중공업(5만2900원→2만9600원)의 주가도 각각 81%, 47%, 44% 하락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선박 수주량이 대폭 감소하고 벌크선 운임이 급락하면서 조선ㆍ해운업도 쇠퇴했다. 이 시기 퇴출과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업들만 80여곳에 이른다. 그 후 13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당시 버블의 주역들을 살펴본 결과는 놀라웠다. 2008년 이후 10년 넘게 장기불황의 늪에 빠졌던 조선ㆍ해운사 중 일부는 여전히 증시에서 거품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대우조선해양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저가수주의 악순환, 경영진의 비리 등으로 부실화하며 2019년 1월 매각 절차를 밟았다. 하지만 2년째 현대중공업과의 합병 절차가 지연되면서 부채만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8월 기준 대우조선해양의 부채는 7조1986억원으로 지난해 연말(6조4518억원) 대비 11.6% 증가했다.

그사이 실적은 쪼그라들었다. 대우조선해양의 2020년 매출액은 7조302억원, 영업이익은 1534억원으로 이는 2018년 대비 각각 27%(9조6444억원), 85%(1조348억원) 감소한 수치다. 그럼에도 지난 10월 22일 기준 대우조선해양의 후행 PER 지수는 39.71배로 나타났다. 이는 주식시장에서 대우조선해양을 향한 여전한 기대감이 주가에 반영됐다는 방증이다. 

주식투자의 위험을 줄이려면 버블의 징조를 주시하고 검증할 필요가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주식투자의 위험을 줄이려면 버블의 징조를 주시하고 검증할 필요가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업계 관계자는 “올 초부터 조선ㆍ해운 업황이 개선되기 시작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켤 전망”이라면서도 “하지만 3분기 호실적을 거둔 다른 조선ㆍ해운사와 달리 대우조선해양은 큰 폭의 적자를 예상하는 데다가 기약 없는 기업합병도 리스크로 남아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대우조선해양의 주가(2만3000~5000원 선)가 다른 기업과 비교해 높지 않음에도 거품이 껴있다고 여겨지는 이유다.

반면 실적이 좋긴 하지만 주가가 과대평가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곳도 있다. 바로 HMM이다. HMM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물류 대란이 벌어지고 해상 운임이 급등하면서 그 수혜를 톡톡히 누렸다. 그 결과 지난해 1분기 2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던 HMM의 영업이익은 분기마다 2배씩 급증하더니 올해 3분기 2조2708억원의 흑자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실적개선과 함께 HMM의 주가도 치솟았다. 지난해 1월 2일 3750원에 불과했던 HMM의 주가는 올해 5월 한때 5만600원까지 급등했다. 1년 4개월 만에 주가가 무려 1249% 폭등한 셈이다. 지난 10월 22일 기준 HMM의 후행 PER 지수는 281.07배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52.54배)의 5배 수준이었다. 거품이 꺼지기는커녕 되레 더해진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이유 있는 거품 필연적인 붕괴 

이처럼 버블이 일어난 배경에는 한가지 특징이 있다. 기업을 향한 투자자들의 지나친 기대가 주식시장을 향한 투기로 연결됐다는 거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경영환경, 목표, 전략 등 기업의 내재가치는 추상적이다.

투자자는 추상적인 가치와 눈에 보이는 가격이 얼마나 벌어져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거품이 한번 생기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투자자들이 그런 버블을 인지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김영한 성균관대(글로벌경영학)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기업이 가진 실질적 가치와 ‘주가’로 대변되는 투자자들의 기대감 사이 불균형이 눈에 보이는 시점은 단 한번뿐이다. 그건 이미 거품이 무너지기 시작했을 때다.” 누가 뭐래도 버블을 분석하고 검증해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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