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형 화장품 속 스타트업
맞춤형 시대 열렸지만 더딘 성장
대기업 중심 시장서 스타트업들 분투

정부는 K-뷰티의 미래를 이끌 원동력으로 맞춤형 화장품을 꼽았다.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 대기업들도 의지를 보이며 맞춤형 화장품 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 시장에 대기업만 있는 건 아니다.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디테일한 전략으로 무장한 스타트업도 있다.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만만치 않은 시장이긴 하지만 그들을 주목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개인별 피부 고민을 해결해주는 맞춤형 화장품은 정부의 미래 먹거리 산업이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개인별 피부 고민을 해결해주는 맞춤형 화장품은 정부의 미래 먹거리 산업이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매장에 설치된 앱으로 피부 컬러를 진단받은 뒤 원하는 색을 선택하면 40여분 뒤 나만의 립스틱이 나온다. 2016년 8월 아모레퍼시픽이 명동 라네즈 플래그십스토어에 선보인 ‘마이 투톤 립 바’다. 14가지 입술 안쪽 컬러와 13가지 바깥쪽 컬러를 조합해 총 182가지 컬러 중 선택하는 립스틱인데, 이게 바로 국내 첫 맞춤형 화장품이다. 

아모레퍼시픽은 그해 11월엔 두번째 맞춤형 화장품인 ‘마이 워터뱅크 크림(라네즈)’까지 출시했다. LG생활건강은 2017년 1월 브랜드 CNP (차앤박)를 통해 나만의 기초세럼을 만드는 맞춤형 화장품 ‘르메디’를 론칭했다. 국내 화장품업계 양대 산맥인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이 연이어 맞춤형 화장품을 출시한 건 정부의 맞춤형 화장품 시범사업에 참여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화장품 판매 현장에서 소비자 개인별 피부 특성에 맞는 화장품을 혼합 판매하는 것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화장품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시범사업 안전관리 계획을 발표했다. 맞춤형 화장품 시대의 서막을 알린 셈이었다.

하지만 맞춤형 화장품 시장은 기대만큼 빠르게 성장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장애물이 많았다. 매장에 진단·제조장비를 구축해야 했는데, 구입·설치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매장에서 직접 제조하는 화장품의 위생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날개를 달지 못한 맞춤형 화장품 산업은 2019년 말 전환점을 맞았다. 정부가 맞춤형 화장품을 K-뷰티의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면서 맞춤형 화장품 카드를 다시 꺼내든 거다. 

당시 정부는 “K-뷰티를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해 수출 3위 국가로 올라서겠다”는 목표를 제시하며 “2020년 3월 세계 최초로 맞춤형 화장품 제도를 신설·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원료를 혼합·소분하고 품질관리를 담당하는 ‘조제관리사’ 제도도 국가 자격으로 도입하겠다고 덧붙였다. 

이후 맞춤형 화장품 시장은 조금씩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아모레퍼시픽은 고객의 피부에 적합한 입술 컬러를 추천하고 제품을 제조해주는 맞춤형 립스틱 서비스(립 피커), 3D 프린팅 기술로 고객 맞춤형 마스크팩을 제작하는 기술을 개발한 데 이어 지난 4월엔 맞춤형 파운데이션·쿠션 제조 서비스인 ‘베이스 피커(BASE PICKER)’를 출시했다. 

베이스 피커는 20단계 밝기와 5가지 톤으로 구성된 100가지 컬러와 2가지 제형 중 선택해 나에게 맞는 파운데이션 또는 쿠션을 만드는 서비스다. 아모레퍼시픽은 이를 위해 카이스트와 3년여 연구 끝에 제조 로봇을 개발해 특허 출원했다. LG생활건강도 2017년 시범 사업으로 진행했던 맞춤형 화장품 사업을 CNP Rx 매장을 통해 본격적으로 진행할 채비를 하고 있다.

맞춤형 화장품은 세계적인 추세다. 글로벌 뷰티기업인 로레알은 ‘CES 2021’에서 맞춤형 립 메이크업 제조 시스템, 즉석 토너 패드 제조 장치를 선보였다. 랑콤은 최첨단 피부진단기 ‘스킨스크린’ ‘유스 파인더’ 등으로 고객 맞춤 피부 진단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관심도 그만큼 크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0~40대 여성의 57.0%는 맞춤형 화장품이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그 이유가 ‘일반 화장품보다 나에게 더 잘 맞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다. 과거엔 특정 브랜드와 가격을 선택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맞춤형 화장품을 원하는 수요가 그만큼 늘었다는 방증이다.

대기업이 주도하고 있는 맞춤형 화장품 시장에서 스타트업은 꽃피울 수 있을까.[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기업이 주도하고 있는 맞춤형 화장품 시장에서 스타트업은 꽃피울 수 있을까.[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아직까지 맞춤형 화장품 시장은 대기업이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 그렇다고 작은 기업의 활약이 없는 건 아니다. 맞춤형 피부관리 프로그램 ‘스킨핏’을 전개하고 있는 스타트업 닥터케이헬스케어는 작은 스마트폰 보조렌즈를 활용해 개인별 최적의 솔루션을 제공한다. 자체 개발한 피부 분석기와 화장품 제조로봇으로 맞춤형 화장품을 만들고 있는 스타트업 릴리커버도 주목할 만하다. 아기자기하고 디테일한 전략으로 ‘대기업의 땅’을 파고들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작은 기업들의 분투가 얼마나 알찬 열매로 이어질 수 있느냐다. 가능성은 높지 않다. 정부의 육성산업이지만 아직까진 적극적인 지원보다 ‘규제 혁신’ 등 간접적인 지원에 머물러 있어서다. 맞춤형 화장품 시장이 대기업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주덕 성신여대(뷰티산업학) 교수는 “처음 조제관리사 자격시험을 도입할 때만 해도 창업붐이 이어질 거란 기대가 많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그렇지 않았다”며 “자금 지원뿐만 아니라 기술이나 노하우 전수 등이 동반돼야 스타트업들도 적극적으로 뛰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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