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식 마케팅 빛과 그림자
정 부회장 ‘부캐’ 제이릴라
제이릴라 IP 사업 본격화

‘괴짜’ ‘천재’라 불리며 대중과 활발히 소통하는 CEO들이 있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나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이 대표적이다. 국내에도 이들과 비견되는 인물이 있다. 신세계그룹의 정용진 부회장이다. 개인 SNS를 직접 관리하며 대중과 격 없이 소통하는 그는 최근 자신의 ‘부캐’를 활용한 브랜드까지 론칭했다. 브랜드가 된 정 부회장, 그는 신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대중과 활발히 소통하는 CEO로 꼽힌다.[사진=연합뉴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대중과 활발히 소통하는 CEO로 꼽힌다.[사진=연합뉴스]

“화성에서 온 ‘고릴라(제이릴라)’가 우주의 레시피로 베이커리를 열었다.” 이 흥미로운 스토리는 신세계푸드가 지난 11일 선보인 ‘유니버스 바이 제이릴라(UNIVERSE BY JRILLA)’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유니버스 바이 제이릴라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부캐(부 캐릭터)’ 제이릴라를 콘셉트로 한 프리미엄 베이커리다.[※참고: 제이릴라는 정용진 부회장을 본떠 만든 캐릭터다. 정 부회장의 이니셜 ‘J’와 고릴라의 ‘릴라’를 따서 이름지어졌다. 지난 4월 개설된 제이릴라 인스타그램 계정 팔로워는 1만명을 넘어섰다.] 

개점 2일차인 12일 오후 서울 청담동 SSG푸드마켓 1층에 위치한 유니버스 바이 제이릴라를 찾았다. 점심시간이 막 지난 때였지만 매장 안에는 20여명의 사람들이 구경에 여념이 없었다. 독특한 콘셉트는 매장 입구에서부터 드러났다. 우주선을 모티브로 삼은 매장 입구에는 제이릴라 대형 피규어가 서 있었다.

신세계푸드가 ‘범우주적 미래형 베이커리’라고 홍보했듯 매장 자체가 여느 베이커리와는 달랐다. 소비자의 식욕을 자극하는 ‘빵 굽는 냄새’가 나지 않는 건 대표적이다. 바닥과 벽면, 테이블, 의자, 매대 등은 모두 검은색을 채택했다. 직원들은 SF 영화에 나올 법한 유니폼을 입고 분주히 오갔다.

매장 안쪽 벽면엔 LG전자와 협업한 ‘올레드 월(OLED Wall)’을 설치해놨다. 화면에선 우주와 지구를 오가는 제이릴라의 영상이 반복됐다. 비트가 강한 음악이 흘러나와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냈다. 매장 한쪽 벽면에는 턴테이블, 헬멧, 서적 등 제이릴라의 취향을 드러내는 ‘컬렉션’이 자리하고 있었다. 

60여종의 베이커리 제품은 우주와 태양계를 모티브로 했다. 진열 방식도 독특했다. 베이커리 제품을 우주 광물처럼 투명 진열장 안에 배치했다. 또 ‘식스 스타(Six-starㆍ6성급)’ 베이커리를 지향하는 만큼 제품 가격은 일반 프랜차이즈 베이커리 대비 비싼 편이었다. 이곳을 찾은 직장인 김은경(30)씨는 “SNS에서 개점 소식을 접하고 찾아왔다”면서 “가격대는 좀 높은 편이지만 분위기가 독특하고 빵 맛도 괜찮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매장이 단순한 빵집이 아니라는 점이다. 신세계푸드는 향후 제이릴라 캐릭터를 활용한 다양한 지식재산권(IP) 사업을 펼친다는 계획을 세워놨다. 지난 4월 신세계푸드가 음식료뿐만 아니라 광고ㆍ스포츠ㆍ주류ㆍ광고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제이릴라 상표권을 특허청에 출원한 이유다. 유니버스 바이 제이릴라는 제이릴라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콘셉트 스토어인 셈이다.[※참고: 사실 제이릴라 상표를 먼저 론칭한 건 이마트(2020년 9월)다. 이후 지난해 말 신세계푸드가 이마트로부터 소유권을 양도받았다.]

회사 관계자는 “2호점 확대 계획은 없다”면서 “그동안 SNS를 통해 알려온 제이릴라의 세계관을 오프라인에서 소비자가 직접 경험해볼 수 있도록 매장을 열었을 뿐이다”고 설명했다.[※참고: 제이릴라를 활용한 IP 사업은 벌써 본격화하고 있다. 신세계 계열 의류 플랫폼 W컨셉은 지난 15~21일 제이릴라와 콜라보한 마케팅 행사 ‘디데이 위드 제이릴라’를 진행했다.] 

어쨌거나 제이릴라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서 ‘제이릴라=정용진’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정 부회장 자체가 브랜드가 되고 있는 셈인데, 비슷한 사례는 신세계 다른 계열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신세계는 정용진 부회장을 모티브로 만든 캐릭터 ‘제이릴라’를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신세계는 정용진 부회장을 모티브로 만든 캐릭터 ‘제이릴라’를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이마트는 지난 9월 ‘YJ 박스’를 SSG닷컴에서 한정 판매했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YJ 박스’는 정 부회장이 선별한 이마트 PB(Private Brand) 상품을 한데 모은 기획 세트다. ‘피코크 유림면 비빔메밀’ ‘노브랜드 채끝 스테이크 육포’ ‘피코크 캐모마일 허니 블렌드티’ 등 25개 상품이 포함됐다. 500여개를 9만9000원에 한정 판매했는데 12시간여 만에 품절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

정 부회장이 이 제품 출시에 앞서 자신의 SNS에 관련 영상을 업로드하는 등 적극적으로 홍보한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마트 관계자는 “당시 추석 명절을 앞두고 기획상품으로 YJ 박스를 선보였다”면서 “추가 출시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부회장을 전면에 내세운 또 다른 브랜드가 출시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마트는 지난 3월 숙박ㆍ광고ㆍ스포츠ㆍ연예오락ㆍ문구ㆍ커피ㆍ식품 등에 ‘YONG ENIUS(용지니어스·용진+지니어스)’ 상표권을 출원해놓은 상태다. 조민정 상표앤더시티 변리사는 “대기업의 경우 사업 기획 단계부터 관련 상표권을 미리 등록해 놓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마트 역시 자체 PB 브랜드 출시 등을 염두에 두고 다양한 분야에 ‘YONGENIUS’ 상표권을 출원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신세계 야구단 SSG랜더스(2021년 3월 출범) 역시 구단주 ‘정용진’을 활용한 마케팅에 열심이다. 정 부회장의 이름을 딴 ‘용진이형 상’을 선수들에게 시상하는가 하면 ‘용진이형’ ‘정용진’ 등이 새겨진 유니폼을 함께 판매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 부회장의 이런 행보는 신세계에 정말 ‘플러스’가 될까. 아직까지 대중의 반응은 나쁘지 않다. “재미있다” “국내엔 드문 리더의 모습이다” 등의 반응이 많다. 정 부회장의 SNS 팔로워가 71만명에 달하는 건 대중이 그에게 반응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정 부회장은 ‘괴짜 억만장자’라 불리는 영국 버진그룹의 창업자 ‘리처드 브랜슨’이나 트위터로 대중과 활발히 소통하는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와 비견되기도 한다.

안승호 숭실대(경영학) 교수는 “정 부회장은 기존에 볼 수 없던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과거와 달리 경영자와 소비자가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해졌고, 정 부회장은 이를 잘 활용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 부회장의 적극적 행보가 신세계 브랜드의 신뢰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은희 인하대(소비자학)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정 부회장은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이나 음식 관련 콘텐츠를 주로 업로드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소비자는 신세계의 제품이 이런 고민 끝에 출시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나아가 신세계 제품의 신뢰도가 높아지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제이릴라가 시장에 안착한다면 신세계 계열사를 아우르는 마케팅 포인트가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전망도 나온다. 제이릴라를 신세계 그룹이 추진하는 다양한 사업에 활용해 연속성을 심어줄 수 있다는 거다. 특히 청라 돔구장 등 테마파크 사업에도 제이릴라의 캐릭터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이준영 상명대(경제금융학) 교수는 “제이릴라를 활용해 신세계 계열사를 아우르는 세계관을 구축하는 시도를 할 수 있다고 본다”면서 “이른바 ‘신세계 유니버스’를 구축하는 데 제이릴라가 매개체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세계푸드는 지난 11일 제이릴라를 알리기 위한 콘셉트 스토어 ‘유니버스 바이 제이릴라’를 열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신세계푸드는 지난 11일 제이릴라를 알리기 위한 콘셉트 스토어 ‘유니버스 바이 제이릴라’를 열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그렇다고 반론이 없는 건 아니다. 오너가 아무런 견제도 없이 마케팅 전면에 나서는 건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숱하다. 이사회, 주주 등의 강력한 견제를 받는 해외 CEO와 달리 국내 오너는 시스템으로 견제하기 힘들다는 경영환경적 이유에서다. 

실제로 정 부회장은 걸러지지 않은 ‘멘트’로 오해를 불러일으킨 사례가 많다. 지난 5월 SNS에 올린 ‘미안하다 고맙다’는 글이 정치적 논란으로 비화한 건 대표적 예다.[※참고: 정 부회장은 지난 5월 SNS에 ‘미안하다 고맙다’는 게시글을 반복적으로 올렸다. 이를 두고 문재인 대통령이 세월호 희생자 방명록에 남긴 글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으로, 문 대통령을 비꼰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정 부회장의 ‘격 없는’ 소통 방식이 일부 소비자에겐 불편하게 다가올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근엔 SNS에 ‘재섭(재수없어)’라는 댓글을 단 이용자에게 ‘왜?’라고 응수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은희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걸러지지 않은 글을 SNS에 올리면 크든 작든 이슈가 터질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만큼 리스크 관리가 중요하고 문제가 터졌을 때 어떻게 대응하느냐도 소비자가 많은 관심을 갖는 부분이다. 특히 정 부회장의 이미지는 고스란히 그룹의 이미지로 전이된다. 정 부회장에게 부정적 이슈가 터지면 그룹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용진식 마케팅’ 전략이 성과를 보여줄 때라는 지적도 많다. 정 부회장이 떠들썩하게 론칭한 신사업 중 눈에 띄는 성과를 낸 사업이 많지 않아서다. 일례로, 2018년 론칭한 잡화 전문점 삐에로쑈핑은 일본 ‘돈키호테의 아류작’이란 비판만 남긴 채 2년 만에 문을 닫았다.

‘정용진 소주’라는 마케팅과 함께 야심차게 뛰어든 소주사업에서도 쓴맛을 봤다. 이마트는 2016년 제주소주를 인수하고 이듬해 소주 ‘푸른밤’을 론칭했다. 이마트라는 든든한 유통망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푸른밤은 시장에 안착하는 데 실패했다. 결국 이마트는 지난 3월 소주사업을 철수했다. 

‘정용진 호텔’이라 불린 부티크 호텔 ‘레스케이프(2018년 개점)’ 역시 반짝 이슈를 불러일으키는 데 그쳤다. 영국 H&B 스토어를 그대로 들여온 ‘부츠(Bootsㆍ2017년 론칭)’ 도 사업 철수 수순을 밟았다. 사업 철수는 필연적으로 인력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신사업의 실패가 누군가에겐 ‘실직’이라는 칼날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거다. 

정 부회장이 공수표만 잇따라 날린다는 비판도 곳곳에서 제기된다. 대표적인 게 ‘시선교란’이다. 골프 마니아로 알려진 정 부회장은 화려한 무늬의 골프복·용품을 착용한 사진과 함께 시선교란이라는 해시태그를 SNS에 자주 업로드하고 있다. 그중엔 정 부회장의 이니셜 ‘YJ’가 무늬로 새겨진 골프복도 있다. 이 때문에 업계 안팎에선 ‘정용진 골프복’ 출시가 임박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신세계티비쇼핑은 지난 3일 ‘시선교란’ 상표권을 출원했다가 일주일 만에 철회했다. 시선교란 브랜드 론칭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정 부회장을 앞세운 골프복 브랜드가 출시될 거란 전망은 여전히 적지 않다. 

SSG랜더스의 구단주인 정 부회장을 모티브로 삼은 ‘구단주 맥주’도 이슈몰이에 성공했지만 정작 제품으론 나오지 않았다. 정 부회장은 지난 6월 10일 자신의 얼굴을 패키지 일러스트로 활용한 구단주 맥주를 SNS에 업로드했다. 이를 두고 실제 구단주 맥주가 출시되는 것 아니냔 전망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계열사인 이마트24(편의점)가 출시한 맥주는 구단주 맥주가 아닌 ‘SSG랜더스 라거(이하 8월 론칭)’ ‘슈퍼스타즈 페일에일’ ‘최신맥주 골든에일’ 등이었다. 

조민정 변리사는 “‘구단주’ 상표권의 경우 6월 10일 제3자가 이미 출원을 해놓은 상태다”면서 “(신세계 측이) 실제 제품 출시 계획이 있었다면 사전에 상표권을 출원했겠지만, 그런 절차가 없었던 것으로 보아 제품 출시보다는 이슈를 만들기 위한 의도였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정 부회장이 이젠 경영자로서 신사업의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영호 김앤커머스 대표는 이렇게 꼬집었다. “정 부회장은 일론 머스크나 리처드 브랜슨처럼 ‘프런티어(개척자)형’ 리더로 구분된다. 프런티어형 리더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신세계의 경우 그동안 신사업의 성과가 좋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앞으로 다른 결과를 내기 위해선 기존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업태를 선보이거나, 유통업계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본다. 소비자가 매출 규모 26조원 대기업 오너에게 거는 기대도 같을 것이다.” 

정 부회장은 신세계를 넘어서 국내 유통업을 이끄는 압도적인 ‘브랜드’가 될 수 있을까.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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