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시대에 재조명받는 웹툰 시장
1911년 시작한 고단샤의 저력
디지털이 바꾼 작가 수급 시스템

글로벌 OTT 넷플릭스에서 위력을 발휘한 한국 영상 콘텐츠가 성공 방정식을 이어가고 있다. 디즈니플러스, 애플티비플러스가 11월 한국 시장에 상륙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를 확보한 건데, 그 중심에 웹툰이 있다. 가령, 애플티비플러스가 선보인 드라마 ‘닥터 브레인’의 원작은 웹툰이다. 넷플리스 플랫폼에서 성공을 거둔 한국 제작사가 만든 오리지널 콘텐츠들 중에서 웹툰이 아닌 ‘오징어 게임’ 등이 오히려 예외적인 경우다.

여러 OTT가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를 선보이는 상황이지만, 만화 편수가 갑자기 늘어나진 않는다. 그래서 국내 웹툰 플랫폼은 작품을 확보하기 위해서 AI를 활용한 만화 채색 기술 개발 등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동시에 만화의 원조 격인 일본 시장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 만화업계는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OTT 시대에 재조명받는 웹툰 시장을 시리즈로 분석해 봤다. 


[시리즈 목차] 
1편 : 일본 만화업계 자화상과 디지털 
2편 : 일본 진출한 한국 웹툰의 꿈 

국내 웹툰 플랫폼은 만화의 원조 격인 일본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국내 웹툰 플랫폼은 만화의 원조 격인 일본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카카오의 일본 자회사 카카오재팬은 지난 2월 ‘스튜디오원픽’이라는 자회사를 만들었다. 카카오재팬 사업전략실장인 스기야마 유키코는 7월 고단샤 소속 잡지 현대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스마툰 제작사인 스튜디오원픽 운영 방침을 이렇게 밝혔다. “대표는 한국 만화잡지 편집자 출신으로, 스마툰(웹툰) 경력을 쌓은 사람이다. 원작은 일본에서 만드는데, 그림은 한국에서 선까지만 그리고, 채색 등 나머지 작업은 동남아시아에서 한다.”

여러 OTT를 통해 한국 웹툰의 영상 콘텐츠 원작으로서의 우수성이 입증됐다. 그만큼 한국 웹툰의 수요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콘텐츠는 다른 제품들과는 다르다. 자본을 투자한다고 갑자기 퀄리티 높은 콘텐츠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어렵다. 그렇다보니 웹툰을 서비스해야 하는 플랫폼, 원작을 확보해야 하는 국내 제작사들은 눈을 해외로 돌릴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웹툰 이전 시대에 한국 만화에 큰 영향을 미쳤고, 지금 우리의 웹툰 구조와 가장 유사한 일본 만화업계를 통해 작품을 공급받을 수 있을지를 연구하고 고민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한국의 웹툰 플랫폼들이 하나같이 일본에 진출해 큰 성과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카카오재팬 측의 생각이 크게 잘못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일본 만화업계는 현재 어떤 상황일까. 산케이신문이 2009년 론칭한 디지털 경제 매체 산케이비즈에 따르면, 일본 1위 만화 출판사인 고단샤는 1995~1997년 3년간 연평균 매출 2조2000억원에 흑자 2200억원을 냈다. 1996년 당시 일본 출판업계 규모는 26조원대였다.

고단샤의 매출은 20년 후인 2016년 1조1720억원으로 크게 줄었다가 2019년 1조3580억원, 2020년 1조4490억원으로 반등하고 있지만 전성기 시절과 비교하긴 어렵다. 실제로 2016년 기준 일본 출판계의 전자책 포함 매출은 16조원대로, 20년 전인 1996년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다만, 일본의 경제가 실질적으로 축소되고 있다는 특수성은 감안해야 한다. 

일본의 경제는 한국과 달리 역성장하는 기간이 길고, 반복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일본 경제는 1995년과 2020년 사이 실질적으로 후퇴했다. 일본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1995년 5조4490억 달러에서 2020년 5조4139억 달러로 줄었다. 

부동산 폭락과 금융회사 도산으로 버블이 터지면서,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일본 경제의 공백기가 시작되던 1991~1995년에도 GDP는 증가세였다. 일본 경제는 미국, 중국에 이어 여전히 세계 3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GDP의 2.6배가 넘는 국채를 발행해 연명하고 있다. 후퇴한 건 출판계만의 일이 아니란 얘기다.

다시 고단샤 이야기를 해보자. 고단샤는 1909년 노마 세이지가 만든 대일본웅변회가 전신이다. 1911년 고단샤라는 이름을 병기했고, 1925년 고단샤로 이름을 바꿨다. 1958년 주식회사 체제를 갖췄다. 노마 세이지 일가가 여전히 회사를 소유하고 있다. 출판사인 고단샤, 고분샤, 일간 겐디아, 킹 레코드 등 계열사를 합해 오토와그룹이라는 명칭으로 부른다.

일본 출판사들은 방송사들과의 관계에 신경을 많이 쓴다. 잡지 연재만화는 TV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수익을 거두기 때문이다. 고단샤는 한때 일본 지상파 방송국인 TBS의 모회사 도쿄방송홀딩스 지분 20.0%를 소유했었고, 현재도 지분 1.98%(2020년 기준)를 보유하고 있다. TBS의 아홉번째 대주주다. 아사히신문, 아사히방송의 지주회사인 아사히홀딩스 지분 1.36%도 가지고 있다. 후지TV가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노출됐을 때는 방송사 측 백기사로 활약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건 이런 고단샤의 매출이 ‘종이’보단 ‘디지털’에서 더 많이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닛케이는 2020년 2월 고단샤의 노마 요시노부 사장이 2019년 매출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한 발언을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 노마 사장은 당시 “21세기 들어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며 “2020년부터 종이 출판 매출보다 전자출판 등 사업 매출이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매체 분카쓰신도 고단샤의 디지털 부문 매출이 전체 매출의 25% 이상을 차지했다고 비중 있게 보도했다. 고단샤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종이 출판 부문 매출이 전기보다 3.9% 줄어들어 6430억원을 기록했지만, 디지털 부문 매출과 저작권 판매를 망라한 사업 수익은 39%나 증가한 6130억원대를 기록했다. 

한국 웹툰은 성공신화를 잇따라 쓰고 있다. 사진은 애플티비플러스가 선보인 ‘닥터 브레인’의 원작.[사진=카카오페이지 제공]
한국 웹툰은 성공신화를 잇따라 쓰고 있다. 사진은 애플티비플러스가 선보인 ‘닥터 브레인’의 원작.[사진=카카오페이지 제공]

일본 만화의 중심이 ‘디지털’로 넘어간 걸 보여주는 예는 또 있다. 일본 전국출판협회 산하 출판과학연구소 자료를 보면, 2020년 전체 만화 판매액은 6조1200억원으로 2019년보다 23% 증가했다. 1995년 5조8640억원을 기록했던 것을 무려 25년 만에 경신했다. 특히 디지털 만화시장이 2020년 3조4200억원을 기록해 전년보다 31.9% 늘어나면서, 증가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이렇게 일본 만화업계의 흐름을 바꾼 디지털은 작가 수급 시스템까지 흔들고 있다. 일본에서 신인 만화가가 데뷔하는 통로는 주간 만화잡지였다. 그러나 만화잡지 시장은 사실상 붕괴됐다. 1995년 일본 종이 만화잡지 전체 매출은 3조5000억원으로 정점을 찍고, 2009년 1조9130억 원대로 축소된 데 이어, 2020년에는 6270억원대까지 떨어졌다. 이 정도면 붕괴라고 해야 한다.

그 결과, 고단샤는 2018년 자사 6개 만화 잡지를 모두 통합해 앱에서 월 720엔에 무제한 볼 수 있는 서비스를 론칭했다. 해당 매출은 만화잡지가 아닌 디지털 만화 부문으로 잡힌다. 디지털 전환, 서비스 통합 다음 단계는 전면 디지털화가 될 공산이 크다. 이렇게 되면 일본 만화 시장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시장이 된다. 

언급했듯 신인 작가들의 수급처였던 주간 만화잡지가 디지털로 전환되면 독자가 평점으로 만화가를 데뷔시키는 한국형 작가 수급 시스템으로 바뀔 수 있다. 고단샤에서 해외 저작권 업무를 담당하는 고토 에리유카는 2019년 12월 13일 만화 앱 마가포케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만화는 퀄리티가 높기 때문에 (다른 나라 만화에) 질 리가 없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디지털에 한해서는 그렇다고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한정연 칼럼니스트 | 더스쿠프 
Investing.com 기자 

jayhan090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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