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사각지대 놓인 분양대행 시장
비주거 분양대행 규제, 설립 기준 없어
분양대행업체 규제법 국회 문턱 넘을까

취업난에 허덕이는 청년이 숱하다. 문제는 이를 악용하는 곳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지식산업센터 등을 맡아 분양하는 분양대행업체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고수익을 미끼로 청년을 모집한다. 그리곤 100% 인센티브제로 근로계약을 체결해 일을 시킨다. 하지만 편법이 판치는 분양대행 시장에서 버틸 수 있는 청년은 많지 않다. 몇달간 무임금으로 일하다 도망치듯 분양대행업체를 빠져나오는 청년들이 수두룩한 건 이 때문이다. 분양대행업체에선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분양대행업체와 청년의 눈물을 취재했다.

분양대행업체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사진=뉴시스] 
분양대행업체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사진=뉴시스] 

“상담직 월 500만원 보장” “내근직 월 1000만원 가능” “건당 수수료 500만원” 어느 분야의 채용공고다. 근무 기간도 자유롭다. 계약직부터 짧게는 3~6개월의 아르바이트도 가능하다. 파격적인 채용 조건과 달리 지원 자격은 느슨하다. 학점 3.5점 이상, 토익 점수 900점 이상, 어학연수, 인턴 경험 등과 같은 스펙은 필요 없다. 학력은 물론 경력과 성별, 나이도 무관이다. 취업난에 허덕이는 청년에겐 파격적인 조건임에 틀림없다.

“이런 게 어디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채용 공고다. 업종은 부동산, 분야는 분양대행사다. 공고만이 아니다. 해당 업체에서 실제로 일하고 있다는 직원의 후기를 채용공고에 함께 올려놓은 곳도 있다. 대부분 팀장이라고 밝힌 이들의 후기는 읽는 사람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취업 1~2년 만에 억대 연봉을 받고 일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시작해서다.

대략의 내용을 보자. “취업난과 경제적인 어려움에 허덕이다 우연한 기회로 분양대행업체에 취업했다. 체계적인 교육과 함께 일하는 팀원들 덕분에 분양시장의 전문가로 성장했다. 그 덕에 억대 연봉을 받는 팀장이 됐다. 회사와 팀원을 믿고 열심히 노력하면 대기업 임원 연봉이 부럽지 않은 소득을 올릴 수 있다.” 글의 말미엔 명언도 붙여놨다. “세상에서 중요한 세가지 금은 황금·소금·지금이다. 지금 도전하라.”

이런 채용공고를 믿고 지원하는 청년이 있을까 싶겠지만 의외로 많은 이들이 이를 보고 분양대행 시장에 뛰어든다. 실제로 지식산업센터 분양홍보관을 방문해보면 말쑥하게 차려입고 일하는 청년들이 적지 않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돈이다. 그만큼 취업난에 허덕이는 청년이 많다는 거다. 코로나19 이후 기업들은 채용 규모를 줄이고 있다. 당연히 청년들이 겪는 경제적 고통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청년(15~29세)의 체감경제고통지수는 27.2포인트로 2015년 집계를 시작한 이후 최고치로 치솟았다.[※참고: 체감경제고통지수는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을 더해 경제적 삶의 질을 측정하는 지표다. 지수는 연령대별 체감실업률에 연령대별 물가상승률을 더해 계산한다.]

그 결과, 청년층의 체감경제고통지수는 다른 연령대를 크게 웃돌았다. 30대(13.6포인트)의 2배, 40대(11.5포인트)보다는 2.3배 높았다. 노인 빈곤 문제를 겪고 있는 60대(18.8포인트)와 비교해도 1.4배 이상 높다. 청년층이 겪는 경제적 고통이 적지 않다는 방증이다.

청년들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분양대행업체의 문을 두드린다는 건데, 그렇다면 분양대행업체 취업에 성공한 청년들은 채용공고처럼 많은 돈을 벌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아 보였다.

# 분양대행사의 채용 꼼수

10월 29일 기자 앞으로 한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분양대행사들이 고수익을 미끼로 청년들을 채용하곤 사실상 무임금으로 부려 먹는다는 내용이었다. ‘분양대행업체의 여직원이 소개팅앱에서 만난 남성을 대상으로 부동산 분양 사기를 벌였다’는 얘기가 회자되고 있던 터라 의문이 생겼다.

허위·과장 광고로 투자자를 속이는 분양대행업체와 한통속인 줄 알았던 직원도 피해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약속을 정하고 메일을 보낸 사람을 만났다. 박준현(가명·48)씨는 자신을 국내 중소 시행사의 직원이라고 밝혔다. 지금 일하고 있는 시행사가 경기도에 지식산업센터를 건설 중이라고 사실도 덧붙였다.

그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분양대행업체의 문제점이 많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구인구직 공고에 올린 월 500만~1000만원의 급여 조건은 미끼에 불과합니다. 공고를 본 이들은 높은 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착각하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허위·과장 광고로 투자자를 속이는 분양대행업체가 직원도 허위·과장 광고로 모집한다는 건데 무슨 얘기일까. “계약을 체결하면 수수료를 받는 거 아닌가요?” 기자의 물음에 박씨는 “처음부터 부동산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는 직원은 거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분양대행업체의 채용 과정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시행사와 분양계약을 체결한 분양대행업체는 구인구직 사이트에 고액의 급여를 앞세운 채용공고를 올린다. 정규직인지 계약직인지는 밝히지 않는다.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한 이가 생기면 이때부터 꼼수 아닌 꼼수를 부린다. 면접 과정에서 100% 인센티브로 임금을 지급하는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100% 인센티브 계약은 기본급 등의 비용이 발생하지 않아 사측에 훨씬 유리하다. 물론 100% 인센티브제로 근로계약을 맺더라도 사용자가 출·퇴근 시간과 노동 장소 등을 결정하고, 사용자로부터 업무의 지시·감독을 받는다면 근로자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이승은 노무사(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위원장)는 “사용자와 종속적인 관계에서 노동을 제공한 경우라면 근로자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며 “이런 경우 최저임금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 있는 분양대행업체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사진=뉴시스]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 있는 분양대행업체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사진=뉴시스] 

하지만 분양대행업체 측은 괘념치 않는다. 이를 피해 갈 수 있는 방법은 많기 때문이다. 가령 업무지시는 교육이나 영업에 필요한 스킬을 가르치는 시간으로 둔갑해버리는 식이다. 분양대행업체 관계자는 “고정급이 없는 100% 인센티브제 계약은 프리랜서 계약과 같은 것”이라며 “대부분의 영업직은 이렇게 근로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아 문제 될 것이 없다”고 항변했다.

# 분양상담사 되는 길

채용이 확정된 이는 분양 상담에 필요한 교육을 받는다. ▲분양할 지식산업센터, 오피스텔 등 수익형 부동산의 정보와 배후 조건 ▲기본적인 부동산 정보 등이 주요 커리큘럼이다. 2~3일의 교육이 끝나면 분양 현장에 투입된다. 휘황찬란하게 꾸며 놓은 분양홍보관이 출근처다. 그곳에서 주임·과장·책임 등의 직책이 적힌 명함을 받는다. 이제 분양전문가로서의 커리어가 시작됐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박씨의 말을 들어보자. “말이 좋아 분양 상담사고 과장이지 처음엔 호객행위를 하는 업무를 맡는다고 보면 된다. 전단지를 뿌리고, 길거리에서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해 분양홍보관으로 유도하는 게 주된 업무다.” 그는 “분양 건과 관련한 내용을 어느 정도 습득한 분양상담사는 고객에게 전화를 거는 텔레마케팅을 한다”며 “이들의 목표는 어떻게 해서든 고객을 분양홍보관으로 끌고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 전직 분양대행업체 상담사의 기억

분양대행업체의 실상을 제대로 알기 위해 전직 분양상담사 김형민(가명·30)씨의 얘기를 들어봤다. 김씨는 3년간 분양대행업체에서 일했다. 그는 “분양대행업체엔 부동산 전문가는 없다”며 “계약 수수료만 벌려는 욕심에 편법이 판치는 곳”이라고 얘기했다. [※참고: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1문1답으로 풀었다.]

✚ 계약 건당 200만~300만원의 수수료를 챙길 수 있다면 고수익도 가능한 게 아닌가.
김형민씨(이하 김씨) : “말은 그렇지만 현실에선 불가능하다. 분양대행업체가 맡는 분양 건은 투자 가치가 낮거나 팔기 어려운 악성 매물이 대부분이다. 좋은 물건은 시행사가 직접 분양하거나 친분이 있는 분양대행업체에 맡긴다. 투자 가치가 높은 분양 물건을 만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열심히 노력해도 분양 계약을 체결하는 건 쉽지 않다.”

✚ 수익형 부동산 분양 시장에 허위·과장 광고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인가.
김씨 : “그렇다. 분양상담사의 목표는 두가지다. 분양홍보관으로 손님을 끌어오는 것과 단돈 10만원이라도 계약금을 받는 것이다. 허위·과장 광고는 기본이다. 분양받으면 끝까지 관리하겠다는 조건을 거는 경우도 많다. 이런 약속은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 실제로 분양을 하는 건 쉽지 않다는 건가.
김씨 : “수백통의 전화를 돌려도 통화로 이어지는 건 손으로 꼽을 정도다. 그중 분양홍보관으로 오는 고객은 더 적다. 분양상담사의 말을 듣고 투자하는 고객은 정말 소수다. 수십명의 분양상담사를 두고 일하는 것도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전화를 많이 해서 휴대전화 번호가 스팸번호로 등록된 일도 많았다.”

✚ 분양 시장에서 살아남는 상담사는 몇이나 되나.
김씨 : “개인의 능력에 따라 다른 건 사실이다. 하지만 100명 중 1~2명도 살아남기 힘든 곳이 분양대행업체 시장이다. 계약하지 못하면 몇달을 무일푼으로 버텨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뛰어들었다가 몇달 만에 떠나는 사람이 무척 많다. 저도 3년을 열심히 일했지만 큰돈을 벌지는 못했다.”

✚ 고수익을 미끼로 한 채용공고를 내는 것도 이 때문인가.
김씨 : “그렇다. 채용해서 일을 잘하면 좋은 거고 그렇지 않아도 분양대행업체가 손해 볼 건 없다. 100% 인센티브제로 임금을 주다 보니 계약을 하지 못한 사람은 못 버티고 알아서 나간다. 일한 기간만큼 공짜로 사람을 쓸 수 있다. 문제가 생기면 폐업하고 새롭게 시작하면 그만이다.”

✚ 한편에선 고수익을 노리고 분양대행 시장에 뛰어든 일부 청년의 문제라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다. 
김씨 : “그렇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분양대행업체에 들어가는 청년이 늘어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예전엔 주로 40~50대가 분양상담사로 일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20~30대 청년이 훨씬 많다. 분양대행업체의 허위‧과장광고, 분양사기 등이 사회문제로 번지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 규제 사각지대의 늪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이는 분양대행업체가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가 포함돼 있는 공동주택 분양시장은 그나마 관리를 받고 있다. 분양대행업을 하기 위해서는 건설업자·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부동산개발업자 등으로 등록해야 한다. 일정 규모 이상의 자본금과 부동산 전문가를 의무적으로 고용하는 등의 설립 요건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식산업센터와 오피스텔 같은 비주거 부동산 분양대행업체는 최소한의 규제도 없다. 수천만원의 자본금만 있으면 분양대행업체를 설립할 수 있다. 당연히 분양대행업체의 정확한 규모와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의 수는 알려야 알 수 없다.

고수익을 미끼로 취업난에 빠진 청년을 울리는 분양대행업체가 난립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비자 피해 등 숱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분양대행업체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조준환 한국부동산분양서비스협회 사무국장은 “영세·무자격 분양대행업체가 증가하면서 피해를 입는 소비자도 늘어나고 있다”며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설립 기준 등의 규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산업정책 차원에서 분양서비스사업자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며 “중고 제품으로 볼 수 있는 분양 후 부동산을 거래할 때는 공인중개사를 두면서 새 제품을 사고파는 격인 분양시장을 규제의 사각지대로 두는 것은 모순”이라고 꼬집었다.

취업난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청년층이 나쁜 일자리로 내몰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취업난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청년층이 나쁜 일자리로 내몰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다행히 최근 들어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아파트 이외의 부동산을 분양하는 분양대행업체의 자격 기준을 도입하는 부동산서비스산업 진흥법 일부 개정법률안’이 지난 7월 발의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이 국회의 문턱을 넘어 시행되기까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문제는 그사이 소비자의 피해는 끊이지 않고, 분양대행업체의 유혹에 속아 넘어간 청년도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허준열 투자의신 대표는 “수수료만 노리고 소비자를 울리는 분양대행업체의 편법적인 영업을 막기 위해서는 제도적 개선이 꼭 필요하다”며 “강력한 규제가 없으면 기형적으로 변한 분양대행업체 시장을 바로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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