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대 LINC+ 사업단 공동기획
프로보노 프로젝트 | 휠링쿱 컨설팅의 기록
가톨릭대 + 포스코경영연구원 콜라보

장애인을 고용하고 있는 사회적기업이 장애인을 위한 ‘높낮이 조절 싱크대’를 출시했다. 다리가 불편한 이들에겐 꼭 필요한 제품이었다. 하지만 제품은 잘 팔리지 않았다. 무명의 브랜드, 부족한 마케팅 능력 탓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톨릭대 학생들과 포스코경영연구원이 이 제품의 홍보 방안을 찾아 나섰다. 성과는 알찼다.

시중의 싱크대는 비장애인을 위한 구조로 돼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시중의 싱크대는 비장애인을 위한 구조로 돼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우리 모두는 잠재적 장애인이다.” 장애인 정책이 거론될 때마다 빠지지 않는 명제다. 누구나 질병이나 사고로 장애가 생길 수 있으니 이 명제는 언제나 참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를 망각한다. 수많은 장애인이 여전히 계단과 난간에 막혀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런 제한은 집밖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비장애인 중심으로 꾸며진 생활공간은 장애인에겐 매일 넘어야 할 산이다. 끼니를 때우는 것조차 쉽지 않다.

예를 들어보자.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 휠체어를 타고 식사 준비를 하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선다. 하지만 그들에게 싱크대는 너무 높다. 싱크대 상부장엔 손이 닿지 않으니 모든 식기는 하부장에 모여 있다. 그릇 하나 꺼내려면 휠체어를 빼야 하고, 휠체어를 빼면 그릇에 손이 닿지 않는다. 

가까스로 음식을 해서 식사를 마쳐도 넘어야 할 산은 또 있다. 설거지다. 음식을 해 먹기도 힘든데, 설거지는 그야말로 전쟁이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장애인복지관이 시시때때로 장애인들에게 즉석식품을 지원하는 건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싱크대 상부장과 하부장의 높낮이가 리모컨만으로 조절된다면 어떨까. 게다가 하부장이 훤히 뚫려 있어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고, 심지어 바닥에 앉아 조리를 하거나 설거지를 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런 고민 끝에 지난해 8월 탄생한 게 사회적기업 휠링보장구협동조합의 ‘높낮이 조절 싱크대’다.[※참고: 사회적기업인 휠링보장구협동조합은 전동휠체어용 급속자동충전기 제조ㆍ판매, 휠체어 수리지원과 대여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 2013년 설립했고, 2017년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물론 높이 조절이 가능한 싱크대가 휠링보장구협동조합에만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장애인에게 특화된 높이 조절 싱크대를, 장애인을 고용하고 있는 사회적기업이 제품화한 건 휠링보장구협동조합이 처음이다. 문제는 이 제품을 필요로 하는 장애인조차 이 제품을 잘 모른다는 점이었다. 시장도 좁았다. 획기적인 마케팅이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톨릭대학교 학생들과 포스코경영연구원 소속 연구원이 나섰다. 바로 ‘프로보노(Pro Bono) 프로젝트’를 통해서다.[※참고: 프로보노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사회적 약자를 돕는 활동이다. 올해 2월 가톨릭대 LINC+ 사업단과 포스코경영연구원이 사회적기업을 돕는다는 취지로 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프로젝트는 올해 1학기 신설한 ‘제3 섹터와 기업가 정신’ 수업을 통해 진행됐다.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이 연구원 소속 전문가(멘토)와 함께 팀을 짜고, 학기 내에 합을 맞춰 사회적기업이 필요로 하는 도움을 주는 게 목표였다.]

휠링보장구협동조합의 애로사항을 접수한 이들은 현수미ㆍ김양환ㆍ최세진 학생과 포스코경영연구원의 김용식 연구원이 포함된 ‘지화수’ 팀이었다. 민간 싱크탱크의 전문가가 포함돼 있다곤 해도 마케팅을 전공하지도 않은 학생들이 무슨 도움이나 됐을까 싶지만 그렇지 않았다.

지화수팀과 한 학기를 함께한 심형은 휠링보장구협동조합 본부장은 “솔직히 대학생들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실질적인 도움을 받았다”면서 “무엇보다 지화수팀이 제시한 마케팅 전략을 실제로도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화수팀은 ‘높낮이 조절 싱크대’를 상하부장으로 분리 판매하면 제품 가격을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 제안했다.[사진=휠링보장구협동조합 제공]
지화수팀은 ‘높낮이 조절 싱크대’를 상하부장으로 분리 판매하면 제품 가격을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 제안했다.[사진=휠링보장구협동조합 제공]

컨설팅이 생각보다 제대로 이뤄졌다는 건데, 심 본부장이 이렇게 말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당초 휠링보장구협동조합 측은 ‘주요 사업(전동휠체어 급속자동충전기 제조ㆍ판매)에 도움이 되는 마케팅 컨설팅’에 초점을 맞췄다. 

학생 아이디어로 타깃 변경 

하지만 약 3주간 양측이 적극적으로 정보를 교환하면서 지화수팀이 내린 결론은 ‘높낮이 조절 싱크대’의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전동휠체어 급속자동충전기만으로는 사업 확장이 어렵고, ‘높낮이 조절 싱크대’에 기회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지화수팀이 이 기업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찾아준 셈이다. 

마케팅 포인트를 새롭게 설정한 지화수팀은 해당 제품의 경쟁력과 단점을 파악했다. 강점을 강화하고,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였다. ▲휠링보장구협동조합이 장애인을 고용한 사회적기업이라는 점 ▲‘높낮이 조절 싱크대’를 리모컨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 ▲원자재를 직접 가공해 제품을 만든다는 점 등을 강점으로, ▲장애인에 초점 맞춘 마케팅 ▲높은 제품 단가 ▲브랜드 네이밍 부재 ▲체계적인 온라인 마케팅 미비를 단점으로 추려냈다. 

이를 토대로 지화수팀은 강점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리플릿을 제작했다. 싱크대의 상ㆍ하부장을 별도 판매하면 제품 단가를 낮출 수 있고, 고객층을 노인 가구와 맞벌이 가구(어린이 사용 가능) 등 비장애인으로 넓힐 수 있다는 제안을 내놨다. 고령화로 인해 노인 인구(65세 이상 인구 전체의 16.5%)가 가파르게 늘고, 어린이들이 주방에서 안전사고(어린이 화상사고의 45.8%)를 많이 겪는다는 걸 마케팅 근거로 활용했다. 

전략은 성과로 이어졌다. 우선 한눈에 장점을 파악할 수 있는 리플릿이 생겼다. 심형은 본부장은 “규모의 경제를 통해서만 제품 단가를 낮출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방법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면서 “게다가 한눈에 볼 수 있는 리플릿은 영업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성과도 있다. 고객층을 다양화해서 홍보한 결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관심도 끌어냈다. 주거약자용 주택의 설비를 개선해주는 사업을 진행 중인 LH로부터 “설비 개선 항목에 ‘높낮이 조절 싱크대’를 포함할 수 있는지 고려해보겠다”는 답을 얻어낸 거다. 학생들과 함께 고작 한 학기 동안 진행한 컨설팅이란 점을 감안하면 큰 성과다.

진심과 소통이 만든 합작품 

어떻게 지화수팀이 이런 결과를 낼 수 있었을까. 당연히 전문가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현수미(사회복지학) 학생은 “상당 부분을 김용식 연구원님에게 여쭤보고 상의하면서 전략을 잡았고, 심형은 본부장님은 학생들이라고 무시하지 않고 회의에 참석해주셨다”면서 공을 돌렸다. 

심 본부장은 “학생들이 회의 때마다 새로운 자료를 한 뭉치씩 갖고 왔는데, 그중엔 몰랐던 것들이 꽤 많았다”면서 학생들의 진심과 노력에 점수를 줬다. 김용식 연구원은 “잘 만든 제품이 없다면 마케팅도 소용이 없다”면서 “게다가 학생들이 참신한 아이디어를 너무 많이 낸 통에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을 보완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사회적 약자를 생각하며 제품을 만든 기업, 그 기업을 돕겠다는 진심과 응원, 그리고 전문가의 조언이 더해져 아름다운 결과물을 도출해냈다는 얘기다. 진심은 언제나 통하는 모양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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