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피 우려 네가지 근거
순매도세로 돌아선 개인투자자
20개월 이어진 유동성 파티 끝나

국내 증시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가 있다. 바로 ‘박스피(박스권+코스피)’다. 2000년대 중반 1700~2200포인트대를 벗어나지 못했던 국내 증시를 빗댄 단어인데, 최근 이 말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오미크론),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상승동력을 잃은 코스피지수가 3000포인트대에 발목이 잡혀 있어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증시는 정말 박스피에 갇힌 걸까.

코스피지수가 3000포인트대의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코스피지수가 3000포인트대의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사진=뉴시스] 

50거래일. 지난 8일 기준 코스피지수가 3000포인트대에서 머문 시간이다. 코스피지수는 지난 9월 28일 3097.92포인트를 기록한 이후 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11월 이후엔 2일(3031.49포인트), 22일(3013.25포인트), 12월 8일(3001.8포인트)을 제외하곤 계속해서 3000포인트대를 밑돌았다. 그러자 시장에선 코스피지수가 2800~ 3200포인트라는 새로운 박스권에 갇히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 시작했다. 신新 박스피 시대가 열린 게 아니냐는 우려다.

그럼 박스피의 함의는 무엇일까. 박스권에 갇힌 코스피지수를 의미하는 ‘박스피’는 국내 증시를 표현하는 애증의 단어다. 2010년부터 2017년까지 코스피지수는 1700포인트에서 2200포인트 사이에서 움직였다. 2011년 5월 2일 기록했던 코스피지수 당시 최고치(2228.96포인트)가 경신되는 데 6년(2017년 5월 4일 2241.24포인트)이나 걸렸을 정도로 지독한 박스피였다.

당연히 투자자들 사이에선 ‘뭘 하더라도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자조 섞인 푸념이 새어나왔다. 증시가 옆으로 기는 지루한 장이 길어질수록 수익을 내는 게 어려워지기 때문이었다.

시계추를 다시 최근으로 돌려보자. 2010~2017년처럼 국내 증시는 정말 박스권에 갇힌 것일까. 지난 1월 코스피시장에 ‘삼천피’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올해 1월 4일 코스피지수가 사상 처음으로 3000포인트를 돌파하면서다. 코스피지수가 삼천피를 달성하자 시장 안팎에서 시장에 거품이 끼고 있다는 우려가 쏟아져 나왔다.

코로나19로 인해 실물경제는 침체를 겪고 있는데 자산시장은 펄펄 끓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코스피지수가 폭락했던 지난해 3월 19일(1457.64포인트)과 비교하면 2배 이상 오른 수치니 버블 우려가 제기되기엔 충분했다.

하지만 몇몇 투자전문가는 그 와중에도 동학개미운동, 코로나19로 인한 기저효과, 4차 산업의 활성화, 유동성 장세 등 지수 상승의 명분을 찾기에 바빴다. 박스피 진입 우려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는 세력도 있었다. 논리는 다음과 같았다. “코스피 3000포인트 시대가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증시 부진을 의미하는 박스권을 걱정하는 것이 합당한가.”

하지만 대다수 투자전문가는 코스피지수가 박스권에 접어들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전 고점이던 3300포인트대를 뚫는 게 쉽지 않은 상황에선 횡보장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박스피 근거❶ 활력 떨어진 코스피지수 = 자! 지금부터 우리나라 증시가 ‘박스피’에 갇혔다는 걸 설명해보자. 무엇보다 코스피 시장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 코스피지수는 지난 7월 6일 사상 최고치인 3305.21포인트를 기록한 이후 아래로 방향을 틀었다.

9월 초 3200포인트대를 회복하며 반등의 기미를 보이는 듯했지만 상승세는 오래가지 않았다. 되레 지수가 하락하는 속도는 더 빨라졌다. 한달 만인 10월초 2900포인트대로 하락했고, 11월 30일엔 연중 최저치인 2839. 01포인트로 떨어졌다. 코스피지수가 2800포인트대를 기록한 건 지난해 12월 30일(2873.47포인트) 이후 11개월 만이다.

문제는 상장기업의 실적이 부진했던 건 아니란 점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3분기 코스피 상장기업(682개)의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92.9% 늘어난 76조9544억원을 기록했다. 다시 말해, 순이익이 2배 가까이 증가할 때 지수는 되레 백스텝을 밟은 셈이다.

■박스피 근거❷ 20개월 만에 끝난 파티 = 한편에선 이를 근거로 코스피지수가 머지않아 박스권에서 벗어나 상승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치지만 시장 전망은 반대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증시를 지탱해온 유동성이 줄어들 공산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3월 기준금리를 0.75%로 인하면서 0%대 초저금리 시대를 열었다(지난해 5월엔 기준금리를 0.5%로 한차례 더 낮췄다). 돈을 풀어 경기가 침체하는 걸 막겠다는 의지였다. 하지만 한은의 확장적 통화정책은 사실상 끝났다.

지난 8월과 11월에 단행한 두차례에 걸친 금리 인상으로 기준금리가 1.0%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20개월 동안 이어진 0%대 금리 시대가 막을 내린 셈이니, 주식시장에 몰렸던 유동성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효과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9월 25조원을 웃돌았던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11월 23조원으로 줄었다. 12월 들어선 22조원대로 감소했다(지난 7일 기준 22조5512억원). 기준금리 조정 효과가 3개월 뒤부터 본격화한다는 걸 감안하면 증시에 집중됐던 유동성은 더 줄어들 게 분명하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증시를 이끈 가장 큰 요인이 사라졌다는 얘기다.

■박스피 근거❸ 힘 빠진 개인투자자 = 우리나라 증시가 박스피에 갇혔다는 근거는 또 있다. 유동성 파티에 올라탔던 개인투자자의 힘이 빠졌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이후 동학개미운동이 불러일으킨 주식 투자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주식이 국민 재테크 수단으로 자리 잡으면서 투자자들은 ‘빚투(빚을 내서 주식에 투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주식에 투자)’에 나섰다. 0%대 금리도 이들의 행동을 부추겼다. 저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으니 투자 수익으로 이를 갚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르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출금리가 상승세를 타고 있어서다. 신용대출 금리가 5%대까지 상승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5% 이상의 수익을 올려야 빚투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당연히 증시에서 발을 빼는 개인투자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동학개미운동으로 불리던 개인투자자의 투자 열기는 식은 지 오래다. 지난해 12월 코스피시장의 69.9%를 차지했던 개인투자자의 매수 비중(거래대금 기준)은 지난 10월 58.7%로 감소했다. 11월엔 57.0%로 더 쪼그라들더니 12월 들어선 47.4%까지 빠졌다. 더 큰 문제는 개인투자자의 순매수세다. 지난 2월 8조4380억원을 기록했던 개인투자자의 순매수세가 지난 11월 1조7927억원의 순매도세로 돌아섰다. 개인투자자가 순매도세를 기록한 건 지난해 11월(2조7835억원) 이후 1년 만이다.

순매도세는 더 가팔라지고 있다. 지난 8일 기준 개인투자자는 코스피 시장에서 3조1900억원의 주식을 팔아치웠다. 반대로 같은 기간 외국인 투자자의 매수 비중은 13.6%에서 28.4%로 두배 이상 증가했다. 주가 상승을 견인했던 개인투자자의 영향력은 약해지고 외국인 투자자의 입김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코스피시장 전체 거래대금도 쪼그라들고 있다. 지난 1월 26조4778억원까지 치솟았던 일평균 거래대금은 11월 11조7177원으로 줄어들었다. 12월 들어선 10조원대로 감소했다. 개인투자자의 이탈과 시장 전체의 부진이 코스피지수의 박스권 진입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거다.

■박스피 근거❹ 변수와 악재 = 이밖에도 코스피지수의 상승세를 막을 악재는 숱하다. 계속해서 변이하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대표적이다. 변이 바이러스의 유행은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막고 투자심리를 얼어붙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부진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걱정거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3분기 GDP 성장률은 0.3%를 기록했다. 1분기 1.7%, 2분기 0.8%에서 계속 둔화하고 있다. 올해 목표치인 GDP 4% 성장 달성이 쉽지 않아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올해 GDP 성장률에 기저효과가 깔려 있다는 점이다. 내년 GDP성장률이 더 둔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도 눈여겨봐야 할 이슈다. 미국의 통화정책 변화가 코스피지수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아서다.

중국 부동산그룹 헝다恒大(에버그란데)에서 시작된 부채 위기와 중국의 경제성장률 둔화도 코스피시장에 악재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박스권의 상단보다는 하단을 걱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코스피지수가 새로운 박스권에 들어섰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면서 말을 이었다. “유동성의 힘으로 상승했던 주가지수가 정상화하는 과정으로 볼 여지도 있다. 하지만 우려스러운 건 코스피지수가 박스권 하단인 2800포인트를 밑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증시를 끌어올릴 호재보단 악재가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밸류에이션마저 비웃던 유동성이 사라지자 박스피란 우울한 현실이 다가왔다. 증시는 이제 어디로 흐를까.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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